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여행 4 - 고베에서 메리켄 파크 공원을 보고는 차이나타운 난키마치에!
2024년 9월 21일 손주등 7명 가족은 오사카에서 렌터카에 올라 텐노지역을 지나
서쪽으로 달려 바다를 건너 고베로 가서는 지진 박물관을 구경하고는 고베
시내로 들어가 어렵게 주차장을 찾아 차를 넣고는 일본 가정식을 맛있게 먹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렌터카를 타고 부두이자 해변인 메리켄 파크 メリケンバ-ク 에 도착하는데 고베
(神戸 신호)는 효고현의 현청 소재지인데 1868년에 개항을 했으니 서양의 배와 서양인들이
대거 몰려오는지라 한적한 작은 어촌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거대 도시로 발전 했읍니다!
메리켄 파크를 보고는 다시 조금 시내쪽으로 걸어서 지진 메모리얼을 구경하고는....
그 앞쪽에 엄청 큰 잉어 조각상을 구경하는데 여기서 7~8분만 걸으면
고베 차이나 타운인 난킨마치 南京町(차이나타운) 이며 장안문(長安門) 을 보게 됩니다.
차이나 타운 근처에는 모토마치 (元町) 역이 있으니..... JR 모토마치역
서쪽 출구에서 오른편 4초메는 골동품 가게도 많다고 합니다.
고베에 2번째 왔을 때 소라쿠엔을 보고는 내려오다가 교회로 들어가 휴식을 취한후 나와서는 산노미야
센타가이 さんのみや センタカイ (대형 쇼핑몰) 를 보고 토어 로드 トアロ-ド 를 찾아 구경했습니다.
고베 는 오래전에 개항한 국제 무역 도시로 일본 제3위의 무역항 이자 인구 6위 도시로 효고현 현청 소재지
인데 1945년에는 미군 공습으로 도시가 초토화 되었고 1995년 1월 17일 진도 7.2 대지진으로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니 사망자 4,500명, 부상자 1만5천명, 가옥 파괴 12만동 큰 피해를 입었지만 복구 되었습니다.
우회전을 해서 모토마치 상점가를 지나 차이나타운 난킨마치 를 찾아 내려가는데... 고베는
1868년 개항을 계기로 어촌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도시로 발전했으니
푸딩 와인, 커피 및 양과자다 일본 최초로 등장했는데 6번째 도시이자 3번째 무역항 입니다.
모토마치 상점가 元町 商店街 는 길이 1.2km 아케이드식 대형 상점가로 고베의 명물이기도 한 가와라
센베점과 일본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판 찻집인 자호호코도 에 덴마크 치즈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 간논야 나 1949년부터 영업한 모토마치 케이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맛집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난킨마치 에 다 왔다고 생각될 무렵 일본 여자분들이 수십명이 줄을 서 있는 가게가 보여 뭔가해서 살펴보니
식빵을 파는 가게 인데 많은 현지인들이 줄을 섰으면 그만한 이유 가 있다고 보고 우리도 줄 뒤에 섭니다.
春夏秋冬(춘하추동) 이란 상호를 단 가게에서 5~6분을 기다려 차례가 되어서 식빵 300엔
어치를 샀는데 먹어보니 겉과 속이 촉촉하면서 쫀득쫀득 한게 먹기
좋은데.... 다음날이 되어도 그 촉촉함이 그대로 유지되니 그 비결이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도로 건너편을 보니 한 눈에도 차이나타운 임을 알수 있는데 중국사자 조각상
을 지나 들어가니 차이나타운인 난킨마치 南京町(남경정) 이니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중 하나로 200미터 길을 사이에 두고 중국 음식과 식재료상 이 밀집한 곳입니다.
줄을 길게 선 집이 보이기로 우리도 그 뒤에 서서 한참후 안으로 들어가니 1915년 부터
영업한 로쇼키(老祥記 노상기) 식당으로 부타망 中華まん (豚まん)이라고 부르는
돼지고기 만두 를 파는데 주방안에만 14명이 쉴새없이 만두를 만드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점포는 좁은 탓에 식당의 탁자에서 직접 먹는 사람은 7~8명 정도이고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만두를 비닐
봉투에 담아 들고 나가는데 줄이 길어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손님이 뒤에 붙으니 줄어들 줄 모릅니다.
