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를 보면 꼭 그렇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올해 우승후보로 나고야 그램퍼스를 꼽았다. 유고대표 스토이코비치,브라질 귀화용병 로페스,일본국가대표 나라자키·야마구치 등 초호화멤버. 지난해 후기리그에서 2위를 차지했고 99∼2000천왕배대회에서는 일약 우승을 차지,올해 가장 안정된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4일 현재 나고야의 성적은 16개팀중 꼴찌. 개막후 단 한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네번을 내리 졌다. 개막전에서 가시마 앤틀러스에 0-1로 졌을 때만 해도 가시마의 전력이 올해 많이 좋아졌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2차전은 주빌로 이와타에 0-1 패배. 주빌로가 지난해 J리그 챔피언의 강팀이라 팬들도 아까운 한판이라며 아쉬워했다.
3차전 상대는 FC 도쿄. 올시즌 2부리그에서 올라온 팀이라 전문가들은 나고야의 승리를 확신했다. 전반전에 1-0으로 나고야가 리드하고 있을 때만 해도 연패는 끊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후반에 내리 2골을 먹으며 1-2로 역전패를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한번 기세가 꺾이자 추락엔 날개도 없었다. 4차전엔 약체 후쿠오카 아비스파와 맞붙었지만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허용,1-2로 졌다. 나고야팬들은 분노했고 계속된 패배에 조바심이 난 듯 카를로스 감독은 아비스파전엔 주심 판정에 격렬히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시즌 초반 나고야의 침몰은 축구가 일부 선수들의 능력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고야는 스토이코비치,로페스,야마구치 등 호화멤버로 구성됐지만 전체적인 팀워크는 좋지 않은 듯싶다. 축구는 2∼3명이 하는 것이 아니라 11명이 함께 조화와 협력을 통해 이뤄나가는 경기다.
또 ‘축구는 흐름의 싸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아무리 전력이 뛰어나더라도 일단 자신감이 꺾이면 좀체 회복하기 힘든 스포츠가 바로 축구다. 단체경기의 특징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고야의 시즌 초반 추락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리 팀에 올초 수원 삼성에서 이적해온 샤샤(유고)가 뛰고 있다. 그는 현재 부상중이다. 그를 지켜보면 일본의 부상자 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샤샤는 이적후 정밀진단에서 오른쪽 새끼발가락 골절부상이 밝혀졌다. 당장 실전투입이 힘든 상태로 3개월 가량 재활훈련을 가진 뒤에나 출전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때문에 수원구단에선 보상차원에서 박건하를 빌려주기도 했다.
그런 샤샤가 운동을 시작한지 벌써 한달이 다 돼 간다. 몸도 이젠 정상 컨디션을 찾은 듯 싶을 정도로 가볍게 보인다. 하지만 그는 1군무대엔 아예 얼씬도 하지 못한다. 본인은 컨디션 100%라고 하며 출전을 자청하지만 감독과 구단에서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 계속 2군경기나 연습경기에만 출전시키며 컨디션을 체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팀의 요즘 전력으로는 샤샤가 당장 필요하다. 스트라이커 요원이 없어 어려운 경기를 벌이는 때가 많다. 하지만 구단에선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절대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선수관리 기본원칙이다. 다 낫지 않은 선수를 경기에 투입했다가는 부상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선수 본인이 아무리 컨디션 100%라고 우겨도 팀닥터로부터 OK사인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절대 출전이 허락되지 않는 게 일본 축구계의 분위기다.
이런 점은 한국이 많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한국에선 100% 완전히 낫지 않더라도 웬만큼 낫다 싶으면 출전을 강행시킨다. 그래서 부상당한 선수들은 ‘이 악물고 버틸 정도’면 경기에 나서는 게 관례다. 또 그것이 파이팅,투혼 등으로 치켜세워지는 것이 한국의 분위기다.
결국 이런 것이 반복되다 보면 부상 재발이 많고 선수 수명만 단축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수 수명이 단축되면 결국 구단도 마이너스다.
선진축구를 지향하는 한국도 이제 ‘빨리빨리’만 외치기 전에 원칙을 갖고 느긋하면서도 완벽한 일처리가 필요할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원칙에 충실한 일본축구의 체계적인 선수관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겉으로 요란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모처럼 벌어지는 한-일 라이벌전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 명단이 발표되자 팀동료들은 “몹시 기다려진다”며 관심을 보였고 축구 전문잡지에선 한-일전 특집을 마련하고 내게 찾아와 인터뷰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경기는 여러 의미로 중요한 일전이라 일본인들의 관심이 더욱 가는 경기다. 일단 트루시에 감독의 운명이 걸려 있다. 감독 경질과 계약 연장의 기로에 서 있는 트루시에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 패할 경우 경질이 기정사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경기는 일본팀의 세대교체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무대다. 일본은 이번 대표팀에 올림픽대표를 무려 9명이나 포함시켰다. 그렇다고 시드니올림픽을 겨냥한 것만도 아니다. 이번에 뽑힌 멤버들이 사실상 일본의 최강멤버다.
일본의 영스타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할 선수는 나카무라(요코하마)다. 미드필더인 나카무라는 개인기술이 무척 좋다. 개인기만 놓고 보면 나카타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체격이 작은 것이 핸디캡이기는 하지만 개인 기술로 커버하기에 충분하다. 아마 일본은 한-일전에 나카타와 나카무라를 더블 플레이메이커로 기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나카무라는 일본에서 대단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조만간 유럽에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밖에 스트라이커인 다카하라(주빌로) 묘진(가시와) 이나모토(감바) 등이 주전 자리를 위협할 선수다.
한-일전은 한국선수들에게 늘 부담이다. 더욱이 지난해 일본에 2연패했기에 더욱 부담이 크다. 이번만은 팬들에게 반드시 승리를 안기도록 하겠다.
