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한 지도력을 한 번 보십시다.
민주당의 8월 28일 당무회의는 ‘시정잡배’들의 싸움판을 방불케 했습니다. 멱살잡이와 온갖 욕설이 난무했으며, “옆구리로 기어들어온 것들(신주류)이 당을 망하게 한다!”며 저지하는 이들에게 마시려던 물을 뿌려 회의장은 일찌감치 난장판이 됐습니다.
“뭐하는 놈들이야!”,“깡패들 나가지 마!”,“야, 네가 말할 자격 있어! 이 ××야!”,“배신자. 더러운 ××!”,“호로××” “김OO 밟아버려!”
정부여당 사람들이 민생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 밥그릇 싸움이나 하는 한심한 지도력이 없는 추태의 코미디를 봅니다.
참된 리더십이란 무엇일까요?
▶▶ 1. 참된 지도력은 이해심이 큰 마음에서 나옵니다.
징기즈칸이 매 사냥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사냥을 마치고 부하들은 먼저 보내고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팔목 위에는 그가 아끼는 매가 앉아 있었습니다.
매는 사냥감을 보면 날아올라 쏜살같이 낚아채서 가져오곤 했습니다. 더운 날씨여서 목이 말랐습니다. 물이 있을 듯한 곳을 찾아가던 중 바위 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말에서 내렸습니다. 사냥 가방에서 은잔을 꺼내어 떨어지는 물방울을 모았습니다. 잔에 물이 어느 정도 찼을 때 마시려고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매가 휙 하고 날아와 잔을 쳐버렸습니다. 다시 물이 조금 찼을 때 마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매가 덮쳐 떨어뜨렸습니다. 장난치고는 너무 심했습니다. "이녀석 가까이 있다면 목을 비틀어버릴 텐데..."
이번에는 칼을 빼들고 잔을 입으로 가져가려 하는데 매가 다시 덤벼들었고, 잔은 저만치 날아가 깨져버렸습니다.
"에잇!" 칼이 허공을 가르고 매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잔이 없어져 하는 수 없이 물이 나오는 웅덩이를 찾기로 했습니다.
어렵사리 바위에 오르니 물이 고인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웅덩이 속에는 독사로 보이는 뱀의 시체가 잠겨 있었습니다.
'매가 내 생명을 구했구나!'
인간관계에도 얼마나 많은 오해가 있습니까? 오해로 서로 죽이고 불행해 지고 있습니다.
▶▶ 2. 희생정신으로 강화되는 지도력
조갑제는 한나라당이 지난 大選 패배 이후 한번도 의미 있는 대중집회를 열지 않았다며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은) 결국 친북과 애국세력 양측으로부터 뜯어먹힐 것"이라고 경고가 있었습니다.
인간관계가 파괴되어 부딪쳐 싸우는 일이 많습니다. 대개 세가지 부류로 나눌 수가 있는데 첫째 공멸형이 있습니다. 싸움이 붙으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스타일입니다. 두번째는 잠복형이 있습니다. 마음에 감추고 있다가 기회가 있으면 화산처럼 폭발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대화형이 있습니다. 얽힌 실타래를 풀듯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Hannibal, BC247-BC183)이 로마를 강력하게 밀어부쳤습니다. 로마는 한니발에 대항하여 BC 219년부터 벌인 16년간치열한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로마가 승리했습니다.
왜일까요? 한니발과 로마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의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Consul)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습니다. 집정관은 로마 공화정(共和政) 시대의 행정 및 군사의 최고 지도자였고, 문무(文武) 지상권(至上權)을 가지고 속주(屬州)를 통치하였으며 그 권한은 거의 무제한이었습니다. 이들의 희생정신이 로마를 승리케 했습니다. 로마가 그냥 로마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안북도 정주에 아주 가난한 농부의 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4형제 중에서 다른 형제들은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어려서 다 죽었습니다. 또한 자기 어머니는 여덟 살 때, 아버지는 열 두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낙준이는 사실상의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집을 전부 조사해 봤더니 자기가 여덟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 다음에 장가 밑천 하라고 베를 짜서 몇 필을 감추어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가난 중에도 어머니의 지극하신 사랑으로 감추어 두었던 그것을 팔아서 선천에 나와 신성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거기서 고학을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그 때 마침 교장으로 있던 윤산온 박사가 학교의 심부름을 시키면서 장학금도 주었고 기숙사비도 주었습니다. 요즘 말로하면 근로장학생이었습니다. 윤산온 선교사가 일을 시켜보았습니다.