먹고 나오니 음식을 들고 나온 사람들중 일부는 남경정 광장 에 있는 8각정
에 걸터앉아 먹는 모습을 보는데...... 여긴 돼지와 말이며 원숭이와
용과 뱀이며 닭과 개등 12지상 조각 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구경합니다.
동서남북 네방향 도로를 걸어보는데 도로 양 옆으로 가게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데
사람들의 심리란게 묘해서 손님이 밀어닥쳐 줄이 길게 서 있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가게들은 단 한명의 손님도 없이 파리만 날리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여기 난킨마치는 메이지유신 무진전쟁이 일어나던 1868년에 고베항을 개항 했을 때
유럽인 외에도 중국인들이 들어와 형성된 거리로 만두 샤오롱포 와 북경
오리고기며 고기 고로케 등 먹자골목 인데 고베 소고기 를 파는 집도 많이 보입니다.
일본 3대 차이나타운이라 하면 여기 고베의 난킨마치 와 나가사키의 신치 주카가이 에
요코하마의 주카가이 차이나타운을 드는데 그 외 도시에도 작은 차이나 타운이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에 일손이 모자라니 중국인 이민 을 많이 받아 들인다고 합니다.
미주 지역에서는 미국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캐나다의 토론토와 밴쿠버, 호주의
시드니 등지에 거대한 차이나타운 이 있는데 중국 본토보다 훨씬 더 중국의 전통
문화와 생활 이 이어지니 영어 한마디 못해도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차이나타운은 가게 2층에 중국인 가족들이 실제로 거주하니 중국문화와 언어가 유지 되지만
미국의 코리아타운에는 가게만 있고 가족들은 백인 지역에 따로 살다보니
밤에는 모두 퇴근 해 버리니 캄캄해지는지라... 한국문화는 물론이고 한국말도 잊어버립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170만인데 이 중에 18만이 밴쿠버 에 거주하니 도시 주민의
28%를 점한다는데 주변지역까지 포함하면 주민의 50%가 중국인 이라는데 19세기 골드
러시와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위해 이민온 사람의 후손으로 도시 경제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에는 싱가포르는 전체 국민의 75%인 300만이 중국인 이니 아예 중국이라 부르는게
맞으며 말레이지아에는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700만 이 거주하는데 주로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거주하다 보니 수도 시민의 50% 가 중국인이며 경제를 틀어쥐고 있습니다.
태국은 전체 국민의 15%인 1천만이 중국인 인데, 탁신과 잉락등 총리 를 배출하기도
했으며 역시 경제를 쥐고 있으며.... 베트남은 130만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300만으로 인구 비중은 적지만 역시 경제는 화교들이 장악 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는 중국 외에 일본의 영향력 도 상당하니 2차대전시 일본군의 침략을 받아 학살
당하는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국민의 85% 가 일본을 좋아한다는데 인도네시아 차량의
95%는 일본제 이며, 태국 경제도 일본에 의존하니 외환위기때 한국 기업들은 철수 한
반면에 일본기업들은 남아 자리를 지켰으니 의리와 신용 이 있다고 보는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인은 시야가 넓고 장기적으로 보는게... 1920년대 도쿄시장은 벚꽃 3천그루를 워싱턴
포토맥강변에 심었으니 오늫날 워싱턴 시민들이 가장 기다리는 벚꽃축제 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본 기업들은 미국 대학에 건물을 지어주고 일본학과 를 만들게 한후 대학교수
월급을 보조하고 일본학과 학생을 일본에 초청 하는 등 수십년에 걸쳐 지일파 를 키웁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러일전쟁전 1903년 전쟁이 길어지면 만주까지 보급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
예상하고 가네코 겐타로 를 보내 하버드 동문인 루즈벨트 대통령 에게 니토베 이나조가
영어로 쓴 "무사도" 책을 선물하니 책에 감명을 받은 루즈벨트는 "나는 친일파 이다"
공개적으로 말하니 루즈벨트 도움으로 러시아를 압박해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성사 시킵니다.
최근에는 필리핀에도 중국 이민자 들이 많이 들어가고 있으며 유럽에도 중국인 이 없는
도시가 없는데 피렌체 인근 프라토시는 중국인이 도시민의 11% 를 차지하자 비상이
걸렸다는데 그 외 스페인이나 포르투칼과 그리스 에 중국 이민자들이 많이 이주 한답니다.
