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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 Universa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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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 기타 게임 Sengoku 센고쿠 오다 진행중...
잼815 추천 1 조회 1,934 14.03.16 10:38 댓글 5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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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3.16 11:05

    첫댓글 센고쿠는 좀 eu스타일인건가요?

  • 14.03.16 11:41

    뭐 솔직히 오다의 최대 능력은 딴 게 아니라 '운'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어느 한 세력이 강하다 싶으면 그쪽으로 우르르 달라붙는 중세 호족 특유의 생리도 크게 작용했고요.
    운빨로 이마가와 죽이고 명성을 높인 다음, 모자란 힘으로 10여 년에 걸쳐서 미노 하나 겨우 정벌하고, 이제 힘이 좀 붙으니까 쇼군 자리에서 밀려난 클레임 보유자가 자기 발로 찾아오고 그걸 덥썩, 협천자(?)가 되어 끊임없이 힘을 과시하고 세력을 넓혔죠.
    게임 시스템으로 이걸 재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 정공법으로 밀어버리는 게 답입니다.

  • 14.03.16 13:13

    미노하나 겨우 밀어냈다기에는... 제 명에 못가긴 했지만 미노의 국주 사이토 요시타츠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기도 했고, 이나바 산성이 워낙 좋은 성이기도 했죠. 거기에, 미노나 오와리나 1국으로서는 굉장히 크고 풍요로운 나라들이기에 서로 자빠링시키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다만 두 나라 다 큰 나라니 꼴랑 두 나라만으로 거의 100만석이 나와버리고, 원체 전국시대란게 고만고만한 놈들이 서로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면서 회의는 춤추나 진행되지 않던 상황이었는데, 어느 한 놈이 다른 한놈을 통으로 먹는 순간 갸는 확 치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된거죠.

    미노공략의 의미는 굉장히 큽니다. 꼴랑 미노만 밀었다 하긴 좀 그래요.

  • 14.03.16 13:16

    그 복마전인 기내로 들어가려고 마음먹은것도 용하구요. 이 전에 오오우치 요시타카등이 상락을 결행하기도 했었지만, 그 양반은 서국의 14국의 국주라는 어마어마한 실력이 있어서 가능했던거죠. 1568년 시점에는 그럴만한 지역패자급이 딱히 없던 시점인데 "꼴랑 나라두개가진" 노부나가가 그 정글과도 같은 기내로 들어간다는건 엄청 과감한 결단인거죠. 100년 명가 아사쿠라나, 기내의 요충 관음사를 잡고 있던 롯가쿠도 하려하지 않던 일인데... 요시아키를 봉대하는게 나빠서 영주들이 그를 외면한게 아닙니다. 봉대할라치면 피곤해지니 그렇지... 게다가 코앞의 적들 놔두고 돈, 인력 많이 드는 상락도 하는 자체가 부담이고...

  • 14.03.16 13:18

    다께다 신겐이 상락을 마음먹기 위해 호조 우에스기와 얼마나 드잡이질을 해 댔는지를 생각해보면, 우에스기가 그 꼴불견 상락을 하기 위해 얼마나 돈을 처발라댔는지 생각해보면 상락이란게 참 남는건 불분명한데 하기는 힘든 일이랄 수 있을테죠. 물론 운도 컸죠. 요시테루가 참살당한것도, 오다의 위치가 기내바로 밖이란 것도, 어지간하면 몰락하는 이마가와를 공략하기 쉬운데, 그 이마가와령에서 독립한 마쓰다이라가 평생의 동맹이 되어준것도 등등.

    다만 운이라기엔 확실히 노부나가는 실력이 월등히 좋았단 점을 외면할 수는 없죠. 단지 정치 전투에 능한정도가 아니라, 그 시대의 틀 밖을 볼 수 있었던 자라는 점에서...