장작을 쪼개어 장고에 들이라. 창고에 다른 것을 넣어야 할 터이니 장작을 처마 밑에 쟁여라. 아무래도 그장작을 창고에 다시 들여하! 다른 학생들은 시켜보면 잔소리를 많이 해야 했고 두 번 손질해야 했고 불평이 많았으나, 낙준이는 시키기만 하면 두 번 손질 할 것이 없었고 지시를 잘 따라 주었습니다.
교장인 윤산온박사는 이 학생은 키우면 인물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예일대학에 추천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아 공부할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 후 돌아와서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냈고 문교부장관도 지내고 참의원 의장도 역임한 백낙준박사입니다.
▶▶ 3. 청결한 마음
[盧, 檢견제발언 파장] "수십억 수뢰 별것 아니면 뭘 수사하나"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이 별것 아닌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등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많은 검사들은 28일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부장급 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었는데 노 대통령은 ‘검찰을 죽여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라고 탄식했지요.
야당은 일제히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한나라당 이강두 정책위의장은“감찰권을 갖고 검찰을 이리저리 흔들겠다는 발상이며, 정치검찰을 양산하겠다는 것인 만큼 적극 저지해야 한다”고 했으며, 박주천 사무총장은“감독받지 않는 검찰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며 위협하는 것은 측근, 민주당 실세에 대한 수사에 재갈을 물리려는 폭탄테러 행위”라고 비난 했습니다.
"수십억 수뢰같은 별것 아닌 것을 수사하는 검찰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막말을 하는 이런 한심한 대통령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이 나라 국민들이 불쌍코 불쌍합니다. 개골!개골!개골!
▶▶ 4. 솔선수범하는 리더십
워털루전투(Battle of Waterloo) 1815년 6월, 나폴레옹은 125,000여 명의 프랑스군을 이끌고 웰링턴(Arthur Wellesley Wellington, 1769-1852) 지휘하의 영국군 95,000여 명, 블뤼허가 지휘한 프로이센군 12만여 명 등 도합 20여만 명의 연합군과 벨기에 남동쪽 위털루 남방 교외에서 대전하였습니다. 6월 16일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군을 격파하였으며, 사기가 충천한 프랑스군은 18일 영국군에게 총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비록 4만여 명의 프로이센군의 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사기나 병사들의 전투 경험으로 미루어(많은 영국 병사들은 인근에서 급하게 모집한 자원병들이었다) 영국군이 이길 수 없는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4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고 대패하였다. 전투에서 패한 나풀레옹은 6월 22일, 돌아오지 못할 세인트 헬레나섬으로 영구히 유배되었습니다.
영국군이 어떻게 이겼을까요? 객관적 전력이 열세였던 영국군이 승리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이것은 전사자들의 신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프랑스군 전사자들 중에는 주로 하층민들이 많았고, 영국군 전사자들 중에는 이튼칼리지(Eton College) 출신들을 비롯하여 많은 귀족 자제들이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1440년 헨리 6세에 의하여 창설된 이튼칼리지는 영국의 지도자가 되는 일종의 “귀족 양성 학교”였습니다.
제 1, 2차 세계대전 중에 이튼칼리지 출신들의 전사자들이 무려 2,000여명에 달했습니다. 또한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의 무력 점령으로 시작된 포클랜드 전쟁(Falkland Islands War) 때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가 참전하였습니다. 최전방에 나가 죽음으로 나라를 지킴으로 자존심도 지키고 자신들의 리더십을 지켰습니다.
"한국 경제는 지금 사느냐 죽느냐하는 교차로에 서 있습니다.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 모두 깨달아야 합니다.” 요즘 주한 외국기업 최고경영진(CEO)들은 불안하답니다. 그러나 막상 盧현통과 정부는 엉뚱한 일에 분주합니다.
盧통이 강연하는데 한 사람이 좁니다. 盧통왈 "최고 권력자가 누구와 타투겠냐"고라.. 자칭 최고권력자가 주류 언론사와 손배소를 하고 야당과 싸우고, 검찰을 협박하는 겁니까?
▶▶ 5. 지도력은 협박으로 통하지는 않는다
민주당 김옥두의원의 '협박'? "표결 해봐라...내가 어떤행동 하는지" 2000년 16대 총선 때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옥두(金玉斗) 의원은 28일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표결을 할테면 해보라. (그러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라”고 말해 파문을 던졌습니다. 김 의원은 이날 정대철(鄭大哲) 대표가 “이제 충분히 얘기했으니 표결하자”고 제안하자, 이를 제지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돌아와 “권노갑 전 고문이 저렇게(구속) 됐는데도 당에서 신당얘기만 했지 일언반 구도 없어 분노를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盧통은 지난 27일 전남 광양을 찾아 "막강한 권력을 누구에게서도 감독받지 않는 검찰을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도 별것 아닌 문제로 검찰의 조사를 받은 것이 현실"이라고도 했구요.
