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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진실》(詩와 眞實, 독일어: Aus meinem Leben. Dichtung und Wahrheit))은 괴테의 자서전이다. 괴테의 탄생(1749)으로부터 바이마르로 출발(1775)하기까지의 기간을 다룬 자서전으로 60세에 이른 시인이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그 중심 제재로 삼고 그의 특질의 싹틈·발효·개화·결실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며 기왕에 발표된 수다한 자기의 작품 사이의 맥락을 지어 주고 전체의 관련하에 자신의 유기적인 발전의 자취를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괴테는 이때 단순한 사실의 나열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실의 핵심을 찌름으로써 그 의의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시의 요소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작품 전체는 고도의 진실을 전하는 뛰어난 문학작품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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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누구보다 치열하게 배우고 뜨겁게 사랑한 청년 괴테
그 무엇도 자기완성을 향한 그의 쉼 없는 걸음을 막지 못했다
‘질풍노도 운동’이라는 문학적 혁명을 일으키며 30년전쟁 이후 침체되어 있던 독일문학을 다시 꽃피우고 문화사에 ‘괴테시대’라는 이름을 남긴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 그의 자서전 <시와 진실>이 괴테학회장을 역임한, 서울대 전영애 교수와 이화여대 최민숙 교수의 공역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와 진실>은 말년의 괴테가 환갑을 앞둔 1808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바로 한 해 전인 1831년 사이에 집필한 자서전이며,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1부는 1811년에, 2부는 1812년에, 3부는 1814년에 출간하였고, 4부는 초고 상태로 남아 있던 것을 1833년에 유고로 출간한 것이다.)
스물여섯 살까지의 생애를 담고 있는 자서전 <시와 진실>은 괴테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대한 생생한 기록으로 훗날 대문호로 칭송받은 그의 삶과 작품의 토대를 선명하게 제시해 준다.
괴테의 생애를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자기완성에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 괴테는 어린 시절, 독일어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히브리어를 배우고, 프랑스 연극을 보며 프랑스어를 익히는 등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다. 여덟 살에 조부모에게 신년시를 선물할 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그였지만, 자기완성을 향한 그의 뜨거운 열망은 타고난 재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7년전쟁 등으로 세상이 어수선할 때도 괴테는 모든 혼란을 배움의 자극으로 여겼고, 복잡한 사회상과 인간사를 바라보며 다층적인 배움을 얻는 기회로 삼았다. 한편 그런 열망만큼이나 뜨겁고 진실했던 그의 사랑은 언제나 첫사랑처럼 반복되며 창작열을 드높이는 근원이 되었다.
프리데리케와의 만남은 문학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서정시를 낳았고, 샤를로테와의 만남은 당시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작품을 낳게 했다.
<시와 진실>은 누구보다 깊은 배움을 추구했고 누구보다 열렬하고 진실한 사랑을 한 청년 괴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자기완성을 향한 열망과 문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가장 가슴 아팠던 사랑의 일화로 가득 차 있는 <시와 진실>은 괴테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대한 치밀한 기록으로서 그 자체로 문학사의 한 시대를 전달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문학작품으로서 문학사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소설과 기록의 경계, 역사상 가장 문학적인 자서전
괴테는 작품 첫머리에서 친구로부터 받았다는 가공의 편지글을 통해 집필의 동기와 의도를 밝힌다. 또한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격동적 사건들을 우선적으로 유의”하여 집필하겠다며 “인간을 그 시대 연관 속에서 그리는 것, (……) 즉 그가 거기서 어떻게 세계관과 인간관을 형성해 갔는지, 예술가나 시인이나 작가인 경우, 그 세계관과 인생관을 어떻게 다시 외부적으로 되비추어 냈는지 보여주는 것”이 전기의 과제라고 덧붙인다. 괴테는 처음부터 허구적인 장치로 자신의 집필 의도를 드러낸다. 작품 첫머리에 밝힌 집필 의도에 맞춰 자서전을 정확한 사실에 기반하여 “반쯤은 역사적으로” 기술하지만, 동시에 “반쯤은 문학적으로” 접근하여 기록과 픽션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이러한 구성은 부분적으로 드러나며, 후반부에서는 자신이 실제로 프리데리케를 방문한 시기를 살짝 옮겨 좀 더 극적인 구성을 취하기도 한다. 