  • 14.03.16 22:02

    시대의 틀 밖을 본 건 사실인데, 그걸 다수 '범인'들에게 납득시킬 수 없었으니 배반 크리 먹고 일찍 죽은 거죠. 결국 그 떡은 도요토미와 도쿠가와가 먹었으니.
    노부나가의 세계관은 중세 일본 세계관의 안티테제에 거의 맞닿아있기까지 합니다. 그 급한 성미로 이것저것 해치워버리긴 하지만, 그래서 결국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뚜렷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 관백이나 쇼군을 먹어치워 가문의 위치를 제도적으로 안정화하면서 권위까지 얻어내려 한 다른 두 천하인과는 달리 노부나가는 그런 거에 관심 없고 일단 몸집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했죠. 노부나가 최대의 실수입니다.

  • 14.03.16 22:11

    당장 노부나가가 죽자마자 그 거대세력이 일순간에 좍좍 갈라지는 꼴을 보면 차라리 다케다가 나을 수준입니다. 신겐 개인의 카리스마로 유지되던 호족연합체가 가쓰요리 집권 후 흔들거리는 게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오다가 본격적으로 정벌해오기 전까진 겉모습이나마 유지가 되었고 중요 가신단들 다수가 필사적으로 싸우기도 했죠. 그런데 아케치가 토벌당하자마자 열린 기요스회의에서 이미 대분열이 발생하는 걸 보자면 슬플 지경입니다.
    과도한 확장일변도 정책, 각 군단으로 갈라져 폭주하는 가신단, 가문을 지키는 제도적 장치도 없고, 기존 상식을 지나치게 거슬러 종교계를 중심으로 불만이 치솟고, 사실 망하는 게 당연한 수준입죠

  • 14.03.16 22:26

    다른 누구도 하지 않은 기나이 진입을 노부나가가 결정한 것을 보면, 그건 판세를 뛰어나게 잘 읽은 게 아니라 판돈이 상당히 큰 도박을 걸었다고 봐야 합니다. 미노가 거의 떨어질 무렵, 이미 히가시미노에는 전성기를 달리는 다케다 세력이 어른거리고 있었는데, 속도전으로 상락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미노마저 날아갔을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성기를 달리던 미요시가 버티던 쿄에, 달리 믿을 구석도 별로 안 보이는 오다가 냅다 달려든 건 치밀하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솔직히 제가 보기엔 미카타가하라와 비슷한(물론 그 정도로까지 자살행위는 아니고 훨씬 약한) 치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 14.03.16 22:22

    좀 과한 표현일 수도 있어 조심스럽습니다만, 노부나가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고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파괴자가 곧 창조자인 건 아니라서요. 기존의 틀을 깨서 일본의 근세를 열기 시작한 건 사실이지만, 남들이 하지 않은 걸 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좋게 판단해줄 구석은 없습니다. 오히려 노부나가가 시도한 방향은 도요토미와 도쿠가와를 거치며 완벽하게 차단당한 걸 보면 섣부른 과대평가는 금물이라고 봅니다.
    아, 그리고 미노 정벌은 분명히 의미가 큽니다. '겨우겨우'라는 의미로 적었는데 '겨우' 하나만 있어서 왠지 폄하하는 느낌이 되었군요;;

  • 14.03.17 00:07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을 구조적 사건으로 보느냐, 우연적 사건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크게 갈릴거 같은데요. 노부나가가 진짜로 인생 50년이라 생각지는 않았을거고, 모리 모토나리나 시마즈 타다요시, 류조지 이에카네등 고령이 될때까지 나라를 다스린 이들이 많죠. 멀리 갈거 없이 미노의 전 국주 사이토 도산도 참살당했으나 나이는 60... 다케다가에 어쨌건 가쓰요리라는, 미욱하나마 스루패스는 해줄 정도의 당주가 있었던데 비해, 오다가는 노부타다라는 훌륭한 후계자가 한큐에 날아가버렸다는 점도 고려해야죠. 물론 노부타다까지 한큐에 날린것또한 노부나가 본인의 책임이니 할 말은 없으나, 그렇기에...

