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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J리그 통신] 일본에 대한 과민반응 한국축구에 도움 안돼
2001년 06월 15일 (금)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은 준우승을 차지했고,한국은 예선탈락을 했다. 다시 한 번 국내에서는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를 비교·분석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한국은 떨어지고 일본은 진출했다’라는 식의 단순 비교는 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경기는 국민적 관심사다. 과거의 수모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은 일본에만은 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지금도 나를 포함한 한국 선수들은 일본하고 붙으면 얼마든지 자신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본이 비록 컨페드컵에서 결승에 진출했고,최근 국제성적이 한국보다 앞선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일본한테는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체격적인 면이나 기량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 또 일본과 경기를 갖게 되면 이를 꽉 물고 임할 정도로 정신무장을 하는 것도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뒤지지 않는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일본에 대한 과민반응과 얽매임이 한국 축구발전을 저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냉정하게 말하면 일본은 한낱 아시아의 상위권에 있는 팀에 불과하다. 축구가 점점 국제적인 스포츠로 발전해 나가는 마당에 일본과의 비교 우위를 따지면서 이겼을 때는 우쭐해지고,졌을 때는 침울해지는 식의 모양새는 이제 사라졌으면 좋겠다. 일본도 다른 나라의 대표팀과 같은 위치에 놓고 냉철하게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족적인 정서를 버릴 수는 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비분강개할 것까지는 없다.
?아르헨티나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19세 이하 일본대표팀이 28일 쓸쓸히 귀국했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예선전적 1승2패의 부진한 성적에 그치며 조 최하위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지난 대회에서 일약 준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던 것과는 명백히 비교가 되는 성적이다.
?일본은 예선전에서 호주,앙골라에 각각 0-2,1-2로 패해 일찌감치 예선탈락이 확정됐으며 마지막 체코전에서 3-0으로 이기긴 했지만 이 역시 16강진출을 확정지은 체코가 2진급 선수를 기용한 덕분에 거둔 승리였다.
?내심 지난 대회 준우승의 기세를 몰아 또 한 번 청소년대표 반란을 꿈꿨던 일본팬들로서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난 99년 나이지리아대회 때 뛰었던 선수들이 역시 최고였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당시 주축멤버였던 오노 신지,모토야마,이나모토,다카하라,미나미,야나기사와 등은 이젠 일본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훌쩍 성장했을 정도다.
?사실 이들은 99년 대회에 나갈 때도 당시 프로무대에서 주전으로 뛸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물론 지금도 다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J리그 톱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반면 이번 대회에서 예선탈락하고 온 선수들은 프로에 명함을 제대로 내미는 선수들이 별로 없다.
?흔히 축구에서는 ‘역대 최강’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뛰어난 선수들이 무더기로 배출돼 팀을 이룰 때 주로 쓰는 표현인데 요즘 일본대표팀을 보면 꼭 그런 것 같다. 나이가 어려 가능성도 무궁무진할 뿐더러 기량도 매우 뛰어나다.
일본대표팀이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대표팀의 성장은 그 동안의 꾸준한 투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초부터 100년 대계의 큰 틀 아래에서 기초부터 꾸준히 투자한 덕분에 지금에야 비로소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나저나 아시아지역 예선탈락으로 이번 세계대회 출전권조차 얻지 못한 한국팀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요즘 일본은 무척 덥다. 얼마전까지는 장마의 영향인 듯 간간이 비가 내리더니 최근에는 비도 오지 않고 뜨거운 태양만 작렬하고 있다.
이런 날씨에 선수들은 죽을 맛이다. 뜨거운 땡볕 아래 훈련한다는 것이 결코 녹록잖다. 훈련이 많기로 소문난 우리팀도 요즘에는 훈련을 2번에서 하루 1번으로 줄였다.
올해 초반에는 국가대표와 소속팀을 번갈아가며 뛰다보니 무척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푹 쉬어야 할 겨울에 오랫동안 대표팀에 합류해 대회를 치르느라 몸이 많이 피곤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컨페더레이션스컵을 마치고 틈틈이 쉬다보니 체력적으로 많이 회복됐다. 일본에서는 여름이라고 해서 특별히 보양식을 먹지 않는다. 한국선수들은 흑염소나 개소주,그리고 각종 한약을 많이 먹지만 일본선수들은 도핑테스트 때문에 한약은 엄두도 못낸다. 물론 한약이라고 해서 꼭 도핑테스트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불안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큰 대회에 나갈 때면 몇달 전부터 한약을 먹지 못하게 한다.