한-일전이 끝난지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팬들의 함성이나 승리의 짜릿함이 마치 조금전의 일인양 생생하게 느껴진다.
승리의 기쁨이 보통 때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그 만큼 경기에 지워진 부담감이 컸음을 의미한다. 사실 선수 입장에서 한-일전은 늘 큰 부담이다.
하지만 이번 한-일전엔 기필코 이기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지난해 올림픽팀이 2연패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오기가 선수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했다. 게임을 앞두고 우리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특히 일본과의 경기다보니 나를 포함해 J리그에서 뛰는 6명 선수들은 나머지 선수들에게 일본 축구의 장단점에 대해 많이 얘기해줬는데 이것이 적중했다.
일본 선수들의 움직임은 당초 예측한 그대로였고 상대적으로 우리로선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한 예가 일본 측면공격의 봉쇄였다. 일본은 양쪽 측면 공격이 활발한 게 특징인데 이것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맞불작전을 권유했다. 즉 윙백들의 공격가담을 막기 위해서는 강철 하석주 등 우리쪽 윙백들이 먼저 공격에 적극 가담,이들이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사전에 차단하기로 한 것이다.
전반엔 선수 모두 의욕이 넘쳐 열심히 뛰는 바람에 후반엔 체력적인 부담이 없지 않았지만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가 결국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같다. 개인적으론 일본축구가 크게 두렵진 않다. 90년부터 국가대표로 일본팀과 맞붙어 지금껏 5승1무1패를 기록했다.
93년 카타르에서 벌어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딱 한번 진 것을 제외하곤 이제껏 일본팀과 맞붙어 진 적이 없다. 그러나 10년동안 일본팀과 맞붙으면서 그들의 빠른 성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J리그가 출범한 93년부턴 조금씩 상대하기가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재능은 한국선수들이 더 낫다는 게 내 확신이다. 문제는 투자다. 일본은 체계적인 투자로 좋은 환경,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축구를 발전시켜왔고 한국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차이다. 일본축구의 성장을 경계할 것이 아니라 한국축구가 그동안 축구 발전을 위해 얼마만한 노력을 해왔는지를 먼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한-일전 패배 후 그의 경질을 둘러싸고 얘기가 무척 많다. 대세는 역시 해임쪽으로 굳어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일전 패배가 결정타로 작용하긴 했지만 트루시에 감독이 일본대표팀을 맡은 뒤 그동안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다.
트루시에 감독은 지난해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을 맡아 나이지리아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높였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감독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 있다. 당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은 감독의 용병술이나 전술,전략이 뛰어났다기보다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쾌거라는 반응이다. 당시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은 그야말로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수 대부분이 J리그란 프로에서 뛰던 선수들이었는데 한결같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에서 주축으로 활약,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은근히 기대했었다.
트루시에 감독은 지난해 올림픽팀을 맡아 한국에 2연승을 거뒀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일부는 트루시에 감독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다. 즉 올림픽선수들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난 것이지 감독의 역량이 구체적으로 발휘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판단이다.
일본에선 현재 일본올림픽대표를 사상 최고의 멤버로 꼽고 있다. 9월 시드니올림픽에서 메달까지 바라보고 있을 정도다. 당대 최고의 멤버로 구성한 지난 한-일전 일본대표팀의 22명 가운데도 올림픽대표가 무려 9명이나 포함돼 있어 ‘영파워’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결국 트루시에 감독은 청소년·올림픽대표팀에서는 선수들이 잘해주고 ‘운’도 많이 따라준 반면 감독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성인대표팀에선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해임위기에까지 몰려 있다.
트루시에 감독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그는 일본축구협회에 많은 불만을 보이며 갈등을 빚어왔다. 선수를 조기에 차출시켜 훈련하고 싶어도 ‘프로선수가 뛰지 않는 J리그는 무의미하다’는 원칙에 눌려 원하는 때에 선수를 모을 수 없었고 원하는 대회에도 못 나갔다며 불평이다.
일본에선 트루시에 감독 후임으로 우리팀의 니시노 감독과 대표팀의 모토야마 코치가 구체적으로 거론될 정도로 감독 문제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트루시에 감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비정한 승부 세계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래저래 감독이란 참으로 힘든 자리인 듯싶다.
9월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국민들은 축구에서 68년 도쿄올림픽 동메달 이후 32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노리고 있다.
이처럼 올림픽팀 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은 주축을 이루는 선수들의 기량이 역대 최강이라고 평가될 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올림픽팀 멤버들은 모두 J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에서 모두 주전으로 뛸 만큼 뛰어난 기량을 갖췄다. 지난 4·26 한-일전 때 최강의 멤버로 구성된 일본대표 22명 가운데 무려 9명이 올림픽대표 출신이었을 정도다.
올림픽대표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는 이탈리아 AS 로마에서 뛰고 있는 나카타다. 그의 나이는 불과 23세. 일본인들은 세계적인 기량을 갖춘 그가 올림픽에서 일본에 메달을 안겨줄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다. 올림픽팀에는 나카타뿐 아니다. ‘떠오르는 태양’ 오노 신지와 나카무라,이나모토,야나기사와,다카하라,나카자와 등 주목할 선수들이 많다. 역대 최강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내가 봐도 일본올림픽의 면면을 살펴보면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이들과 J리그에서 직접 게임을 해볼 기회가 많은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에는 이처럼 실력이 좋은 어린 선수들이 많다. J리그 16개팀 모두 22세 전후의 어린 선수들이 팀마다 3∼4명씩 주전자리를 꿰차고 있다.
우리팀에도 21∼22세의 어린 선수가 5명이나 주전으로 뛸 정도다. 이들은 모두 고교졸업 후 곧장 프로를 택한 선수들이다. 또 93년 J리그 출범 이후 체계적인 클럽시스템 아래 성장,배출된 선수들이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이들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실력도 뛰어나다.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나고 선수층도 두터운 일본이 이번 시드니올림픽에서 메달을 노리는 것은 헛된 욕심만은 아니다.