  • 14.03.17 00:09

    우연적 측면에서 혼노지의 변을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겁니다. 노부타다만 건재했어도 오다가가 그 꼴이 나지는 않았겠죠. 물론 노부나가같은 확고한 장악력을 보일수야 없었겠지만...

    그런 점에서 노부나가 체제가 과연 "노부나가 이외의 인물이 유지시킬 수 있는 체제였는가" 라는 부분에는 논의의 여지가 많다는 점 자체는 인정합니다만, 그것을 순전히 운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거죠. 오히려 "운" 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면 혼노지의 변으로 입은 "불운" 쪽이 훨씬 클텐데요.

  • 14.03.17 00:11

    다께다문제는 1. 다까다와 혼인관계였다 2. 전통의 적수 호조가와 우에스기가로 인해 맞물려 있었다는 부분을 고려했다고 봐야죠. 노부나가의 피똥전설이 시작되기 직전인 1570년에 호조 우지야스가 죽으면서, 호조와 다께다의 적대관계가 해소될 것이라는 점까지 노부나가가 헤아렸어야 한다고 보시지는 않겠죠? 우지야스가 사망당시 고령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우지야스가 살아서 신겐과 적대관계를 지속했다면, 1572년의 신겐의 상락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건 우지야스의 사망이라는 불운과 신겐의 급사라는 행운이 겹친 부분을 같이 봐야겠으나, 기내입경을 단순한 도박으로 칠 수는 없게 하는 부분입니다.

  • 14.03.17 00:13

    무모하다고 여겨지는 시도가 도박인지 직감인지는 사실 결과론으로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신중해야겠습니다만, 노부나가는 무모하다 싶은 도박이 연이어 성공했죠. 사실 이것을 님처럼 운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을 그의 직감, 직관이라고 여기는 제 입장에서 정면으로 반박하기는 힘든게 맞지요. 그러나, 그렇기에 "운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라는 반론이 성립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미요시 세력은 노부나가의 상락무렵에는 이미 내분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그동안의 악행으로 인해 평판이 떨어져있었던 것을 노부나가가 알았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죠. 애초에 "장군이 죽었" 는데, 그 책임을 아무도 묻지 않고 있었다는 자체가...

  • 14.03.17 00:14

    기내 상황의 막장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상황을 "귀찮은 일" 이 아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으로 판단했다는 자체를 저는 노부나가의 판단력의 탁월함이라고 간주하는 편입니다.

  • 14.03.17 00:22

    완벽하게 차단당했다고 보기는 힘든게, 히데요시가 계승한 이후 노부나가 색이 빠진 것은 히데요시 정권의 약체성 때문이죠. 그 시대가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라고 불리우는데 완전히 끊겼다고 하시면... 노부나가에 비해 신분이나 정치력이나 정치적 입지나 비교도 안되던 히데요시정권은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기존 세력들과 엄청나게 타협하지 않을 수 없죠. 그리고,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등장한 이에야스는 그 성향자체가 보수적이기에 당연히 흐름이 끊길 수 밖에 없는거구요. 노부나가의 시도 자체가 역사적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판단하기에는 "역사의 유전" 이란 부분이 상당히 걸리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 14.03.17 00:18

    노부나가의 최대 특징중 하나가 "타협성이 굉장히 적다" 라는 부분이었죠. 그 부분을 무모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일정부분 타당하나, 반대로 타협하지 않고 상대들을 굴복시킬 경우, 그 상황에서는 해당 정치세력의 입지나 운신의 여지를 크게 강화시키며, 1582년초의 노부나가는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정치란건 애초에 견제와 균형이고, 그 견제와 균형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가 전국시대였음은 앞에 말씀드린 대로인데, 노부나가는 그걸 다 때려부수고 그 자리에 올라갔다는게 무섭다는거죠.

