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61]바빴던 어느 봄날의 일기(정읍의 친구들)
새벽 3시. 눈을 떠 아내가 식전에 어떻게든챙겨먹으라는 과일(대저토마토, 오이, 사과)과 삶은 계란을 먹다. 어제 받은 전라도닷컴 5월호와 ‘이리학(裡里學)’ 전문가인 영화평론가 신귀백 님이 펴낸 최근의 역저(力著) 『이리: 잊혀진 도시-이리의 형성과 발전과정』(2025년 3월 모시는사람들 펴냄, 367쪽, 23000원)의 머리말을 읽다. 서문만 읽어도 이 책이 어떤 책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이 책을 펴내기까지 저자가 기울인 노력이 얼마나 지대했을까를 생각하다. 6시 아침밥을 챙겨먹고 샤워를 하다. 7시 20분 애마(愛馬) 모닝차를 몰고 오수역을 향하다.
오수-익산역 무궁화호(7시 45분 – 8시 37분)를 타다.
익산역 2번출구, 걸어서 10분 분위기 있는 카페 ‘키노’에서 신귀백 사장을 반갑게 만나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20여분 환담하다.
익산-정읍역 무궁화호(9시 48분 – 10시 17분)를 타다.
정읍역에서 기다리던 선배형님의 차에 탑승, 내장산 ‘실록의 길’로 향하다.
실록(實錄)의 길은 내장사 입구에서 1.6km, 신록(新綠)이 우겨진 산 숲속의 길을 8개의 작은 다리를 거쳐, 1592년 6월 이후 1년여간 조선왕조실록이 은밀히 숨겨져 보관된 ‘용굴’까지 선배와 걷다. 이런 게 '소확행'이 아니고 무엇일까. 조선은 임진왜란 직전까지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성주사고, 충주사고, 전주사고 등 ‘4대 사고’(史庫)에 보관해 왔다. 전주 경기전 내 사고가 왜군의 침략으로 강탈이나 소실을 염려한 정읍지역의 안의, 손홍록 등 뜻있는 선비들이 내장산 용굴과 은적암 등으로 실록과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이안(移安:영정이나 신위 등을 옮기는 일)하는 ‘거룩한 작업’을 실행했다. 임란이 끝난 후 조선은, 다른 3곳의 사고 실록은 모두 타버렸으므로, 임란이후 유일하게 기적적으로 남은 실록을 다시 '복사'해 5대사고(춘추관,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보관했다. 숙종 이 4대 사고(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에 보관한 실록은 그 이후에도 기구절창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후손들이 조선 전기의 정사(正史)의 기록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실록 특강은 2시간까지고도 모자랄 터, 줄인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편지 6신]안의와 손홍록 선비를 아시는지요? - Daum 카페
아무튼, 전주에서 정읍 내장산 동굴까지 옮기는 과정, 실록을 지키는 과정 등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어 우리가 그 전모를 알 수 있는데, 어찌 두 선비의 의지만으로 이뤄졌을까? 희묵대사도 있고, 관찰사 관리들, 소 등에 실록을 싣고 이름없는 백성과 노비들도 있었다. 실록은 그 이후에도 강화도로, 묘향산으로 이안하는 시련을 겪었다. 임란이 끝나 선조임금이 노비들에게 상을 내리려 하자, 당연히 할 일을 했다며 상을 사양했다는 일화는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용굴까지 가는데 또랑을 건너야 하는데 8개의 다리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다리의 이름은 ‘안의교’ ‘손홍록교’ ‘희묵교’ 등에 이어 관계자 이름 등으로 지었다. 7번째 다리는 ‘이름없는 백성들의 다리’ 이고, 8번째 다리는 ‘나만의 다리’라 명명, 이 큰 사건이 갖는 뜻을 알게 했다. '우천교'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전라고6회 동창회 | ['기록의 나라' 대한민국 18-3]조선왕조실록 - Daum 카페
첫 번째 다리를 지나면 볼 수 있는 300살 단풍나무의 위용이 대단하다. 2021년 단풍나무 단목(單木)으로는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한다. ‘실록의 길’은 몇 번이고 왕복을 해도 싫지 않는, 짧은 트래킹코스이다. 무척 와보고 싶었는데, 이 길을 걷게 해준 형님에게 거듭 고맙다고 했다. 언제 시간나면 날 잡아 걸어보시라. 우리의 기록유산이 왜 세계를 놀라게 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대한민국 처음으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사실은 한국 역사와 문화에 있어 완벽한 쾌거(快擧)라 할 것이다. 상세한 이야기는 모두 줄인다.
12시 10분, 다시 익산역. 아침에 만난 신귀백 님을 마중하여, 정읍역사문제연구소(소장 김재영 역사학박사) 사무실로 가 환담을 나눈 후, 인근 식당에서 ‘경성 돈까스’를 4인이 맛있게 먹다. 곁들어 소맥 1잔. 김박사는 향토사학자로서 명망이 높은데, 일제강점기 '형평운동'을 공부하여 박사가 됐다. 이제 형평운동하면 진주의 살아계시는 '성자(聖子)' 김장하 어르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교에서 선생님을 하다 일찍이 그만두고 자신들만의 전공을 찾아 ‘자유인’이 된 김박사와 신귀백 지역학박사의 이력이 같다. 세 분은 일찍부터 잘 아는 사이, 거기에 나는 얼마 전부터 끼어든 행운아이다.
