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곡과 쭉정이
마태복음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찬송가 321장(날 대속하신 예수께)
오늘 본문 말씀은 세례 요한이 선포한 말입니다. 세례 요한 예수님 앞서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그리스도가 곧 자기 뒤에 오실 것을 예고하면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그에게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찾아오자 그들의 죄를 질타하면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심판의 도끼에 의하여 곧 뿌리부터 잘려져서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르기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곡은 구원받는 주의 백성을 상징하고, 쭉정이는 모양은 있으나 속은 비어 있는 거짓 신자를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왜 알곡과 쭉정이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시간의 시험을 통과하는가 여부에 달라집니다. 알곡은 처음에는 이삭이요 나중에는 이삭에 뜨물이 들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 속이 충실한 익은 곡식이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제자다움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쭉정이는 처음에 이삭의 모양은 있으나 뜨물이 들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그 속에 차지 않고 빈 껍질로만 유지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성품이 없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주님을 사랑하며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가 있고 주님의 십자가의 자기 부인과 희생과 헌신의 모습이 점점 나타나는 사람은 알곡 신자요 종교적 모양은 있으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없고 감사함도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 그저 종교 생활에만 급급하는 사람은 쭉정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통과하면서 알곡과 쭉정이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병충해의 시험을 통과하는가 여부에 달라집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짓는 벼농사를 보면 매년 병충해에 시달리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침에 논을 한바퀴 돌아와서 밥 드시기 전에 줄담배를 태우실 때에 어머니와 얘기 나누는 것을 들으면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병충해 때문에 논한쪽이 빨갛게 타들어가는 것이 제 눈에도 보였거든요. 잎마름병으로 벼가 말라버리면 결국 벼 이삭이 피었다가도 쭉정이가 되고 벼포기 전체가 말라버리곤 했습니다. 영적으로도 신앙 생활의 병충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영적인 독소들로서 이단과 사이비의 가르침의 시험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이겨내려면 건강한 복음의 내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충만함의 내성이 있어야 분별력이 있어 이러한 독이 든 영적 병충해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알곡이 되고 쭉정이를 피하려면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기도로써 늘 성령 충만함으로 영적 내력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의 영적 유혹들을 다 물리치고 끝까지 속이 든든한 알곡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피와 같은 유사 작물에 의하여 기운이 막히는 여부에 달라집니다. 어렸을 때에 종종 휴일에 식구들이 논에 나가 피사리라는 것을 했습니다. 벼가 심겨진 논에 벼와 유사하지만 다른 종류의 것이 피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데, 좀 더 이파리가 반짝거립니다. 피는 벼보다 번식력이 좋아서 영양분을 벼보다 엄청 흡수해서 결국은 피 때문에 벼가 번식하지 못하고 벼가 여물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어 버립니다. 성경에는 피를 가라지로 표현했습니다. 가라지는 마치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처럼 결국 곡식의 기운을 막아서 결국 결실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이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등에 의하여 신앙이 결국 알곡의 열매를 맺히지 못하고 쭉정이처럼 속이 빈 채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세상 염려와 욕심과 육신의 정욕의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늘 기도로써 염려와 근심을 맡기고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감사하며 자족해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좋은 알곡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기쁨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 인내로써 그 말씀을 간직하고 지켜 행할 때 맺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고, 마귀의 시험과 유혹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늘 기도하여 영적으로 깨어 있으며, 늘 십자가를 붙들고 세상의 유혹에 맞서 싸운다면, 결국 알곡으로서 천국의 창고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한 해의 농사를 짓는 농사꾼은 가을에 되어 추수를 해봐야 비로소 마음을 놓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 아버님과 어머님이 나누는 대화가 기억나는 게 추수해보았는데 예상보다 나락 가마니가 적을 때도 있고 추구해보았는데 나락 가마니가 몇 가마니 더 나오는 때도 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보기와는 다른 결과를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농사는 추수해보아야 아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버님과 어머님의 농사 얘기를 볼 때에 농사꾼의 삶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지상에서의 영적인 농사도 결국 추숫날에 가봐야 농사를 잘 지었는가, 잘 못 지었는가 최종 판결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날까지 풍년의 추수를 위하여 우리도 영적인 긴장을 늦추지 맙시다. 빌립보서 2:12 말씀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하였습니다. 주님 뵙게 될 그 날에 우리의 지상의 영적 농사의 최종 결산을 보게 될 것인데, 그 날까지 깨어 있어 알곡 열매 많이 거두어 주님의 천국 창고에 우리 자신과 우리의 영적 수고의 알곡 열매가 많이 쌓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