    물론 말씀하신대로, 그것을 어떤 형태로 안정시킬 것인가? 하는 부분은 미지수였으나...

  • 14.03.17 00:19

    노부나가의 정권이 가능성없는 정권이었기에, 그 안정성이 무너진것이다, 라고 한다면 반대방향에서 그가 어떤 안정성을 이뤄갔을까 라는 부분이 혼노지의 변으로 날아갔다, 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지금의 이 답변의 서두에서 "혼노지의 변의 성격" 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노부나가라는 인물의 역사성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라고 말한 것이지요.

    미노공략 문제에 대해서는 오해가 풀렸습니다.

  • 14.03.17 02:29

    구조적 사건이냐 우연적 사건이냐의 초점은, 아케치 미쓰히데의 존재를 배제했을 경우 노부나가는 얼마나 살았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정말 노부나가의 방식대로 일본이 변화할 수 있었을까의 방향으로 찾아봐야 하는데, 문제는 그런 노부나가의 방식에 얼마나 많은 당대 사람들이 공감했는가입니다. 말하려다 말았던 부분인데, 노부나가의 방식은 분명 탁월한 부분이 있었으나 '범인'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어려웠을 겁니다. 병농분리, 낙시낙좌, 관소철폐, 남만보호, 능력주의 등을 보면 중상주의 절대왕정과 일견 비슷한 모습이 보이죠. 근데 유럽에서의 그 중상주의 절대왕정은 백년전쟁이나 장미전쟁 등으로 봉건제가 개발살난 뒤에야 가능.

  • 14.03.17 02:33

    우리의 논점은

    "노부나가의 도약은 운이냐 능력이냐"

    였죠. 노부나가란 인물이 이루려 했던 체제가 구조적으로 자리잡았을거라고는 저도 힘들다고 봅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란 인물이 의도했고 이루려했고 이뤘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능력에 의거하는 바가 더 크다, 라는 것이 제가 주장하는 바이고, 지금까지의 논의상으로는 제가 그런 부분을 나름대로 설명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대충 70까지 살고 적당히 노부타다한테 물려줬으면, 노부타다가 신항로정책을 택했겠죠 뭐...--

  • 14.03.17 02:34

    "초인의 뒤를 이은 범인" 이 혁신적인 방향성을 무난한 방향으로 후퇴시킨 사례는 역사를 뒤져보면 은근히 적잖게 있으니까요.

  • 14.03.17 02:35

    제아무리 천하인일지라도 등 뒤에서 칼침 맞으면 비명횡사하긴 마찬가지인데, 미쓰히데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노부나가의 등 뒤에 칼을 꽂으리라는 상상은 얼마든지 갑니다. 그 가능성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이 오다 가문 자체를 신성불가침한 제도권 위로 확고하게 올려놓는 것인데, 기나이를 제패하고 막부를 무너뜨린 시점에서 노부나가는 어떤 권위를 만드는 데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결국 '상식적인 선 안에서 노부나가를 보호해줄 이데올로기'가 전무한 상황이었고, 여기에서 혼노지의 변도 겪지 않고 오래오래 살다가 자연사하는 것은 좀 심각한 행운이었겠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가며 기나이를 통일한 노부나가였지만…….

  • 14.03.17 02:38

    혼노지의 변이 그토록 완전한 성공을 거둔 쪽이 훨씬 행운이었다고 보는데요...

  • 14.03.17 02:41

    혼노지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노부나가를 노릴거라고 생각하는 접근은 타당한게 맞는데, 과연 누가 구체적으로 그를 흔들고 무너뜨리는가? 라는 부분으로 가면 그건 모호해집니다. 실제로, 노부나가의 투쟁이 그토록 거칠어진 것은 노부나가가 단순히 대세력 대영주여서만이 아닌, 노부나가의 대두로 도전받는 기존 세력의 그에 대한 저항인 면이 큽니다. 그리고 1582년 시점에서, 그 노부나가에게 "구체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구세력" 은 대부분 소멸한 상태입니다만...