도대체 盧통의 불만은 무엇일까요?
얼마 전 일입니다. 盧대통령은 강금실(康錦實)법무부 장관에게서 업무보고를 받은 뒤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모 검찰 고위 간부를 인수위 시절에 모 비서관이 추천했다는데 맞습니까." 잠시 머뭇거린 康장관은 "그렇습니다"고 답했다는 후문입니다.
민주당 정대철(鄭大哲)대표의 검찰 소환이 파문을 일으켰을 당시 여권 내부에서는 검찰 내 특정 라인 얘기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청와대의 몇몇 측근이 학연과 지연 등을 통해 검찰 내 주요 인맥을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가 이제는 정치권에서 정설로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민원담당공무원들을 불러놓고 강연하는 자리에서, 민원인들이 공무원을 "개XX들, 저거 반은 잘라야 한다"는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그 때, 그것은 지극히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있었을 때, 대통령은, 열나게 좋은 강의했는데, 신문이 "개XX"만 크게 보도한다면서 화를 냈다.
▶▶ 6. 편협함과 적대감은 리더십을 망친다
우리는 모든일에 늘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미움과 분노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습니다.
「정신대」로 200,000이상의 우리 누이들이, 어머니들이 끌려갔습니다. 일본 경찰들은 수사 명목으로 집안을 뒤지다 여성이 있으면 강간을 자행했습니다. 학도병, 군속 등으로 끌려 간 동포가 383,841명이 넘으며, 1939-1945 사이에만 480만 명이 「강제노동」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분노가 있습니다.
현 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방 출신의 대거 발탁입니다. 현 정부 들어 정무적 성격이 있는 장·차관급 자리에 발탁된 대학교수 출신 10명 중 8명이 지방소재 대학교수 출신이고요. 내각에는 윤덕홍 교육(대구대), 권기홍 노동(영남대), 허상만 농림(순천대), 허성관 해양(동아대) 장관 등 4명이 지방대 출신이고 윤영관 외교부 장관만 서울 소재 대학(서울대) 교수 출신입니다.
청와대와 대통령직속위원회 중에서도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이 경북대 교수 출신이고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한림대), 이종오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계명대)도 지방대 출신입니다. 국정원 서동만 기조실장도 한림대 출신이지요.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만 서울 소재 대학(국민대) 출신입니다.
이밖에 청와대의 문재인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보좌관은 부산과 광주에서 바로 발탁됐고, 정부의 김두관 행자부장관, 조영동 국정홍보처장, 전성은 교육혁신위원장도 같은 경우입니다. 교육혁신위원 21명 중에는 16명이 지방에서 발탁됐습니다.
법조계도 율사출신 장차관 6명중 5명이 民辯(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출신입니다. 그리고 고영구 국정원장, 강금실 법무장관,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 박주현 참여수석 등과 대통령 몫(3명) 방송위원으로 지명된 조용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대표)도 민변 창립 멤버입니다.
최근 대법관제청 파문 과정에서 강금실 장관과 함께 자문위원을 사퇴했던 박재승 대한변협회장은 올초 민변의 지원 속에 당선됐던 민변 회원입니다. 대북송금 특검을 맡았던 송두환 변호사도 민변 회장 출신이고요.
문화계도 이창동 장관 취임후문화계 주요 자리에 '민예총'(민족예술인총연)와 문화연대(문화개혁시민연대) 출신들이 약진했습니다.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인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지난 1월 “새 정부에서는 ‘예총’ 같은 기득권 세력이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하고, 민예총 같은 진보세력이 대거 전진배치되어야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방송계에서도 정연주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이 KBS 사장에 임명됐고 언론개혁시민연대 출신인 성유보 전 한겨레신문 사장이 방송위원으로 선임됐습니다. 또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논설고문이 대통령 몫 중앙선관위원에 지명되고, 김근 전 논설주간도 방송광고공사 사장에 임명되는 등 유독 한겨레신문 출신들이 많이 발탁되고 있습니다.