대신 집에서 꼬박꼬박 밥 잘먹는 것으로 보양식을 대신한다. 가시와 시내에 한국식당이 있어 가끔 삼계탕을 먹기도 하지만 외식을 자주하기보다는 집에서 요리를 잘 해먹는 것으로 대신한다. 무조건 고기만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일본선수들도 여름이라고 해서 특별히 보약이나 보양식을 찾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소식을 하기 때문에 밥도 많이 먹지 않는다. 음식의 중요성을 크게 못느낀다고나 할까.
대신 이들은 비타민류를 즐겨 먹는다. 비타민은 음료수에 타서 먹는 종류인데 대부분 선수들이 식사 후 물이나 음료수에 비타민을 녹여 먹는다.
한국에도 이제 불볕더위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여름을 잘 나는 것이 어느덧 매년 큰 일이 돼버린 느낌이다.
최근 일본 선수들의 유럽러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축구의 영웅’으로 불리는 나카타를 비롯해 오노 신지,니시자와,이나모토 등 J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모두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페루자에서 시작한 나카타는 지난 시즌 AS 로마로 옮겨 리그 우승을 맛본 데 이어 이번에는 99∼2000시즌 우승팀인 명문 파르마로 이적했다.
컨페더레이션스컵을 통해 부쩍 성장한 오노 신지도 네덜란드 페예누르트팀에 입단했고 이나모토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로 이적했다. 여기에 지난 시즌 스페인 에스파뇰팀에서 임대로 뛰던 니시자와도 프리미어리그 볼턴으로 팀을 옮겼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외국선수가 입단할 때는 자국 국가대표팀에서 75% 이상 주전으로 뛰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어 이나모토와 니시자와의 영국 입성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일본선수들의 해외진출을 보다보면 한국과 차이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일본의 경우 선수가 원하면 구단측이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 또 일본축구 발전을 위한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유학 1세대인 미우라와 나카타 모두 스폰서의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 진출에 성공했다.
또 오노 신지의 경우 소속팀 우라와 레즈의 인기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선수지만 장래를 위해 흔쾌히 외국진출을 허용했고,세레소 오사카는 ‘좀더 큰 물에서 배워보고 싶다’는 니시자와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스페인 진출을 적극 주선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여건은 아직도 답답한 상태다. 물론 선수는 구단의 재산이지만 좀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처럼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할 축구 후진국에서는 좀더 많은 선수들이 축구 선진국으로 나가 많이 배워와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 후배 안정환의 이탈리아 진출문제가 답보상태에 있다는 소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일단 중요한 것은 선수가 이탈리아에 다시 나가는 것이다. 구단도 선수도 욕심을 버리고 일이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좀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만약 때를 놓친다면 선수는 인생을 망치고 구단도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네덜란드 1부리그 페예노르드팀에 입단한 오노 신지(22)에 대한 일본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오노 신지는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선수인 만큼 네덜란드에서도 잘 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26일에는 네덜란드에서 가진 성대한 환영행사가 각 매스컴으로부터 크게 보도됐다.
이날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데카이브 스타디움에서 가진 페예노르트 팬 감사이벤트에서 오노 신지는 행사 도중 다른 신인선수 5명과 함께 헬리콥터로 등장,관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온다는 기획도 ‘깜찍’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날 행사에 무려 5만명이나 운집했다는 사실이다.
유럽이야 워낙 축구 인기가 좋아 그렇다지만 사실 이런 서포터스 행사라면 일본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일본은 매년 정기적으로 2∼3회씩 팬 사은행사를 열어 선수들과 서포터스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이런 행사에는 인기구단의 경우 5,000명 이상의 많은 팬들이 찾아오는데 인기가 없는 팀이라도 최하 2,000∼3,000명은 찾아온다. 유럽 못지않게 일본도 이제는 고정 서포터스들이 많다는 얘기다.
한국의 서포터스들이 대개 학생들로 구성돼 있는 반면 일본은 연령대가 다양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줌마,아저씨 부대로 30대 이상의 어른들이 젊은이들보다 훨씬 많다. 유니폼을 차려입고 아이들을 동행한 이들은 젊은 서포터스 못지않게 90분 내내 일어서서 깃발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부르고,박수치며 선수를 격려해준다. 이들 가운데는 원정경기에도 꼬박꼬박 따라다니는 열혈 서포터스들이 많은데 원정경기에도 보통 1,000∼3,000명씩 꼭 따라온다.