일본은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을 1-0으로 꺾어 세계를 경악시킨 적이 있다. 잔뜩 기대를 하고 나서는 이번 시드니올림픽에선 일본이 어떤 성적을 거둘지 궁금하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느낀 점은 트레이드가 한국보다 무척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국처럼 간판급 스타들의 트레이드는 쉽지 않다. 하지만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재능을 갖추고도 감독 스타일에 맞지않아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는 선수 대부분은 트레이드를 통해 ‘구제’된다.
일본에선 선수가 먼저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합리적이다 싶으면 구단이나 감독들이 요구사항을 들어준다. 팀전술에 맞지않아 쓰지 않는 선수를 굳이 붙잡아 둘 필요는 없다. 다른 팀에 가면 충분히 주전으로 뛸 수 있기 때문에 선수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트레이드를 시켜준다.
때문에 A팀에서 거의 뛰지도 못한 선수가 B팀,C팀으로 이적해 자신의 자리를 찾고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지난 겨울엔 일본의 간판수비수인 이하라(요코하마)가 공개적으로 트레이드를 결정한 뒤 경쟁팀인 주빌로 이와타로 옮겼다. 팀내 간판스타라도 전술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시장에 내놓는게 J리그 풍토다.
일본과 비교해볼 때 한국은 트레이드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선수들도 트레이드가 축구인생의 종착역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구단들도 트레이드에 대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한국에선 자신의 팀에서 쓰지 않는 선수라도 웬만해서는 트레이드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혹 다른팀에 가서 자기팀에 악의를 품고 비수를 꽂지 않을까 해서다. 그래서 쓰지 않더라도 꽁꽁 잡아놓는다. 선수가 먼저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것은 거의 ‘항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 그 팀에서 선수 인생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뛰면서 그렇게 스러져간 선수들을 많이 봤다. 이제껏 축구만 해왔던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팀을 찾지 못해 그대로 운동을 그만둔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선 선수가 늘 약자다. 구단이 ‘아량’을 베풀지 않으면 절대 다른 팀으로 가지 못한다.이제 구단이나 선수 모두 트레이드에 대해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떨쳐내고 일본처럼 모두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다.
FC 요코하마는 98년 천황배 우승을 끝으로 해체된 요코하마 프뤼겔스 프로축구단이 시민들의 성금으로 재탄생한 실업팀이다. 스폰서가 지원을 중단,프뤼겔스는 해체와 함께 이름이 없어지며 요코하마 마리노스구단과 합쳐졌다. 하지만 요코하마시측과 시민들은 성금을 거둬 프뤼겔스축구단의 명맥을 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FC 요코하마다.
FC 요코하마는 시민들이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재정이 탄탄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런 팀에서 최근 13세,15세,고등학생 등 3개의 유소년팀을 창단했다. 한국식으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가뜩이나 재정이 취약한 팀이 유소년팀을 운영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소년팀을 창단한다고 해서 즉시 전력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조급하고 당장 결과를 보려고만 드는 한국 정서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당장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중장기계획을 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결정권자가 자신의 재임기간 중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후임자가 그 열매를 딸 수 있도록 튼실한 토양을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각 프로팀의 유소년팀 운영을 필수로 하고 있다. 프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꼭 유소년팀을 갖춰야 한다. 93년 프로출범과 함께 발효된 이 조항은 7년이 지난 오늘날 뚜렷한 효과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 팀만 해도 주전 가운데 3∼4명이 클럽 유소년팀 출신이다.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다. 각 클럽팀의 유소년팀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곧장 프로에 직행,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프로팀이 유소년팀을 운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프로팀들은 각 지역의 학원스포츠를 지원한다. 엘리트축구만 도와주는 셈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축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동네축구나 ‘○○○ 축구교실’ 등이 전부다.
유소년팀 운영에 많은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돈 없는 시민구단인 FC 요코하마도 하지 않는가. 한국도 프로팀들이 좀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유소년 육성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요즘 일본의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무더워지고 있어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고국의 열대야 소식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지난주엔 오후 1시 섭씨 34도의 날씨에 경기를 가졌는데 거의 기절할 정도였다. 여름엔 주로 야간경기로 진행돼 다행이지만 더위와의 전쟁은 여름날에 빼놓을 수 없는 화두가 될 같다.
일본 프로축구 후기리그가 개막된 지도 벌써 2주일째로 접어든다. 후기리그의 판도는 전기리그 때와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의 예측을 빗나가게 하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각 팀의 전력이 갈수록 평준화되는 추세여서 이변이나 돌풍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전기리그엔 예상을 깨고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우승과 세레소 오사카의 준우승으로 막을 내렸는데 후기리그에선 기존 강팀들이 우세를 보일 것으로 점쳐진다. 가시마 앤틀러스와 주빌로 이와타,시미즈 S 펄스,가시와 레이솔이 우승후보이고 세레소 오사카,산프레체 히로시마 등이 선두권을 위협할 팀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올초 뚜껑을 열기 전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나고야 그램퍼스의 추락이다. 많은 국가대표의 보유와 스토이코비치(유고)란 초특급용병을 보유,아낌 없이 우승후보로 꼽혔던 나고야는 전기리그에서 16개팀 중 12위로 처져 망신을 사더니 후기리그 초반에서도 2연속 대패를 당하며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기고 있다.
나고야는 개막전에서 가시마에 0-3으로 패했고 2차전에서도 주빌로에 0-5로 참패했다. 나고야는 또 최근엔 선수와 감독과의 불화로 오이와,모치즈키,히라노 등 국가대표 3인방이 아예 팀에서 방출되는 사건이 터졌다. 브라질 출신의 카를로스 감독과의 불화 때문으로 풀이되는데 일본선수들이 보통 감독의 말을 잘 듣는 것을 감안할 때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다.