▶▶ 7. 화해하는 자세가 지도력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언하여, 결국은 6개국은 29일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사흘째 전체회의에서도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담은 공동의 합의문서도 만들지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깡패나라 때문에 여러 나라가 골치를 썩히고 있습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만일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다면 이것은 부시 대통령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CBS방송은 보도했습니다.
"깡패XX들"… 몸싸움… 난장판 민주당 민주당의 28일 당무회의는 ‘시정잡배’들의 싸움판을 방불케 했습니다. 신·구주류 간 감정싸움은 금지선을 한참 넘어섰고 양측 모두 ‘분당(分黨)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부정하지 않았습니 다.
“왜 사조직을 동원했어!”정균환 총무는“(동원된) 깡패들 나가지 마!”하고 소리쳤습니다. “야, 네가 말할 자격 있어! 이 ××야!” “네가 그럴(신당할) 자격 있어? 배신자. 더러운 ××!” “호로××” “김OO 밟아버려!”
총선이 얼마 남지안았습니다. 너무나 지도력이 없는 코미디를 봅니다.
盧통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들과 전방위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대립=노 대통령은 땅투기 의혹제기와 관련,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에게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등 한나라당과 대척점에 섰습니다. ◆대법원과 신경전=신임 대법관 후보 선정을 둘러싸고 법조계와의 긴장관계가 날로 증폭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출범 전부터 사법부의 탈(脫)보수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언론과 갈등=노 대통령은 13일 땅투기의혹 보도와 관련, 4개 언론사를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며 언론계 전체를 자극했습니다. 盧통이 언론에 지나친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운동권, 노동계와 충돌=참여정부는 출범 초 한총련의 합법화를 적극 검토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미군 탱크에 올라타 격렬시위를 벌이자 강경대응으로 선회했고요, 물류대란 등 노조의 잇따른 파업 사태 와중에는 노 대통령의 최대 지지기반이었던 노동계와 대립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원로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대립보다는 화합으로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盧통은 오늘도 "억울해도 어디 말할 데도 없고…" 그러나 "(나는)그렇게 만만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
▶▶ 8. 자신을 개혁하는 마음
릭(Rick Chase)은 깨어진 가정에서 5남매의 막내로 자랐습니다. 그는 밴쿠버 지역에서 13개 학교를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결국 그는 마리화나를 팔다가 학교로부터 완전히 추방당했습니다. 그는 이미 13살에 마약인 LSD와 코카인을 시작했고, 16세에 가출하였습니다. 그 후 가출 청소년 센터(foster home)에서 1년을 보낸 후 월리(Whalley) 슬럼가의 차고를 방으로 개조하여 자신의 “분명한” 아지트를 갖게 된 릭은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마약을 팔고 주거침입 강도 행각을 계속했습니다.
때때로 남의 집에 침입했을 때에도 다행히 몸이 민첩하여 한번도 잡혀서 기소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22살일 때는 정말 감옥에 들어갈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릭의 인생에 일대 전기가 된 소위 “비디오” 사건이 일어났다. 그 날 릭은 친구 마약 딜러와 함께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심심해서 친구와 더불어 술이나 한잔 걸치고 거나한 상태에서 그가 갖고 온 비디오를 보기로 했습니다. 그 비디오는 6개월 전, 그 친구의 가족들이 캘리포니아에서 방문하면서 남겨두고 간 비디오였습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지도력은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예수“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릭이 포르노 인 것으로 생각하고 본 그 비디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그 순간 그의 생애가 변했고 신학을 공부하여, 마약을 팔러 다니던 그 거리에 목사가 되어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창동 문광부 장관이 국내 시민단체들에 대한 북한 선수단의 폭행행위와 관련, “북한을 자극하는 행위에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슨 검찰총장처럼 큰 소리를 칠 때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인간인가 부끄러움을 들어 내는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도박판의 '올인'만큼이나 무지한 행동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우연한 사건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미신이 나쁜 것도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스키너라는 심리학자는 이를 비둘기를 통한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먼저 비둘기는 박스 속의 한 지점을 쪼아대면 먹이를 얻는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먹이는 비둘기가 그 지점을 쪼더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바뀌었고, 먹이는 정해진 시간 간격만큼 나오도록 바꿔 놓았습니다.
한동안 비둘기는 배가 고프면 이전에 쪼아대던 지점을 열심히 쪼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아무런 먹이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가 먹이가 나오면 거의 횡재한 듯이 허겁지겁 주워 먹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심리학자는 비둘기가 다리 하나를 든 채로 빙빙 도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상히 여겨 살펴보니 비둘기는 마치 자신이 다리를 들면 먹이가 나오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비둘기들도 모두 비슷하게 자기 나름의 '미신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도자는 자신을 개혁하고 사회를 개혁하지, 다리를 하나 처들고 빙빙돌면서 개골! 개골! 헛소리 하지 않습니다.
