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공장 굴뚝서 사라진 불꽃… 아람코 “탄소저감이 생존의 길”
[석유기업의 탄소중립]
사우디 가스-석유정제 공장 가보니
세계 최대 석유기업 아람코 르포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코바르에서 버스가 출발했다. 사막 도로를 2시간 넘게 가로질렀다. 지그재그로 파이프라인이 연결된 거대한 공장이 사막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배출 탄소 포집해 저장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하위야 가스공장에서 직원이 설비를 점검하는 모습. 이 공장에서는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을 도입해 가스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아람코 제공
세계 최대 석유기업 아람코의 하위야 가스공장이다. 공장 부지로 들어가자 ‘이산화탄소(CO₂) 압축기’, ‘CO₂ 건조 장비’가 눈에 띄었다. 가스 생산 과정에서 생겨난 탄소를 모아 처리하는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설비다. 이곳에서 포집된 탄소는 약 85km 길이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우스마니아에 마련한 지하 공간으로 주입돼 격리된다. 아람코의 공장 관리자에게 “가스에서 탄소를 얼마나 포집할 수 있냐”고 묻자 “모두(All of it)”라는 답이 돌아왔다.
‘탄소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아람코가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새로운 생존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 ‘신비주의’ 벗고 스스로 ‘속살’ 내보인 아람코
아람코 본사 전경
아람코는 1933년 사우디 정부와 미 스탠더드오일이 함께 설립한 기업이다. 1980년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 주식 100%를 확보하며 국유화했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로 2019년 12월 사우디 증시 타다울에 기업공개(IPO)를 했다.
아람코는 IPO 직후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에 등극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후 미국 애플과 1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6일 기준 시가총액은 2조410억 달러(약 2849조 원)로 2조2010억 달러인 애플에 이어 2위다. 아람코의 연간 영업이익은 지난해 7월∼올해 6월 2790억3800만 달러로 2위 애플(1200억4700만 달러)보다 2배 이상 많다.
지상 최대 기업으로 군림해 온 아람코는 IPO 전까지만 해도 베일에 가려 있었다. 굳이 변화가 필요하지도, 홍보나 마케팅이 요구되지도 않았던 기업이다. 하지만 최근 탄소중립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며 아람코도 큰 변화를 맞았다. 석유 산업과 대표 기업들은 ‘거대 악’으로 공격받았다. 아람코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 석유 산업의 문법에 없던 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아람코 제공
이번 사우디 현지 아람코 본사 및 공장 방문 취재에는 본보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미국 CNBC, 일본 닛케이신문이 동행했다. 한국 언론의 현지 공장 방문은 처음이다. 아람코 관계자는 “세계 각국 유수 언론을 동시에 부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탄소 시대를 대표하는 석유 기업이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현실적 해법들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 “하룻밤 사이 신재생에너지로 바뀔 수는 없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의 거대한 에너지 시스템이 하룻밤 사이 신재생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가정에는 큰 결함이 있다”고 줄곧 강조해 왔다. “노르웨이 같은 선진국에서 효과를 봤다 하더라도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에 똑같이 적용되긴 어렵다”는 주장이다.
하위야=구특교 기자
아람코의 아브까이끄 공장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공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정제공장으로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5%를 공급한다. 그런데 굴뚝에는 정제공장에서 흔히 보이는 불꽃이 없었다. 아람코가 정제 과정에서 플레어링(불기둥)을 최소화해 온실가스 등의 배출을 줄이는 ‘제로 플레어링’ 기술을 개발한 덕분이다.
현지에서 만난 아람코 관계자들은 “탄소중립을 위한 석유산업의 ‘브리지(다리)’ 역할”을 여러 번 강조했다. 지금 당장 신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할 수 없다면, 석유화학 산업에서 우선적으로 탄소를 줄일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더 현실적이고 시급하다는 설명이었다.
석유 감산 등과 관련한 국제 갈등에 대해서는 현지인 모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아람코 본사에서 만난 임원들은 국제 에너지가격 불안정 문제에 대해 “나의 담당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코바르 시내에서 만난 한 사우디 시민은 “우리도 고유한 주권이 있는데 미국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위야=구특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