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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1: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
창세기(12장부터 50장까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행적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 아브라함(영. Abraham 히. 아브라함. 한 무리의 아버지)
노아의 세 아들 중 한 사람. 셈의 후손으로 데라의 아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찾았으며, 믿음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뜻에 순종하기를 생애 동안 힘썼던 사람이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벗으로 인정되었다.
* 대하 20: 7 -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생애와 역사는 창 11: 26 – 25: 10에 나타나 있으며, 행 7: 2-8에 요약 기록되고 있다. 그의 후손들은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에 의하여 퍼져나갔다. (창 25: 11-19).
본명은 ‘아브람(Abram)’으로(창 11: 26 – 17: 5) 어원은 불확실하다. 이러한 이름은 고대 근동 지방의 설형 문자로 된 서류들에서 발견되고 있는 ´아비람´(Abiram), ´아바라마´(Ab[a]ram [a])와 같은 계열단어의 변형인 듯하다. 그 뜻은 "그 아버지는 존귀하시다"라는 의미이다.
이 이름은 창 17:5에서 계약의 갱신과 함께 하나님에 의해서 아브라함(Abraham. 열국의 아버지)으로 개명되었다. 할레비는 그 어원을 성경 내에서 찾는데, 아브라함을 ´아비그’와 ‘함´으로 나누어서 ´한 무리의 우두머리"(예. 창 49: 24. 사 41: 24)로 풀이한다. 그러나 그것도 믿을 만하지 않다. 따라서 언어학적 어원론은 아직까지 확실한 것이 없다.
아브라함은 갈대아의 우르에서 아버지 데라와 형제 나흘, 하란과 함께 살았으며, 사래와 결혼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 아브라함 내외와 손자 롯을 데리고 하란으로 이주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의 부름에 따라 75세의 아브라함은 아내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옮겼다(12:1-9).
그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애굽에 내려가 바로에게 사래를 빼앗길 뻔했다(10-20절). 아브라함이 베델로 돌아왔을 때에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며, 그 소유가 많아 조카 롯과 동거하기에는 그 지역이 좁았다. 아브라함의 가축 목자와 롯의 가축 목자가 다투어 서로 분리하여 롯은 비옥한 요단의 들을 택했으며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다(13: 1-14).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바라볼 수 있는 동서남북의 모든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에 아브라함이 장막을 옮겨 헤브른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살았다.
창 14장에 나타난 고대 세계의 국제적 갈등 관계는 우리에게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지만, 성경은 우리의 눈길을 아브라함의 신앙 성장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신을 좀 더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왕들과는 대조를 이루며, 세상의 부에 대해서는 초연하였다. (14: 13-16. 14: 21-2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상속자를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상황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게 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15: 4-6. 참조. 롬 4: 18-21).
하나님께서는 언약 의식으로 아들과 땅에 대한 자신의 약속을 확실하게 하셨다(15: 7-21).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사래의 여종 하갈을 취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자신의 언약을 상기시키셨다(17:1 이하). 그리고 세 가지 방법으로 그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확신시키셨다. 먼저 새로운 이름을 줌으로써(17: 3-5, 15-16), 지금까지의 언약을 재차 설명하심으로 배려하셨다(17:6-8). 마지막으로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명하셨다(17: 9-14).
2] 이삭(영. Isaac 히. ‘이츠하크’, ‘이스하크’. "그가 웃었다")
하나님께서 노년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하신 아들이다. 이삭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과 순종에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잉태하지 못함으로써 혈통이 끓어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아브람)은 롯과의 관계를 통해(창 13장), 나중에는 다메섹의 엘리에셀을 권속의 일원(나아가 상속자)으로 삼고(15: 2-3), 하갈을 임신케 함으로써(16장)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신의 몸에서 후사가 태어날 것을 약속하셨다. (15: 4. 17: 15-19). 여호와께서는 마므레에 있던 아브라함과 사라를 방문하셔서 일 년 이내에 아들이 태어날 것을 확약하셨다. (18: 9-15). 이러한 약속은 아브라함이 백세 때에 이삭이 태어남으로써 실현되었다. (21: 5).
