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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21세기에 다시 증폭된 외국인 혐오와 불평등, 정치적 불확실성, 극우 포퓰리즘을 추적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의 지적이고도 도발적인 오늘날의 세계사!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오늘날의 정치는 비스마르크의 냉소적인 경구를 따른다. “시험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누구나 원칙을 고수한다오. 그런데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 농부가 슬리퍼를 벗어던지듯이 원칙 따윈 내팽개치지.”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한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를 찍어주세요”라고 말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정치인들은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자기 덕분이라고 주장하며, 나쁜 일은 전부 야당이나 이전 정부 탓으로 돌린다. 흔한 일이다. 그리고 물론 우리가 믿지 못하는 건 정치인만이 아니다.
우리는 기존의 제약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와 정당, 집단과 계급이 나타나서 구원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병이 심각하지 않은 시대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었다. 오늘날 그런 희망은 오로지 종교 광신자들만의 것이며, 외국인 혐오와 불평등, 정치적 불확실성, 기후변화, 환경 파괴, 전 지구적 팬데믹, 미치광이 정치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평범한’ 희망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다.
🏫 저자 소개
도널스 서순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나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지에서 공부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런던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런던대학교 퀸메리 칼리지 유럽 비교사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사회주의 100년One Hundred Years of Socialism』(1996), 『모나리자Mona Lisa』(2001), 『유럽문화사The Culture of the Europeans』(2006), 『불안한 승리The Anxious Triumph』(2019) 등이 있다. 광범위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방대한 정보량뿐만 아니라 독보적인 서술 방식으로 당대 사회를 압축하는 도널드 서순은 영국 최고의 역사학자로 손꼽힌다.
📜 목차
그림과 표 목록
감사의 말
서문
제1장 낡은 것은 죽어가고
제2장 외국인 혐오의 부상
제3장 복지의 쇠퇴
제4장 기성 정당의 몰락
제5장 미국의 패권
제6장 유럽의 서사
제7장 유럽은 결딴나는 중?
제8장 잃어버린 희망?
옮기고 나서
미주
인명 색인
📖 책 속으로
그람시는 위기-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위기-란 이른바 ‘권위의 위기’, 즉 지배계급들이 기반을 잃고, 그들의 지배를 떠받히는 합의가 시들해지며, 대중에 대한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장악력이 허물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람시가 보기에, 이 대중은 이제 더이상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않았다. 대중은 점점 냉소적이고 회의적으로 변해갔다. 이제 더이상 엘리트를 신뢰하지 않았고, 엘리트들도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예측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위기를 급진적 변화를 이루기 위한 기회로 보았다. 우리와 한결 가까운 그람시는 그만큼 낙관적이지 않다. 그람시가 묘사하는 위기 국면은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병적 징후’들로 가득한 ‘공백기’였다. 그람시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지성의 비관주의’와 반대되는 ‘의지의 낙관주의’를 품은 채-이런 병적 징후들이 진보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를 기대했다. (17~18쪽)