이런 ‘고정 관객’이 있기 때문에 J리그는 한국처럼 관중수가 매년 들쭉날쭉하지 않고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 서포터스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전형적인 선진국형 스타일이다. 유럽의 경우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도 관중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재력있고 든든한 고정관객이 돼줄 30대 이상의 중장년층을 잡는 데 좀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J1리그는 지난달 21일 전반기 레이스를 마치고 11일 후기리그가 재개될 때까지 20여일간 휴식을 취했지만 이런 땡볕 아래에서도 여전히 숨가쁘게 뛰어온 선수들이 있다.
바로 음지에서 뛰고 있는 J2리그 선수들이다. J2리그는 J1리그와 달리 시즌 내내 경기가 벌어진다. J1리그가 전후기 각각 15게임 등 총 30게임밖에 치르지 않는 반면 J2리그는 일년에 44게임이나 치른다. 전후기 우승팀이 챔피언결정전을 치르는 J1리그와 달리 J2리그는 단일리그로 우승팀을 가린다.
1년에 44게임을 치른다는 것은 좀 무리인 듯싶으나 J리그연맹은 실전을 통해 J2리그팀들의 수준향상을 꾀한다는 목적 아래 일부러 많은 게임을 잡아놓았다.
일본은 지난 97년부터 J리그 백년구상이라는 장기적인 계획 아래 시스템을 모두 바꿔 이처럼 1, 2부리그제로 운영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JFL이라고 해서 실업축구리그가 있었는데 이것은 프로 2부리그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 제도의 특징은 매년 J2 상위 2개팀은 J1으로 승격하고, 반대로 J1의 꼴찌 2개팀은 J2로 추락시키는 선진국형 리그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각 팀들에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J1으로의 편입 여부는 대형 스폰서 유치와 직결되기 때문에 J1팀들은 J2로의 추락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반면 J2팀들은 어떡하든 J1으로 승격하려고 애쓴다.
J2리그라고 해서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J2팀들은 대부분 지방 중소도시를 연고지로 하고 있지만 이젠 지역마다 축구마니아들이 생겨나 어느 정도 관중을 유지하고 있다. 팀당 23차전까지 치른 올시즌 J2리그는 2일 현재 138경기에 총 67만217명이 입장,경기당 평균 4,857명이 들어왔다. 빅게임인 경우 1만명이 넘는 많은 관중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처럼 J2리그가 튼실한 뿌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J1리그도 안정된 기반 속에 탄탄한 성장을 거듭하는 것이다.
1부리그팀도 고작 10개에 그친 데다 2부리그는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한국으로서는 언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스럽기만 하다. 한국도 늦기 전에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홍명보의 J리그통신] 깨지면서 배우는 자세 수비위주 日보다 좋아
2001년 08월 17일 (금)
국가대표팀이 체코에 0-5로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순히 결과만 놓고 본다면 뭐라 할 말이 없다. 뒷걸음질치는 한국축구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유럽팀과의 경기는 선수로서 버거운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체격적인 열세에서 오는 자신감 부족이 가장 크다. 그렇지만 역대로 유럽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한 적도 많다. 빠른 스피드나 조직력 등 우리의 장점을 잘 살린 플레이를 펼친다면 그렇게 난공불락만도 아니다.
체코에 5골 차로 대패했지만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번 체코전은 평가전이다. 2002월드컵 본선을 위한 준비단계일 뿐이다.
비록 골차이가 5골이나 났지만 그것은 단지 골을 먹지 않겠다고 수비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맞불작전으로 맞서 한 수 배워보겠다는 과정에서 허용한 골이다. 일본팀의 경우 올해 2차례 유럽 원정(프랑스,스페인)을 다녀왔지만 공격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맥없는 플레이를 보여줬다. 최대 8명이 수비를 볼 정도로 극도의 수비축구를 한 덕에 골을 많이 먹지 않았지만 공격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골을 먹더라도 깨지면서 배우겠다’고 당당하게 맞선 한국축구의 모습이 오히려 더 낫다고 본다.
