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날 밤부터 내린 비가 다음 날에도 종일 비가 내렸다. 오늘 구월의 마지막 수요일 아침,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창밖을 내다본다. 낮은 구름이 북한산 향노봉 능선에 얹혀져 있고, 아직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일기 예보를 검색해보니 오늘 비가 멈추는 것으로 되어 있어 마음이 놓였다.
우면산은 높이 293m로 서초구 우면동, 서초동, 양재동 등지의 도심에서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산이 소가 졸고 있는 모양이라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는 삼성산처럼 관악산의 일부였지만, 일제 시대인 1930년 남태령고개를 확장하면서 관악산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한다.
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 예하 부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산의 정상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3호선 남부터미날 5번 출구에서 오전 10시 반경 9인이 거의 동시에 만났다. 등산로에 들어오자 마자 나와 주은, 두 사람은 신발을 벗어 배낭에 매달고 맨발이 되었다. 나는 맨발 역사가 30 여년, 주은은 3개월.. 그렇지만 그는 거의 매일 한시간 반 정도 3개월을 해서, 이제는 맨발 걷기가 수월해졌다고 한다.
우리들은 소망탑이 있는 우면산 정상 방향으로 가는 코스 대신, 아래 쪽 둘레길을 택했다. 길은 계속 내린 비로 질퍽하고 미끄러운 곳도 있었지만 어렵지 않아, 엉덩방아를 찧은 사람은 없었다. 한 시간 정도 걷다가 한 정자(亭子)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음식물을 꺼내어 이른 점심을 들었다. 영이가 마나님이 손수 만드신 10조각의 샌드위치를 가져와 우리들에게 한 개씩 나누어 준다. 나는 당일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한 성민이 목까지 포함하여 두 조각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 우리들의 석회장님은 항상 그러했듯이 포도주를 날진 물통에 가득 담아 왔는데, 그 안주로 본인이 직접 만든 참치전을 선보였다. 백종원의 유투브 레시피 대로 참치를 재료로 하여 전을 부쳤다는 것이다. 하여간 먹을 것이 많아 배가 불렀다.
모처럼 긴 산행을 의식하여 점심을 준비해 오라고 총무로서 고지를 했는데, 당일 코스 리더인 마당바위의 말씀에 의하면 오후 2시 반 경이면 산행은 끝난다는 것이다. 하산하여 뒤풀이 회식을 벌리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나는 우리가 생략한 소망탑 코스로 올라 갈 것을 제안했으나, 아무도 응하지 않는다. 소망탑(270.7m)이 있는 장소는 사실상 우면산의 정상으로 간주되는 곳으로 남산(265m)보다 높다. 이곳에 있는 전망대는 서울시 우수경관 조망 명소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가시거리가 좋은 날엔 서울 전역이 보일 정도다. 또한 이곳에서 남산 방향으로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있다. 우면산의 상징물인 소망탑은 2011년 우면산 산사태를 야기한 폭우에도 살아 남았었는데 작년 6월에 100 미리가 넘는 많은 비로 무너져 내린 바 있다. 그 후 바로 서초구청이 40 여일에 걸쳐 군부대의 협조까지 얻어 새로 쌓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과거의 탑이 등산객들이 각자의 소망을 담아 하나, 둘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든, 못 생겼어도 명실상부한 소망탑이라면, 현재의 탑은 전문 기술자들이 모양 좋게 또 견고하게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만든 조형물이다.
각설하고, 시간이 남아 고민 중인 우리들에게 좋은 일거리가 생긴다. 점심 후 20~30분 진행하여 가니 좀 가파른 길을 올라 중턱에 쉼터에 도달하니, 먼저 온 마당바위가 밤을 수북하게 주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주변에 떨어진 밤이 널려 있다. 나도 배낭을 벗고, 산행 시작부터 유지한 맨발 그대로 밤 까시를 조심조심 피하면서 밤을 주으니 금방 두 주먹에 가득 찬다.
최대한 여유 있게 걸어 하산하니 그 때가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다. 갈려고 했던 음식점은 평일 오후 브레이크 타임(오후 3시부터 4시 반까지)이 있어 갈 수 없었다. 대신, 선바위 역 3번 출구에서 아주 가까운 “메밀장터” 로 갔다. 이 곳은 오후 브레이크 타임이 없는 식당으로, 내가 다른 산행모임으로 몇 차례 와 본 곳이다. 이 집은 가성비가 좋은 집으로 소문이 나, 항상 많은 손님들이 찾는 식당이다. 이것 저것 먹었지만 뭘 먹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제일 마지막으로 먹은 들기름 막국수(1/2)가 너무 고소하고 맛이 있어 다른 맛들을 다 덮어버린 탓일까?
식당에서 나오니 오후 4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맞은편에 emart24 편의점이 있다. 여기서 1600CC 맥주 2병을 사서 편의점 앞에 있는 테이불에 앉아 한 시간 정도 8인이 담소(談笑)를 나누었다. 기대했던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없는 축축한 날씨였지만, 산우들과 같이 있어 즐거웠던 하루였다.
참가자: 김성진/김영/김윤겸/김종국/김준호/김호석/박승훈/석해호/송주은/강준수(뒤풀이만)
당일 수지(천원)
회비: 180(+)
음식비: 208(-)
(-)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