후기리그의 또다른 관심사는 과연 어느 팀이 2부리그로 추락할 것이냐는 것이다. 꼴찌 2팀이 2부리그 1,2위팀과 맞바꾸는데 현재로는 올해 1부리그로 승격한 가와사키 프론타레와 미우라가 뛰고 있는 교토 퍼플상가의 성적이 가장 좋지 않다. 현재 2부리그에선 콘사도레 삿포로와 올해 1부리그에서 추락한 우라와 레즈가 가장 좋은 성적으로 호시탐탐 1부리그 탈환을 노리고 있다.
가와가쓰 감독은 지난 12일 나비스코컵대회 시미즈 S 펄스전에서 전반에만 0-3으로 몰리자 화가 나 하프타임 때 선수 1명을 때렸다. 수면 아래에 있던 이 얘기는 18일 빗셀 고베선수들이 선수회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자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감독은 즉각 사과했지만 선수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선수의 입장으로서 이번 일이 참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러한 구타나 폭행은 없어져야 한다. 구타나 폭행은 일시적인 ‘반짝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결국은 무덤을 스스로 파는 일이다. 그렇게 폭력으로 길들여져 있다면 그런 분위기에서 진정한 ‘복종’은 나올 수 없고 모든 것이 가식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프로는 아마추어와 또 다르다. 모두 다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일뿐더러 결혼을 한 가정의 가장도 많다.
사실 한국에서 축구생활을 하며 이러한 일이 없었다고는 부정하지 못하겠다. 학창시절 운동선수에게는 이러한 구타가 성공을 위한 ‘혹독한 통과의례’로 여기며 참는 게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악습’이 좋고 그름을 떠나 그대로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진행된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여자농구에서 한 감독이 선수를 때려 물의를 일으킨 소식을 들은 바 있다. 겉으로 드러난 일이 하나라면 드러나지 않은 일은 몇배 이상일 것이다.
97년 일본으로 건너온 뒤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구타는 상상할 수도 없다. 감독과 선수는 항상 신뢰하며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분위기다. 문제가 있으면 많은 대화로 풀어나가려고 서로 노력한다. 수직적인 상하관계보다 감독과 선수가 한 배를 탔다는 동반자의식이 더 강하다.
결국 모든 것은 생각의 문제다. “한국X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단정지으면 안된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선수는 먼저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지도자는 선수들을 좀더 인격적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구타도 지도의 한 방법’이라는 마인드를 뜯어고치는 것부터가 스포츠계의 뿌리깊은 구타를 근절시키는 시작이 될 것이다.
[홍명보의 J리그 통신] 일본생활 '불청객' 지진 3번째 방문
2000년 07월 26일 (수)
일본에서 생활하며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이 바로 지진이다.
일본은 아무래도 화산열도이다보니 지진활동이 무척 활발하다. 지진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어떤 때는 심하게 오랫동안 흔들려 공포감을 던져주기도 한다. 일본사람들이야 익숙해져 있으니까 크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지만,한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나로선 지진이 익숙하지 않다.
며칠전엔 정말 가슴이 콩콩 뛸 만큼 큰 지진이 터져 깜짝 놀랐다. 지진이 난 것은 새벽 3시39분쯤이었다. 내 집은 도쿄 인근 가시와시의 12층 아파트의 9층인데 지진이 나서 일어나보니 그렇게 크고 높은 아파트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거실에선 냉장고가 지진에 흔들려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고 집안 곳곳에 세워놓은 장식품들이 넘어지고 미끄러졌다. 잠시 흔들렸다 마는 것도 아니었다. 50초 가량 계속 심하게 흔들렸다. 그날 지진의 강도는 4도였다. 보통 진도 3 정도까지는 전등의 끈이 조금 흔들릴 정도로 약하지만 진도 4도부터는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그렇게 큰 아파트가 휘청휘청 흔들리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때의 공포감을 잘 모른다. 더구나 1∼2초의 짧은 시간도 아니고 50초 가량 흔들리는 것을 직접 느끼다 보면 정말 등골이 오싹해진다. 지축이 흔들려 곧 땅이 꺼질 듯한 기분이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진이 있고 언제 어느 때,어떤 강도로 발생할지 몰라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게 지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집사람이 오랫동안 지진이 심한 미국 LA에 살았던 덕분(?)에 지진에 적응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적응이 잘 안된다. 일본에 산 지 올해 3년째인데 큰 지진은 이번이 3번째다. 나머지는 대부분 진도 3 이하의 작은 지진인데 하도 많아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일본은 지진이 많다보니 모든 건물이 지진에 대비해 튼튼하게 만들어진다. 또 지진에 대비한 TV 프로가 24시간 방영된다. 지진이 나면 이곳에선 TV를 켜도록 돼 있다. TV에선 지진에 대한 정보와 함께 대피요령 등을 알려준다.
수시로 예고없이 방문하는 지진. 그것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나에겐 정말 불청객이 아닐 수 없다.
안정환이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이탈리아무대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뻤다. 월드스타들이 대거 모여 있는 세계 최고의 이탈리아 세리에A에 한국선수가 진출했다는 것은 정말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후배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안정환이 이탈리아에서 성공하려면 주위에서 정말 많이 도와줘야 한다. 곁에서 직접 생활을 챙겨 줄 매니저도 필요하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안정환보다 먼저 이탈리아로 떠났던 나카타의 경우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나카타가 이탈리아로 떠날 때 일본의 언론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다. 이적 과정에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매스컴은 나카타가 이탈리아 현지에서 뛸 때는 더 야단이었다. 각 신문과 방송사 기자들이 현지에서 밀착취재하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매일 보도했다. 신문은 특파원을 파견,한 면 전체를 할애해 그의 사생활까지 빠짐없이 보도했다. 방송에서도 이탈리아리그 전경기를 중계방송했다.
