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건적으로 부터의 탈출 ※
유비는 십년만에 만나 본 노승과 작별을 하고 나자, 마음속에 여러가지 감회가 떠올랐다.
십 년전, 그 당시에 자신을 장차
<큰 일을 할 사람>이라고 했던 노승은 지금의 자신을 도둑의 짐짝이나 지고 다니는 변변치 않은 인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유비는 그런 걱정과 함께 지금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황건적 두목을 건성으로 따라가고 있노라니까,
마원의가 감홍을 돌아보며,
"지금쯤은 다들 돌아와 있겠지?"
하고 물었다.
"어젯밤 낙양선 장삿꾼들을 치러 갔던 동지들 말씀입니까?"
"응 ! 이주범(李朱範) 동지 말이야. 오늘 아침에 이곳 산성(山城)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지 않았나?"
"아마 지금쯤은 산성에 먼저 도착하여 대방님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어서 산성으로 올라가 보시죠."
산길을 얼마쯤 더 올라가니 깊은 산속에 절반쯤 허물어진 성곽(城郭)이 나왔다.
어젯밤 낙양선 물주(物主)들을 습격한 황건적들이 거기서 모이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모양으로, 그 산성에는 어젯밤 유비가 잠들었던 객줏집을 습격한 도둑놈들이 득시글 거리고 있었다.
마원의 일행이 산성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이주범이란 자가 마중을 나오며 말한다.
"대방님, 이제 오십니까?"
"응 ... 어젯밤 수확은 괜찮았겠지?"
"별로 대단치는 않았습니다만, 그다지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놈 하나를 아쉽게도 놓쳐 버렸습니다."
"젊은 놈이라니? 어떤 놈이었나? ... 그놈이 값 나가는 것이라도 많이 가지고 있었던겐가?"
"그런것은 아니고, 최고급 낙양차를 한 통 가지고 있는 젊은 놈이였습죠.
우리의 맹주이신 대현량사 장각님께서는 낙양차라면 사족을 못쓰는 어른이 아니옵니까?
만약 그 젊은 놈에게서 차를 빼았았다면 맹주님께 좋은 선물이 되었을 텐데, 그만 그놈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비는 그 말을 듣자 간담이 서늘하도록 놀랐다. 그러면서 가슴속에 품고 있는 차통을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만져 보았다.
마원의는 그 말을 듣자,
유비를 힐끗 쳐다보면서,
"그놈이 몇 살이나 먹은 놈이던가?"하고 물었다.
"제가 직접 본 것이 아니니까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부하들이 본 바에 따르면, 나이는 스무 살 중반쯤 되는데 그놈의 특징은 귀가 유난히 컷다고 합니다."
"음 ... 그렇다면, 바로 여기 있는
자가 아냐?"
"넷?"
이주범은 깜짝 놀라며 유비를 쳐다보다가, 흥분하며 바로 말한다.
"그러면 이놈이 바로 그놈인가 봅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정봉(丁峰)이한테 물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야! 정봉아!
정봉이 어디 갔느냐?"
"네... 저 여기 있습니다."
정봉이란 자가 저만치서 이주범 앞으로 달려왔다.
"어제 낙양선에서 젊은 놈이 차를 사는 것을 네가 보았다고 그랬지? 그때 차를 산 놈이 바로 이놈이 아니더냐?"
정봉은 유비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네 틀림없이 이놈입니다."
하고 꼭 집어서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유비는 다시 한번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러자 이주범은 대뜸 유비의 팔을 뒤로 비틀어대는 것이었다.
"이 자식아 ! 차를 당장 내놓지 않으면 목을 잘라 버릴 테다. 어서 내놓거라!"
그러나 유비는 어머니를 위해, 천신 만고 끝에 구한 차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이놈이 말을 듣지 않으려는 모양으로 보니, 아에 목을 잘라 버리죠!"
옆에 서 있던 감홍이 한마디 거든다.
유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지난 1년간 피땀 흘려 일해 모은 돈으로 산 차인데 이 자들에게 넘겨주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자 감홍이와 정봉이는,
"이놈 보기보다는 고집불통이로구나.
그렇다면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하겠구만!"
하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대로 유비를 사정없이 후려 갈겼다.
"딱 ! 퍽 ! " ...
