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범근의 목표는 당초에는 월드컵 출전이었다.
그러나 1974년과 78년 아시아 최종예선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면서 월드컵을
먼 곳에서만 바라보게 되자 더 큰 꿈을 꾸게 된다. 바로 독일 분데리스가 유럽 선진 축구에 도전장을
내밀기 위해 1978년 연말 혈혈단신으로 독일로 건너갔고, 최하위인 다름슈타트의
신인선수 테스트에 참여했다가 6개월 단기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차범근은 데뷔전을 순조롭게 잘 치렀고, 독일 언론은 동양에서 건너온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안 돼서 차범근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왔다.
한국으로부터 군대로 소환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

당시 국가는 차범근이라는 대형선수가 해외로 나가면 큰 자본의 유출이라고 여겼고
그가 나라와 국민을 버리고 독일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특혜로 5개월을 단축해줬던 군 복무를 마저 이행하게 하고 그를 붙잡아 두려 했다.

결국 차범근은 1979년 1월 한 달여 만에 다시 돌아와 군 복무를 하게 됐지만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 국민들 중에서도 ‘그를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왜 한국은 스타를 키울 줄 모르는가’ 라는 여론이 들끓자 군 복무를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그는 1979년 8월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게 된다.

데뷔전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주간 베스트 11에 뽑혔고, 세 경기 째에 첫 골을
신고한 후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면서 이 때부터 ‘차붐’이라는 애칭을 얻게 됐다.
붐(Bum)은 독일어로 폭발할 때 나는 소리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차범근은 입단 첫 해 12골을 터트렸고, UEFA(유럽축구연맹)컵 결승에서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면서 팀에 사상 첫 UEFA컵 우승을 안겼다.
UEFA컵은 현재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시초가 된 대회다.

그로 인해 그는 ‘갈색 폭격기’란 별명까지 얻는 등 최고의 데뷔 시즌을 치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다음 시즌을 앞두고 독일에서 3번째로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로 등극한다.
이에 그는 1980-81 시즌 팀에 서독 FA 우승컵을 안기며 보답했고,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동안 122경기에 출전 46골을 기록했다.

특히 81시즌에는 레버쿠젠의 겔스도프에게 깊은 백태클을 당해 선수생명에 위기를 겪기도 했다.
차범근의 부상으로 인해 분데스리가에는 선수를 지켜주기 위해 파울을 완화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구단의 재정난으로 1983년 레버쿠젠으로 이적할 때는 프랑크푸르트 팬들을 울음바다로 만들었고,
레버쿠젠에 간 차범근은 하위팀에 머물던 팀을 단숨에 상위팀으로 끌어올렸다.
1985-86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MVP로 선정됐고, 1988년에는 또 한 번의 UEFA컵 우승을 하게 된다.

레버쿠젠은 1차전 패배로 스페인 에스파뇰을 3-0으로 이겨야 연장전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2-3으로 지고 있던 후반 막판 차범근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며 결국 승부차기 끝에 구단 사상 첫 우승컵을 차지하게 됐다.

그의 드라마같은 오랜 축구생활 21년을 끝으로 차범근은 18일 은퇴를 선언한다.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외국인 선수 다득점 1위) - (PK골을 단 한골도 없음)
그 당시 세계 최고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 6년간 2자리수 골 기록
프랑스 풋볼 잡지 세계 축구 4대인물로 선정(펠레,마라도나,바켄바워,차붐)
독일잡지 KIKER 80년대 가장 위대한 선수 선정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
스페인풋볼잡지에서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5인 선정
독일에서 연봉을 세번째 많이 받은선수
80년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
86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 선정
월드사커지 잊을수 없는 100대스타 선정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 선정
첫댓글 헐 근데 74. 78때 아시아 강호는 누구였음?중동인가 ..
이스라엘아니었나요?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이런팀이였지요
그때만해도 중동보단 동남아였다죠... 대표적으로 태국, 말레이시아, 버마. 당시 어른들 말씀 들어보면 한국과 실력이 거의 동등했다죠. 당시엔 차범근 없었으면 아시아 최강 되기 힘들었죠.
이스라엘?
ㅇㅖ상 ㅎㅎ
유럽챔피언스리그의 시초가 아니라 유로파컵의 시초가 된 컵 아닌가요 ?? 그당시 챔스는 각 리그의 1위들만 갈수있었던 대회라던데 유로파의 시초일듯 챔스의 시초면 아시아인 최초로 챔스 결승전 출전한 선수가 되는건데
저때도 챔스있었음 지금보다 유로파컵이 더 어렵긴했지만
저당시에도
챔스가 더 권위있는대회엿음
그니깐요 . 당연하죠 리그 1위들만 나갈수있던 대회니
저 당시에도 지금의 유로파컵, 챔피언스리그가 있었는데 더 큰 대회는 지금의 유로파컵이였음
1위기록 꺠진걸로 암
마카이 인가.. 누가깻더라
뭰헨에서 뛰었던 브라질의 에우베르(elber) 선수가 깨지 않았나요??
스위스의 샤퓌자한테 깨졌습니다. 샤퓌자의 기록을 에우베르가 또 경신했구요.
ㄷㄷㄷㄷㄷㄷㄷㄷ
분데스리가 mvp 아니에요 ㅡ.ㅡ
세계축구 best11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 이런거 다 구라임
그리고 솔직히 말이 안되는게
세계 4대축구인물이라는데
그당시 지코 플라티니 반바스텐 클린스만 같은 선수를 제치고 저기 선정된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되는지
저것도 신용이안감
다 구라에요 진심?....
다구라는아니죠
근데 몇가지는 의심쩍은게 좀잇어요
그걸 제외해도 충분히 대단한선수인데
박지성이 24살때 5대 축구선수뽑혔던거랑 비슷한거 아닌가..
미츠하시다카시 상
참.. 인터넷에 다떠도는걸 만년 부정하시네.. 30년전 일이라 증거를 찾기도 뭐하지만 저게 틀리다는 증거는 있음? 말이안된다는건 님의 추측일뿐이죠, 그래도 꼭 알아야겠다면 차붐한테 직접 물어보시던가요 -_-
마츠하시다카시님 확실히 알고 말해주셨으면..
그당시 분데스리가가 최고의 리그였다는건 다 아는 사실이죠. 차범근은 거기서 베스트11에 뽑혔습니다. 세계축구 베스트11은 아니더라도 최고의 외국인 선수는 맞죠. 득점왕은 차지 못했지만 수많은 골 득점 루트가 차범근과 함께 이루어졌구요. 최전방스트라이커와 윙포워드를 번갈아가며 플레이 했으니 요즘으로 보면 테베즈 정도급의 인지도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떠도는 것 중 몇 개는 부풀려진 거 있다고 하네요.
지금으로 따지면 한 루니정도인 선수였나요?
지금의 드록바같은 선수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지금 나오는 배경음악 제목이 뭔지 아시는분??
진주만 ost에요 t로 시작하는거였는데 제목은 까먹었네요 ㅎㅎ
으아 쩐다.....
지금은 불가능 이젠 발롱도르 받아도 군대가야댐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