또 당장 성적도 중요하지만 2002월드컵 이후에도 한국축구는 계속돼야 한다. 그동안 많은 외국인 감독이 다녀갔는데 그들의 가르침 속에서 선수들이 많이 배워왔다.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선진국축구의 마인드를 배운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일본의 경우도 그동안 숱한 축구선진국 지도자들이 다녀간 덕분에 선수들의 생각은 무척 깨어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펠레가 월드사커지에 실은 칼럼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펠레가 한국팀 전력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을 한 것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이 확실히 한국에 앞서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척 유감이다.
펠레는 어디까지나 외부 사람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실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렇게 단정적으로 얘기하면 안된다. 축구협회나 선수,팬들 모두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나온 몇가지 결과와 얘기들을 주워듣고,그런 공개칼럼을 통해 한국축구를 깎아내린 것에 대해서는 선수로서 무척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축구의 저력을 세계 속에 보여줘야겠다는 오기가 나를 자극한다.
지난달 18일 요코하마와의 경기에서 왼쪽 정강이를 다쳤다.그러나 통증은 전혀 없고 당장이라도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구단에서는 절대 휴식을 명령했다.
자칫 무리했다가 더 큰 부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부상 선수를 대하는 것을 보면 한국과 일본의 또 다른 축구문화를 볼 수 있다.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물론 일본이 한국보다 몇 배 낫고 합리적이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 부상이면 보통 경기 출전을 강행한다.부상을 참고 뛰는 ‘투혼’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또 자칫 몸을 생각해서 뺐다간 ‘몸사린다’고 한마디씩 듣게 된다.
감독은 “뛸 수 있느냐”고 물어보지만 못 뛰겠다고 쉽게 얘기할 한국선수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내 경우를 보자.처음 상대 선수와 부딪쳐 정강이를 다치기는 했지만 통증도 크지 않았고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뛰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하지만 만에 하나 걱정이 돼서 구단지정병원에서 X레이 검사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다쳤으니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무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걷지 못한다거나 아프지도 않은데 무조건 쉬라니 나 자신도 답답할 정도였다.
그러나 코칭스태프는 단호했다.병원에서 쉬라고 했으니 출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고 무조건 휴식을 취하라는 지시였다.경기는 물론이고 훈련에서도 제외됐다.
논리는 지극히 당연했다.지금 조금 무리하느니 완벽하게 몸이 만들어 정상 컨디션으로 뛰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하지만 한국에서는 아파도 참고 뛴 경기가 많았다.일본에서는 모든 판단을 병원에서 하는데 비해 한국에선 선수 개인이 하는 경우가 많다.때문에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찍 복귀해 결과적으로 몸이 더 망가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실 며칠 쉬어보니 답답하기만 하다.더군다나 아프지도 않은데 무조건 쉬라니….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하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지금의 부상도 결국 지난 2∼3년간 J리그와 대표팀을 줄기차게 오가며 무리를 한 탓에 찾아온 일종의 피로골절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의 마지막 목표는 2002월드컵이다.당장 무리를 하기보다는 월드컵에 맞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그래도 남들 모두 ‘전쟁터’에서 치열한 전투 중인데 나만 편하게 쉬는 것만 같아 동료들 보기에 미안하기만 하다.
[홍명보의 J리그 통신] 철저한 자기절제·관리 성공의 필요 충분조건
2001년 09월 07일 (금)
일본도 요즘에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것이 제법 가을 냄새를 풍기고 있다.
정강이 부상 때문에 쉬고 있어 조깅 같은 것은 못해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고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일본에서도 철저하게 개인훈련으로 진행된다. 팀에서는 그저 전술훈련만 하지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간섭’하지 않는다. 사실 말 나오기 이전에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잘하기 때문에 굳이 팀에서 간섭할 것도 없다.
대개 클럽하우스가 잘 갖춰져 있는 일본에서는 팀훈련을 마친 뒤 개인훈련을 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한국에서는 클럽하우스가 제대로 없어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가 있는 곳으로 버스로 함께 이동하는 관계로 따로 개인훈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을 볼 때 요즘 개인훈련은 한국보다 일본선수들이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예전 축구선배들은 훈련이 끝난 뒤 혼자 밤 늦도록 개인훈련을 했다는 ‘전설’을 접하곤 하지만 요즘 후배들이 개인훈련을 많이 한다는 얘기는 잘 듣지 못했다. 세월이 바뀐 탓일까.