괴테의 이러한 의도는 제목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시와 진실’이라는 제목에서 그는 ‘진실’을 외적 진실, 즉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시’를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는 내적 진실을 담아내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단순한 사실 이상의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문학이라는 예술 형식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결국 <시와 진실>은 하나의 치밀한 기록이면서도 동시에 소설의 성격을 지닌 아름다운 문학작품으로서, 그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전기문학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 당대의 정신사이자 사회사이자 문화사로서의 섬세한 기록
자서전 집필을 결심하기 전까지 열두 권의 작품을 완성했던 괴테는 전집 출간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난날을 돌아보고 작품의 재료가 되었던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려 했다. 자신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끊임없이 물으며 자서전을 집필함으로써 한 인간이 형성된 과정을 치밀하게 밝히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환경, 자신이 받은 교육, 자신이 읽은 책, 자신이 만나고 영향을 받은 인물들,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문학과 미술품과 건축술 등을 상세히 기록하며, 당대의 사회상과 문화계의 흐름 그리고 문화계의 인물들을 소개한다. 또한 7년전쟁, 요젭 2세의 화려한 대관식 등 자신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당시의 풍속에 대해서도 잘 알려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와 진실>은 독일의 문학적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질풍노도 운동’에 대한 문학사로서 큰 의미가 있다. 클롭슈톡의 서정시 「스케이트 타기」가 떠올라 얼어붙은 마인 강으로 향했던 일화나, 루소의 강령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실천하기 위해 나체로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돌멩이 세례를 받은 일 등 일상 속에서도 늘 문학과 함께였던 괴테의 청춘 시절 에피소드와 함께, 괴테가 호머와 오시안, 특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작가들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고, 헤르더와 어떤 교류를 하여 질풍노도 운동을 이끌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탄생 과정이나 이 소설이 소멸할 뻔했던 일화와 같은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얻을 수 있다.
■ 번역 정본을 향한 오랜 노력의 결실
<시와 진실>의 번역본이 처음 나오던 시절에는 일부만을 번역했거나 중역을 하는 등 온전하지 않은 번역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여러 권의 완역본이 나와 있다. 하지만 <시와 진실>은 자서전이면서도 소설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어린 시절의 가벼운 일화 속에서도 노년의 괴테의 철학이 담겨 있는 만큼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워 완벽한 번역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 요구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괴테학회장을 역임한, 서울대 전영애 교수와 이화여대 최민숙 교수가 공역을 하고 민음사에서 출간한 <시와 진실>은 하나의 정본을 만들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실이다. 또한 한국독어독문학회와 한국괴테학회의 오랜 숙원인 괴테 전집 번역의 일환이기도 하다. 섬세한 주석과 해설로 일찍이 괴테 전집의 결정판으로 인정받아 온 함부르크 판(1981)을 번역 대본의 기본으로 삼은 것은 물론이고, 함부르크 판 못지않게 중요한 연구 자료인 뮌헨 판(1985)과, 최근 괴테 연구에서 중요한 비판본으로 자리 잡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판(1986)도 참조하여 원전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번역을 하고자 했다.(프랑크푸르트 판은, 1~3부는 초판본에 기반을 두고 4부는 유고 처리 과정에서 괴테의 비서들이 가필한 부분을 제하여 원본을 살린 아카데미 판본(1970~1974)을 다시 비판적으로 검토한 판본이다.) 또한 괴테의 자서전인 만큼, 문학작품으로서의 감상을 넘어 괴테를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될 만한 방대한 자료를 각주와 작품 해설에 담았다. <시와 진실>의 함부르크 판, 프랑크푸르트 판, 뮌헨 판, 인젤 판(1965)과 함께 <괴테 사전>, <킨들러 문학사전> 등을 참고하여 각주를 달았고, 이 중에는 국내에 최초 공개하는 괴테의 짓궂은 풍자시가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765쪽)
