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인 레아와 라헬이 한 남자인 야곱의 아내가 되고, 레아가 여러 아들을 낳자, 라헬은 심기가 몹시도 불편했습니다. 애꿎게 남편인 야곱에게 타박을 해보지만, 야곱은 임신을 하고, 못하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어찌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고 화를 낼 정도였습니다(1절, 2절). 라헬을 그토록 사랑하는 야곱이 라헬에게 화를 낼 정도면 라헬의 짜증이 극도로 심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아들을 많이 낳은 언니 레아를 시기한 라헬은 남편 야곱에게 자기의 여종인 빌하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아달라고 요청하여 결국 빌하를 통해 단과 납달리를 낳습니다(3절~8절). 그 당시에는 자식을 낳지 못할 땐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들을 낳은 후, 그 아들을 자기의 아들로 삼는 관습이 있었는데, 라헬은 그러한 관습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종들은 자기 주인에게 속한 자였기에 주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라헬의 모습을 본 레아도 자기의 여종인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한 후에 갓과 아셀을 낳습니다(9절~13절). 정말 자식 많이 낳기 경쟁을 한 셈입니다.
그러던 중 야곱과 레아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난 르우벤에 들에서 일을 하다가 합환채(合歡菜, Mandrake)를 발견하여 그것을 자기의 어머니 레아에게 갖다 드렸습니다(14절). 합환채는 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생 풀로 그 열매는 약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단맛도 있으면서 마취성이 있는데, 최음제(催淫劑)로 여기기도 하고, 그것을 복용하면 임신을 돕는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 라헬은 언니 레아에게 그 합환채를 자기에게 달라고 합니다(14절). 레아로서는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는 라헬의 이러한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절하지만, 라헬은 그날 밤 남편 야곱이 언니 레아와 동침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합환채를 가지고 갑니다(15절).
합환채는 라헬이 가지고 갔지만, 그날 밤 야곱과 동침한 다시 임신하게 되어 잇사갈을 낳고, 그 이후에 또 스블론을 낳았고, 그 다음엔 딸을 낳아 디나(Dinah)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한동안 임신을 하지 못했던 레아가 다시 아들들과 딸을 낳은 것입니다.
아마 이러한 상황에서 라헬은 그 심기가 더욱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라헬도 돌아보셔서 라헬도 임신할 수 있게 하셔서 아들을 낳아 요셉이라고 이름 짓습니다(22절~24절). 이렇게 하여 야곱은 열한 명의 아들과 딸 한 명을 두게 됩니다. 쌍둥이 아들만 있었던 아버지 이삭에 비하면 매우 많은 자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라헬이 베냐민이라는 아들을 하나 더 낳아 모두 열두 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두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열두 명의 아들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형성하게 됩니다.
레아와 라헬의 시기심과 질투는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이 너무 깊었기에 레아는 더욱 그 마음이 상했을 것이고, 외롭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들을 낳고, 그 아들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야곱의 사랑을 많이 받은 라헬은 사랑을 받는 것에 비해 자식이 없어서 라헬도 그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여가며 이렇게 두 딸을 야곱에게 아내로 준 것이기에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가족이지만 서로 시기와 질투로 인해 아픔을 겪으며 지내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처음부터 라반과 야곱, 그리고 레아와 라헬이 서로 합의가 된 것이라면 그 결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서로 합의한다는 것도 이상한 것이 될 것입니다. 아무튼 야곱과 두 아내, 그리고 두 명의 여종까지 복잡하게 얽혀 아들들을 낳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세워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아버지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가족의 수를 많이 늘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재산도 늘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땐 많은 자식들과 재산을 이끌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돌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반이 꼼수를 부려 두 딸을 한꺼번에 야곱에게 아내로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뤄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행한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과 축복을 이루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묻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상처와 갈등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것으로 인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정과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