일본선수들이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온 덕분인지 요즘 일본선수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 체력이나 체격이 무척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일본선수들을 보면 참 자기관리에 철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선수들은 좀 떴다 싶으면 다소 건방져지고 개인훈련에 소홀해 쉽게 망가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는데 일본에서는 웬만해서는 그런 일이 없다. 예전 96 애틀랜타올림픽의 영웅 마에조노가 자기관리 소홀로 쉽게 망가진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일본선수들은 사생활을 잘 절제하는 등 자기관리에 철저한 편이다.
한국은 중·고·대학시절 수시로 합숙 훈련을 하는 등 타율에 길들여진 탓에 기본적으로 항상 튕겨나가려고만 한다. 때문에 프로에 뛰어들어 자기관리 실패로 쉽게 망가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올해로 국가대표 경력이 12년째다.
그동안 월드컵에도 3번 연속 출전했고 A매치도 100회 이상 뛰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게임을 뛰었지만 세계적인 강 팀과 맞대결한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다.월드컵 본선에서야 어쩔 수 없이 강 팀들과 한 조에 포함돼 대결을 펼쳤지만 평가전 등에서 강 팀과 붙은 적이 별로 없다.세계적인 유명클럽팀과도 경기를 해봤지만 대개 주요 선수가 휴가로 빠진 상황에서 맥빠진 게임을 한 적이 많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 등에서 강 팀과 맞대결할 때마다 얻는 것은 많았다.처음에는 상대가 너무 강한 나머지 경기내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의욕상실이 컸다.그러나 상대의 강한 공격을 막아내며 신기하게도 점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맞으면서 커가는 심정이라고 할까.
한국대표팀이 최근 프랑스 체코에 0-5로 대패해 많은 축구팬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너무 걱정할 일이 아니다.오히려 좋은 실험이다.강 팀들에 많이 깨져봐야 그만큼 적응력이 생기는 것이다.
일본도 올해 부쩍 세계적인 강 팀들과의 대결을 많이 하고 있다.일본도 강 팀들과 대결하며 플레이가 많이 좋아졌다.이제 강 팀과 붙어도 플레이가 위축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이것은 J리그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축구가 그동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강 팀들과 대결한 적이 별로 없었다.주로 약한 팀에 승리를 거두며 ‘기분 좋게’ 본선길에 올랐었다.그러나 평가전 상대가 약해 한국이 이기면 팬들이야 기분은 좋겠지만 막상 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에는 좋은 것이 없다.때문에 앞으로 줄줄이 예정돼 있는 강 팀들과의 대결에서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평가전에서의 좋지 않은 결과가 반드시 2002년 월드컵에서 부진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오히려 큰 발전을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요즘 일본축구복권(toto)의 인기가 시들하다.
참가자가 갈수록 줄어들며 매출액도 가파른 하강곡선을 긋고 있다.프로축구 중흥과 월드컵 붐조성을 위해 의욕적으로 도입했건만 발매 첫해부터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2회때 38억엔(약 400억원)에 달하며 피크를 이룬 toto 매출은 이후 급격히 떨어져 지난주엔 발매액이 14억엔에 불과했다. 올초 본격 발매할 때만 해도 toto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그것은 1회 첫 발매에서 1등 1억엔(11억원)의 ‘대박’이 터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경기의 승패를 맞추고 11억원을 횡재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toto 매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게임 결과 맞추기가 쉬워지자 문제가 생겼다. 바로 1등 당첨자가 너무 많이 생기며 배당금도 현저히 낮아진 것.
어렵게 경기 결과를 모두 맞춰 ‘대박’의 꿈에 젖어있는데 상금이 고작 1만엔(11만원)도 안된다고 생각해보라. 실제로 이런 일이 toto에서 일어났다. 지난 8일 J리그 1,2부 14경기 결과를 모두 맞춘 1등 당첨자의 상금은 고작 9,759엔이었다.
이처럼 최근 1등 상금이 1억엔,1,000만엔은 고사하고 100만엔(1,100만원)을 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배당금이 적다보니 대박의 꿈은 날아가고,허탈감마저 안겨주었다. 당초 연간 800억엔(8,800억원)의 매출액을 목표로 잡았던 주최측으로선 발등의 불이 아닐 수 없다.
