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눈이 내렸습니다.
함박눈입니다.
눈이 뒤덮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것처럼
무언가 우리가 바라는 실질적인 것들이 투명하고 깨끗하게 이루어지고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었습니다.
그런 생각에 잠시 잠겨있다 문득 섬찟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차유리창에 내리앉아 녹아내리던 눈을 와이퍼로 와이핑을 하는순간 그 하얗던 눈이 누런 갈색을 띠고 흘러내리는것이었습니다.
차 유리가 지저분해서인가 하고 시간간격에 따라 몇 번을 와이핑을 해보았지만 누런 물은 맑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하얗게만 보이던 눈도 원래는 우리네 삶처럼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서로 뒤얽힌 망신창이 색깔이었다고 생각하니 참 씁쓸한 웃음이 나오더군요.
어느분께서 메일을 주셨습니다.
‘꿈풀이를 통한 숫자추적이 과연 근거가 있는것이냐?, 도대체 왜 숫자를 정확히 집어내지 못하는 것이냐? 난 돈이 매우 급하다.’ 라는 질책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하다 저 또한 꿋꿋이 답변을 드렸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에 약 280조원의 돈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안을 돌아다니는 실제 현금은 약 6천조원이 넘습니다. 그렇게 급하시면 국민은행이 주는 1등 당첨금 기다리시지 마시고 은행에 없는 나머지 5천7백조원의 행방을 찾아 보십시오.’
제가 조금 심하게 답변을 드렸지요? 죄송합니다.
돈을 기다리는 분은 돈을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리는 당첨금수령자를 배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淸富’를 실현할 대박의 소유자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것입니다.
추적의 실패를 통해서 저 또한 배우고 또 배우는 과정이니 너무 질책마시고 마음의 강도를 조절 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모은행에서 조작을 하든 안하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듯 싶습니다.
암시와 예시를 포괄하는 ‘적중’이라는 것은 어차피 인위적인 조작의 변형결과까지도 포함해야만 하는것이므로 저는 처음의 목적대로 7개의 번호를 찾아내기 위해 다시 일주일을 시작할것입니다.
저의 부족한 능력은 참으로 질책받아 마땅하지만 과연 ‘돈이 급하다’라는 분은 청부를 실현할 자격을 갖고 계신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54회차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말씀을 조금 올릴까 합니다.
그것은 ‘도계’에 관한 것입니다.
94년 여름 지리산에서 고시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코피를 멈추지 않고 쏟아내고는 그 쏟아낸 코피가 바닥에 한자로 ‘無法’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래 깨었습니다. 기분이 과히 좋지 아니하여 계곡으로 산책을 나갔고 돌바위에 앉아 ‘무법’이라는 글자를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법이 없다, 그 뜻은 무엇인가,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려니 도인 한 분이 지나가시다 제게 문득 말씀을 주셨습니다.
“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없고 그러면서도 가장 무서운 공부를 하려는구만, 집어 치우게, 정확히 12일 째에 산을 내려가게 될 것이고 또 정확히 8일 후에 저 쓸데없는 책들을 불태우게 될 것일세. 그것이 바로 무법이야. ”
도인의 말씀이 지나치다 싶어 무시하고 공부하던중 정확히 12일째 되던날 외조부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산을 내려왔으며 3일장을 치루고 3일간 묘를 지키다 4일째 외조부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 법은 가장 하등한 인간들이 모여 자연과 신을 배척하고 그 벌을 두려워하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신들의 굴레이니 너는 그 굴레를 쓰려하지 말고 차라리 평범하게 살아라.”라는 말씀을 하셨고 5일째 다시 산에 들어와 50여권의 법서들을 모두 태웠습니다.
그 일이 있은후 거의 1년동안 저는 도계와 접하려는 노력을 수도 없이 했었지만 번번히 실패하곤 했었습니다. 중국의 곤륜과 히말라야까지 돌아다녔지만 죽을듯이 고생만 했을뿐 그 어떤 스승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피곤에 지친 꿈에서 스스로를 도인이라고 하는 분이 나타나 너무도 선명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도를 말하는 자는 스승이 될 수 없으며 도를 듣지 않는 자는 그 도를 배울 수 없느니라, 말하지 않는 것을 듣는자가 바로 도인이며 인간을 제외한 세상 모든 만물은 말을 하지 않으니 그것이 곧 도이고 배움이니라.”
이 가르침은 제 평생의 화두이고 숙제이자 깨우침의 단서가 되었습니다.
