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제갈량
사마의
곽가
육손(주유?)
서서
대충 이정도로 분류하고 싶은데요..
방통을 뺀 이유는 연환계 말고는 큰 활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사에선 연환계도 조조가 알고 있었죠..
근데 그 책략외엔 믿을만한 책략이 딱히 그 상황에서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곽가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습니다만
그동안 공을 보면..
적벽에서 대패했을 때도 조조가
"봉효만 살아있어도 이렇게 처참하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니..
서서는 유비군에 계속 도움을 주고..
자기 재능이 있었으나 조조에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기 어머니 일로
도와주질 않았죠..
순욱이었나;;(잘 생각이;;)
자기보다 10배는 뛰어나다고 했죠..서서가..
님들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삼국지는 정치처럼 끝이 잘 나지 않는 이야기라 토론이 치열해지던데-_-;
제갈량은 전술짜서 진 전투는 없다고 봐야하나?
한 번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암튼 저기 써있는 순서가 대충 서열과 비슷하다고 보시면..(제 생각입니다.)
님들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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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삼국지 최고의 지략가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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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히딩크
네덜란드 사람이 그 당시 외국인 용병으로 쓰였었군요-_-
개그 였는데 ㅠㅠ
가후...
가후는 제 생각에 그냥 모사꾼이네요..임기응변..제 생각입니다.
제갈랴의 전략중에 ...전략이라 해야하나;;; 적벽대전에서 북서풍을 동남풍으로 바꾼 술법이 인상적이었죠 ㅋㅋ 그리고 유비군에서 방통까지 얻어서 이젠 방통과 제갈량까지 둘다 얻었으니 유비가 삼국통일하는것은 시간문제라고 어린마음에 들떴었는데 ㅋㅋ 방통이 몇번 전투도 못하고 화살을 맞아 유비대신 죽었죠ㅠ.ㅠ
주유는 만능?ㅋㅋ
정사를 보면 남동풍 일으키는 것은 제갈량의 '사기(?)' 라고 추측하고 있네요..제갈량이 그때 당시 동남풍이 오는 시점을 잘 파악해서 그렇게 믿게 한거라고 하던데..제갈량이 많이 미화되어있죠..그치만 최고의 전략가라는 점에서는 이의제기를 하기가 힘들거라 봅니다..
그책 있으신분 '나관중도 몰랐던 삼국지 이야기' <- - 강추
저도 그 책 읽어보려 했는데 지금 못구했어요ㅠㅠ
그렇죠. 삼국지 연의 와 정사는 차이가 많이 있죠. 우리가 대개 알고있는 삼국지 는 연의 죠. 지어낸 이야기 ㅎ 제갈량의 잔머리는 역시 최고...
나관중이 제대로 소설가..진짜 천재적인 살붙이기-_-; 잔머리로 보기엔 너무나 압도적인;;
곽가 "봉효만 살아있었어도 ,,"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한말이죠
곽봉효도 만만찮으나 아무래도 사기건 어쩌건 당대 최고의 지략가였던것은 분명한 제갈량!!
사마의는 제갈량을 많이 두려워 했고 소심한 전략들은 짰었습니다.위군 최고의 지략가는 사마의 보단 곽가가 맞습니다..그러나 역시 사람 운명은 ...나래를 펼치기 전에 죽은 곽가때문에 위나라의 통일이 늦춰졌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곽가가 제 명대로 쭉 살았다면 그 후의 일은 잘 몰랐겠죠..방통이 안죽었어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들..서서도 유비편에 붙어있었다면? 참 복잡해졌겠네요..
흠 .. . . 내가 보기엔 무링요
상미쪼아님 가드 올려요-_-
제갈량은 지략가쪽보다는 내정을 잘한 정치가가 맞습니다. 위나라와 촉나라는 원래부터 전쟁이 되지 않을정도로 인구차이(거의5배)와 생산력 등등 열약한 환경에서 몇차례의 북벌을 할정도까지 촉나라의 내정을 키운인물입니다
제갈량은 내정에 그다지 힘쓰지않았습니다. 촉의 내정은 장완과 비위가 도맏아서 해왔죠. 제갈량은 그들을 영입함으로써 내정에 손때고 북벌에만 힘쓸수있었습니다.(삼국지에서 장완과비위의 정치력은 정말대단하죠-0-;;;)
방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