이삭이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은 히브리인 가운데서 첫 번째 사례였다. (4절. 참조. 17: 11-12. 행 7: 8). 이삭이라는 이름은 이 과정에서 생긴 이름이다(창 17: 17. 18: 12-15. 참조. 21: 6).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내보내고(21: 8-14), 후처들에게서 얻은 아들들에게 재물을 주어 동방으로 떠나게 하였다(25: 1-6). 이러한 행위는 그의 기업과 영적 약속이 오직 이삭을 통해서만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1: 12).
이삭의 청소년기 기록은 22장에 나와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에 있는 한 산에서 번제로 드릴 것을 명령하셨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번제를 드릴 장소로 올라가는 동안 이삭은 물었다.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양을 주실 것이라고 대답하고, 아들을 결박해 번제로 드릴 준비를 하였다.
마지막 순간에 여호와의 사자가 음성을 통해 아버지의 손을 멈추게 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그의 후손을 무수히 많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 히 11: 17-19 –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노년의 아브라함은 종에게 맹세를 시킨 다음 그를 메소보다미아로 보냈다. 그의 친족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창 24장). 아브라함은 이삭이 가나안에 머물면서 이방인인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그 종의 임무는 아름다운 리브가가 40세의 이삭을 보지도 않고 결혼하기로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끝마쳐졌다. (25: 20).
이삭의 아내는 사라가 그랬던 것처럼 임신을 하지 못하였다. (25: 23). 이때 이삭은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여호와께 간구하고 믿음으로 응답을 기다렸다. 이삭이 60세가 되었을 때 쌍둥이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다. 태어나기 전에 두 형제 사이가 적대 관계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 (23절).
이들이 자라면서 이삭은 에서를,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생애에서 다른 유사점은 26장에 나와 있다. 이삭은 계절에 따라 그랄 골짜기로 이동하여 그 곳에서 아브라함이 팠던 여러 우물들을 복구하였다. 그러나 그 우물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랄의 목자들에게 양보하였다. (17-22절. 21: 25-31).
결국 이삭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언약을 맺었던 브엘세바로 돌아갔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나타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심을 증언하시고, 이삭에게 복주며 자손을 번성케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23-25절).
죽을 날이 다가오자, 이삭은 에서를 불러 별미를 준비하도록 시켰다. 남편의 말을 엿들은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행동을 취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별미를 만들고 야곱이 아버지께 드리도록 시켰다. (27: 5-10).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의 가장 좋은 의복을 입히고, 손과 목을 염소의 가죽으로 덮어 털이 많은 에서와 같이 되게 하였다. 이삭은 별미를 가지고 온 아들이 에서인지 의심하였으나 별미를 먹고, 야곱을 축복하였다. (27-29절).
3] 야곱(영. Jacob 히.´야아코브´ 헬.‘야코브’)
이삭과 리브가의 둘째 아들로 에서의 쌍둥이 동생.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 되었음. 야곱이란 이름은(히. 아케브 - 뒤꿈치)에서 유래되었다.
그 의미는 ‘뒤꿈치를 잡다. 빼앗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어원적인 의미는 족장 야곱의 생애 속에도 암시되어 있다. 그는 출생하면서부터 쌍둥이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다. (창 25: 26. 참조. 호 12: 3). 장성하여서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차지하였다. (27: 36).
* 렘 9: 4 -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
여호와께서는 야곱이 태어나기 전에 리브가에게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25: 23).
* 롬 9: 12 -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야곱은 속임수로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 (27: 1-45). 에서는 야곱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리브가는 야곱을 살리기 위하여 오빠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야곱을 피신시켰다. (창 27: 41-28:5).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가던 야곱은 벧엘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던 사다리를 꿈속에서 보았다. (28: 10-17). 사다리 꼭대기에는 여호와께서 서 계셨는데, 야곱이 어느 곳에 있든지 보호하시고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야곱은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약속하였다. (창 28: 20-22).
하란에서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여러 번 속임을 당하였다.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기 위하여 7년 동안 봉사 하였다. 그러나 첫날밤에 레아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창 29: 15-26). 당시는 신부가 얼굴 덮개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속임수가 가능했었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취하기 위하여 다시 7년을 라반을 위해 봉사하게 되었다. (창 29: 27-30).