    이념적으로 타당한 접근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현할 실체적인 권력이 부재하다면 그것은 가능성으로만 잠재할 뿐입니다. 혼노지의 변은 사실상 그 막차가...

  • 14.03.17 02:40

    정말로 운 좋게도, 완전히 직격 of 직격을 날렸다는 점이 크기에, 오히려 혼노지의 변 쪽이 훨씬 더 커다란 행운을 업었다고 볼 일입니다. 노부나가 입장에서는 최악의 불운이었구요.

  • 14.03.17 02:41

    중세 봉건제 하에서 우두머리의 목숨을 보장하는 최고의 방법은 끊임없이 힘을 내비치는 것입니다. 중소호족들은 일단 목숨을 부지해야 하기 때문에 누가 강한 세력인지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대거 이반하기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강한 힘은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 있고, 암살자의 칼빵 한 방으로 언제든지 무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결국 우두머리의 목숨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은 '당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장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의 권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권위 하나를 위해서 기존 세력을 포섭한다든지, 거대 건축물을 세워 명망을 쌓고, 때로는 나에게 아무 이익도 없는 전쟁을 해야 하기도 하죠.

  • 14.03.17 02:44

    근데 그렇다고 치면 역사에 발전이나 변혁이 가능한건가요? 물론 저도 노부나가라는 하나의 영웅에 의존해 역사가 발전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는데, 노부나가의 시대에 그러한 중세의 룰이 변경될 가능성이 없었다고 보는 것은 보수주의적 관점이 좀 강한게 아닌가 싶군요. 노부나가는 그 시대의 틀 밖의 인물인 거 맞는데, 그러나 그 존재 자체는 그 시대에 확고한 권력을 형성하고 그 위에 존재한 것이었습니다만... 그가 갖고 있는 권력과 기존의 질서는 상호작용 합니다.

    기존의 질서가 새로운 힘에 대해 일방적으로 규정한다고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 14.03.17 02:45

    그리고 누누이 말하지만, 저는 노부나가의 변혁이 궁극적으로 성공했을거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1. 그가 시도한건 근본적인 변혁의 성격이 강하다
    2. 그리고 그것을 상당한 수준까지 밀고 간 것은 그의 능력이다. 운이 없다고야 못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의 능력으로 보아야 하며,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님이 그것을 운에 기반한 바가 더 크다고 한데 대한 반론이다

    라는 것입니다.

  • 14.03.17 02:50

    아니 근데 이게 왜 여기까지 온 거지? 말하다 보니 문득 깨달은 건데, 전 노부나가의 능력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어요? 다만 당시 시대상과 컨센서스에 완벽하게 반대되는 문제아였다는 점, 그런데도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진 않았다는 점, 해낸 일이라곤 기회를 잡아(물론 능력으로) 대군을 일으켜 군사적 목적을 달성(물론 능력으로)한 것뿐이라는 것, 이것저것들입니다. 정세 파악에 능하고 과감성이 있으며 행정도 잘하는데, 전략적 안목은 다소 미흡하고 정치 싸움에서는 막가는 모습을 보여 스스로를 고립시키지만, 중세 특유의 정치상 덕분에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소극적 호족들의 자발적 복종으로 나름 수월하게 갔다는 해석입니다.

  • 14.03.17 02:53

    굳이 논점을 대립적으로 갈라보자면 운 VS 능력 이라는 논점이었다는 정도랄까나요? 다만 지금 말씀처럼 그가 거시적인 안목은 부족했던게 아니냐?(이 정도로 지금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반론하진 않았지 싶습니다. 애초에 일본의 그 시대자체가 어떠한 거시적 안목이 존재했다고 보기 힘든 면도 있고 한지라...

