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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5일(금)
* 시작 기도
(사 14:12-15)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얻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주님...
세상의 왕이요 사탄을 상징하는 바벨론 왕이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다 결국 스올 곧 무저갱에 떨어지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모세의 권위에 도발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땅이 갈라져 그 속에 묻혀 죽은 것과 똑같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나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물에 빠진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지,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의 극치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바벨론 왕의 모습임을 잘 압니다.
하여 오늘도 나를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더 겸손히 낮아지며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물게 하소서.
지난 4월14일 새벽에 골절 사고로 한국에 갔다가 정확히 한 달이 지나 오늘 5월15일에 베트남으로 갑니다.
나의 모든 여정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하이퐁한인연합교회를 눈동자 같이 지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3:1-15
제목 :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 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 나의 묵상
성도 여러분, 내가 여러분들을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과 같이 대할 수가 없습니다(1절).
여러분들이 비록 예수를 믿어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영적으로 어린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말합니다(1절).
그래서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인 밥을 줄 수가 없어서 부드러운 음식인 젖을 주어 먹게 하는 것입니다(2절).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을 주면 그것을 소화시킬 수 없었으며 지금도 하기 힘든 상태입니다(2절).
미안하지만 여러분은 아직도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3절).
왜냐하면 여러분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기 때문입니다(3절).
이런 시기와 분쟁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영적으로 미성숙하며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입니다(3절).
여러분들이 자신을 한 번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파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아볼로에게 속한 자라고 합니다(4절).
그런데 어떻게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4절).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서와 여러분 앞에서 도대체 아볼로는 무엇이며 또한 바울은 무엇입니까?(5절).
아볼로나 바울이나 주님이 그들에게 각각 주신 은사대로 일하는 일꾼들인데, 그 일이란 곧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5절).
여러분에게 먼저 와서 일했던 나 바울은 심은 자요 내 뒤에 와서 일한 아볼로는 물을 주었을 뿐입니다(6절).
그러나 여러분을 자라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심은 자나 물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자라나게 하는 것인데, 그 자라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7절).
심는 사람과 물주는 사람은 오직 한 가지 목적 때문에 일합니다(8절).
그 한 가지 목적은 심고 물을 준 나무가 견고하게 잘 자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8절).
그러나 아무리 많이 심고 아무리 물을 많이 줄지라도 그 나무가 자라지도 않고 더욱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면 심은 것과 물을 준 것은 헛수고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일을 한 수고만큼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또한 하나님의 집입니다(9절).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대로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먼저 이 기초를 닦았습니다(10절).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 기초 위에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이 기초 위에 집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주의해야 합니다(10절).
어느 누구도 내가 닦아 둔 이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닦을 자는 없습니다(11절).
왜냐하면 이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닦은 기초이기 때문입니다(11절).
이 기초 위에 사람들이 집을 세울 때 여러 가지로 세울 수 있습니다(12절).
예를 들면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과 같은 재료로 이 기초 위에 집을 세우면 그것에 따라 자신이 세운 성과(成果)가 드러날 것입니다(13절).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마지막 날이 되면 그 성과가 밝히 드러날 것인데 그 이유는 마지막 날 심판은 불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3절).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과 같은 재료로 세운 집에 불이 붙어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으면 그는 보상을 받습니다(14절).
그러나 그 성과가 불에 타서 없어지면 그는 손실을 입을 것인데 그 사람은 구원은 받되 불 가운데서 힘들게 받은 것 같을 것입니다(15절).
내가 전에 부목사로 섬겼던 교회에서는 바울파 아볼로파가 있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목사의 편에 서서 그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게다가 담임목사 역시 이런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동역을 하면서 서로 협력하고 도와야 할 입장인 사역자들에게 경쟁을 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이 선의의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가 맡은 교구가 1등을 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내가 바로 그 파벌의 중심에 서 있던 자였다.
나는 그것을 나 스스로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 사역을 하여 열매를 많이 맺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 온전한 복음을 알고 보니까 그 열매는 사실 열매가 아니었다.