메소포타미아에서 사는 동안 야곱은 열한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낳았다. 레아를 통해서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과 딸 디나를 낳았으며, 레아의 종 실바를 통해서는 갓, 아셀을 낳았다. 라헬을 통해서는 요셉 하나만을 낳았으며, 라헬의 종 빌하를 통해서는 단, 납달리를 낳았다. (창 29: 31-30: 24).
라반은 야곱과 품삯을 정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야곱은 부자가 되었다. (창 30: 25-43). 야곱은 라반과 라반의 아들들이 자기를 시기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라반 몰래 모든 가족을 이끌고 하란에서 도망쳐 나왔다. (31: 17-21).
드라빔까지 잃어버린 사실을 알고 라반은 크게 분노하여 야곱을 뒤쫓아 갔다. 하나님께서는 꿈에 라반에게 나타나 야곱을 해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22-24절). 라반과 야곱은 길르앗 산간 지대에서 서로 해치지 않기로 언약을 맺었다. 라반과 헤어진 야곱은 고향을 향하여 길을 재촉하였다. (창 31: 44-55).
하나님께서 보호하겠다는 약속에도(32: 1-2), 야곱은 에서와의 대면을 두려워했다.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에서가 한 떼를 공격하면 다른 한 떼는 도망할 수 있도록 계획해 놓았다. (3-8절). 그는 에서에게 미리 값진 선물을 보내어 형의 마음을 달래고자 하였다. (14-21절).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간구는(창 32: 9-13) 브니엘("하나님의 얼굴”, 32절) 사건으로 인도하였다.
야곱은 브니엘에서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후에야 야곱은 그를 놓아주었다. 이때 야곱은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고 사람과 겨루어 이긴 자" 28절 참조. 호 12: 4-5) 이란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되었다.
야곱과 에서의 만남은 평화롭고 화목한 만남이었다. 야곱은 에서와 함께 세일로 가겠다고 약속했으나, 세일로 가지 않고 숙곳에서 체류한 후에 세겜 근처로 이주하였다. (창 33장). 그곳에서 외동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추행을 당하였다. (34장).
디나의 오빠들은 화해의 표로 세겜 성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제안했으며, 그들이 할례의 고통 증에 있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성 안으로 들어가 모든 남자들을 살해하였다.
4]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예수의 족보는 선민 이스라엘의 합법적 조상이자, 처음으로 메시야 언약을 받았던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다. (창 12:3).
그런데 문제는 아브라함의 아들 중 이스마엘이나 다른 자식들(창 25:1-3)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둘째 아들 이삭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언약에 따라 태어난 후손만이 메시야의 혈통을 이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선택적 의지를 반영한다. (창 15:4, 17:1-22, 21:1-7).
이삭의 출생은 소망이 단절된 죽음의 태(胎)를 열고 출생했다는 점에서 사망의 권세를 깨치고 새 생명의 환희를 제공키 위해 탄생하신 예수의 출생을 예표(豫表)하기에 적절하다.
* 히 11:11-12 –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5] 낳고(겐나오)
이를 번역하면 '...의 아버지라'(was the father of, NIV)고 할 수 있다.
이 단어는 친자(親子)를 뜻한다기보다 그 혈통에 이어지는 직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때로 '...의 조상이다', '...의 조상이 되었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본 장의 족보 내에서도 이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6] 이삭은 야곱을 낳고
여기서도 첫째, 에서의 이름은 없고 둘째인 야곱의 이름만 나온다.
장자의 직분을 경솔히 여긴 과오가 계보에서 탈락하였다.
7]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마태는 이 이름들에서 족보 이상의 것, 즉 선택받은 나라의 역사를 요약하고 있다.
야곱, 유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6절)등이 장자 신분이 아닌 동생들로서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선택받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육적 신분의 탁월성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의 독특한 방식, 즉 '낮은 자를 높이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興起)시키는' 하나님의 뜻에서 유래한다.
* 욥 5: 11 -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 겔 21: 26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야곱의 12 아들 중 혈육상의 장남은 르우벤이었고, 야곱의 애정은 요셉에게로 많이 기울어졌지만, 하나님은 유다 지파를 들어 메시야를 일으키셨다. 실로 하나님의 선택과 은총은 인간적 혈통을 초월하여 진행된다.