2시 고창 문화의전당에서 고창시 주관으로 하는 <동학농민혁명> 특강에 참석차 형님과 부리나케 달렸다. 강사는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황현필. 그는 유튜버 수십만을 이끄는 한국사 일타강사로 유명하다. 1894년 무장기포가 동학혁명의 기폭제라고 강조하는 고창시가 동학혁명 131주년을 받아 기획한 이벤트. 황현필 님은 얼마 전 ‘미친(정신 나간) 역사강사’ 전한길의 코를 납작하게 한, 다혈질적인 훌륭한 선생이다. 그 역시 교사를 하다 유튜버로 거듭나 ‘한 길’을 걷고 있다. 기분 좋은 말을 들었다. 다음날 이재명후보가 부안 유세를 오는데, 자기가 찬조연설을 하게 된 모양이다. 누구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힘을 실어주고, 힘을 보태, 제대로 된 세상을 위하여 빠르게 개혁을 완수해야 할 일이다. 낮술 한 잔에 졸기도 했으나, 내용이야 사실 듣지 않아도 된다. 가져간 그의 역저 <이순신의 바다>에 사인을 받고자 했으나 줄이 늘어서 포기하고 곧바로 정읍으로 돌아오다.
오후 4시, 형님의 안내로 가난하고 몸이 많이 아픈 시인 유종화 님의 댁을 찾았다. 마침 신귀백 님이 전라도닷컴의 <인간공감>에 싣고자 시인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6월호에 실릴 <신귀백의 인간공감>은 64회가 된다. 사진을 찍으러 달려온 박갑철 기자도 반갑게 만나 악수를 하다. 두 분은 고등학교 동기동창, 절친이라 한다. 처음 만나는 시인은 최근 등단 30년만에 처녀시집 <그만큼 여기>를 펴내 화제가 됐다. 그는 그동안 시는 쓰지 못한 채 ‘시노래 운동’을 안치환 백창우 안도현 등과 펼쳐왔다. 초면인데도 오랜 친구처럼 살갑게 맞이해주고, 불쑥 귀티나는 가죽가방을 막무가내로 선물하는 가난한 시인의 초라한 아파트. 그가 손녀와 아프지 않고 재미나게 살면서 좋은 시를 많이 지어냈으면 좋겠다. 곧 펴낼 여러 시인들과의 산문집 교정에 바빴다. 김재영 박사의 ‘막걸리 한잔 하고 가라’는 부추김을 뒤로 하다. 재밌는 것은 칠보중 출신의 김박사와 국어선생님이었던 신박사가 각각 알고 있는 친구가 나와 고교 때 같은 반의 막역한 친구, 금세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가 됐다. 세상은 참 재밌다. 정치만 제대로 똑바로 하면 말이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자. 머지 않아, 한 달도 안돼 ‘좋은 정치’가 선을 보일 터이므로.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통문 50]아름다운 사람(54)-시인 유종화 - Daum 카페
다시 정읍역에서 익산역으로 무궁화호(17시 48분 – 18시 19분). 열차 내에서 익산 사돈에게 저녁을 먹자고 전화하다. 안사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어렵다고 해 다음을 기약하다. 익산역에서 오수역행(18시 53분 – 19시 38분) 열차를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문학평론가 김형수 님과 카톡 교류하다 자칫 기차를 놓칠 뻔한 해프닝이 있었다. 막 출발한 기차를 두들기고 비명을 질러 멈추게 하고 승차하는 행운이 있었다. 나는 역시 여러모로 행운아인 듯하다. 한 친구가 나의 주역을 봤는데 “끝까지 탄탄대로(坦坦大路)”라고 한 말이 맞는지 모를 일이다. 자기는 ‘간난신고(艱難辛苦)’라고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는 듯하다. 그는 최근 가슴에 스탠스를 박아, 평생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한 잔도 마시지 못한다한다. 간난신고. 흐흐. 그가 엊그제 토요일 김제 금산-원평지역 명소들을 해설한 친구이다. 오수역에서 내려 어둑해지는데 차를 끌고 돌아오니 <우리말 겨루기>를 하고 있다. 최애(最愛) 프로그램. 북어국으로 저녁을 간단히 때우며 시청하는데, 순우리말 문제만 나오면 맞추겠다는 결기를 세우다. ‘물비닐’ ‘온새로’ 등을 맞추며 혼자 괜히 좋아하다. 서울에서 거주하게 되면 공부를 쬐개 더 해 꼭 출연해보고 싶은 프로인데, 그런 행운이 올지는 모르겠다. 하루만에 먼 곳을 다녀온 것같다. 제법 보람도 있는 듯하다.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형님이 두 권의 귀한 책을 읽어보라 주신다. <소태산과 불법연구회 창건사>와 <세계적 명산 조선 금강산 탐승기>이다. 나는 원불교야말로 대한민국이 자랑할 생활종교의 상징이자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김형수님이 쓴 <소태산 평전>을 잘 읽었다니까, <원불교 교서>에 이은 또다른 큰 선물이다. 꼭 읽어보리라. 은근히 피곤하여 9시 잠들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일기 아닌 일기를 쓰다. ‘기록맨’이므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