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1일(목)
* 시작 기도
(벧후 3:4-5)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주님...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말도 믿을 수 없고 만물이 창조된 이후로 그대로 있으니 어느 것 하나 재림의 징조가 없다고 혀를 끌끌 차며 조롱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다름 아니라 바로 저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오지 않으실 것처럼 생각하여 내 맘과 내 뜻대로 자행자지하는 천하에 악한 자입니다.
이런 나는 죽기에 합당한 자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진리를 잊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8절).
결국 마지막 때에는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올 것인데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은 뜨거운 불에 풀어지며 땅과 모든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따라서 경건한 자가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야 할 것입니다.
하여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여전히 넘어지지만 그럴지라도 다시 또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살기 원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긍휼을 베푸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고전 6:12-20
제목 :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나의 묵상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내의 도덕적 무질서와 성도 간의 소송 사건 등 당면한 문제에 대한 책망과 권면을 주고 있다.
또한 몇몇 교인들이 음행에 빠진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한 데 그 원인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내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내세우는 주장이다.
그렇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내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12절).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해 있고, 배는 음식을 먹기 위해 있다는 말 역시 여러분들이 내세우는 주장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이 모든 것을 필요 없게 만드실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으며 또한 주님은 우리 몸을 위하여 계신다(13절).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처럼, 그분의 능력으로 장차 우리도 살리실 것이다(14절).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을 알지 못하는가?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 내서 창녀의 지체로 만들겠는가? 그럴 수 없다(15절).
창녀와 연합하는 자는 창녀와 한 몸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
성경에, 두 사람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될 것(창 2:24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6절).
마찬가지로 주님과 연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영적으로 하나이다(17절).
따라서 음행을 멀리 피하라. 사람이 짓는 모든 죄들은 몸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음행은 자신의 몸에 죄를 짓는 것이다(18절).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또한 여러분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꼭 기억하라.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결코 아니다(19절).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산 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20절).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자유를 주장하며 자신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굴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 음행은 심지어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에도 없는 것이었다.
곧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악하고 괴악한 음행이었다.
(고전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이런 죄는 야곱의 큰 아들 르우벤이 지었었다.
르우벤은 아버지 야곱의 서모인 빌하와 동침하는 죄를 지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로부터 모든 자녀들이 축복을 받을 때에 그는 큰 책망을 받았다.
(창 49:3-4)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여기서 ‘물의 끓음’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파하즈’로서 ‘음탕하다 경박하다’는 뜻이다.
이는 르우벤이 매우 음탕하고 경박스러우며 충동적인 성격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은 그에게 ‘탁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탁월’이라는 히브리어 ‘야타르’는 남다 풍부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보다 남거나 풍부한 것이 없게 될 것을 잘 드러낸다.
또한 장자로서의 모든 권리 또한 그의 형제인 유다와 요셉에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사실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에서도 이런 음행은 자유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자유는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누리는 기쁨(Joy)이지만, 방종은 주어진 테두리를 벗어난 즐거움(fun)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하늘의 기쁨인 Joy는 누리면 누릴수록 더 커진다.
하지만 땅에 속한 즐거움인 fun은 누리면 누릴수록 더 괴악해질 뿐이다.
사사시대 400년의 세월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해서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온다.
이들은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 광야 40년 동안에도 그러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마자 그들 앞에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두 신 곧 바알과 아세라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바알은 남신으로서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었으며 아세라는 여신으로서 쾌락의 신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하기를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철썩 같이 약속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풍요와 쾌락이라는 이 두 신을 믿음으로 이를 이겨내지 못하였다.
그 때부터 이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과 아세라도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시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재물(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울은 또한 이렇게 권면한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하나될 수 없다.
우리는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고후 6:15-16)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처럼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다.
따라서 이 몸을 창기의 지체로 만들 수 없다.
나는 성전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하였다
이는 복음을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복음을 몰랐기에 구약의 건물성전만 성전인 줄로 알고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최근까지도 건물인 예배당을 성전으로 착각하면서 살았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건물성전을 허물라고 하셨음에도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하여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성도들에게 가르쳤던 죄인 중에 괴수였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당 건물을 성전으로 생각하면서 소중하게 다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부교역자로 있을 때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예배당을 리모델링을 해서 그 안에 새 의자가 들어왔다.
어느 장로님께서 이것은 성전 안에 들어온 성물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들어와서 흠집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어린이 예배는 본당에서 드리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본당에서의 어린이 예배가 그 때부터 중지된 일이 있었다.
이는 성전의 개념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날 성전은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내가 바로 성전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이 몸을 바르게 관리하고 음행과 같은 죄를 멀리하는 것이 진정한 성전된 자로서의 모습이다.
나의 몸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피값으로 사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예수님짜리 성전된 인생인 것이다.
오늘도 이 성전을 세상의 쾌락에 내어주는 자가 아니라 나의 생명되신 우리 주님과 연합하여 참된 성전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성전의 의미도 모른 채 주님을 믿는다고 했던 나 자신을 보면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럽습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우리 주님과 연합하여 성전으로 이렇게 살 수 있게 되었는지요?
이것은 기적이 아니고는 도무지 말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표현 불가입니다.
이 시간 나의 부족한 믿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죽기에만 합당한 이 죄인을 아들의 피값으로 사셔서 예수님짜리 성전된 인생으로 삼아 주셨으니 이 몸을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으로 잘 가꿔나가게 하소서.
하루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깨닫고 담대한 믿음으로 우상을 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내 안에 있는 성령님이 근심하지 않도록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옵소서.
이 하루도 주님과 하늘의 기쁨을 누리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