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밥
겨울철에 날씨가 차가우면 시장골목 안에 자리 잡은 순대집이 시선을 끌게 한다. 가게 안의 큼지막한 순대 솥에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희뿌연 김이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낙네가 후한 인심으로 순대를 듬성듬성 썰어내어 준다. 뜨끈뜨끈한 순대 한 접시가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내게는 순대가 하나의 별미 음식으로 각인되어 있다. 가끔은 순대를 포장하여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먹기도 한다. 오래전에 속초에서 맛보았던 오징어순대와 아바이순대, 그리고 천안시 병천면 아우네 장터의 병천 순대, 예천군 용궁에서 먹었던 한방순대의 맛을 잊을 수 없는 별미로 기억하고 있다.
오늘은 대구문화재지킴이회의 사회공헌활동 멤버 서른여섯 명이 심화학습 마지막 날로 예천지방의 석송령, 초간정, 용문사에서 활동하기로 되어 있는데 점심을 용궁면소재지 어느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기로 하였다기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난여름에 이곳 용궁에서 먹었던 순대 국밥 맛이 꽤나 좋았던 것 같다. 그랬는데 오늘은 지난번에 먹었던 그 식당이 아니라 그런지 몰라도 기대하였던 만큼의 순대 국밥 맛이 아닌듯하여 조금은 실망스러운 기분이었다. 소문난 만큼 식당 주인의 인심도 팍팍해 보이고 종업원들이 친절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시골의 좁은 면소재지에 즐비한 순대 전문집에서 끓여내는 솜씨와 맛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미리부터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순대는 먹은 것이니 불만은 없는 점심이라 하겠다.
순대는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이다. 사전적 정의로는 돼지 창자에 숙주, 우거지, 찰밥 등과 돼지 선지를 섞어서 된장으로 간한 것을 채워 넣어 삶은 음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순대는 돼지 작은창자를 이용하지만 대창으로도 순대를 만들 수 있다. 근래에는 식용비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것을 먹지 않고 벗겨내어 버린다. 내장에 들어간 선지로 인하여 고약한 냄새가 강해서 조리과정에서 처리를 잘하지 않으면 입에 갖다 대기 힘들 정도도 있다. 그래서 생강을 함께 넣게 되는데 이것도 적당하게 넣어야한다. 그러니 가정에서 순대를 만들어 먹기엔 참으로 어렵고 번거로운 음식이라 하겠다.
순대는 6세기경 중국에서 양고기와 양장으로 만들어 먹었다고 하니 대륙에서 전래되어 온 음식인 듯하다. 19세기 가정서적인 규합총서에 쇠 창자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쪄먹는 '쇠 창자 찜'이 기록되어있고 조선요리책 시의전서에는 ‘도야지 순대'의 조리법이 보인다. 국내 요리책에서 최초로 순대가 언급된 책은 음식디미방으로 개고기와 개의 창자로 만든다고 기술되어있어 순대가 조선시대에 상당히 토착화 되어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음식디미방에서 순대는 대단히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언급하여 잔치 날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 하였다.
요즈음은 순대를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주로 시장이나 공장에서 재료를 크게 간소화한 찹쌀순대를 생각하게 된다. 순대를 밀봉 상태로 구입하여 집에서 찌거나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된 여러 종류의 순대가 출시되고 있다. 순대의 종류로는 옛날부터 집에서 쪄먹는 방식의 찹쌀순대나 고기순대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돼지창자에 당면, 찹쌀, 돼지피를 넣은 찹쌀순대를 비롯하여 평양의 향토음식으로 소창이나 막창에 돼지고기와 찹쌀, 선지 및 각종 채소를 넣어 만든 고기순대가 있는데 이것이 순대의 기본이라 하겠다.
함경도 지방의 향토음식인 아바이순대는 대창으로 만들고 어슷썰기 때문에 상당히 큼지막한 것이 특징이다. 6.25전쟁 때 피난 온 함경도 사람들이 화천, 속초, 고성 등지에 정착하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바이라는 말은 아버지나 아저씨를 뜻하는 존칭 격 사투리로 명확한 기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순대가 큼지막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다.
속초지방의 향토음식으로 정착한 오징어순대와 용인시 백암의 백암순대, 천안시의 병천순대가 유명하다. 독립기념관에서 그리 멀지않은 아우네 장터에서 맛볼 수 있는 병천 순대는 고기가 거의 안 들어가거나 아예 빼버리고 야채와 찹쌀로만 만드는 순대이다. 병천순대 국밥의 국물 맛 또한 참으로 좋았던 것 같다. 아우네 장날이 열리는 날, 수많은 순대 집은 문전성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로 고기순대를 기본으로 하여, 김치나 카레가 들어간 김치순대, 카레순대 등이 개발되어 있다. 순대를 찍어먹는 장류로는 막장이나 쌈장, 초장, 새우젓, 소금에 찍어 먹는 등 장류도 각 지방에 따라 달리 사용한다.
순대에는 주로 당면, 찹쌀, 선지, 고기와 야채가 들어간다. 이중 선지에 함유 된 철분을 섭취하게 되므로 심장쇠약, 두통, 어지럼증을 예방할 수 있고 빈혈증을 치료할 수 있다. 야채순대 같은 경우는 섬유질이 많아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순대에는 단백질, 당질, 지방, 비타민 B1과 칼슘, 인, 철분이 풍부하여 간 기능 저하, 간염, 야맹증, 시력감퇴 예방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순대를 주문하면 서비스로 나오는 간에는 비타민A가 풍부하여 시력에 좋으며 간은 우유와 함께 먹으면 더욱 좋다고 한다.
이처럼 순대는 육류 곡류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므로 칼슘 단백질 비타민 등이 풍부하여 빈혈, 어지럼증, 두통, 간염, 시력감퇴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하니 저렴한 가격으로 오늘 먹은 순대국밥 한 그릇은 오랜만에 먹어본 별미이자 완전식품이며 상당한 보양식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런대로 만족감을 느껴본다 . 그리고 두 달 동안 경상감영에서 우리문화재 공부와 사회공헌 활동을 함께하며 정들던 여러 선생님들과 순대안주에 소주 한 잔을 마시는 기분도 감회가 새로웠다. (2015. 2. 28.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