●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학과 성경 등을 읽었다. 여덟 살 때 신년시를 써서 조부모에게 선물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문학과 미술에 더 몰두하였고, 1767년에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다. 1772년 베츨라의 법률 사무소에서 견습 생활을 하던 중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샬로테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의 체험을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옮기며 절망을 극복했다. 이 소설은 당시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나, 실연으로 인한 자살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1775년 카알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생을 마칠 때까지 머물렀던 그는 바이마르를 문화의 중심지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행정가로 국정에 참여하고 교육, 재정, 건설, 군사, 산림 등 온갖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1782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 그는 1794년 독일 문학계의 또 다른 거장 쉴러를 만나 그와 함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대표적인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5~1796)는 고전주의적 미학에 따른 인간 형성을 추구한 작품이었다. 1805년 쉴러의 죽음으로 “존재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라고 말할 만큼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후에도 그의 창작 활동과 연구는 끊임이 없어 <색채론>(1810),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1), <이탈리아 기행>(1829) 등을 완성했다. 독일 문학사에 ‘괴테시대’(질풍노도 시대에서 고전주의 시대를 거쳐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는 시기)라는 명칭을 남길 만큼, 생애 자체가 곧 일국의 문화사로 평가받는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는 스물네 살에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마지막으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목차
서언
2부
젊은 시절에 소망한 것은 노년에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3부
나무들은 하늘까지 자라지는 않도록 되어 있다.
4부
신을 제외하고는 신에 맞설 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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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자서전’ 왜 26살 여름에서 끝나나
“삶에서 발전의 시기가 가장 중요”
사랑·위기·사상·마성적인 힘 등
내적 성장에 영향 준 사실·허구 묘사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그림)의 자서전 <시와 진실>이 독문학자 전영애 서울대 교수와 최민숙 이화여대 교수의 공역으로 새롭게 나왔다. 전영애 교수는 <괴테 시 전집>도 함께 번역해 펴냈다.
<시와 진실>은 괴테 생애 후반기 위기의 산물이다. 중병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 시기를 겪은 뒤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해보겠다는 결심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이 자서전이다. 괴테는 60대 전반기에 이 작품을 집중적으로 집필해 전체 4부 중 3부를 완성했다. 그러나 4부에 착수하고 얼마 안 돼 중단한 뒤 죽음을 앞둔 말년에 다시 집필해 나머지를 탈고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자서전은 출생에서 시작해 괴테 생애 결정적 전환점인 26살 여름에 끝난다. 이때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군주인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초청을 받아 바이마르로 간다. 자서전을 여기서 종결한 것과 관련해 만년의 괴테는 요한 페터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도대체가 한 개인에게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발전의 시기다. 내 경우 이 발전의 시기는 내가 자세하게 기록한 ‘진실과 시’와 함께 끝난다.”(<괴테와의 대화>)
괴테가 이 자서전을 구상할 때 염두에 둔 것은 ‘식물변형론’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발육과 형성을 식물의 생장에 빗대어 서술하려는 것이었다. 괴테는 발표하지 않고 남겨둔 자서전 3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책들을 식물의 변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법칙들에 따라 구성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1부에서는 어린아이가 뿌리를 뻗고 떡잎을 펼치게 되며, 2부에서는 소년이 생동하는 초록빛으로 가지들을 키우게 되고, 3부에서는 줄기가 꽃망울을 틔워 꽃을 피우는 청년기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물변형론은 끝까지 관철되지 못하는데, 삶에 끼어드는 우연적 요소의 힘을 깨달은 것이 그런 서술을 방해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열매들이 채 익기도 전에 갖가지 우연으로 인해 떨어지는가.”