기자들이 대거 파견되다보니 나카타 또한 페루자팀 내에서 위상이 무척 강화됐다. 무엇보다 구단에서 생각하는 게 다르다. 벌떼같이 몰려든 일본기자들이 사무실과 훈련장에서 따라붙으며 집중하고 있으니 “나카타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선수”로 인식해 조심을 했다.
주변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선수도 적응이 빠르다. 나카타 외에 세리에A 베네치아로 이적했던 나나미나 스페인리그에 진출한 조 쇼지의 경우도 마찬가지. 언론이 집중적으로 조명하다보니 선수는 한층 자신감을 갖고,또 혼자라는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
물론 경제사정을 고려해야겠지만 한국도 이젠 ‘해외로 진출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보다 선수에게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안정환이 진출한 이탈리아의 경우 호나우두,바티스투타,비에리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환이가 이탈리아라고 해서 주눅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유럽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우리가 마땅한 루트가 없어 유럽진출의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지난 16일엔 기린컵이 열렸는데 일본 국가대표팀이 아랍에미리트를 3-1로 꺾었다. 일본 국가대표팀으로 나선 선수들의 80%는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들로 짜여져 전력 점검을 했다.
일본팬들은 이번 시드니올림픽 축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예선 D조에 함께 속한 브라질과의 경기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벌써 일본-브라질전의 티켓은 매진됐다는 소식이다. 일본이 브라질전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지난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브라질을 1-0으로 꺾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에도 세계최강을 상대로 ‘반란’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준우승 멤버들을 주축으로 짜여진 일본 올림픽팀은 강하다. 선수 전원이 일본 J리그에서 뛰는 프로선수들로 구성됐다. 팀의 주축이면서도 그동안 부상으로 신음하던 오노 신지가 아랍에미리트전에 선발로 출전,건재를 과시했고 나카무라,이나모토,다카하라 등 젊은 선수들의 기량도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고 있다.
여기에 이탈리아에서 뛰고 있는 ‘일본 축구영웅’ 나카타도 합류한다. 일본인들이 이번 대표팀을 드림팀이라고 부르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와일드카드도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온 상태다. 골키퍼 나라자키(나고야)와 미드필더 핫토리(주빌로) 수비수 모리오카(시미즈) 등을 와일드카드 후보로 놓고 마지막 저울질이 한창이다. 특이한 점은 나카야마 나나미 조쇼지 등 내로라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을 와일드카드에서 아예 배제시켰다는 점이다. 기존에 함께 호흡을 맞춰왔던 선수들을 중심으로 꾸려가겠다는 것이 트루시에 감독의 복안인 듯싶다.
개인적으로 나도 22일 한국 올림픽팀에 와일드카드로 합류한다. 26일 벌어지는 J리그 올스타전에 뛰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생애 첫 올림픽출전에 어느 때보다 큰 기대가 된다.
후배들과 호흡을 잘 맞추고 꼭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리라 스스로 다짐해본다.
개인적으로는 매일 J리그에서 함께 뛰던 선수들과 붙다보니 그다지 색다를 것도 없었고 어렵지도 않았다.
사실 일본은 이번 한-일전에 큰 욕심을 가졌던 것 같다. 시드니올림픽 8강진출과 아시안컵 우승으로 이제 아시아권을 벗어났다고 자신하면서도 한국은 늘 부담스러운 상대로 생각해 왔다. 곧 한국의 벽을 넘어야 진정한 ‘탈아시아’를 완성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이 이번 한-일전에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하지만 직접 게임을 뛰는 입장에서 볼 때 아직 한국축구가 일본축구에 밀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성장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한국축구를 제압할 만한 ‘힘’은 없다고 생각한다. 뒤집어 말하면 최근 위기론에도 불구하고 한국축구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체계적인 투자와 지원이 이어져야겠지만….
그러나 지난 10년에 걸친 일본축구의 빠른 성장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 일본축구의 가장 큰 장점은 폭 넓은 투자로 인해 우수한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많지만 일본은 일정 수준에 도달한 자원이 풍부하고 선수 활용의 폭이 넓다.
한국에도 가능성 있는 우수한 인재들은 많다. 중요한 것은 그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느냐의 문제다.
유망주들의 해외진출도 많이 이뤄져야 하고,강팀과 많이 붙으며 적응력을 키워가야 한다. 한-일전처럼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경기는 보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제공할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큰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반면 유럽이나 남미의 강팀들과 경기를 많이 치르다보면 힘은 들어도 자신감이 붙게 된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도 강팀과의 대결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할 듯싶다.
일본선수들의 겨울휴가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기간이 길 뿐만 아니라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한국과는 차이가 많다.
한국에서의 연말연시를 떠올리면 모임이 많아 이리저리 불려다니기 바빴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일본의 연말연시는 대체로 차분하다.
떠들썩한 모임보다는 대개 가족과 함께 조용하게 연말연시를 보낸다. 모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몸이 망가질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한국사람들은 으레 모임하면 술이 곁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임=술자리’로 통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에게 휴가를 많이 안 주는 이유도 이러한 측면이 크다. 즉 모임이 잦은 연말연시에 휴가를 많이 줬다가는 몸이 망가져 오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겨울 휴가가 보통 한달 이상이다. 12월에 벌어지는 일왕배에서 소속팀이 탈락하면 그때부터 휴가를 시작해 이듬해 1월 말까지 개인휴가를 갖는다. 일본선수들은 대부분 조용하게 휴가를 보낸다. 1년 내내 치열하게 뛴 만큼 겨울엔 철저하게 휴식을 취하며 다음 시즌을 위해 차분하게 준비한다는 의미다.
