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와 헤어진 손미나는 다음날 티티카카호수를 보기 위해 비행기와 버스를 갈아타며 푸노라는 도시
로 갔다. 푸노는 쿠스코보다 200미터 이상 높은 해발 3800미터의 고산지대였지만, 마추픽추와 쿠스
코에서 단련이 되어서인지 그때처럼 고산병으로 고생하지는 않았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한나절가량
시간에 남아 오랜 여행에 지친 심신에 휴식부터 취했다.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 해발 3812미터에 있는 티티카카호수는 면적이 제주도의 4.6배인 8372㎢로 남
미에서 가장 넓다. 27개의 강물이 흘러들어 평균수심 135미터, 최대수심 284미터를 유지하고 있으며,
41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강수량이 점점 줄어들면서 호수의 수면도 매년 쪼
매썩 낮아지고 있어 티티카카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티티카카에는 호수보
다 더 신기한 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손미나는 푸노의 작은 항구에서 배를 타고 티티카카호수 복판을 향해갔다. 30분쯤 달리니 짙은 안개
가 걷히면서 토토라를 엮어서 만든 크고 작은 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토토라는 티티카카에서만
자라는 갈대의 일종인데, 호수 위에서 살고 있는 케추아語족‧아이마라語족‧우르족 등 3개 원주민 종
족들은 토토라로 섬과 집을 짓고 배를 만들어 수상생활을 하고 있다. 섬 위에서는 화려한 전통의상
차림의 원주민들이 다가오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 인공섬의 이름은 우로스, 티티카카호
수에는 이러한 인공섬이 모두 44개나 있다.
배에서 내려 우로스에 발을 딛는 순간, 유명한 티티카카호수의 추위가 삽시에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습도가 높기 때문에 두툼한 내복 두 벌에 알파카 망토까지 걸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
로스 주민들은 모두 맨발이었다. 오랜 세월 티티카카에 살아오는 동안 그들의 피부는 파충류의 껍질
처럼 두꺼워져서 추위와 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마을 대표로 보이는 두 아주머니가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토토라로 섬을 만드
는 방법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옛날에는 침입자들을 피해 빨리 달아날 목
적으로 이동 갈대섬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흔들리지 않도록 여러 섬을 한데 엮어 주거지로 사용하고
있다. 토토라는 식용과 약용으로도 쓰인다고. 그들의 주식은 티티카카에만 살고 있는 물고기와 새들
이다. 관광객들에게 팔기 위해 만든 양탄자는 조악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기념품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았다. 원주민들은 티티카카의 일부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가지려
하거나 육지로 떠나려는 욕심도 없다고 했다.
다시 배에 올라 30분 만에 당도한 곳은 타킬레섬. 우로스처럼 토토라로 만든 인공섬이 아니라 자연섬
이다. 마을은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간 지점에 있다. 워낙 고지대이다 보니 천천히 걸어 올라왔는
데도 숨이 턱에 닿았다. 가이드는 다람쥐처럼 날쌘 동작으로 어디론가 가더니, 이윽고 이상하게 생긴
풀을 한 움큼 가지고 돌아왔다. 이 지역 특산물인 무냐였다. 손미나는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무냐 잎
을 손으로 비벼서 코에 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내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솟아났다. 무냐는 박하의 일종으로 강력한 향기가 일시적으로 기도를 크게 열어주어 고산병 증세를
완화시켜주는 특효약이다. 병이 있는 데는 반드시 약이 있게 마련이라는 우리 속담이 이역만리에서
도 통용되는 모양이었다.
일행은 다시 힘을 내어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떼놓았다. 타킬레섬에서는 햇볕이 너무 강하여 산
을 오르면서 한 꺼풀씩 차례로 옷을 벗어야 했다. 한 시간 뒤 정상에 도달했을 때는 다들 티셔츠 차림
이 되어 있었다. 정상에는 식당용 집이 하나 있었는데, 원주민 여인 몇 사람이 둘러앉아 어떤 여인은
익숙한 손길로 알파카 털로 가공한 실을 실꾸리에 감고 있었고, 어떤 여인은 베틀에 앉아 실꾸리의
실로 베를 짰다. 관광객을 위한 전시용 작업이 아니라 시장에 내다팔기 위한 페루의 전통의상 가공
작업이었다. 타킬레섬에서는 여자로 태어나면 걸음마보다 실 가공법을 먼저 배운다고 할 만큼 유명
한 전통의상 생산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여인들은 페루의 어느 지역에서 만난 여인네보다 더 화
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일행은 그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식사를 했다. 메뉴는 티티카카호수에서 잡은 다양한 송어요리였다.
송어는 티티카카에서 가장 흔하고 맛좋은 어종이다. 식사를 차리는 동안 한 청년이 마당으로 나오더
니 기타를 치면서 <산을 오르며 송어를 먹으며>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연주나 노래 실력은 형편없었
지만 티티카카를 내려다보며 먹는 송어요리 맛은 일품이었다. 한국인 손미나와 왜인 레이나를 필두
로 브라질‧멕시코‧호주‧영국‧벨기에 등 국적은 제각각이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함께 식사를
하는 즐거움으로 인해 나누는 대화는 정겨웠다.
원주민 청년의 노래가 끝나자 가이드가 나서서 타킬레섬 사람들의 모자 쓰는 풍속에 대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흰색과 붉은색이 섞인 모자를 쓴 사람은 싱글, 붉은색 모자를 쓴 사람은 유부남
이라는 것이었다. 여러 색상이 섞인 알록달록한 모자는 마을 지도자만 쓴다고. 유부남은 아내의 머리
카락으로 만든 허리띠를 착용한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덕분에 하산할 때는 스치는 원주민이 싱글
인지 유부남인지 구분하느라 힘든 줄을 몰랐다. 하산 길에 마주친 여인들은 대부분 손으로 실꾸리에
실을 감으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손미나의 여행기를 토대로 한 작가의 덧붙임말로 엮어가지만 동행한 가이더의 소심한 시각으로 표현한듯 사실감이 그대로 여서 참으로 많은책을 탐독한 박식에 경탄을 금할수 없습니다. 틈나면 동대문 헌책방에서의 오랜 뒤짐이 작가의 박식을 더욱 다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