우리나라 한국에는 조선족 동포를 비롯해 중국인 들이 최근에 급증한 탓으로 164만명 에 이른다지만 변변한
차이나 타운 하나 존재하지 않는데.... 오래된 곳으로는 인천의 차이나타운 과 부산역 맞은편 차이나타운
이 있으며 최근 서울 구로구와 영등포구, 경기 안산시 단원구와 시흥시 에 차이나타운이 조성되는 중입니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1882 임오군란 이 일어나자 장호원으로 피신했던 민왕비가 청국에
구원을 요청하니 이홍장의 명을 받은 원세개가 3천 병력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대원군을 체포해 천진 감옥 에 가두고 조선에 주둔하니 산동반도 사람들이 이주해 옵니다.
산동 반도에서 인천으로 들어온 중국인들이 고향의 춘장 을 이용해 만든 중국 국수가 바로
"짜장면" 인데, 해방후 일본인들이 물러가자 미군정하에서 소득세 납세 상위랭킹 을
차지한게 대부분 중국 화교들 이었는데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화교를 탄압 합니다.
화교는 회사의 사장이 될수 없도록 하니 중국인 주인은 궁여지책으로 한국인 직원을
사장으로 내세우는데, 그후 저 한국인 사장이 변심을 하면 그 재산은..... 또
건물과 토지 소유와 임차에 제한 을 가하고 중국집에서 쌀을 사용할수 없도록 합니다.
화폐교환으로 그들의 집 장롱에 있는 돈을 강제로 은행에 장기적으로 유치 하게 합니다.
또한 내가 경험하기로는 부산의 화교 학교는 학력인정을 해주지 않으니
화교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등 각종 제약 을 가하자.....
사업을 하던 중국인 들은 말할것도 없고 비행기표 구입할 정도의 돈 이라도 있는
화교들은 대만이나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 이
일부 한국에 남아 중국집 이나 하다가 이제는 거의 한국에 동화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는 메리켄 파크 주차장에서 렌터카 차에 올라 시내로 들어가서 돈키호테
에 들러는데.... 나와 사위와 손주 2명등 우리 남자들 넷은 여기서 뭘 살게 없고
흥미도 없으니 입구에서 우두커니 섰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시간을 떼우느라 애를 먹습니다.
반면에 마눌과 딸에 손녀 3명은 매장으로 들어가서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것 저것 만지면서 물건을 고르더니 이제 됐나
싶었더니 다시 2층으로 올라가니 또 기다려야 하는지라 억장이 무느집니다.
저암ㄹ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는 딸이 나오기에 렌터카 차에 올라 이제는 온천으로
가나 햇더니.... 모두들 지친 표정이라 그만 오사카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오사카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넣고는 마트에 가는데 좀 전에 고베의 식당에서 후식으로 먹었던 배가 입에서
살살 녹는지라 너무나도 마있어서 몇 개 사는데 여러 손님들의 카트에 배가 많이 담긴 것을 봅니다.
이 마트의 한 복판에 통로 모서리 아주 좋은 자리에 태극기가 보여서 놀랐더니.... 한국 술
코너로 소주에 막걸리와 맥주 그리고 전통주들이 보여 반갑기는 한데 오래 쳐더 보아도
사는 사람은 커녕 한번 쳐다보는 사람도 없이 그냥 무심히 지나가는게 좀 아쉽기는 합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아 호스텔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는 사이에 마눌이 키친에서 밥을 해서 저녁을 먹고는
자고 다음날 9월 22일 아침에는 마눌이 빵과 과일로 만든 샌드위치를 아침삼아 먹고는 나옵니다.
렌터카에 올라 오사카시내를 빠져나와 사카이를 거쳐서 간사이공하응로 가는데.... 도중에 주유소
에 들러 기름을 만땅으로 채워야 하는지라 빠져나가는 길을 찾다가 잘못 나가 좀 고생을 합니다.
어쨌든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만땅으로 채우고는 다시 렌터카를 몰아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에어부산 부스에서 수속을 해서 짐을 부치고 보딩패스를
받은 후에 보안 검색을 하고는 무인기에서 자동 출국 수속을 한후 셔틀을 탑니다.
출발동 건물에 도착해 면세점을 구경하다가 돈전을 털어 콜라롸 물을 사서 가져온 빵으로
점심을 떼우고는 비행기에 오르니...... 바다를 건너서 부산 김해 공항에 도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