▶▶ 9. 진실이 최고의 감동을 주는 지도력
노무현 대통령과 개구리의 공통점은?
"올챙이 적 시절 생각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지껄인다." "가끔 슬피 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생긴 게 똑같다."
사해는 어떠합니까? 사해는 해발 4백미터에서 5백미터로 낮습니다. 물을 자꾸 받아만 들이고 전부 물이 증발하기 때문에 물이 흘러 내려가지 않습니다. 받기만 받고 내보내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통 바닷물의 염분은 3퍼센트인데 그곳의 염분은 25퍼센트입니다. 물고기가 살지 못합니다. 사람이 들어가도 빠져죽지 않고 뜹니다.
사랑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며, 우리 인생을 성공하게 만드는 85퍼센트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6·25 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들이 무려 142명이나 참전해서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중에서 당시 미 8군 사령관 밴플리트(James Award Van Fleet, 1892-1992) 장군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습니다. 후에 미국 대통령(1953-1961재임)이 된 아이젠하워 (Eisenhower, Dwight David, 1890-1969) 장군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주석은 6·25전쟁에 자기 아들을 참전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 전사했습니다. 마오쩌둥은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아들의 시신 수습을 하지 말라고 특별히 지시했습니다. 주석의 아들이니 그 시체를 찾기 위해 많은 병사들이 희생될 것을 알고 내린 지시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지도력으로 인해 마오쩌둥은 10억의 중국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리더십에서 진실이 빠지면 모든 것을 다 망가뜨리게 됩니다.
▶▶ 10. 낙관적인 사고방식이 리더십이다
영국의 존 메이져 수상은 존경받고 성공한 정치인중에 한분 인데, 그는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6세때 학교를 중태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의 현장에 뛰어들만큼 가난했습니다. 그는 새벽부터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반죽하며 일했고, 두 시간의 새벽노동을 마치면 간단한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습니다.
그는 은행의 간부와 정치가로 명성을 얻은 후에도 서민들이 출입하는 식당을 즐겨 찾았습니다. 그의 집도 주로 서민층이 밀집된 지역에 있었습니다. 존 메이어는 수상이 된 후 기자들로 부터 고난의 세월을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그 비결을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비관적인 생각을 갖지 않는다." "항상 희망을 갖고 일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진다." "神은 표정이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준다."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은 행복을 갉아먹는 좀 벌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환경에서도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고로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입니다.
▶▶ 11. 은밀한 善行이 리더십이다
盧통은 8월15일 光復節 경축사에서“自主獨立국가는 스스로의 國防力으로 나라를 지킬 수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10년 내에 우리 군이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盧통이 북핵으로인한 안보위기가 여전하고, 韓美同盟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굳이 그가 自主國防을 강조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세계적 추세는 自主國防을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세계 최강 미국 조차도 NATO 등과 보다 긴밀한 국제협력에 입각하여 안보전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盧통은 마치 低能兒처럼 자주 국방을 위해 209조나 예산이 필요하다면서 새 예산에 국방비 증액이 올해 17조5000억원에서 내년에는 18조9000억원으로 불과 1조4000억원 늘리면서 미국에 딴지만 걸고 자주국방 한다니 누가 그의 지도력을 믿겠습니까?
"평화, 통일, 한겨례" 겉치례는 좋은 말이나 그 속으로는 나라를 망치는 악한 의도가 숨겨 있으면, 이심전심으로 알게 돼 있습니다.
1960년 슈바이처가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기차를 타고 덴마크로 갈 때의 일입니다. 기자들이 인터뷰하기 위해 일등칸에서 그를 찾았지만 그는 3등 칸 구석에 앉아서 가난한 시골 사람들을 진맥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왜 이처럼 고생하며 가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이제껏 내가 즐길 것을 찾아 살지 않았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왔소. 지금도 나는 그렇게 할 뿐이오.”
여기서 우리는 참된 권세있는 참 리더십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12. 비젼있는 철학이 리더십이다
싱가포르의 철혈(鐵血)재상 리콴유와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 대통령이었던 니에레레는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는 지도자입니다.