자서전의 제목 ‘시와 진실’은 본디 ‘진실과 시’로 돼 있었으나 운율을 고려해 뒤에 ‘시와 진실’로 바꿨다고 한다. 이 제목의 두 단어는 이 자서전의 구성 방식을 암시한다. ‘진실’이 시대와 삶의 사실들을 가리킨다면, ‘시’는 문학적 가공을 뜻한다.
괴테는 자서전이 결코 사실들만의 나열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처음부터 알고 문학적 픽션을 동원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괴테는 엄밀한 사실과 허구적 요소를 버무려 이 자서전을 서술했다. 그 결과로 일종의 교양소설(성장소설)과도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 이 작품 안에서 괴테는 당대의 정신사·문화사·사회사를 꼼꼼히 기술하면서 그런 외적 힘들이 주인공의 내적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묘사한다.
이 자서전은 실존의 위기가 주인공의 창조성을 자극했음을 알려준다. 청년 괴테의 위기는 연애 사건으로 다가오는데, 샤를로테 부프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열병을 앓은 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태어나고, 릴리 쇠네만과의 약혼과 파혼이 희곡 <에그몬트>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삶의 위기를 더 큰 창조력으로 돌파하는 것인데, 그런 과정에서 ‘질풍노도 문학’의 대표작이 터져나온다. 그리하여 이 자서전은 “우정과 사랑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시절”의 폭풍과도 같은 열정이 독일 문학사의 청춘 시기를 창출했음을 증언한다.
괴테의 자서전은 청년 괴테의 삶을 빼어나게 묘사한 자서전 문학의 전범이자 후대의 사상가들에게 창조적 사유의 씨앗을 제공한 저작이기도 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자서전의 처음 몇 장면에서 어린아이의 심리에 관한 통찰을 이끌어냈다. 괴테는 네 살 무렵 소꿉놀이를 하다가 집에 있는 자기 그릇들을 모조리 창밖으로 내던져 깨뜨렸음을 기억해내는데, 프로이트는 <괴테의 ‘시와 진실’에 나타난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이 충동적 행위를 남동생의 출생에 따른 상실감으로 해석했다. 부모의 사랑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이 난데없는 침입자를 창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싶다는 소망이 나타난 것이라는 해석이다.
괴테는 이 자서전 4부의 마지막을 ‘데몬적인 것’(마성적인 것)에 대한 묘사와 설명으로 채우고 있는데, 이 설명은 청년 죄르지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의 논리를 구축하는 데 주춧돌 구실을 한다.
괴테는 ‘거대하고 파악할 수 없는’ 마성적인 것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것은 비이성적으로 보이니 신적인 것은 아니었고, 지성을 갖고 있지 않으니 인간적인 것도 아니었다. 선을 행하니 악마적인 것도 아니었고, 종종 남의 불행을 보고 고소해하니 천사 같은 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영혼을 침탈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흔들어버리는 이 마성적인 힘이야말로 근대 소설 주인공의 내면에 웅크린 힘이라고 루카치는 해석한다. “소설은 신에게서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다. 소설 주인공의 심리는 마성적이다.”(<소설의 이론>) 이 마성적인 힘은 인간의 식물적·자연적 성장을 뒤틀어버리는 힘인데, 괴테의 자서전은 이 힘에 대한 인식으로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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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데리케와의 첫키스 다음날
" 나는 겨우 두서너 시간 깊은 잠을 자고는, 그때까지 가시지 않은 흥분으로 잠을 깼다.
근심과 후회가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는 인간을 습격하는 것은 이런 때 이런 상태인 경우가 보통이다.
...
프리데리케는 이 광경에 몸이 마비되어 새파랗게 질려서 자기는 전연 알지도 못하는 저주의 결과를
예감하고 있다. (괴테의 상상)
...
이러한 모든 것이 사랑과 정열, 술과 춤으로 달구어진 내 혈관 속에 회오리쳤으며, 나의 상념을 어지럽히고
나서 감정을 건드렸다. 그래서 어제의 그 흐뭇한 환희와는 반대로, 끝없는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다행히도 덧문 틈으로 아침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아침에는 암야(暗夜)의 모든 마력을 꺾어버리고 나를 일어나게 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