그저 교회에 나왔던 자들일 뿐 예수를 믿는 이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교회에 왔으면 복음을 듣고 생명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들에게 복음은커녕 복음의 ‘ㅂ’도 전하지 않았다.
그저 교회에 와서 그 교회에 등록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었다.
누가 많이 등록시켰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열매로 간주하였다.
나는 이런 식으로 집을 세웠다.
물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도하였지만 실상은 그들에게 주는 미끼가 있었다.
그것은 좋은 선물이었다.
그 미끼를 물면 한 번은 나와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주님의 심판의 불이 내릴 때, 이렇게 세운 집이 그 불에 타지 않고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나는 심고 다른 사역자는 물을 주거나 혹은 다른 사역자가 심고 내가 물을 주거나 하면서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동역자여야 했다.
그러나 내가 심고 내가 물을 주고 내가 자라나게 하는 것처럼 교만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서 몇 명을 교회에 데리고 왔는가에 따라서 교회에서 상과 칭찬을 받았다.
그런 나는 내 안에 있는 자기 義 곧 자기주장의지가 한없이 발동하여 그것으로 내가 하나님처럼 높아졌고 또한 하나님을 대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집과 같아서 심판의 불이 내릴 때에 다 타버리고 그 불 속에서 겨우 살아남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자임에 틀림없는 자였다.
하나님은 결코 교회에 몇 명이 모이느냐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시다.
몇 명이 복음을 듣고 생명을 얻느냐에 지대한 관심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영생)을 드러내신지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따라서 교회가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인도하지 않고 숫자 놀음에 빠져 있으면 이는 결국 마지막 날 심판의 불이 내릴 때 다 타서 없어질 것이며 불 속에서 겨우 건짐을 받는 부끄러운 구원만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불 속에서 겨우 건짐을 받아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자였다.
구원이라는 말조차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이며 또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다.
그런 나는 불구덩이에서 타고 있는 나무였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그 불구덩이에서 나를 끄집어내셔서 그을리고 타서 상처난 곳을 당신의 피로 깨끗이 닦아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소유로 삼아주셨다.
그 은혜를 힘입어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었건만, 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는 일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지 못하였기에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기보다 남의 다리만 긁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주님의 심판을 받아 어떤 사역도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졌고 거기에 암까지 얻어 탈진 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 심판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들려주셨고 이 복음을 통하여 내 영이 깨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우지 않는다.
모래 위에 세우는 눈에 보이는 멋진 집이 아니라 비록 볼품이 없을지라도 반석 위에 세운 견고한 집을 세우려 한다.
이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무언가 그럴듯한 것을 세우려는 3A(Appearanc보란듯함, Achievement성공, Affluence부요함과 윤택함)이 나를 미혹하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에 보란 듯해야 하고, 내가 하는 목회는 성공해야 하며 그래야 풍요와 윤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영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아니라 영적으로 아직 미숙한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는 모습임을 잘 안다.
따라서 오늘도 나 자신을 쳐서 주님의 말씀에 복종시키고 나는 감추어지고 오직 주님만 드러나는 일에 나 자신을 드린다.
그것은 무슨 행위로 하는 일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여 복음을 들은 이들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나는 오직 복음을 전하여 생명 살리는 일이 곧 나의 사명임을 알기에 오늘도 말씀 안에서 주님과의 교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몸은 부서질지라도 주님과 함께 연합의 자리를 지킨다.
이 자리가 있기에 내가 사는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의 정욕과 필요를 위하여 믿는 자였습니다.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주님은 하나도 모르는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이용하는 자였고, 말씀을 이용하여 나의 필요를 채우기에 급급한 자였나이다.
이런 나는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세우는 거짓 사역자였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이런 종을 주의 소유로 삼아주시고 복음을 주셔서 날마다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를 통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시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한 감격스러운 일인지요?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어서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이 영생의 자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임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내게 임한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오직 이 영광의 자리를 누리며 기뻐하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