로또가 도입되고 나서 저는 비법신서의 존재유무에 관해서 깊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일종의 사사롭게 보일지도 모르는 예언이고 확대해석하면 도계에서 금기시 되어온 이른바 ‘천기누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왜 로또라는 가장 세속적으로 치부되는 황금알을 낳는 오락게임에 도계의 누설이 결부되어 등장했는가 하는 점 때문에 참으로 깊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무릎을 치며 답을 얻은 것은 바로 마치 금오 김홍경선생이 한의대에서 침구학강의를 하던중에 강의실로 날아와 기절한 파리를 정확히 침 한방으로 되살려 보내면서 무릎을 치며 깨달았다는 도침의 원리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굳이 버터플라이 효과로 설명되는 ‘카오스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길을 가다 아무생각없이 발로 찬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죽는다는 얘기를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세상만물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슈바르츠의 ‘초끈이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무릎을 칠수 있는 사실이 바로 로또에 도계가 개입한 이유입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54회에 튀어나올 공의 숫자도, 55회에 튀어나올 공의 숫자도 모두 이미 결정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희망적 변화에 도계가 개입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무릇 돈이라는 것은 자신이 쓸 만큼만 벌어들이면 되는것이지요. 그 이상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쓸 만큼을 벌기가 참 어렵다는것입니다. 사회구조상 또는 개인의 능력상, 제 아무리 집과 직장을 평생 왔다갔다해도 자신이 꿈꿔오던 일을 이루기 위한 돈은 벌기가 불가능합니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쓴 로버트 기요사키는 그렇게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하는 것을 ‘TRACK’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 지루한 track에서 벗어나는 것이 비로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라고 합니다. 자영업자는 또 어떤가요? 마찬가지입니다. 집과 가게를 왔다갔다하며 제 아무리 간,쓸개 다 빼놓고 만원짜리 손님을 받아도 자신이 쓸 만큼의 돈을 벌기는 불가능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또라는 기회를 배우고 있는것입니다.
로또는 우리가 쓸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한 참 쓸만한 도구입니다.
문제는 숫자 7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다른세상에 눈을 뜰 수가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그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완성된 세상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도덕이라는 것은 ‘~는 ~하는것이다.’라는 개념의 정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최소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금 어느쪽으로 옮겨가고 있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점진과 누적에 의해 또는 신분적 계층이나 혈육에 의존하여 먹고사는 세상은 저 멀리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격변의 시작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청부’의 실현은 이제 세상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못가진 자가 멸시의 대상이 되고 가진 자가 투쟁의 대상이 되던 시대는 이제 사라지고 가진 자가 깨끗한 부의 헌신을 하고 못가진 자가 그 헌신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내 한 몸 먹고 살기도 힘든판에 무슨 거창한 소리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많습니다. 또는 가난도 자기분수를 지키는 일종의 미덕이라며 무소유의 즐거움을 얘기하실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제부터는 ‘청빈’과 ‘악부’가 대립공존하는 시대가 아니라 오직 ‘청부’만이 존재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청부의 시대는 말 그대로 정직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벌어 사회에 공헌하는 시대입니다. 소위 돈을 벌기 위해 남을 짓밟고 속이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돕고 봉사하고 헌신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게 되는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청부의 의미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올리는 연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우리가 로또라는 기회를 통해 세상에 부의 희망을 갖게 되었지만 오로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것입니다. 로또는 그 수 많은 앞으로 다가올 더 크고 더 거대한 기회들을 암시하는 일종의 전조현상에 지나지 않을뿐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도계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니체의 ‘초인’이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앙골모아 대왕’일수도 있고 격암선생의 ‘미륵’일수도 있겠습니다. 무엇이 되고 누가 되었든 이 세상은 격변을 거쳐 희망의 세기로 갈 것입니다.
그 엄청나고 거대한 희망의 변화가 한 그루의 나무로 우뚝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기반으로 하여 정보혁명과 신과학의 프로젝트들, 정치경제기반의 무수한 변화들이 수 많은 갈래로 가지를 쳐나가고 있으며, 하나의 가지는 또한 수 많은 잎들을 펼쳐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희망의 나무가 주는 새로운 가지중의 새로운 잎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비법신서는 바로 그 새로운 잎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도계의 심부름을 맡아 반드시 7개의 숫자를 찾아내겠습니다.
금주도 월요일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ㄳ
좋으신 깊이 잇는 통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