* 요 1: 13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특히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유다만이 족보에 이름이 오른 이유는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창 49:10)대로 그에게서 다윗 왕가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와 함께 열두 형제를 언급한 것은
(1) 12지파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전형적 모델이다.
이는 예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여 천국 일꾼으로 사용하신 것과도 연관이 있다.
(2) 유다에게서 나신 그리스도
구약의 언약 공동체인 12지파 전체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메시야이다.
(3) 그리스도 안에서의 축복은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로 모으시는 영적 이스라엘(야곱)의 모든 자손들이 공유(共有)할 것임을 나타낸다.
3. 유다와 다말 -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
1] 유다와 다말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
유다가 다말에게 들어간 것은 부끄러운 실수였다. 비록 그의 아내가 죽었고 외롭게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지라도, 그가 창녀에게 들어간 것은 실수이다. 그것도 그 여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며느리였다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다말 편에서 볼 때 시아버지가 계대결혼의 풍습대로 막내아들을 자기에게 주어 자녀가 있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말이 있었다 할지라도,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육체적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족보가 보이는 바는, 특히 다말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의 그 부끄러운 실수와 다말의 그 악행까지도 그의 메시아 약속을 이행하시기 위해 사용하셨음을 증명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메시아의 약속을 성취하셨다. 사람의 악한 일까지도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이루시는 데 사용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떠할 것을 암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의 구주로 오셨다. 그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 하나님은 사람의 부족을 아셨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사람의 수치스런 죄악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깨끗이 제거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고 성도는 더더욱, 과거에 부끄러운 실수나 악행들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들 때문에 뒤로 물러나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그 부족과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의 긍휼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 과거 때문에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의지하고 이제는 더욱 성결케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저자의 해석.
필자의 창세기 38장 강해를 참고하여 요약하여보자.
창세기 38 장 유다와 다말
1. 유다의 방황 -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1) 그 후에(히, 바에트 하히우)
'...안에'(in)를 나타내는 전치사 '베'가 '때'를 의미하는 '에트'에 붙고 '저것'을 뜻하는 지시 대명사 '후'가 합쳐져 '그 때에'란 말이다. 즉 요셉이 17세의 나이로 애굽에 팔려간 그 때로부터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른 뒤를 가리킨다(Alford, Keil).
왜냐하면 38 장의 유다 사건은 요셉이 팔린 때로부터 애굽에 정착하기까지의 기간(22년) 중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Murphy)는 이를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기 전의 일로 보기도 하는데 전후 문맥상 신빙성이 없다.
이 무렵 유다는 형제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자적인 생활권을 형성하면서 가나안 사람들과 교제를 갖기 시작했다. 후에 이것이 다말 사건의 전조가 되었다.
2) 유다가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왜 유다가 형제로부터 내려갔을까?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11번째)이였다.(37: 3)
형제들이 시기하여 죽이기를 꾀하여(37: 18) 광야 구덩이에 던져 넣고(37: 20)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사람 상고들에게 팔도록 권유(37: 26-28) 하고 채색 옷에 염소 피를 묻혀 아버지를 속였다.
그는 배가 다르다고 하여 동생을 팔고 아버지를 속이는 일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3)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1) 아둘람
헤브론 골짜기에서 북서쪽으로 24Km 지점에 위치해 있던 가나안 31성읍 중의 하나이다(수 12:15).
(2) 가까이 하니라
'내려가다'란 뜻으로 유다가 당시 권속들이 살았던 헤브론을 떠나 지중해 근처의 고도가 낮은 지대로 이동하였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방인의 세계로 은신하였다.
2. 유다의 결혼 -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이스라엘의 애굽 이거(移居)의 필연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여인과의 빈번한 통혼은 선민의 주체성을 상실시킴과 동시에 저들에게 흡수됨으로써 이미 멸망이 경고된(16:16) 가나안 족속과 함께 멸절당할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때가 찰 때까지 그들을 애굽에서 연단 시키며 언약 백성으로서의 순수성을 보존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보아스는 룻을 취할 때까지 율법에 정한 규례를 지켰다면 유다는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가나안 여인과 동침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할아버지 이삭의 결혼이나 아버지 야곱의 결혼 생활을 통하여 배운 것이 없을까?
