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구속사 강해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침략하여 약탈한 엘람의 왕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을 좇아가 파한 후 그 손아귀에 있던 조카 롯을 구하고 약탈된 모든 재산과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다시 찾아 온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등장시키는 역사적인 대전환점이 되었다. 그동안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가나안 지방은 그돌라오멜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 사건을 통하여 가나안은 엘람의 속국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은 실질적으로 아브라함의 보호 가운데 들어있게 되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주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 아브라함이 얻은 새로운 신(神) 지식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 그의 축복을 받은 사건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맞이하며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ןוילא לא)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라”(창 14:19-20)고 축복한다. 이 축복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분이심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아브라함은 가나안을 주겠다고 언약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천지의 창조주이고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 여호와시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신개념만으로는 온 우주를 창조하고 초월하신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우상 숭배의 영향 아래 있던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신(神)개념이란 하나님을 여타의 다른 신들과 비교하여 상당히 우월한 분이시라는 정도의 인식만을 가지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멜기세덱의 축복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ןוילא ל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됨으로서, 하나님은 여타의 신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초월자이심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온 우주의 초월자로 인식한 것은 획기적인 신(神) 지식이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경험은 이 사건 후에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하나님은 이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고 하신 후, 후손에 대하여 걱정하는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이끌어 하늘에 있는 별들을 보이시며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신다.
‘언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계약을 체결하는 것과는 다르다. 계약은 계약 당사자 사이에 계약 조건에 대하여 충분히 토의하고 합의한 후, 그 조건에 대하여 서로 이행할 것을 약속하며 만일 위반 사항이 발생할 경우 그에 따른 보상을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약은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있으며, 계약 당사자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계약 조건이 불리하기도 하고 유리하게 적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체결하신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그 조건을 스스로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약속을 이행함에 있어 언약의 대상인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스스로 그 언약에 따라 약속을 수행해 나가신다는 점에서 계약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언약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취해 가실 것을 믿고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믿지 않고 거부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뿐이다.
아브라함이 이처럼 전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ןוילא לא)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모세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믿음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정확한 신개념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하나님에 대하여 얻어들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감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이 여타의 신들을 섬기는 정도의 것을 성경에서 믿음이라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형성하고 그 지식을 근거로 하나님을 신앙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언약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언약을 체결하신 것이다.
2. 멜기세덱의 축복에 대한 구속사적 이해
여기에서 우리는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의미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멜기세덱의 축복은 아브라함의 일생에 있어서 매우 획기적인 변환 점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라”(창 14:19-20)는 축복에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창조주)이심을 먼저 확인함으로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당시 사회에서 받들어지고 있는 일반적인 신들과는 전혀 다른 분이심을 전제하고 있다. 그 하나님에 의해 아브라함은 새 나라를 건설할 민족의 조상으로 선택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새 나라는 장차 그리스도에게 주어질 나라인데, 이제 그 나라의 주인이 되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통해 그 나라를 건설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복을 빌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멜기세덱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죄로부터 구속하여 다스리실 새 나라를 아브라함을 통해 건설할 것을 하나님께 청원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멜기세덱이 성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성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어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유업으로 받을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여 줄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간청한다는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멜기세덱의 축복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승전을 축하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윗이 “주(성부)의 우편에 계신 주(성자)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시 110:5)고 노래한 것처럼,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침략한 그돌라오멜의 동맹군들을 쳐서 파하고 승전하여 돌아 온 사건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들을 파하시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것을 상징하는 예표적인 사건으로 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의 승전을 통해 원수들을 쳐부수고 영원한 새 나라를 건설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라”(창 14:20)는 멜기세덱의 선언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승전하신 후 새 나라의 왕으로 즉위할 것을 예표하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날에 하나님은 성자를 온 우주의 왕으로 만방에 높이 세우실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의 증거에 따라 멜기세덱은 성자 예수님과 방불한 분으로서 장차 성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의 세력을 쳐부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원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하여 줄 것을 성부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음이 분명하다(히 7:1-3 참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역시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고 그와 동일한 심정으로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축복의 내용을 통해 지금 자신이 건설하고자 하는 새 나라는 장차 성자 예수께서 건설할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하는 신령한 나라가 될 것을 인식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신령한 나라가 속히 건설될 것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건설할 새 나라가 완성된다는 것은 장차 성자 예수께서 악의 세력을 제압하고 건설할 영원하고 신령한 나라가 완성될 것을 예표하는 것으로 아브라함 역시 그 나라에 속한 백성의 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공효를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아브라함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할 구속에 참여하게 될 것이며 비로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경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축복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속을 바라보았고 자신을 통해 건설될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는 증표가 된다는 사실에서 인생의 본분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