신사 또는 성자(聖者)라는 이름이 늘 붙어 다니는 니에레레는 아프리카에선 드물게 후계자에게 평화적으로 정권을 물려주었습니다. 문맹의 나라 탄자니아는 니에레레의 집권기간에 아프리카 최고의 문자 해독률의 나라로 탈바꿈했습니다. 나이도 엇비슷한 두 사람은 식민지 시대에 영국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것도 한가지입니다. 그리고 독립 후 20여년 동안 초대 대통령, 초대 총리로 나라를 이끈 것 역시 닮은꼴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유사점을 압도하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입니다. 59년 싱가포르의 GDP는 400달러였습니다. 리콴유는 90년 이것을 1만2200달러로 올려놓고 후계자에게 물려주었다. 싱가포르의 GDP는 지금 3만달러에 육박합니다.
탄자니아가 독립한 61년의 GDP는 123달러다. 니에레레가 정권을 물려주고 한참이 지난 90년에도 탄자니아의 GDP는 171달러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현재 탄자니아의 GDP는 북한과 비슷합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국가지도자의 철학 차이입니다.
성자 니에레레가 설교하는 ‘빈곤의 철학’은 “당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내가 부자인 세상, 당신이 부유하기 때문에 내가 가난한 세상에선 부자로부터 가난한 사람에게 부(富)를 옮기는 것이 선악의 문제이지 자선의 문제가 아닙니다.”
리콴유는 65년 ‘풍요의 철학’을 주장했습니다. “싱가포르는 구걸하면서 살지 않겠습니다.” 리콴유는 구걸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67년 미국에서 재확인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어느 나라보다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멸망하리라는 것이 싱가포르 정부의 철학입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생존전략은 제3세계에 제1세계급(級)의 오아시스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싱가포르가 치안·사법·보건·교육·수송·노동·서비스 부문에서 선진국과 맞먹는 수준을 달성한다면, 선진국의 기업들은 앞다투어 싱가포르에 사업의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려 할 것입니다. 이웃나라들과 비슷하다면, 누가 굳이 싱가포르를 찾겠습니까?”
덩샤오핑(鄧小平)은 88년 리콴유에게 “리 총리,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중국은 당신한테만이 아니라 남조선에게도 배워야 하오. 중국이 샹하이(上海) 크기만 돼도 당신만큼 빠르게 중국을 바꿔놓을 텐데…. 중국은 너무 크단 말이오….”
리콴유는 회고록에 적어놓았습니다. “교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저 애들의 졸업 후 일자리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내년 2월 대학을 졸업하는 30만명의 졸업생가운데 1,9%는 일자리가 있고, 98.1%는 일자리가 없다고 해도 대통령도 어떤 정치가도 별로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코드 중심의 분열적 정치’패거리 정치는 리더십을 망가뜨립니다. 장훈(張勳) 중앙대 교수(정치외교)는 “코드가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근거로 작용하면서, 다양한 문제를 해결 못하고 과부하가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박형준 교수는 “대통령이 특정집단, 특정이익에 매몰된 것으로 비쳤다”고 했고, 이달곤 교수는 “코드 정치가 국가 에너지를 분산시켰다”고 했습니다.
'가장 잘한 일’에 대해 장하성(張夏成) 고려대 경영대 교수(경영학)는 “노무현 정부 들어 6개월간 경제정책이란 것은 없었다”고 했고, 고성수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단 하나 포퓰리즘”이라며 “꼽을 것이 전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에 살던 인디언들 가운데 ‘아파치’라 불리우는 주로 미국 남서부에 살 던 대단히 강한 부족이 있었습니다. 이 부족은 추장직을 세습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추장이 후계자 후보인 세 젊은 이를 택하여 “이제부터 저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내려오너라 그리고 내려 올때 정상까지 올라갔었다는 징표를 하나씩 가져 오너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산은 너무 가파르고 험한 산이었어나 세 젊은이는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와 부족앞에서 자신들이 가져온 증표를 보였습니다. 첫째 사람은 그 산 정상에서만 자란다는 특이한 풀 한 포기를 가져왔습니다 둘째 사람은 신기하게 생긴 돌멩이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의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습니다. 추장이 그를 향하여 물었습니다. “자네는 산 정상에 올라가 증표를 가져오라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그러자 세 번째 사람이 대답을 했습니다. “분명히 들었습니다. 저는 정상에 올라가 그 넘어 멀리 아주 크고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주변 땅은 너무 비옥한 곳을 바라보며‘부족의 거주지'로 적격인 그 비옥한 땅을 제 마음속에 품고 돌아왔습니다.”
성숙하고 참된 리더십을 가진 분들이 사회 각 분야에 많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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