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a-Cola의 역사-2】
펨버턴은 의학 저널에 실린 코카에 대한 토론을 계속해서 열심히 읽었다.
펨버턴은 프렌치 와인 코카라고 불리는 음료를 만들었다.
이름처럼 코카가 첨가된 와인이었다.
프렌치 와인에 코카 잎을 6개월 동안 담가서 만든, 빈 마리아니 Vin Mariani라고 불리턴 특허 의약품이 인기가 있었는데, 펨버턴은 상품은 빈 마리아니를 모방한 것이었다.
빈 마리아니는 유럽과 남미에서 인기가 있었다.
펨버턴은 와인에 고카를 침전시키는 제조 방식을 모방했지만 거기에 콜라 추출물을 추가했다.
서아프리카 원산의 콜라나무의 견과는 코카와 같은 시기에 유럽에 소개되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또 다른 마법의 치료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견과에는 2%의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었기 때문에 씹었을 때 원기를 붇돋아주는 효과가 있었다.
코카 잎이 남아메리카에서 그랬던 것처럼 콜라의 견과는 서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각성제로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콜라와 코카는 효과가 비슷하기 때문에 특허 의약품과 함께 포함되어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펨버턴의 비즈니스가 본 궤도의 오른 것처럼 보였을 때 마침 애틀랜타와 풀턴 카운티가 1886년 7월 1일부터 시험적으로 2년 동안 알코올의 판매를 금지하는 결의를 했다
금주운동이 지지를 얻자 펨버턴은 알코올이 없는 음료를 빨리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코카와 콜라를 주원료로 하되 쓴맛을 제거하기 위해 설탕을 첨가한 ‘금주 음료’의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지만 보통의 특허 의약품과는 다르게 만들 생각을 했다.
그는 약용 소다수에 풍미를 가미한 시럽으로 판매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전의 제조법을 개선하여 새로운 시럽을 개발했고, 이미 다른 시럽을 팔고 있는 근처의 약국에 판매를 위해 시제품을 보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음료의 맛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알기 위해 조카에세 약국 근처에서 어슬렁거려 달라고 부탁했다.
1886년 5월경에 펨버턴은 새로운 개발 공식을 완성했고,
이제 이름이 필요했다.
프랭크 로빈슨이라는 그의 비즈니스 지인 중 한 사람이 제안한 이름은 코카-콜라였다.
그것은 두 개의 중요한 원재료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로빈슨은 두 개의 C가 광고를 할 때 어울릴 것으로 보였다.
코카-콜라의 원 버전에는 소량의 코카 추출물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소량의 코카인이 함유되어 있었다.
(코카인 성분은 19세기 초반에 제거되었지만, 코카의 잎에서 추출한 다른 성분은 지금까지 음료에 들어 있다.)
코카-콜라의 탄생은 돌팔이 약제품의 베테랑 제조업자가 새로운 음료를 개발하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정교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작업의 반복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코카-콜라를 개발한 펨버턴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로빈슨에게 코카-콜라의 제조와 마케팅을 맡겼다.
코카-콜라의 첫 번째 광고는 1886년 5월 29일자 ‘애틀랜타 저널’에 등장했는데 내용은 짧고 간단 명료했다.
“코카-콜라, 맛있다! 상쾌함! 활기 넘침! 원기 회복! 신비로운 코카나무의 성분과 유명한 콜라 견과 성분이 함유된 새롭고 인기 높은 소다 음료”였다.
코카-콜라는 애틀랜타에서 금주법이 시험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기간에 맞추어 출시했다.
그것은 무알코올음료였고, 게다가 풍미가 있는 소다수이면서 특허 약품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추었기에 매력이 있었다.
펨버턴은 약국에 공급한 시럽의 용기 라벨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써 붙였다.
“이 지적인 금주 음료에는 신체를 강화하고 신경을 각성시키는 코카나무와 콜라 견과의 값진 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맛있고, 상쾌하고, 활기차고,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음료일 뿐만 아니라 뇌의 기능을 강화해주고, 그리고 두통, 신경통, 히스테리, 우울증 등 모든 신경성 질환을 치료합니다.
코카-콜라의 독특한 풍미는 모든 이의 혀를 즐겁게 해줍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