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 인터뷰중 까마득한 대선배를 만난 제니퍼 로렌스(Jennifer Shrader Lawrence)

"선글라스를 쓰면 나는 잭 니콜슨이다. 그게 없으면 난 그저 뚱뚱한 칠십대 노인일뿐이다."

최근 몇년간 배우 잭 니콘슨을 영화에서 볼 수 없었고 그의 은퇴 이야기가 들려왔다. 1937년 4월 22일생인 그의 나이가 여든 한살이니 은퇴가 자연스럽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잭 니콜슨
출생의 비밀
잭 니콜슨은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쇼걸이었던 준 프랜시스 니콜슨이다. 아버지는 정확하게 누군지 모른다.
너무 이른 나이에 아들을 낳은 딸을 대신해 니콜슨의 할머니가 그를 자식으로 길렀다.

그러니까 그는 할머니를 어머니로, 어머니를 누나라고 불렀던 것이다.
1973년 '타임'지를 통해 이 사실이 밝혀졌다. 거의 30년여 년이 지나서 진실을 알게 된 니콜슨은 "연기가 좀 되는 집안이군"이라고 혼잣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놀라운 일이지만 심리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당시 어머니와 할머니 모두 사망한 뒤였다.

◆ 로저 코먼의 영화 '테러'(1963년)의 잭 니콜슨
작가, 감독이 되고 싶었던 시절
잭 니콜슨은 1954년 17살의 나이에 헐리우드에 갔다. 배우로서 크게 성공하지 못하자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이 되려고 했다.

◆ 젊은 시절의 잭 니콜슨
그가 쓴 각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영화는 미국 B급 영화의 거장, 로저 코먼 감독이 연출을 맡은 반문화(Countetculture) 영화 '더 트립'(1967년)이다.
이 영화에는 '이지라이더'에서 함께한 피터 폰다와 데니스 호피가 출연했다.

◆ 영화 '이지라이더'의 한장면

'이지라이더'로 처음 오스카 후보에 오르다.
데니스 호퍼의 1969년 영화 '이지라이더'는 아메리칸 뉴시네마를 촉발시킨 작품이다. 잭 니콜스은 변호사 조지 핸스를 연기했다.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찬 인물로 유치장에서 와이어트(피터 폰다)와 빌리(데니스 호퍼)를 만난 뒤 여행을 떠난다.ㅡ

◆ 1976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잭 니콜슨
역사상 가장 많은 오스카 후보에 오른 남자 배우.
잭 니콜슨은 총 12번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이는 남자 배우 가운데 가장 많은 횟수이다.
남우주연상은 2번 수상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였다. '애정의 조건'(1983)으로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오스카 트로피를 2개 가지고 있는 남자 배우는 잭 니콜슨 이외에 월터 브레넌과 다니엘 데이 루이스밖에 없다.
또한 그는 1960년대부터 70년대, 80년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까지 모두 오스카 후보에 이름을 올린 두 사람 가운데 한명으로 나머지 한 사람은 마이클 케인이다.

◆ 잭 니콜슨(왼쪽)과 말론 브란도
말론 브란도의 절친
그는 헐리우드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살았다. 말론 브란도와 워렌 비티가 이웃이었다. 이들 덕분에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배드 보이즈 드라이브'라고도 불렸다.
2004년 말론 브란도가 사망하자 절친이였던 니콜슨은 그의 집을 640만 달러에 구입했다. 그를 기리기 위해서 그 집을 보존하려 했지만 결국 철거됐다. 유지 보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제스민 꽃을 심은 대규모 화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광기의 잭 니콜슨
스티븐 킹 소설 원작, 스탠리 큐브릭 연출의 '샤이닝'에서 니콜슨은 엄청난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한겨울 텅빈 오버룩 호텔의 관리인을 겸하는 작가 잭 트렌스를 연기했다.
광기에 휩싸이면서 변해가는 잭이 없었다면 '샤이닝'의 공포는 없었을 것이다. 도끼로 문을 부순 뒤 "자니가 왔어요(Here's Johnny!")라고 말하는 잭 니콜슨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다.

◆ 배트맨
히스 레저(Heath Andrew Ledger)이전의 조커
'다크나이트' 이전,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 이전에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가 있었다.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1989년작 '배트맨'에서 니콜슨은 조커를 연기했다.
그는 원작의 조커처럼 광대와 같은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배트맨'은 니콜슨이 출연한 영화 가운데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영화다. 다음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어 퓨 굿 맨', '성질 죽이기', '디파티드' 순이다.

◆ LA 레이커스 경기장을 찾은 잭 니콜슨
LA 레이커스의 광팬
니콜슨을 TV 화면에서 보려면 NBA 중계를 찾아보면 된다. 왜냐면 그는 늘 LA 레이커스 경기장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자들은 농구팀 경기 일정에 맞춰 촬영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그는 1970년부터 시즌 티켓을 구매했다. 원정팀 벤치와 가까운 코트 사이드 자리가 그가 지난 25년간 앉았던 자리다.
니콜슨은 가끔 코트에 들어가 상대 선수와 말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 애브리씽 유브 갓
'에브리씽 유브 갓'과 '토니 에드만'
니콜슨은 2010년 출연한 '에브리씽 유브 갓' 이후 영화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이 영화는 '애정의 조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작품이다.
니콜슨은 작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독일 영화 '토니 애드만'의 헐리우드 리메이크에 출연한다고 밝혔다. 7년만이다. 그의 상대역은 '고스터버스터즈',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의 크리스틴 위그다.


"뭘 했는지 묻지 말라"
2006년 씨네 21에 실린 '디파티드', 잭 니콜슨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했다.
"영화 홍보 일정 때문인지 피로해 보인다."
"홍보와는 상관없다. 어젯 밤에 너무 무리를 한 탓인지...뭘했는지는 묻지 말라(웃음)"

인터뷰의 마지막은 이렇다.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이 있는가?"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 영화는 결국 가능성의 예술 아닌가. 그때 그때 나한테 주어진 역 중에서 제일 창의적인 역할을 골라서 하게 되겠지."
각본가이자 제작자이자 감독이기도 한 그는 예리한 지성의 소유자라고 불린다. 한 레스토랑에서 열혈팬이 니콜슨에게 찬사의 글을 전했는데 그가 잘못된 문장을 교정하여 다시 돌려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잭 니콜슨의 시대가 이제 점점 저물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세월은 어쩔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존재감이 돋보이는 배우로 기억될 것이다.
"Thanks you, Jack."

"I'll be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