    거기에 기본적으로는 "난세" 였죠. 난세였기에 가능했던 인물이라고 보는데, 물론 일본사회가 그들 사회의 근간을 기본적으로 바꿀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채(심지어 메이지유신조차도!) 내려왔다고 저는 보기는 합니다만, 노부나가가 추구한 변혁의 근본성을 어디까지 보느냐? 라는 점에서도...

  • 14.03.17 02:54

    제가 예~전에 쓴 원래 글에서 '운'을 언급한 건, "단순한 게임 시스템으로는 재현해내기 어려운 여러 가지 우연적 요소가 맞아떨어져 그토록 짧은 시간 이내에 천하인이 되었다. 그러니 포기하면 편해."라는 의미였습니다. 가령 실제 역사를 그대로 적용하면 게임에선 대호족 하나 쥐어패면 그 휘하의 중소호족들 절반 가량은 싸우지도 않고 신종을 요청해올 거고, 플레이어는 그걸 승인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중 야망 특성이 있는 몇몇은 미리 골라내서 본보기로 쳐죽여야 하지만요. 근데 게임에선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자발적인 배반을 하는 경우가 잘 없고, 시의적절하게 상락 미션이 뜨지도 않고, 기타 등등이거든요.

  • 14.03.17 02:55

    저는 역시 충분치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노부나가 - 히데요시 - 이에야스 트릴로지(--)라는 관점에서 그들이 어떻게 꼬여나갔는가, 혹은 풀어나갔는가를 보기도 해야한다고 보지만서도...

    굳이 하나만 이견을 또 제시해보자면, 노부나가의 소호족을 대하는 방식 문제입니다. 아라키 무라시게라던가 기타바타케 도모노리, 마쓰나가 히사히데, 서미노 삼인중의 예를 볼 때, 그는 자기를 거스르는 자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타입이었던건 맞습니다.

    무서운건 그걸 관철시켜내어버린 그의 정치군사적 능력이라는 것. 이것은 위에 얼핏 이야기하긴 했습니다만서도...

  • 14.03.17 02:56

    게임시스템 상의 이야기라면 그럴 수 잇겠네요. 사실 역대 신장의 야망시리즈를 봐도, 노부나가는 항상 미노도 못먹고 빌빌거리다가 망하곤 했죠. 그놈의 철포조달비용문제도 있고 해서... 그런 점에서, 이번 창조에서는 노부나가가 웬만해선 그를 막을 수 없다 가 되어버린게 썩 맘에 들기도 하고 그럽니다.

  • 14.03.17 02:58

    아무리 커졌다지만 결국 호족연합이었던 다른 지역의 중규모 패자(호조, 모리, 시마즈등등)들과 비교할 때, 노부나가 체제는 권력의 집중도가 많이 높았다고 봅니다. 그 핵심중 하나가 군단장체제였는데, 다만 그 군단장중 하나가 일본역사최악(최고?)의 통수를 칠 줄이야...

    그리고 그 통수의 성격이 워낙 논란거리다보니 이야기가 이렇게 커져버렸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네요.

  • 14.03.17 02:59

    아, 참고로 역사적 변혁의 핵심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좌우한다고 봅니다. 좀 삐딱하게 표현하면 정신사관일지도 모르는데(?), 노부나가 시대에 노부나가 입맛에 딱 떨어지는 어떤 학문적 종교적 사조가 등장한 적이 없어서요. 노부나가에게 영감을 준 지식인도 없고, 노부나가가 영감을 준 지식인도 없고, 그냥 그런 거죠. 노부나가는 정치인인 동시에 군인이었고, 따라서 그 자신의 사고관을 널리 퍼뜨릴 방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걸 해주는 게 먹물로 먹고 사는 글쟁이들이지만요. 결국 노부나가의 실험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난 건, 노부나가와 직결된 어떤 걸출한 지식인이 등장하지 않아서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 14.03.17 02:59

    말 나온김의 이야기지만, 여기서 오간 이야기들은 모처럼만에 일본전국시대에 대해 저로서는 후련하게 이야기했다 싶은 부분이네요. 거의 볼 사람 없는 마이너게시판에서 묻히는게 참 아깝긔... 어케 역사스페셜로 가면 안되려나요 ㄲㄲ~~

  • 14.03.17 03:01

    지금 말씀에는 상당부분 동의합니다. 이성계의 정도전이 노부나가에 없었던건 분명하고... 사실 이거야 일본의 정신문화가 갖는 성격이 주술적 세계관의 성격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에...