3. 첫 아들 엘 -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유다의 첫 아들은 엘이라 불렀다.
엘 - '감시하는 자'란 뜻.
4. 둘째 아들 오난 -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오난 - '힘'이란 뜻.
5. 셋째 아들 셀라 -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1) 셀라
'기도' 혹은 '평화'란 뜻이다.
이 아들을 낳을 때에 유다가 집에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일이 없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지었던 것 같다.
2)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유다 지방 중부에 위치한 곳으로 일명 '악십'(수 15:44)으로도 불렸다.
유다의 방랑 생활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이름으로 보아서 아버지를 속이고 동생을 팔아버린 가책에 매였다가 셀라를 낳고서야 안정을 찾게 되었다.
6. 엘의 처 다말 -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1)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유다는 어린 아들들을 일찍 결혼시킴으로써 가나안 족속의 성적 문란에 감염되는 것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Pulpit).
2)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결혼을 할 때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살펴야 한다.
그런데도 엘을 위한 아내를 취하면서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출신 신분이나 가정환경, 신앙 등 유다의 관심은 전혀 없어 보인다.
7. 엘의 죽음 -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엘이 어떤 악을 행하였는지 언급되고 있지 않다.
앞 절에 결혼 기사가 나와 있고 같은 표현이(10절) 오난의 결혼에 사용된 것으로 보아, 아마 성 윤리에 관한 극심한 죄악과 관련된 것 같다.
* 시 90: 7 -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 겔 18: 20 -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8. 계대 결혼 –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계대결혼(繼代結婚)의 제도에 관한 것이다.
이 제도는 상속인이 없이 죽은 형제의 대(代)를 이어주기 위하여 죽은 자의 형제나 그 친척이 죽은 자의 처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주던 관습으로 수혼(嫂婚)이라고도 불린다.
이 제도의 목적은 자식 없이 죽은 형제의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가족과 이름을 기억케 하며 보존케 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다른 형제는 긍휼과 희생 그리고 형제애로써 이 의무를 준수해야 했다. 이 계대 결혼을 통하여 후사를 보게 되면 그 아들이 법적으로 죽은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정식으로 이어받게 된다.
훗날 이 제도는 모세의 법전에도 나타난다.
* 신 25: 5-6 –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시동생이 과부인 형수와 결혼하기를 싫어할 때는 공중 앞에서 심한 모욕을 주었다.
오난은 계대 결혼에 의한 형수와의 결혼에 대하여 거부 행위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혀 마음에 내키지 아니한 행동을 찾아 볼 수 없다.
9. 땅에 설정하다. -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 오난이 자기 씨가 되지 않은 줄 알았다.
형수와의 계대결혼에 의해 낳은 아들은 법적으로 자신의 자식이 아닌 형의 자식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2)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 씨를 주지 않으려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형수와 결혼한 오난은 다말과의 성행위 중에 아들을 얻지 않으려고 계획하였다.
사회 제도에 의한 피할 수 없는 제약 때문에 결혼하게 되었다면 오난은 부모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여야 했다.
앞 절에서도 본인 의사와 상반된 일이라면 물어서라도 계대결혼의 목적이 성취되어야 한다.
3) 땅에 설정하였다.
설정하매(히, 쉬헤트 아르차) - '멸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솨하트'의 과거형과 '땅'인 '에레츠'가 합쳐져 '그가 땅에 멸했다'란 의미이다.
즉 정액을 체외에 사정하였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다.
여기서 수음(手淫)이란 뜻의 오나니즘(onanism)이 유래되었다.
오난은 형수와의 육체적 결합은 즐기면서도 씨를 퍼트리는 일은 무시한 것이다. 이 행위는 이런 제도를 베푸신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도전이 된다.
달란트 비유에서 해답을 찾자.(마 25:14-30)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땅에 감추었다가 주인에게 가져왔다.
* 마 25: 26-30 –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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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말과 같은 하늘의 뜻을 이루소서.
강해 설교 감사합니다.
주님만 따르는 신부가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