휴가를 보내는 방법도 다양하다. 일부 선수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유럽으로 날아가 여행도 하고 빅리그를 둘러보면서 선진축구를 공부하고 돌아온다. 또 일부는 따뜻한 지방으로 날아가 개인훈련하는 선수들도 많다. 대개 이들은 해외에 캠프를 차리는데 개인 피지컬 코치를 1∼2주일씩 고용,몸을 만든다.
그리고 1월 말이나 2월 초부터는 팀훈련에 들어가는데 각자 몸을 만들어오기 때문에 훈련을 소화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이들은 모두 철저한 프로의식으로 무장돼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몸을 만드는 데 익숙해 있다.
이제 한국축구도 한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타율보다 자율에 더 초점을 맞춰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속팀(가시와 레이솔)은 2일 가고시마로 2주간 전지훈련을 떠났다. 또 나는 3일 대표팀이 훈련하고 있는 오만으로 출국한다. 바쁜 시간들이지만 항상 잊지 않는 것은 지금 몸을 잘 만들고 준비를 해둬야 시즌 때 잘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프로팀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요즘 전지훈련이 한창이다. 일본팀들의 겨울훈련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훈련하는 방식이나 훈련량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추운 겨울에 국내에서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따뜻한 곳을 찾아 호주,유럽,일본으로 해외전지훈련을 가지만 일본팀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전훈을 소화한다. 미야자키,가고시마,이시가키,고덴바 등 따뜻한 지역이 많아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일부팀은 호주나 유럽에 가곤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이마저도 잘 가지 않는다. 호주는 날씨는 좋지만 스파링팀들이 너무 거칠고 유럽은 현재 시즌이 한창이라 연습게임상대를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의 전지훈련에서 가장 큰 차이는 역시 기간이다. 일본은 대개 전지훈련을 가더라도 짧게 간다. 길어야 2주 정도고 대부분 열흘 안팎으로 떠난다.
사실 전지훈련이 길어지면 능률이 떨어진다. 한국은 대부분 최소 3∼4주씩 전지훈련을 떠나는데 너무 길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져 비효율적이 된다. 일본은 대신 기간이 짧지만 알차게 계획표를 짜 훈련효과의 극대화를 꾀한다.
또 하나는 다른 점은 바로 연습경기다. 일본은 겨울 훈련 도중 연습경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근육이 굳어 자칫 부상당할 위험이 많기 때문에 가급적 연습경기를 자제한다.
하지만 한국은 동계훈련의 강도도 셀 뿐 아니라 연습경기가 너무 많다. 때문에 동계훈련 중 부상선수가 속출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렇게 동계훈련을 많이 하고 연습경기를 자주 하면 시즌 초반에는 반짝할지 몰라도 시즌 중반 이후에는 무척 피곤하다. 일본은 이런 면에서 철저하고 합리적이다. 겨울훈련 때는 최대한 부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훈련량을 조절하며 게임도 가급적 자제한다.
많은 훈련과 반복된 연습경기만이 능사라는 한국팀들의 사고방식도 이제 조금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특히 선수들이 다치기 쉬운 겨울에는 말이다.
이번 겨울은 국가대표팀에 뽑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정신없이 보냈더니 무척 짧게만 느껴진다. 그런 때문일까. 10일 J리그가 개막돼 벌써 올시즌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방학 내내 놀고도 개학을 앞두고 진한 아쉬움이 남는,학생 때의 그런 기분이다.
오늘은 J리그 개막에 맞춰 우리 팀을 소개해 볼까 한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J리그 경기를 많이 접할 기회가 있는데,가시와팀의 다른 일본선수들의 면면을 잘 안다면 경기를 보는 데 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먼저 사령탑은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니시노 감독이다. 평소 많은 훈련을 시키는 대표적인 용장 스타일이다. 지난 96애틀랜타올림픽 때 브라질을 꺾으며 일약 일본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공격라인의 기타지마(23)는 지난해 18골을 터트리며 득점 2위에 오르고 국가대표팀에도 뽑힌 신세대 골게터다. 성격이 명랑하고 밝은 기타지마는 올해 선홍이와 좋은 호흡을 맞출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 묘진(23) 역시 지난해부터 두각을 나타내 국가대표에 발탁된 선수다. 가시와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톱스타로 주목받고 있는데,그는 체력이 좋고 부지런한 스타일로 우리팀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살림꾼이다.
가시와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영스타는 공격형 미드필더 오노(23)다. 역시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지난해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오노는 최근 국가대표팀에 처음 뽑혔는데,체력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해 트루시에 감독이 주목하고 있는 선수다. 또 골키퍼 미나미(22)는 99나이지리아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이 준우승을 차지할 때 주역으로 뛰었다.
이밖에 3-5-2시스템에서 나와 함께 수비를 담당하고 있는 좌우수비는 경험 많은 사쓰카와(29)와 와타나베(29)가 맡고,양사이드에는 히라야마(23)와 미쓰(27)가 뛰고 있다.
일본선수들과는 대체로 호흡이 잘 맞는다. 서로 얘기도 잘 통하고 사이가 좋다. 이 때문에 올해는 어느 해보다 우승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우승 타이틀에 은근히 욕심이 나기도 한다.
지난 10일 J리그 개막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 축구복권은 첫회부터 1억엔짜리 당첨자를 2명이나 배출,그동안 축구를 모르던 사람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00엔(약 1,100원)짜리 복권이 일거에 백만장자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한 것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 축구복권은 지난 한주 내내 화젯거리였다. 선수들이나 팀 관계자는 직접 복권을 구입할 수 없지만 가족에게는 허용돼 주변에 축구복권을 산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반응은 한결같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13경기 중 최소 11경기 이상을 맞혀야 상금을 받을 수 있는데,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특히 J리그는 유럽과 달리 무승부를 맞히기가 무척 어렵다. 유럽의 경우 정규 90분 안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무승부로 처리하지만 일본은 90분 안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30분간 골든골제 연장전을 치른다. 이 때문에 무승부를 점치는 게 쉽지 않다.