    노부나가를 합리적 근대인이라고까지 보는건 좀 오바가 아닌가 싶긴 한데, 그러나, 당대 일본인, 심지어 현대의 일본인들중에서도 상당수는 노부나가 만큼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기 땀시...

    그런 노부나가가 보기엔 세상이 참 깝깝했겠다 싶긴 합니다.

  • 14.03.17 03:04

    몽골이 오래 가지 못한 건, 거대제국을 지탱할 정신체계가 등장하지 못해서도 크게 한 몫 했지요. 헬레니즘만 하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와 직접적인 연관을 따질 수 있습니다. 그 아저씨가 플라톤식 폴리스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적인 얘기를 한 건 알렉산드로스의 확장과 연계되어 있죠. 이에야스는 주자학과 연결되어 있고. 말하자면 당시 일본은 노부나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겁니다. 심지어 포스트-노부나가조차 등장하지 못했고요. 노부나가의 괴짜스런 실험은 단절되었고, 그래서 일본은 대신 이에야스를 선택했죠. 편하잖아요? 뭐, 운이 따르는 노부나가에 반해 일본에겐 운이 못 따랐다 봐야 할지요?

  • 14.03.17 03:05

    그러고 보면 노부나가의 혁신이 성공하는 쪽이 일본에겐 다행이었겠지 싶긴 하군요. 다만 저로서는 그 부분으로 논점이 흘러갈 경우, 오히려 그 쪽에서는 구조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보긴 한데... 마, 밤도 깊었고 이야기도 많이 길어졌으니 다음 기회에 하는게 좋지 싶기도 합니다.

    하여튼 말씀 잘 들었습니다.

  • 14.03.17 03:10

    '일단 저지르고 보는 호쾌한 인물상'은 일본 매체에선 역사적으로 정말 흔히 드러납니다. 그쪽 세계에선 '경파'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모양인데요, 정말 현실세계에서 그딴 짓 하다간 이지메 크리 뜨죠. 그게 일본의 특성입니다. 현실세계에서 대세를 거스를 생각은 없지만, 창작물에서 주인공이 부조리를 처단하고(때로는 부조리를 저지르고) 남들 신경 안 쓰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데 그게 묘하게 카리스마를 남겨서 결국 동료들과 사회 전체가 주인공과 함께 공명하는 그 절정의 순간에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죠. 현실의 일본은 '이상한 민주주의'라고 서양인들에게 쑥덕쑥덕당합니다만;;

  • 14.03.17 03:15

    그렇죠. 고작 백 명~천 명 단위로 투닥거리던 전국시대와는 차원을 달리 하는 거대한 진동이 일었을 겁니다. 구체제와 신체제가 격돌하고, 전쟁 과정에서 봉건제는 개발살나고, 결국 살아남은 몇 개 거대가문이 간신히 대타협을 이루어냈을 겁니다. 조선까지 그 파장이 미쳤을 가능성도 상당하겠죠. 근데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단절적 세계 인식에 익숙한 유럽과, 에너지적 흐름에 기반하는 사고체계에 익숙한 동아시아인은 사고 구조가 완전히 달라서 서세동점의 시대를 맞이하기 전까지 그런 파국은 일어나기 어려워요. 차라리 복잡한 미봉책을 남발하며 최후의 리셋 순간까지 버티면 모를까요.