1945년 이래 유럽을 통치해온 기성 정당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감소하고 있다. 주로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좌파가 지지를 잃었지만 전통적인 보수당도 만만치 않게 기반을 상실했으며, 무엇보다도 서구 대다수 나라에서 외국인 혐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리하여 강하고 안전하며 통합된 유럽으로 우리 앞에 놓인 도전에 마주할 것이라는 ‘유러피언 드림’이 허물어지고 있다. 2004년, 언론에서는 영원한 구루이지만 대개 틀린 말만 하는 제러미 리프킨은 유럽이 ‘아무도 모르게 아메리칸 드림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2020년에 이르면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했고, 에스파냐는 계속해서 카탈루냐 분리주의에 맞닥뜨리고 있으며, 그리스는 훨씬 더 어려운 시절이 올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벨기에는 정부를 구성해서 나라를 하나로 뭉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정당들이 급부상하는 중이다. (23쪽)
사람들이 지구 전체에서 이동이 확대됨에 따라 외국인 혐오가 퍼지고 있다. 유럽인들-종종 기꺼이 ‘인도적’ 개입을 지지하는 이들 포함-은 난민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 가운데 17퍼센트만이 유럽에 수용되는 반면(미국에는 16퍼센트), 아프리카에 30퍼센트, 중동에 26퍼센트,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11퍼센트가 받아들여진다. 2014년에서 2017년 사이에 이주자 2만 2500명이 안전한 곳까지 가려다가 사망했다. 그중 절반은 지중해를 건너던 와중에 목숨을 잃었다. 1993~2018년 동안 3만 4361명 이상의 죽음이 ‘요새 유럽Fortress Europe이라는 치명적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 1970년 1월 이래 유럽에서 발생한 테러로 죽은 전체 사망자(1만 1288명. 유럽 최대의 테러 피해자인 러시아를 포함한 수치다)보다 많은 숫자다. (29쪽)
실제로 많은 권력자 남성은 종족적 출신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성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파이낸셜타임스』에서 폭로된 것처럼, 2018년 1월 런던 도체스터 호텔에서 남자들만 모인 가운데 열린 ‘자선’ 갈라쇼(33년째)에는 검은 넥타이를 맨 남자 360명이 참석했다. 기업가, 부동산 재벌, 영화 제작자, 금융가, 괴짜 정치가 등이 뒤섞인 참석자들 사이사이에 특별히 뽑은 호스티스 130명이 함께했다. 노출이 심한 검정색 의상에 어울리는 속옷과 하이힐을 갖추라는 지시를 받고 비밀 엄수 계약서에 서명하고 온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일부는 용돈을 벌려고 온 학생이었다-중 다수가 몸을 더듬는 등의 성추행을 당하고, 추잡하고 외설적인 말을 듣고, 남자하고 침실까지 같이 가라는 요청을 거듭 받았다. 몇몇 남자들은 계속해서 여자의 치마를 걷어올렸다. 어떤 남자는 그날 저녁에 자기 성기를 노출했다. …… 이날 밤 세계 금융의 중심지에서 이른바 ‘세계의 지배자들’과 ‘산업의 수장들’은 애처로울 정도로 섹스에 굶주린 젊은 잡놈들처럼 행동했다. 자기 자아를 달래달라고 여자한테 맡기면서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35~36쪽)
게이트스톤연구소의 웹사이트에는 유럽에 이슬람의 ‘접근 금지 구역’과 ‘이슬람의 샤리아 법으로 통치되는 마이크로국가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글들이 올라 있다. ‘접근 금지 구역’ 개념은 영국 제2의 도시인 버밍엄이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은 전혀 가지 않는’ ‘완전한 무슬림 도시’라고 주장하는 테러리즘 ‘전문가’ 스티븐 에머슨이 처음 만들어낸 것이다. 나중에 에머슨은 비굴하게 사과했다(“끔찍한 실수를 했다. … 대단히 유감이다”). 하지만 이때쯤이면 그의 주장이 워낙 중대한 이야기가 된 까닭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결국 에머슨을 ‘형편없는 멍청이’라고 정확히 지칭했다(『데일리텔레그래프』 2015년 1월 12일자). 트럼프가 네덜란드 주재 대사로 임명한 피터 훅스트라(그 자신이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다)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5년에 네덜란드에 ‘접근 금지 구역’이 있어서 정치인이나 차가 들어가면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이 불을 지른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텔레비전에서 그는 자신은 이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가짜뉴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진행자가 동영상을 틀어주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거짓말한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49쪽)
서구에는 반유대주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반면, 불필요한 소동을 자극하는 언론 보도들 때문에 걸핏하면 이슬람 혐오가 부추겨진다. 『타임스』는 2017년 8월 28일 이른바 선임 탐사기자 앤드루 노포크가 쓴 ‘기독교인 아동이 무슬림의 위탁 보호로 내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서 노포크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5세 소녀(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이고 마약 중독자일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가 무슬림 위탁 돌봄 가정에 ‘강제로 보내졌다’고 주장했다. 이 가정에서는 양육자 중 한 명이 부르카를 쓰고 있고, 유럽 여자를 비하하는 발언이 들렸고, 아무도 영어를 쓰지 않으며, 아이가 돼지고기 먹는 것을 금지당하고 십자가도 강제로 빼앗았다는 것이었다. 이후 이어진 조사 결과, 이런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물론 극우파 활동가들은 이 보도를 한껏 써먹었고, 『데일리메일』은 실제 가정이 아닌 다른 무슬림 가족사진을 이용하여 사진 속 여자의 얼굴을 베일로 가려 이미지를 바꿨다. (75쪽)
