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울고 있다 / 이혜숙
비 오는 저녁이다. 남편과 들른 감자탕 집은 자리가 몇 없다. 밥보다는 술 한 잔 생각나 간 집이라 김이 서려 부연 실내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싫지 않다. 우리처럼 술 고픈 사람들이 비를 핑계로 술잔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여 오히려 정겹다.
그런데 뒷자리에서 째지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가 싸우나 싶어 돌아보니, 여자 혼자 소리를 지르고 있다. 맞은편에 누가 있긴 하다. 두꺼운 파커에 묻혀 머리통만 조금 드러난 초등학생 남자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벌써 세 병째 소주병을 따고 있다. 저녁 시간에 식당에 온 모자치고는 분위기가 이상하다.
“내가 못 배운 놈 만나서 너 같은 걸 낳은 거야!”
“난 지금도 니가 내 아들이 맞는지 모르겠어. 아니 아니면 좋겠어. 너만 안 나왔어도….”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마디 대꾸도 없다. 어쩌면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킨 감자탕이 나왔는데도 숟가락을 대볼 생각도 못한 채 내 귀는 이미 그들의 테이블에 가 있다. 뒷자리라 자주 돌아볼 순 없었지만, 난 아이가 게임에 몰두하고 있길 바란다. 제 엄마가 뭐라고 지껄이든 미친 듯이 엄지손가락에 집중하기를. 근처 초등학교에 다닐 텐데, 같은 반 친구라도 만나면 어쩌나. 엄마의 폭언보다 그게 더 두려울 것 같아서 내가 다 초조하다.
“니가 날 속였지, 나쁜 놈.”
아이한테 하는 소린지 남편한테 하는 소린지 여자의 말이 오락가락해질 즈음, 아이는 조용히 맞은편으로 건너가 엄마에게 옷을 입힌다. 실컷 퍼부었는지 여자도 그쯤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여자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동안 아이는 우산을 펴고 기다린다. 제 가방과 엄마의 백까지 메고 아이는 엄마의 허리를 잡고 빗속으로 사라진다.
깨끗이 치워진 뒷자리는 이내 다른 손님들의 차지다. 조용해졌으니 이제부터 감자탕을 먹어도 될 텐데 나는 이미 밥맛도 술맛도 당기지 않는다.
결국 먹는 둥 마는 둥 우리는 일어선다. 비는 그칠 줄 모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내 마음은 개지 않는다.
아이는 조용히 있었지만 내겐 속울음 소리가 들린다. 무표정한 아이가 온몸으로 매를 맞고 있는 것도 보인다. 그 매를 맞으며 오그릴 대로 오그려 옷밖에 보이지 않던 아이를, 그러나 나는 모른 체 하고 말았다.
답답하여 차 창문을 조금 내리자 빗줄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나를 보는 것 같아.”
“무슨 말이야, 여기서 당신이 왜 나와?”
남편은 모른다. 어떤 엄마는 손으로 말로 때리지 않아도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내 아이는 저 아이보다 어렸을 때 술 취해 비틀거리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걸음마를 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이였다.
아이와 버스를 타고 오다가 집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을 것 같은 심정으로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넜던, 어스름 무렵에 허름한 밥집에서 처네를 풀고 밥 한 그릇 술 한 병을 시켰던, 아이 입에 밥 한 술, 내 앞에 술 한 잔 따랐던….
오래 되었어도 생생한 그 날을, 어렸던 아이는 기억 못할 거라고 해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소리 지르지 않았고 때리지 않았다 해도 그 날 아이는 상처를 입었을 테니까. 저를 쳐다보지도 않는 퀭한 눈동자, 일어날 때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보면서 아이는 문득 엄마가 아닌 낯선 여자를 보는 것 같았을 것이다.
불안한 아이는 눈치를 봤다. 투정도 하지 않고 주는 대로 밥을 받아먹었고 몇 시간이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집에서 나올 때는 업혔던 아이가 신호등 앞에서 엄마의 손을 꼭 쥐고 서 있었다.
“엄마, 우리도 빨리 뛰자.”
뒤뚱거리면서 손을 놓지 않고 앞장서던 아이. 그때 세 살짜리는 저 아니면 엄마를 보호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사람들 속에 섞여 건너야 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도로 한복판에서 혼자 어쩔 줄 몰라 했을 아이….
며칠이 지나도 그 여자가 밉다. 아니 시시각각 일부러 그 여자를 떠올리면서 미워하려고 한다. 나서지 못한 지금의 나도 기억 속의 나도 같이 괴롭힌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잘못을 덜어낼 것처럼.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운다. 한참을 미워해도 풀지 못했는데, 어떤 조각 하나가 불쑥 떠올라 울음 주머니를 터뜨린다. 상처를 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다. 속울음과 쓴 뿌리를 안고 키우고 있었던 나를 보았고 그 여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엄마 노릇을 못했다는 자책감에 가려 보지 못했던 내 상처. 집이 위안이 되기는커녕 떠나고만 싶었던, 하루하루가 버거워 견딜 수가 없었던 절망.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가기 위해서는 밖에서 몇 시간이나마 벌어야 했던 그 때. 혼자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럴 수 없어 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술을 마셨던 젊은 엄마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여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술에서 깨었을 때 입이라도 쥐어뜯고 싶은 고통을 맛보았을 것이다. 인사불성이 되어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던 그 여자의 절망이 고스란히 보인다. 차라리 혼자 마시고 취해버렸다면 홀가분해졌을지도 모르는데, 여자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려고 데리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외로워서 아이라도 곁에 두고 싶었을까.
여자 안의 여자가 울고 있다. 내 안의 나도 운다. 어른이 되었어도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했던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운다. 받고 싶은 위로를 고작 분노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게 미안하고 부끄러워, 헉헉 느껴 운다.
그래도 그 울음을 잦아들게 하는 것은, 혼자 있게 두지 않은 아이.
같이 밥을 먹어주고, 옷을 입혀주고, 우산을 씌우고 허리를 감싸준 내 아들, 그리고 수없이 손을 잡아준 내 아들,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