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밟으면서
겨울이 오는 길목이다. 소설을 이틀 앞둔 십일월 셋째 토요일이었다. 모처럼 산행다운 산행을 하려고 도시락을 챙겨 나섰다. 집 앞에서 105번을 타고 시청 부근에서 불모산동으로 가는 102번으로 갈아탔다. 남산동터미널을 지나 종점인 불모산동에 닿았다. 저수지를 돌아 무위사 가는 길로 들었다. 숲길을 걸어 불모산터널 입구에서 박스교량 지하 굴다리를 지나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단풍으로 물든 낙엽활엽수들은 가을비에 거의 떨어져 가지만 앙상했다. 낮은 산기슭에만 몇 잎 달려 있었다. 불모산 식생은 크게 세 부류다. 성주사 절간 주변 낮은 산기슭은 소나무가 많다. 아름드리 소나무도 있고 나이테가 적은 소나무도 있다. 그 다음 굴참나무나 떡갈나무 같은 참나무 계열 차지다. 가을이면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그걸 먹이로 하는 다람쥐 개체 수도 많은 편이다.
불모산에서 소나무와 참나무 다음으로 많은 나무가 소사나무다. 소사나무는 분재를 가꾸는 사람들의 작품 소재가 되기도 한다. 야생에서 절로 자란 소사나무는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이 자라는 것도 있다. 불모산동 저수지 방면에서 출발한 등산로가 불모산으로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다. 산 들머리를 지나면 소나무는 듬성듬성하고 여러 종류 낙엽활엽수들이 섞여 자라는 혼효림 지역이다.
늦가을 산은 등산로에 마른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기 마련이다. 그 낙엽을 밟고 지나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우리 속담에 ‘솔잎이 가랑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고 하지 않은가. 올가을은 여름에 적게 내렸던 비가 뒤늦게 자주 내렸다. 등산로에 쌓인 낙엽은 수분을 머금어 발자국을 디딜 때마다 나는 특유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낮은 음이었다. 폭신한 카펫 같았다.
불모산 등산로는 희미한데 낙엽마저 쌓였으니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언덕인지 구분이 쉽지 않았다. 가을 산행에서 가끔 낙상 사고가 발생하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낙엽이 쌓인 곳을 디뎠더니 허방이라 엉덩방아를 찧은 경우다. 서둘지 않고 조심조심 산을 올랐다. 산허리쯤에서 뒤돌아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내가 떠나왔던 창원 시가지가 드러났다. 창원터널로 드나드는 차량도 보였다.
불모산은 높이 올라갈수록 소사나무가 많다. 낙엽이 일찍 떨어져 둥치와 가지는 앙상한 뼈대로 드러났다. 송신탑이 있는 정상을 얼마 앞두고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산 아래 저 멀리 성주사는 새둥지 같았다. 안민고개 너머는 진해 앞바다가 드러나고 장복산이 끝난 지점 마산 봉암 시가지도 일부 보였다. 창원은 대로를 기준으로 공단지역과 주거 업무지역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정상부 송신탑으로는 가지 않았다. 그곳으로 돌아가면 장유 신도시와 김해 들판이 드러났다. 낙동강 건너는 부산이었다. 신항만에 여러 개 줄지은 높다란 크레인도 우뚝할 테다. 바다 바깥은 거가대교 침매 구간을 건너뛰어 섬을 이은 연륙교도 보일 것이다. 송신탑 언저리를 돌아가면 시루봉이나 안민고개로 나아가야야 한다. 나한테는 산행 거리가 멀어 무리지 싶어 간축 코스를 택했다.
시내를 부감했던 바위 쉼터에서 성주사 방향으로 내려섰다. 아까 올라왔던 등산로보다는 양지쪽이라 젖은 가랑잎은 거의 말라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스라거리는 소리가 그림자처럼 따왔다. 등산로에는 졸참나무 떡갈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등산화 발목까지 빠졌다. 바깥주차장과 나뉘지는 갈림길 쉼터에서 도시락을 비웠다. 도시락을 비우고 가랑잎을 계속 밟고 성주사로 내려갔다
절간이 가까워지자 계곡에는 맑은 물이 제법 흘렀다. 채전을 지나 절간 마당으로 들어섰다. 승복에 털모자를 쓴 두 비구가 성큼성큼 걸어 차량에 올라 나들이를 떠났다. 나는 법당 마당귀에서 두 손을 모우고 절간을 빠져왔다. 종각 아래 샘물을 한 바가지 떠 마시고 절간을 벗어났다. 절간으로 드나드는 포장도로에도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여 무엇을 펼쳐 말리는 듯했다. 바스락바스락. 201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