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거님 길
음력 시월 보름을 앞둔 일요일은 고향 선산과 재실에서 시제를 지내는 날이다.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큰형님께 전화를 넣어 이번은 빠짐을 양해 구했다. 이웃 아파트단지에 사는 재종 아우가 운전하는 차량에 동승해 가려했는데, 아우가 다른 일이 있어 갈 수 없다고 해서다. 집안의 당숙과 같은 항렬과 조카들이 여럿 있어 몇몇은 시제 참례를 하지 않아도 그리 표가 나지 않는다.
새벽녘 일어나 원고를 몇 줄 정리하고 종이신문이 오지 않은 날이라 무료했다. 베란다에 둔 마늘을 꺼내왔다. 거실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마늘을 깠다. 우리 집에 보관된 마늘은 지난여름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오는 길목에도 마늘은 상하지 않고 형체를 온전히 보존해 왔다. 과도로 뿌리 부분을 자른 뒤 손톱으로 마늘껍질을 벗겨냈다.
인내심을 발휘해 두어 시간 마늘을 깠더니 종아리가 저려와 다리를 펴 보기도 했다. 마늘을 깐 뒤 양파를 깠다. 양파는 파란 움이 트는 것들도 있었다. 이 양파도 시골에서 온 것들이다. 마늘보다 저온에 저장해야 하는데 베란다에선 움이 텄다. 움이 트는 양파부터 가려내어 먼저 깠다. 올해 농산물 가운데 대부분 풍작이라 가격이 떨어졌는데 마늘과 양파만은 시세가 좋은 편이다.
점심 식후엔 시외버스터미널로 수화물을 찾아올 일이 있어 느긋하게 길을 나섰다. 집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 거리였다. 현관을 나서 종합운동장을 지나 창원 폴리텍대학 후문으로 갔다. 폴리텍대학 후문부터는 도심 속 거님 길 기점으로 대상공원이다. 호젓한 소나무 숲길을 걸어 전망대로 올랐다. 도심 공원에는 휴일을 맞아 산책을 나선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창원과학관 뒤편 오솔길을 내려서니 극동방송국이 나왔다. 충혼탑 사거리에서 창원수목원으로 들었다. 수목원은 삼동 분수공원과 이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아기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모들이나 연인들이 보였다. 수목원 정상을 넘어 대원동 스포츠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숲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한 여러 활엽수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족구경기장은 사람들이 이용하질 않았다.
창원대로 건너편은 현대로템으로 고속철 차량을 만드는 공장이다.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해정마을이 떠났던 자리에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었다. 유허비 곁에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골프와 게이트볼을 결합시킨 우드볼에 열중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만이 아니라 할머니들도 같이 어울려 진지하게 시합에 임하고 있었다. 아마 어느 노인회 소속으로 매일같이 우드볼을 즐기는 동호인인 듯했다.
창원대로와 접한 공원 가장자리 높다랗게 자란 메타스퀘이어는 갈색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 곁으로는 관상수 남천이 붉은 열매를 달고 있었다. 남천 열매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산다화가 선홍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먼저 핀 산다화는 꽃잎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산다화는 애기동백으로 늦가을부터 겨우내 꽃을 피운다. 인근 진해에서 거리 조경수로 많이 심겨져 있다.
용원교차로에서 신호등을 건넜다. 홈 플러스는 정기 휴일을 맞아 매장 앞이 한산했다. 내가 가려고 목표한 시외버스터미널은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집을 나선지 두 시간이 되어 가는 즈음이었다. 바삐 걸었으면 한 시간이면 될 거리였지만 쉬엄쉬엄 걸었더랬다. 울산에 사는 작은형수가 김장을 해서 시외버스로 수화물로 보낸 것을 찾으려는 걸음이었다. 대합실엔 사람들이 많이 붐볐다.
내가 시외버스터미널에 닿았을 때 울산을 출발해 창원으로 온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운전기사는 승객이 다 내린 뒤 짐칸에 싣고 온 김치 박스를 꺼내고 있었다. 형수는 김장 김치를 비닐에 담아 종이박스와 보자기로 싸 보냈다. 집으로 옮겨와 김치 통에 담아 냉장고에 칸을 채웠다. 집사람 몸이 불편해 형제들에게 폐를 끼침이 미안키도 하고 고마움을 헤아리기 그지없을 뿐이다. 201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