부랴부랴 게임방식도 바꿨다. 예전 단순한 승무패 맞추기방식에서 90분 승,패,연장 등 3개로 다시 분류해 그 만큼 변수를 늘려놓은 것이다. 일본의 toto는 새롭게 바뀐 이 제도에 사활을 걸고 있을 정도로 요즘 분위기는 좀 심각하다.
한국도 이제 스포츠토토가 본격 출범한다. 일본이 올해 겪은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잘 새겨야할 것이다.
지난 97년 6월. 일본땅에 첫발을 내디딜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하다.
그토록 바라던 해외진출의 꿈을 마침내 이뤘다는 기쁨과 낯선 땅에서 잘 할 수 있을까란 불안감이 묘하게 교차하던 그 때. 그렇게 첫발을 내디딘 뒤 지금까지 일본에서 생활한 지가 꼬박 4년4개월째다. 하지만 이젠 일본생활을 접어야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한다.
올시즌 말 계약이 끝나는 가시와구단엔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옛말에 떠날 때를 잘 알아야한다는 얘기가 있다. 나로선 지금이 바로 그 때인것 같다. 그동안 일본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지금 좋은 모습으로 떠나는 것이 나를 아껴준 일본팬들이나 구단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일단 주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싶다. 올해 가시와팀은 성적이 무척 좋지 않았다. 지난해 후기리그에서 준우승을 거둬 구단과 팬들은 올해 우승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니시노 감독은 성적부진으로 도중하차했다. 감독이 경질된 마당에 팀주장인 나도 당연히 책임을 함께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니시노 감독은 그동안 나를 비롯한 한국선수들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주셨던 분이다. 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주장으로 선임한 그런 니시노 감독이 떠났기에 나또한 함께 책임을 지고 떠나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2002년 월드컵을 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팬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다. 96년 한국을 떠나올 때 나는 분명히 선수생활의 마지막은 한국에서 할 것이라고 팬들과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뜻밖의 부상으로 이제 올해 남은 경기는 뛸 수가 없고 또 한국에서 나의 거취문제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이번 기회에 팬들에게 확실한 나의 입장을 밝혀주기 위해서다.
국내로 돌아간다면 친정팀인 포항으로 가고싶다. 포항은 프로생활을 처음 시작한 구단으로서 내가 클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해외진출도 흔쾌히 허락해준 마음의 고향이다.
지난 4년여간의 일본생활은 정말 많은 것을 배운,인생의 값진 나날들이었다. 구단의 체계적이고 선진적인 선수관리와 잘 갖춰진 시설들,그리고 빠른 속도로 수준높게 성장한 일본축구,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 보고 배울 것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선수 자질은 아직 한국이 더 낫다고 자부한다. 문제는 그 잠재능력을 주위에서 얼마나 잘 키워줄 수 있느냐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일본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축구발전을 위해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일본 국가대표팀 골키퍼인 가와구치가 잉글랜드 포츠머스로 이적했다.
최근 들어 일본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데 유럽만 벌써 5명째다. 그중 까다롭기로 유명한 잉글랜드엔 니시자와(볼튼) 이나모토(아스날)에 이어 3명이 진출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한 맛도 없지 않다. 물론 세계최고의 무대에 진출한다는 것은 아시아 선수로는 영광이다. 하지만 주전으로 뛰지 못하고 벤치로 밀릴 바에야 꼭 그렇게 큰 무대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실제로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뛰고 있는 나카타만이 주전일 뿐 니시자와, 이나모토,오노(네덜란드 페예노르도)는 아직도 제대로 게임을 못뛰고 있다. 물론 이적할 때는 고액의 이적료와 연봉 등 화려하게 치장된다. 그러나 그 이적이 정작 선수 발전엔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꼼꼼하게 따져 봐야한다.
잉글랜드가 경쟁적으로 일본 선수를 영입하는 것도 선수의 기량을 높이 평가하기보다는 유니폼 판매나 관광수입 증대 등 부수적인 효과를 노리는 부분이 더 크다고 한다. 씁쓸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무조건 빅무대로 진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하위리그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으로 곧바로 진출하기가 두렵다면 일본 무대를 거쳐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젠 이적의 권리를 선수가 가져야 한다고 본다. 아직까지 한국에선 선수가 철저히 구단에 묶인 몸이다. 유럽에서는 이적 자유화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이적할 땐 구단 등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의사가 충실히 반영되고 정말 자신의 발전이 될 수 있는 팀과 리그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들 스스로 정보를 많이 찾고 공부해야 한다.