국민의료보험 문제는 지금도 미국 정치에서 치열한 전장이다. 2008년 민주당 경선에 나선 주요 후보 전부, 즉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그리고 지금은 다행히 잊힌 존 에드워즈(2011년 외도 사실을 감추기 위해 선거기부금법을 위반한 중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기소는 나중에 기각되었다)가 국민의료보험 구상을 열렬히 지지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오바마가 적대적인 의회에 맞서 몇 년간 싸운 끝에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오바마케어’)뿐이었다. 의료보험을 확대하는 내용이지만 국민의료보험이라는 목표를 충족시키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 오바마가 내세운 선거 구호인 ‘예스 위 캔!’은 선거운동 당시에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선거에서 승리하고 나자 그는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트럼프 역시 정책은 매우 달라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세워 당선되었다. 라틴계와 무슬림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멕시코가 장벽 건설비용을 내게 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역시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정치인들은 흔히 선거운동 기간에는 실질적인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93~94쪽)
이 모든 상황은 무엇을 의미할까? 세금을 억누르면서 복지 지출을 높게 유지하는 게 점차 어려워짐에 따라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과거 우파의 특권이었던 영역을 점유해야 했다. ‘현대화’, 즉 신자유주의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국유화의 시대, 경제를 기업가 계급에게 맡겨두기보다는 직접 운영하려 한 ‘온정적 가부장’ 국가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시장이 거침없이 활개치게 놔두고 거기서 생겨나는 돈으로 저소득층을 돕는 게 필요했다. 석유 같은 중요한 원료를 가진 운 좋은 나라들은 예나 지금이나 바로 이런 일을 한다. 카타르,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푸틴의 러시아는 이런 공통점이 있었다. 기업가들이 자기 몫을 챙긴 뒤 석유 노다지로 대중에게 돈을 풀어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변화를 가져오는 개혁이나 새로운 경제 모델, 전략, 정책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부유층은 더 부자가 된 반면 빈곤층은 더욱 가난해졌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할 터였다. 석유 노다지가 계속되는 한에는. 하지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113쪽)
🖋 출판사 서평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 이 공백기에 다양한 병적 징후가 나타난다.” -안토니오 그람시
모든 게 좋아질 것이라 믿었던 시대가 저물고…
도널드 서순이 책의 화두로 삼은 그람시의 경구는 어떻게 보면 상투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많이 인용되는 문장이다. 그람시가 보기에 당시 자본주의는 헤어날 길 없는 위기로 빠져들었지만,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할 노동계급 세력은 아직 허약할 뿐이었다. 그 위기를 비집고 들어선 파시즘과 극좌 모험주의는 그람시가 생각하는 ‘새로운 것’, 즉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할 사회주의가 아직 생겨나지 않은 공백기에 나타나는 ‘병적 징후’였다.
오늘날 죽어가는 낡은 것은 2차대전 이후 생겨나 ‘영광의 30년’을 거치며 모습을 갖추고 냉전 종식 이후 세계를 지배하게 된 현대 자본주의다. 이 자본주의는 어느 정도 복지와 일자리를 보장하고 꾸준한 성장을 약속한 자본주의였다. 이 낡은 세계는 “성장과 안정, 교육 확대의 세계이자 젊은이들이 자기 부모보다 더 잘살고, 더 자유로우며, 도덕 관습의 제약을 덜 받을 것”이라고 자랑하는 세계였다. 완전고용과 복지, 사회서비스는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승승장구하는 자본주의가 낳은 68세대는 여성과 인종적ㆍ성적 소수자 등의 인권 향상을 위해 싸웠고, 성장과 더불어 자유와 평등을 더 많은 이들에게 확대해주었다.
