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루간스키, Nikolai Lugansky (26 April, 1972 - )

러시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 에밀 길레스(Emil Gilels), 미하일 플레트네프(Mikhail Pletnev), 보리스 베레조프스키(Boris Berezovsky)로 이어지는 러시아 악파를 잇는 피아니스트이다..
니콜라이 루간스키는 1972년 4월 26일, 모스크바의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7살 때 루간스키는 모스크바 중앙 음악학교에 진학하여 알렉산더 골덴바이저(Alexander Goldenweiser)를 사사한 타티아나 케스트너(Tatiana Kestner)로부터 배웠다.
케스트너는 니콜라이가 데뷔 리사이틀을 갖기 직전 사망했는데, 이후 그는 케스트너의 절친한 친구였던 타티아나 니콜라예바(Tatiana Nikolayeva)의 문하가 되어 그녀로부터 9년 동안 사사했다.
니콜라예바는 바흐 등의 해석으로 유명한 러시아 최고의 여성 피아니스트였으며, 쇼스타코비치는 그녀를 위해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 시절 니콜라에바와 루간스키는 함께 음악을 듣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곤 하였다.
루간스키에게 스승 니콜라에바의 개성과 정신성은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88년, 루간스키는 전 연방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고,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제8회 국제 바흐 콩쿠르에서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2년후에 그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라흐마니노프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였으나, 1993년 여름 그는 사고로 발과 등을 다쳐서 몇 달 동안 그는 피아노를 칠 수 없었다.
그 해 11월 스승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연주 중에 타계했다.
그녀는 죽기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니콜라이 루간스키는 위대한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전통을 잇는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루간스키는 1994년 여름에 열리는 제10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참가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그는 이 큰 콩쿠르를 준비하는 것이 자신을 다시 좋은 컨디션으로 만들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니콜라예바의 조수이자 탁월한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도렌스키(Sergei Dorensky)를 사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1994년에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 러시아의 일간지는 루간스키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파이널 라운드 연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이는 마치 일사병에 쓰러지는 듯한 음악적인 충격이었다.
아무도 이 금욕적이고도 문학적인 듯한 겉모습을 가진 겸손하고 점잖은 젊은이의 내면에 영감 넘치고 단호한 통제력을 갖춘 화산과도 같은 폭발력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상젤리제 극장, 살 플레옐, 샤트레 극장, 콘서트헤보우, 빈 무지크페라인, 영국 바비칸센터, 퀸 엘리자베스홀, 취리히의 톤할레 등 유럽의 유명 공연장과 베르비에,라 로크 당테롱 국제 피아노 페스티벌, BBC 프롬스 등 유명 음악 페스티벌에서 많은 공연을 하고 있다.
함께 협연한 오케스트라로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로열 콘서트헤보우, 로테르담 필, 버밍엄 시티 심포니, 필하모니아, 런던 필, BBC 심포니, 밀라노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심포니, 뮌헨 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도쿄 필,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등이 있다.
또한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 크리스토프 에센바흐(Christoph Eschenbach), 발레리 게르기에프(Valery Gergiev), 마렉 야노프스키(Marek Janowski), 파보 예르비(Paavo Jarvi), 찰스 매커라스(Charles Mackerras),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 켄트 나가노(Kent Nagano), 미하일 플레트네프, 유카 페카 사라스테(Jukka Pekka Saraste), 유리 테미르카노프(Yuri Temirkanov) 등 현대 지휘계를 이끌어가는 거장들이 그와 함께 협연했다.
최근 그는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함께 파리, 빈 무지크페라인, 아테네, 프랑크푸르트에서 성공적인 투어 연주를 가졌다.
또한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로열 콘세트헤보우와 함께, 그리고 게르기에프가 지휘하는 로테르담 필과 함께 각각 일본 투어를 갖고 절찬을 받았다.
그는 이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수년동안 그는 위대한 지휘자들과 함께 해왔으며, 유럽, 일본, 북미, 남미 등에서 콘서트, 리사이틀, 실내악 등은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찬사를 얻고 있다.
그리고 라 로끄 당떼롱 피아노 페스티벌(La Roque d’Antheron Piano Festival)에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니콜라이는 샹제리제 씨어터, 샬 가보 루베르 오디토리엄에서 마련했던 공연과 라디오 프랑스 페스티벌 같은 프랑스내 여러 공연에도 참석하였는데, 르 몽드지는 그를 일컬어 "뛰어난 민첩성과 탄력, 섬세한 터치, 정확한 손놀림으로 엄청난 반향(反響)을 창조해 내는 음악가"라고 찬탄하였다.
그는 워너 클래식에서 녹음 활동을 하고 있는데, 루간스키의 많은 레코딩들은 탁월한 예술성에 대한 명백한 증거물이다.
여기서 녹음한 음반들로 2000년 그는 쇼팽 <연습곡> 전곡 녹음으로 올해의 디아파종상을 비롯하여 2002년까지 디아파종상을 세 차례 연거푸 수상했고, 쇼크(CHOC) 상, 독일 음반 비평가상(2003), 에코 클래식상(2005) 등 음반계의 주요상을 수상하며 명실공히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카리 오라모(Sakari Oramo)가 지휘하는 버밍엄 심포니와 함께 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과 <3번> 녹음이 출시되었다.
특히 2000년 그의 쇼팽 <연습곡> 전곡 음반은 올해의 디아파송 황금상을 수상한 역작이며, 2001년에는 라흐마니노프 <전주곡>으로 2002년에는 쇼팽의 <전주곡> 녹음으로 3년 연속으로 황금디아파종상을 수상한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발돋움 하게 하는 계기가 된 음반이다.
쇼팽의 <연습곡>은 수 많은 거장들이 이 곡을 연주, 녹음했지만 전곡 음반은 굉장히 드문편이다.
일례로 쇼팽 전곡을 음반으로 남긴 거장 루빈스타인 조차 녹음하기를 꺼려서 유일하게 <연습곡> 음반을 남기지 못할 정도 였고,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 등의 거의 명문화된 명반이 소량 존재하기 때문에 현대의 피아니스트들도 녹음을 꺼리는 작품이다.
그러나 루간스키는 이 음반에서 전체적으로 부담감이 없고 세세하며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음 하나하나에 실려 있게 했고, 특히 손과 손가락이 상당히 유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피나는 수련이 있었겠지만 루간스키의 연주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힘과 정교함이 어우러져 있다
앨범 전체에서 부드러움과 씩씩함, 절묘한 긴장감등이 전반에 흐르며 무엇이 일어날 듯 말 듯 한 설레임 같은 것을 절묘히 묘사했으며, 긴장감과 집중력의 힘도 투철하다
리듬, 화성, 선율의 모든 측면에서도 쇼팽 음악의 본질을 루간스키는 간파하고 있는것 같다.
더불어 약간은 독특한 그의 연주 스타일은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표출해 내고 있기도 하다.
한계를 모르는 기술을 갖춘 그는 가장 어려운 패시지도 너무나 부드럽게 흐르게 한다.
그는 현재 세르게이 도렌스키 교수를 도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후진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