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앵두 멍석 / 심상숙
심상숙 추천
앵두 멍석
심상숙
뒷간 뜰에 앵두가 붉어가는데
까만 밤에 까만 교복으로 몰려든
소자 언니 친구들
앵두나무 밑에서 오줌을 누었다
나뭇가지 후드득 떠들썩,
종근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소자 언니와 종근이 큰언니는 싸워서
말을 오래 끊었다는데
그래도 문상은 가야 한다고,
4.19 나기 전, 내가 초등 사오 학년쯤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문상 갈 갈래머리 언니들 따라 노래 불렀다
소자 언니는 할머니 아랫배에 얹을
납작 돌을 풍로 불에 달구고 있었다
깜깜한 마당에서 커다란 앵두가 발갛게 익는 것 같다
소자 언니네도 몇 해 전 괴산경찰서장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그 사이 앵두 가지는 열매 다 떨구고
시커멓게 솔기 터졌다
이런,
나는 아가 동생 다섯을 데 불고 앵두 멍석을 깔아야 했는데
노래만 따라 부른 거다
문상 다녀온 저녁,
소자 언니와 종근이 큰언니는 서로 말을 텄을까?
궁금증이 별이 되어 앵두 바구니에 쏟아졌다
오줌 누던 언니들 지금쯤 빨간 입술로 어딜 나다닐까
* 박재홍의 트로트 '유정천리' 中 (1959)
[작가소개]
심상숙, 추계예대 문창과 졸업(2018), 『시와소금』 으로 등단,
《광남일보》 신춘문예, 여성조선문학상, 목포문학상, 김장생문학상, 김포문학상, 『문예 바다』 공모 시,
올해의좋은시500 「돌배나무가 건넨 목간 」( 2022),
올해의좋은시500 (331번)「아미蛾眉, 붉은 등을 켜야 할 것이어서 」( 2024),
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회원, 시쓰는사람들 동인, 시포넷 동인
[시작 노트]
어린 필자는 어떻게든 동생들에게 앵두를 따 먹여야 했는데 필자는 어느 바람에 어떻게도 노래에만 한눈을 팔게 된다. 그믐밤 깜깜한 마당 한가운데 납작 돌이 풍로에서 앵두처럼 발갛게 달궈지는 저녁이다. 까만 교복 입은 문상 갈 언니들 틈에서 새 유행가를 흥겹게 따라 부른다. 아직 따지 못한 앵두 가지는 그사이에 다 헐벗어 터진 솔기만 남긴다.
다툼 끝에 말을 끊은 친구 사이라도 문상은 해야 마땅하다는 예절이 있었다. 언제나 인간관계는 중하여 화해할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했겠다.
지나간 옛이야기는 빛바랜 무늬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수밖에 없는 우리들 생에 대한 그리움, 바로 그것이다.
글 : 심상숙(시인)
( 2024.11.20 김포미래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