하지만 냉전에서 승리하면서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이 세계는 2008년 경제위기에 이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허약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경제적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었고, 19세기 후반 첫 번째 세계화 시기부터 모습을 드러낸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는 나날이 기승을 부린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민주의가 정당성과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던 정치는 어느 순간부터 막말과 혐오로 무장한 극우 포퓰리즘이 판치는 장이 되었다. 그람시가 꿈꾼 ‘새로운 것’, 즉 사회주의는 이미 스스로 파탄난 지 오래이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것에 희망을 걸어야 할까?
포퓰리즘이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영국과 다른 나라들의 보수당이 언제나 ‘추잡한’ 정당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유럽은 한때 일정한 제약 안에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일종의 동정심 있는 보수주의를 특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불평등에 맞선 싸움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민당들은 그 대신 자신들이 신중하다고 여기는 카드, 즉 지배적인 친시장 이데올로기에 영합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게임에서 졌다.
극좌파는 압도적 다수, 즉 야비한 1퍼센트에 맞서 99퍼센트를 대변한다는 포퓰리즘적 주장을 펴는데, 마치 99퍼센트 자체가 계급과 젠더, 정치, 종교, 교육, 지역, 연령에 따라 나뉘지 않는 듯 행세한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의 일련의 트윗과 인종차별적이고 거친 조롱을 떠올려보라. 또한 난민을 둘러싼 언론과 정치인들의 히스테리를 보라. 물론 현실은 사뭇 다르다. 2015년 영국에는 전체 인구의 0.2퍼센트 정도 되는 12만 3000명의 난민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2017년 8월 25일 이래 미얀마 난민 64만 7000여 명이 방글라데시로 도망쳤다(알다시피 방글라데시는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죽어가는 ‘낡은’ 것이 그뿐이랴.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권에서는 아랍의 봄이 기대와 달리 민주주의의 정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슬람국가(IS)가 여전히 건재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정부가 붕괴하고 탈레반이 당당하게 권좌에 복귀했다.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 지구 차원의 팬데믹은 과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있는지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는 생태적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기후 파국을 막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데 앙상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실제로 그 파국을 막을 수 있는지 좀처럼 확신하기 어렵다.
병든 시대에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거인들에 대한 기억을 잃은 난쟁이들의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과연 모든 게 종말을 맞이할 운명이고, 야만인들이 문 앞에 와 있으며, 우리가 믿는 가치는 위험에 빠져 있는가.
도널드 서순의 지적이고도 도발적인 오늘날의 세계사!
표지 그림으로 쓰인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희망Hope〉에서, 그림 속 눈을 가린 여자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공 모양 위에 앉아서 현이 하나뿐인 리라의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무 희망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 소리가 그나마 위안이 될지 모른다. 지옥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것은 아니라고 여전히 희망을 품는 것이다. 병적 징후들이 넘쳐나지만, 어쨌든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우리의 삶이 좋아졌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아무리 시대가 병들었어도 계속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간 사람들 덕분이다.
도널드 서순은 이런 ‘병적 징후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면서 오늘날의 위기를 진단한다. 영국과 유럽 등 서구를 중심으로 살펴보되 시야를 넓혀 세계 곳곳에 눈길을 준다. 「유럽문화사」, 「사회주의 100년」, 「불안한 승리」 등 전작들에서 보여준 속도감 있는 문체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거침없이 종횡무진하는 서술, 방대한 정보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와중에도 빠뜨리지 않는 유머와 위트 등 도널드 서순의 전매특허는 동시대를 서술하는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저자는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이 “역사를 바탕으로 삼긴 하지만 논쟁을 겨냥한 책”임을 밝히며, 마키아벨리의 구절을 통해 의지의 낙관주의를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과거의 무질서를 인간의 본성 탓으로 돌리지 말고, 시대를 탓하라. 시대가 바뀌어 더 나은 정부가 세워지면, 우리 도시가 장래에 더 나은 미래를 누리리라는 희망에 합당한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을 맞이하며 정치적 야만 상태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에 이 책의 문제제기는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