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의 법칙
허이서
여행을 시작하지 않은 눈. 분위기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자란다는 신비한 법칙을 품은 지느러미. 투명한 수족관 바깥을 모으며 느리게 헤엄쳐 다닌다. 유폐에 금을 내는 상상을 했을 거다.
거대한 도시에 갇힌 또 다른 나라는 생각에 코이를 꺼낸다, 몸속 지도가 팔딱 거린다, 먼지가 많은 골목을 지나 하수구를 지나 매연이 날리는 도로를 건너 강가에 도착한다, 부풀어 오른 눈, 몸의 무늬가 커지고, 뒤돌아 보지 않은 채 먼 곳을 향해 나아간다.
집으로 돌아와 빈 어항을 본다. 나에게 부푸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고독은 투명 물고기처럼 다가와 배가 고팠다는 듯 야금야금 나를 뜯어먹는다, 마침내 내 안의 코이, 점점 살이 찌는 절망, 다시는 미래를 모으지 않을 거라 다짐하는데 자꾸 젖는다.
새로운 코이를 어항에 넣으며 비늘의 확장을 바란다 비늘이 세상을 덮어버리고 새로운 무늬가 기록되기 시작한다.
-허이서 시집 {내 안에 욕 한 마리가 산다}에서
책을 읽는 것은 타인의 영지를 걷는 것과도 같고, 산책을 하며 글을 쓰는 것은 자기 자신의 밭을 갈고 그 열매를 수확하는 것과도 같다. 좁디 좁은 방에서 타인의 책만을 읽으면 키가 작아지고, 그 책읽기를 바탕으로 산책을 하고 자기 자신의 사상과 이론을 정립하면 키가 크고 천하제일의 대 시인이 될 수도 있다.
허이서 시인의 [코이의 법칙]은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처럼 살 것인가, 천하제일의 시인으로 살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고민을 육화시킨 시이며, 자기 자신의 변모와 함께 세계 영역을 확장하려는 무한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비단잉어인 코이는 어항 속에 기르면 피라미가 되고, 강물에 놓아 기르면 그야말로 대어가 된다고 한다. 이것을 ‘코이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인간들도 자기 자신의 환경에 따라 그 삶의 방법과 그 능력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할 수가 있다.
“여행을 시작하지 않은 눈”과 “분위기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자란다는 신비한 법칙을 품은 지느러미”의 코이----, 이 코이는 “투명한 수족관 바깥을 모으며 느리게 헤엄쳐 다”니며, “유폐에 금을 내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허이서 시인은 “거대한 도시에 갇힌 또 다른 나라는 생각에 코이를 꺼”내고, “먼지가 많은 골목을 지나 하수구를 지나 매연이 날리는 도로를 건너 강가에 도착한다”. 눈은 부풀어 오르고 몸의 무늬는 커지지만, 그러나 “뒤돌아 보지 않은 채 먼 곳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빈 어항을” 보면 “나에게 부푸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독은 투명 물고기처럼 다가와 배가 고팠다는 듯 야금야금 나를 뜯어먹”지만, “마침내 내 안의 코이”는 “점점 살이 찌는 절망”으로 자란다.
어떻게 이 어항 속의 코이의 신세를 면하고 넓고 넓은 강으로 나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다시는 미래를 모으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하면서도 책을 읽고 시를 쓴다.
시는 천하제일의 큰강이며, 시인은 언제, 어느 때나 천하제일의 큰강을 거느리고 사는 물고기와도 같다. 따라서 “새로운 코이를 어항 속에 넣으며” 그 어항을 뚫고 나와 “비늘이 세상을 덮어버리고 새로운 무늬가 기록되기”를 바란다.
시는 언어의 우주이고, 시인은 영원한 대 우주의 창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