한국에선 K리그가 지난주 막을 내렸지만 J리그는 아직도 한창 진행중이다.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눠 치러지는 일본프로축구는 이제 4게임만을 남겨놓고 막판 순위싸움이 치열하다.
J리그는 올해 축구복권의 도입과 1년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 힘입어 축구인기가 되살아나며 관중동원에도 성공, 지난 몇년간 계속되던 침체에서 탈출했다. J리그는 전반기에 약 200만명이 들어와 경기당 평균 1만7,454명이 입장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후기리그엔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경기당 평균 1만5,000명 동원하는 괜찮은 흥행을 이어오고 있다.
시즌 마감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요즘 팬들은 어느 팀이 우승할 것인가보다 어느팀이 2부리그로 탈락하느냐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16개팀으로 구성된 J1리그는 매년 하위 2개팀이 J2로 떨어지고 J2의 상위 2개팀이 J1으로 승격한다. J1과 J2는 스폰서나 관중동원 등 수입과 인기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기때문에 각팀들은 어떻하든 J1에 잔류하거나 승격하려고 사력을 다한다.
자연 팬들로선 우승팀을 지켜보는 것보다 J1과 J2로 희비가 엇갈리는 팀들을 지켜보는 것에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전기리그에선 주빌로 이와타가 독주한끝에 싱겁게 우승했고 후기에서는 가시마 앤틀러스가 독주하는 등 우승싸움에 큰 재미가 없어 누가 J2로 추락할 것인지에 초점이 더 맞춰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세레소 오사카의 추락이 확실한 가운데 도쿄 베르디,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아비스파 후쿠오카, 산프레체 히로시마가 승점 5차이를 유지하며 추락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처럼 매년 이맘때마다 펼쳐지는 흥미로운 막판 레이스를 지켜보노라면 고작 10개팀에 1,2부리그 승격이나 추락도 없는 K리그는 밋밋하게만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팀수가 늘어야 하는데 현실적인 여건은 그렇지 못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이나 기본 인프라없이 프로축구가 잘 됐으면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스포츠투데이 창간과 함께 본지에 인기리에 연재됐던 '홍명보의 J리그통신'이 26일 홍명보선수가 귀국함에 따라 아쉽게 막을 내리게 됐다. 99년 3월 첫 칼럼을 시작한 J리그통신은 지난 2년9개월동안 일본축구의 생생한 소식을 전해주는한편 선수로서 느낀 점과 생각 등을 솔직담백한 필체로 담아내 축구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래는 그가 일본에서 전하는 마지막 J리그통신.
지난 97년 6월,일본에 첫 발을 내디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반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떠나야할 때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동안 일본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사실 초반엔 고전을 많이 했다.벨마레 히라쓰카 시절엔 일본생활에 적응이 안되고 포지션도 맞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냈다.그러나 가시와로 이적하고부터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다.한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지내다보니 느끼는 점도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다.
마지막 칼럼을 쓰면서 이 지면을 통해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이 있다.첫 번째는 니시노 감독님이다.감독님은 내가 가시와로 옮겨 기량을 활짝 펼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 분이다.오늘도 귀국한다고 하니 아침 일찍 1시간이나 되는 먼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와 배웅을 해주셨다.그는 한국선수들을 사랑했고 나를 믿고 주장의 중책을 맡기기도 했다.그런 니시노 감독이 올시즌 도중 성적부진으로 해임될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감바 오사카의 새 사령탑으로 옮긴 감독님에게 앞으로도 좋은 일이 있길 바란다.
두번 째는 가시와의 금용원(金龍園) 식당식구들이다.재일동포분이 운영하시는 이 식당은 내가 낯선 가시와로 옮겨와 어려울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언젠가 감기가 심하게 들어 열이 40도를 오를내릴 때 손수 밥을 해줬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또 집과 가까이 살며 집안일도 챙겨주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해주셨다.잊지못할 분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동안 J리그통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준 스포츠투데이 독자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부족한 글을 많이 사랑해주시며 성원해주었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앞으로 또 좋은 기회가 돼서 다시 한번 스포츠투데이 독자들과 만날 것을 약속한다.
내년엔 다시 한국무대다.좀 더 나은 홍명보의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줄 것을 약속하며 ‘J리그통신’을 마무리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