  • 14.03.17 03:17

    몽골이 오래 가지 못한 건, 거대제국을 지탱할 정신체계의 문제보다도... 유목민 특유의 계승방식과 14세기에 대대적으로 유라시아를 휩쓴 흑사병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여겨집니다.

  • 14.03.17 03:23

    너무 거시적으로만 보시는거 같은데... 구체적인 전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거시적 원칙이 전일적으로 관철되는건 아닙니다. 운을 이야기하셨는데, 오히려 그러한 탈구조적, 비구조적 부분에 대해서 오히려 낮게 평가하시는거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게 볼 경우 앞서 제가 지나치게 보수주의적인거 아니냐고 지적했던, "결정론적 역사관" 에 경도될 우려가 있지 않은가 싶은데 말입니다.

    여기서 역사철학에 대해 이야기할 것은 아니긴 합니다만.

  • 14.03.17 03:24

    유럽인 동아시아인의 사고에 대한 언급에서는 지나치게 일반화하게 될 우려도 보이고 말이죠... 원칙이 지배하되 예외가 바꿔가는게 역사인데 말입니다.

  • 14.03.17 07:01

    근데 정치적인 대안의 문제는 아직 일본 제패가 대충이라도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본인이 그렇게 갈 줄은 몰랐을테니까요. 히데요시도 관백(칸파쿠)에 취임한건 큐슈만 남겨놓은 뒤고 이에야스도 정이대장군(쇼군)에 취임한 건 반대파 감봉이나 전봉 뒤의 일이니까요. 그리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호쾌한 인물상은 어느 나라든 있었고요. 일본이 이상한 민주주의인 것은 그것보단 민주주의임에도 의원직이 대놓고 대물림되며 국가에서 뭔 짓을 하든 국민들이 큰 반향이 없어서......

  • 14.03.17 07:08

    그리고 그 서세동점의 시기는 뭘말하는겁니까. 그 서세동점의 시기는 언제든 올 수 있어요. 중국이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를 거치고 한나라가 들어서고 결국은 한족이라고 칭할 정도가 되었듯이 일본도 전국시대가 끝나고 승자가 새로운 체제를 만든다고 망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물론 진나라는 망했지만 황제란 칭호는 그 뒤까지 계속 쓰이지 않았습니까. 밑에 똘마니를 다루는 방식이 변하긴 하지만. 그리고 단절된 세계인식이라고 하셨는데 일본의 전국시대는 당시 입장에서도 내전에 가깝습니다. 유럽쪽으로 비유를 들자면 오스만의 대공위시대? 혹은 고대 로마의 내전.

  • 14.03.16 13:19

    오오... 윗 댓글 보셔도 아시겠지만, 저 전국시대 존내 좋아합니다. 전국시대 이야기도 같이 하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 작성자 14.03.16 15:35

    아이구, 이렇게나 좋은 글들은 많이 써주시다니..., 전국시대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센고쿠에 대해선 전혀 없길래 카페에서 별로 관심이 없으신줄 알았습니다.
    알면 알수록 많은 인간군상들의 재미난 시대더군요.

  • 14.03.19 01:33

    오다 노부나가의 업적을 단순히 운빨로 치부하기에는;;; 물론 이마가와를 무너뜨린 거랑 다케다가 죽은 것은 상당한 운빨도 작용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의 준비를 할 실력은 있었고 운이 좋아 최상의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지..

  • 14.03.19 01:36

    미노 공략은 지리적으로 바로 옆동네인데다 상략을 위한 관문이고 석고도 높은 곳일 뿐더러 이나바 산성의 명성도 있고 명분상으로는 장인의 복수전이니 반드시 꺾어야 할 적인데, 미노도 옛부터 만만한 곳이 아닌데다 다케나가 한베에도 버티고 있으니 쉽지는 않았겠죠.

  • 14.05.19 20:13

    흠... 센고쿠 재미집니까... 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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