축구복권이 발매되면서 관중도 크게 늘었다. 물론 개막전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지난 10일 경기에는 정말 많은 관중이 축구장을 찾았다. 가시와 레이솔의 경우만 해도 창단 이후 최초로 개막전 티켓이 매진됐다고 한다.
축구복표가 시작되면서 선수들도 정신무장을 새롭게 다지고 있다. 우리팀의 승리를 점친 팬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각오다. 이번 시미즈와의 개막전에도 우리팀의 승리를 점친 축구복권이 56%나 됐다.
한국도 오는 9월부터 축구복권을 시행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6개월 가량 먼저 시행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J리그 이사회에서 나온 공식적인 얘기이고,말을 아끼고 일처리에 신중한 일본인의 속상상 분명 가을 리그 개막을 관철시킬 것으로 보인다.
J리그를 유럽시즌에 맞추면 외국인선수의 영입에 플러스가 크다고 판단해 가을 개막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일본과 시즌이 다르게 될 한국은 J리그 진출이 힘들 전망이다.
일본이 유럽시즌을 따르려는 것은 세계적인 축구 흐름을 따라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일본이 가을에 시즌을 개막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가장 큰 걱정거리로 날씨를 떠올리겠지만 잘 따져보면 문제가 전혀 없다. J리그 팀들은 북쪽 삿포로를 연고지로 하고 있는 삿포로 콘사도레클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쿄 부근이나 그 아래에 있다.
도쿄만 해도 겨울에 운동을 아예 못할 정도로 춥지는 않다. 한국의 FA컵격인 일왕배만 해도 12월에 막바지 토너먼트를 해 매년 1월1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결승전을 치른다. 12월이나 1월에 축구를 할 수 있을 만큼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 또 일본의 프로축구 개막이 매년 3월 초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 3월의 날씨는 축구하기에 좋다. 결국 겨울 추위가 반짝하는 2월만 피하면 된다는 얘기인데 이 또한 문제될 게 없다. J리그는 전·후기로 나눠 치러지기 때문에 2월에는 중간 휴식기로 정하면 된다. 올해도 독일 분데스리가의 경우는 추운 날씨를 고려,1월 한 달간 쉬었다.
또 일본의 후쿠오카·미야자키 등 남부지방은 날씨가 따뜻하기 때문에 한겨울에는 장소를 옮겨서 치를 수도 있다. 지난주 가시와는 당초 삿포로와의 원정경기가 잡혀 있었는데 삿포로시가 추워서 따뜻한 남부 고치시로 옮겨 경기를 치렀다.
한국도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가을에 개막하는 것이 좋겠지만 날씨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엄청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일본의 가을 리그 개막추진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 것으로 일본에 또 한 단계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일부에서는 트루시에 감독의 해임설이 나오기도 하고 차제에 대표팀의 전술이나 선수구성을 달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98프랑스월드컵 때 우리도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이번 프랑스전에 뛴 일본선수들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한두 수 앞선 상대팀과 뛸 때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무척 힘겹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당시에도 3골,4골 들어가니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대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대표팀이 무너진 후 일본의 한 스포츠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때 내가 한 얘기는 지금 일본대표팀은 너무 젊은 선수로만 구성돼 있기 때문에 게임의 완급을 조절하고 팀을 노련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베테랑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우라,이하라 등 구체적인 선수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는데 베테랑이란 얘기를 듣고 일본기자가 자의적으로 몇 명을 집어넣은 것 같다.
사실 한 팀을 너무 젊은 선수위주로 구성하는 것은 좋지 않다. 패기나 신선함은 좋지만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 위기관리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장선수 위주로 팀을 구성하는 것도 안 좋다. 프랑스월드컵 때 독일이 무너진 것도 너무 노장위주로 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노장과 소장을 얼만큼 잘 조화시키느냐다. 그것이 감독의 역량이다. 베테랑과 신예들을 잘 조화시켜 장점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감독의 역할인 것이다.
보통 한 팀 11명에는 베테랑 2∼3명,신인 2∼3명이 적당하다고 본다. 베테랑과 젊은 선수는 도와주는 차원이고 팀승리를 결정해주는 것은 역시 중간급이 해줘야 한다.
그 동안 일본은 젊은 선수들로 좋은 성적을 내왔다. 99년에는 19세 이하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뒀고 지난해에는 23세 이하가 주축으로 뛴 시드니올림픽에서 8강에 올랐다. 지금의 국가대표팀도 바로 이때 성적을 냈던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다.
이번 일본의 프랑스전 참패는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은 모험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오노는 지난 99년 19세 이하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준우승을 이끌며 일본 축구의 영웅으로 혜성같이 떠올랐던 선수다. 98년 아시아청소년대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오노는 언론에서 미우라-나카타를 뒤이을 일본 축구의 간판스타로 치켜세워졌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터인가 성장이 멈춘 듯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주목받던 선수가 대표팀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시고 있다. 오노는 지난주 스페인전에 대비해 발표한 28명의 국가대표 예비명단에서 또 제외됐다.
상대팀에 따라 대표팀 구성을 달리하는 일본은 이번 스페인전에 대비,체력과 신체조건이 좋은 선수를 우선 선발했는데 평범한 체격에 최근 들어 평범한 선수가 전락해버린 듯한 오노는 제외됐다.
오노로서는 두 번째 탈락이다. 그는 지난해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팀에 합류했지만 마지막 최종 엔트리 22명에는 들지 못했다. 이름 값도 소용없었다. 트루시에 감독은 포지션 경쟁에서 오노가 밀리자 과감히 빼버렸다. 오노는 아시안컵을 통해 절치부심 재기하는 듯했지만 이렇다 할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머리까지 삭발하며 각오를 다졌으나 성장이 멈춘 듯한 그에게 대표팀은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았다.
