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8일 (금)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복음 묵상 (루카 10,1-9) (이근상 신부)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루카10,5-6)
'평화', 샬롬은 모든 것과의 온전함, 특별히 하느님과의 온전한 관계의 회복에서 출발하여 모든 것의 조화를 뜻한다. 이 평화는 하느님의 가장 거룩한 선물인데, 루카 복음의 이 대목은 그 선물의 움직임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평화는 전해지는 것,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 우리말 성경은 '평화를 받을 사람'이라고 번역하였지만, 희랍어 본문은 '평화의 아들; 후이오스 에이레네스', 곧 평화의 속성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까 평화를 받을 사람이란 이미 그 자신이 그의 곁에 있는 모든 존재들과 조화롭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럼 도대체 그런 이에게 평화가 다시 필요한게 질문할 수 있는데, 참 평화란 그렇게 더하여 주어지는 선물이란 것. 가진 자는 더 받고 못가진 자는 가진 것마져도 빼았기리라는 말씀이 고스란히 적용되는 대목이다. 이때 평화는 성령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나는 그리 믿는다.
이어지는 대목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구절은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이는 거기에 만일 평화의 아들이 없다면 그 평화가 허망하게 사그라드는게 아니라 다시 온전하게 평화를 비는 이들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평화를 그렇게 빌어주었는데, 평화롭지 않은 자들에게 건네준 평화라는 선물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한채 실패해 버리는게 아니라 손상됨이 없이 고스란히 평화의 거룩함을 유지한채 평화를 전해 준 이들 안에 깃들이리라는 것.
그러니까 실망할 필요도 안달할 필요도 없다. 평화를 건네주는 이는 여전히 깊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 뭔가 잘 안된다는게 없다. 평화는 온전함을 잃지 않고 언제나 어디서나 가득하게 우리의 응답, 우리의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
평화로운 자, 곧 자신의 곁을 내어주는 자에게 주님의 평화는 깃들인다. 믿는 이들이란 주님의 평화를 평화로운 이들에게 전하는 사람들. 큰 평화를 품고 세상의 작고 상처난 난장이 평화들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는 정경은 참으로 귀하다. 그리고 평화롭지 못한 이들, 자기 곁을 벽으로 둘러치는 이들에게 우리의 선물이 거절되어도 믿는 이들은 낙담하지 않는다. 주님의 평화가 실패하거나 손상됨이 없이 여전히 우리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QR2xFCuj6bofskocygqz6H1nPnfy29mUAzRVKGAXq8ZzpcwEtpR6p7KvDjeQ5FGz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