유비는 두 놈이 연달아 후려갈기는 통에 땅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 순간 조금 전에 헤어진 노승의<자중자애(自重自愛)>하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자기가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을 늙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리하여 어떡하든지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하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간신히 정신을 차린
유비는 마원의에게,
"대방님! 이 차는 칠순 노모에게 대접하려고 천리길을 달려와 간신히 구한 것 입니다.
이 검을 드릴 테니, 제발 차만은 제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통사정을 하며 허리에 차고있던 검을 풀렀다.
그러자 마원의는,
"그래, 나도 네가 가지고 있는 검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지!"하며,
"좋아 ! 나는 이 검을 받기로 하지.
그러나 차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않겠어!"
하며, 검을 가지고 다른 자리로
피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철두철미한 도둑놈 심보였다.
그러자 이주범이 잔뜩 약이 오른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이 자식이 요령을 부려도 분수가 있지. 장각 양사님도 좀처럼 손에 넣을 수 없는 귀한 차를 너같은 산골 촌놈이 가지고 가겠다구?
그렇게는 절대 안 되지!"
하며 창대로 유비의 등허리를
연달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유비는 어쩔 수없이, 품안에서
차통을 꺼내 이주범에게 주었다. 결국은 차를 빼앗기지 않으려다가 검까지 빼앗겨 버린 셈이었다.
차 문제가 해결되자 황건적 무리들은 다시 길을 떠나려는데 멀리서 정탐꾼 하나가 달려왔다.
"대방님 ! 지금 길을 떠나시면 큰일 납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강가에 관군 오백여 명이 진을 치고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하루 지체하시면서 상황의 추이를 지켜 보시고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마원의는 산성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러자 이주범이는 정봉이에게 묻는다.
"이 놈은 우리가 쉬는 동안에 도망을 치려고 할 지도 모르니까,
어디에 가두어 두면 좋겠는데..."
그러자 정봉이는 반색을 하며 대답한다.
"여기에 두 길 깊이의 토굴이 하나 있습니다. 이 놈을 결박을 지운 채로 거기다 처넣어 버리면 제놈이 날개가 있더라도 도망치지는 못 할 것입니다."
"그래? 그럼 이놈을 거기에 넣어
두면 되겠구먼."
이리하여 유비는 결박을 당한 채로 두 길 깊이의 수직 토굴로 사정없이 밀려 떨어지게 되었다.
토굴로 떨어진 유비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뜩>하였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려 보니 머리위에는 빤히 하늘만 보일 뿐, 토굴 아래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도록 캄캄하였다.
(이젠 정말 죽었구나 ! )
유비의 입에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험악한 함정 속에 갇혀 있어서는 도망을 치려 해도 될 일도 아니었지만, 몸에 결박을 지고 있으니, 도망을 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없는 일이 아니런가?
더구나 놈들이 내일 아침이라도 꺼내 준다면 요행히 살아날 길이 있겠지만, 꺼내 주지 않고 그대로 길을 떠나 버린다면, 그야말로 죽은 목숨과 다름없을 것이 아닌가?
갇혀있는 시간이 흐르면서 유비는 자포 자기의 심정이 되었다.
"제길.... 될 대로 되라지 ! 사람은 누구나 한 번씩은 죽지 않겠나?
지금 죽으나 몇십 년 뒤에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가슴 아픈 일은 늙으신 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하지 못하게 된 것뿐이었다.
다만 이왕 죽을 바에는 도둑놈과 한 번 맞서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이 마냥 아쉬웠다.
어느덧 날이 저무는지, 함정속에서 올려다 보이는 하늘은 별빛이 초롱초롱 빛나보였다.
유비는 황망한 심정으로 토굴속에서 하늘만 올려다 보는데, 문득 허공에서 무언가 스물스물 내려오는 것이 있었다. (저게 뭐지 ...? )
유비가 정신을 차리고 유심히 살펴 보니, 그것은 외줄기 밧줄이었다.
(아 ! 누가 나를 구해주려고 위에서 밧줄을 내려 보내는 모양이구나 ! )
유비가 성큼 일어나서 몸을 휘저어 보니, 몸에 부딪쳐지는 것은 분명히 밧줄이었다.
(아 ! 누가 나를 위해 ?)
유비는 뚫린 구멍위로 하늘을 우러러보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그때 밧줄은 빨리 행동하라는 듯이 두세 번 다급하게 흔들렸다. 유비는 물론, 밧줄이 흔들리는 (다음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