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스타일 [4]
나는 덩컨보다 훨씬 먼저 바에 도착했다. 덩컨은 2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연락해왔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어쩐지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바 스툴 밑에 배낭을 놓고 앞 창가에 진열된 레코드판을 죽 훑어보았다. 덩컨과 친하게 지낸 적은 없었다. 덩컨은 나보다 두 살 위였고 우리가 만났을 땐 해버포드대학 졸업반이었다.
우리 학교와 그 학교를 오가는 전용 버스가 있어서, 양쪽 학교 학생들은 공식적으로 상대 학교의 수업을 듣고 클럽활동도 같이 할 수 있었다. 덩컨은 캠퍼스 공연을 주관하는 FUCs라는 클럽의 다섯 멤버 중 하나였고, 내가 그 클럽에 지원했을 때 나를 받아주자고 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이제 내 일자리를 알아봐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까지 걸고 있었다.
휴대폰 진동 벨이 울렸다. 드디어 엄마가 응답을 한 거였다. 가방을 집어들고 전화를 받으러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음, 그게 ......네가 주말 동안 뉴욕에 가 있을 거라고 해서." 엄마가 말했다. "네가 필라델피아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지. 집에 피터랑 같이 있을 때 전화하려고." 원래 엄마는 통화할 때 목소리가 어찌나 낭랑한지 말을 할때마다 웅웅 울리는 소리가 같이 들렸는데, 지금은 꼭 방음장치가 완벽하게 된 방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거리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된 거면 지금 아는 게 나아." 내가 말했다. "나만 아무것도 모든다는 게 말이 돼?" 수화기 너머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내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인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을 진지하게 재고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침묵이었다. "내 배에 종양이 있대." 결국 엄마가 그 청천벽력 같은 말을했다. "암 같아 보이는데 얼마나 위험한 건지는 아직 모르고. 정확한 건 검사를 좀더 해봐야 알 수 있대."
나는 그 자리에서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길 건너편에서 한 남자가 이발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 한무리가 바깥 테이블에 앉아 유쾌하게 웃으면서 음료를 주문했고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전체 요리를 골랐다. 다들 답배를 얻어 피우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개 배설물을 치우고, 약속을 취소하느라 분주했다. 화창한 5월, 세상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 나는 할말을 잃은 채 길에 멍하니 서서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이미 죽게 만든 그 병으로 엄마가 당장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엄마가 말했다. "무슨 방법이 있겠지. 넌 가서 친구나 잘 만나."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아주 건강했던 여자가 그냥 배가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돌아올수 있는 거지? 저멀리서 덩컨이 길모퉁이를 돌아 이리로 오는 게 보였다. 덩컨이 내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목구멍에 걸린 것 같은 무언가를 꿀꺽 삼키고 배낭을 획 둘러메고 방긋 웃었다. 울긴 왜 울어! 엄마가 죽은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
마침 바는 해피 아워라 하나를 주문하면 하나를 더 얹어주었다. 우리는 밀러 하이 라이프 두 병을 시키고 나중에 각자 두번째 병을 마실 태세를 취했다. 그런 다음,대학 졸업 후에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덩컨은 이제 막 라나 델 레이를 다룬 커버스토리를 마감하고 오는 길이었다. 나는 덩컨을 붙잡고 인터뷰 뒷얘기를 들려달라고 졸라서 라나가 인터뷰 내내 줄답배를 피웠고 자기 말이 잘못 인용되는 걸 막기 위해 아이폰으로 인터뷰 전 과정을 녹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 가수가 확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