오노의 영광과 좌절은 나이가 들수록 선수들의 몸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워준다. 한국에서도 중고-대학 때까지 잘 나가던 선수들이 프로에 와서 엉망이 되는 경우를 많아 봤다. 반대로 청소년 때는 못했지만 대학이나 프로에 와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도 많았다.
일본에서도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한창 이름을 날리던 마에조노가 중간에 감독과의 트러블 등으로 몸 관리에 소홀하다 포르투갈 브라질을 전전한 뒤 올해 다시 J1 리그 도쿄 베르디에 입단,재기를 노리고 있다. 오노와 마에조노의 경우는 본인 스스로의 관리와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일본대표팀이 시끄럽다. 지난달 프랑스에 0-5 참패를 당한 뒤 계속 뒤숭숭하다. 최근에는 트루시에 감독과 선수들간에 마찰이 일기도 했다. 수비수 모리오카가 트루시에 감독의 모욕적인 질타에 화가 나 스파이크를 집어던지며 대표팀을 떠나기도 했다.
내가 현재 선수라는 입장을 떠나서 이러한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볼 때 아무래도 선수보다는 감독의 마음이 조급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감독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세계청소년대회 준우승,시드니올림픽 8강,아시안컵 우승 등 한창 잘 나가던 대표팀이 아무리 프랑스라지만 5골차 영패를 당했으니 감독 자신도 큰 충격을 받았을 터이다.
더구나 오는 25일에는 프랑스 못잖은 강팀인 스페인과의 일전을 남겨두고 있으니 현재 얼마나 큰 부담을 갖고 있을까는 쉽게 짐작이 간다. 스페인전에서마저 대패한다면 자신의 운명조차 불투명하게 될 판이니….
하지만 지도자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선수들의 플레이가 기대치에 못 미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흥분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선수들로부터 존경과 믿음,그리고 의욕을 이끌어내는 지름길이다.
감독이 사소한 일에서 짜증부터 낸다면 선수들은 실망을 느낄 것이다. 트루시에 감독은 지금까지 일본대표팀을 이끌고 잘해 왔지만 가끔 어려울 때마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경우다.
그러나 강하면 오히려 부러지기 쉬운 법. 급할 때일수록 차분하게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계적 명장이라는 트루시에 감독이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지 궁금하다.
일본대표팀의 트루시에 감독은 3일 나고야-C오사카전을 관전한 뒤 나고야 사내에서 아이치현 축구협회 관계자 150명을 상대로 강연회를 가졌다.
강연회에서 트루시에 감독은 일본선수들의 해외진출 필요성을 역설했다. 트루시에는 “일본 대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거의 모두가 외국에서 플레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전제한 뒤 “브라질에서는 700여명이 해외에서 도전하고 있고,카메룬 대표는 100%가 유럽에서 뛰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지적했다. 더불어 파라과이로 이적한 히로야마에 대해 ‘훌륭한 도전’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날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넘게 열변을 토한 트루시에 감독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달 프랑스에 0-5로 패하고 스페인에도 졸전 끝에 0-1로 패했으니 그 심정은 오죽 답답할까. 더구나 올 초에는 “2002월드컵에서 일본을 우승시키겠다”고 호언까지 했던 그였으니….
트루시에 감독의 말은 100% 옳다고 본다. 월드컵처럼 큰 대회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려면 일단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동양권에서는 아무리 잘 해도 한계가 있다. 유럽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뛰며 배워야 진짜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도 유럽진출을 성공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아직도 깊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나 대신 후배들이 유럽에서 도전정신을 갖고 뛰고 있으니 흐뭇하기만 하다.
일본에도 유럽에 통할 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그렇지만 대체로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웬만하면 안주하려는 성향이 짙다. 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한 상태에서 움직이려는 것도 문제다. 한국선수들처럼 일단 부딪치고 보겠다는 모험정신이 약하다. 현재 일본은 나카타,니시자와가 유럽에서 뛰고 있지만 나나미,조 쇼지 등이 얼마 못가 되돌아온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결국 투자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홍명보의 J리그통신] 일본 “우리 수준 알고싶다” 열기 후끈
2001년 05월 11일 (금)
일본이 오는 30일 개막하는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앞두고 벌써부터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예매 문화가 정착돼 있는 일본은 이번 대회 입장권이 이미 몇 달 전에 매진돼 그 뜨거운 관심과 열기를 반영하고 있다. 예매보다는 경기 당일 분위기에 따라 현장에서 표를 많이 사는 한국과는 큰 차이가 나는 축구문화다.
일본인들이 이번 대회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각 대륙의 챔피언들이 총출동하는 세계적인 대회라는 것보다는 일본대표팀이 이런 큰 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에 관심이 쏠려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최근 2차례 유럽팀들과 평가전을 펼쳐 참패를 맛보며 세계의 벽을 절감했다. 프랑스에 0-5로 패했고,스페인에는 이렇다 할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0-1로 졌다.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8강과 아시안컵 우승으로 ‘탈아시아’를 선언하며 다소 오만했던 일본으로선 충격적인 연속 패배가 아닐 수 없었다. 자연 트루시에 감독의 입지도 무척 위태로워졌다. 98프랑스월드컵 뒤 일본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승승장구하던 트루시에 감독은 이번 대회에 자신의 감독직을 걸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였다. 올 초 가진 기자회견 때 “2002월드컵에서 우승에 도전하겠다”며 자신만만해 하던 그 감독이 말이다.
급하기는 일본축구협회도 마찬가지다. 협회는 무리해가면서 이탈리아서 뛰고 있는 나카타(AS 로마)를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 리그 우승이 걸린 절박한 상황의 AS 로마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협회는 “공격에 대안이 없다”며 나카타의 호출을 강행하고 있다.
물론 한국도 이번 대회가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나란히 출전하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어떤 성적을 거둘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