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 시대의 사료들중 남조 유송의 역사를 편찬한 송서에서 최초로 남조에 외교문서를 보내어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수록된 왜왕 무의 478년 표문 내용
일반적으로 왜와 왜왕은 전근대 일본의 군주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서 송서에 기록된 왜왕 무는 일본 열도의 군주로 볼 소지가 많기 때문에
남조에 처음으로 외교문서를 보낸 왜왕은 무가 처음이었고 왜왕 무는 남조 송에 외교문서인 표문을 보내면서 왜왕 무가 보내온 표문 내용에 자국이 고구려의 침략 위협에 시달리고 고구려에게 남조와의 교통로가 차단되는 피해를 하소연하여 고구려에 적대감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고 남조 송에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지요
그러나 이런 왜왕 무의 표문 내용을 보면 의문스런 점들이 많습니다 478년 표문을 보내온 왜왕 무를 일본 열도의 군주 당시 유라쿠 천황과 동일인으로 본다면 지리적으로 고구려와 인접하지 않아 고구려의 군사적 공격을 받을리가 없는 왜가 고구려에 군사적 위협 공격으로 당한 피해자처럼 고구려에 극단적 적대감을 표출하는 뉘앙스로 남조에 보내는 표문에 쓰는 것이야말로 부자연스러운 일이라
남조에 고구려의 침략 피해를 호소하는 표문을 보내온 왜왕 무의 표문중에 고구려와 일전을 불사하려고 했던 아비와 형이 갑자기 동시에
사망해서 국상을 치르고 있어서 군사를 움직일수 없었다는 무의 하소연을 하는 내용을 보더라도 478년 즈음에 무의 아비와 형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상중에 있다는 왜왕 무의 표문 내용과 일본서기의 456년에 즉위한 유라쿠의 기본 재위 연도기록과 맞지 않았기에
왜왕 무가 유라쿠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여지는 것이지요
고구려의 침략 피해를 하소연하는 왜왕 무는 일본열도의 유라쿠가 아닌 고구려의 침략 피해를 당한 백제왕과 정치가 그와 유대관계가 깊은 일본열도내 친백제계 지역수장일 가능성이 있는 법이지요 무령왕이 그 가능성이 있는 법이고ㅓ
그렇지 않다면 왜가 이렇게 남조에 도움을 요청하는 표문에 고구려에 대한 심각한 적대감을 표출할수가 있는 법입니까?
고구려로부터 많은 피해를 당한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그리고 설령 표문을 보내온 왜왕 무가 일본열도의 군주 유라쿠가 맞다면 고구려가 일본열도를 침략하여 왜에 중대한 타격을 줬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요
첫댓글 삼국과 당시 왜의 기록과는 억색한 부분이 많은데, 좋은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잘 봤습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백제와 스스로를 동일시 할만한 당시 왜 세력이 뭐가 있었을까요? 일본 역사는 거의 모르지만 나름 큰 세력이 있었겠죠?
5세기 일본서기의 천황은 2가지 원칙에 의하여 기록됩니다. (1)백제, 신라, 갸아 등 삼한 여러 나라를 다스리는 천황은 스스로 왕이 될 수 없다. (2)천황은 공립되어야 시호와 대수를 준다
공립은 마한 최대 세력인 백제왕실과 혼인 동맹을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즉위는 했어도 공립이 안 되고 퇴위한 천왕은 즉위가 무효화되어 천황의 시호와 대수를 주지 않고, 앞이나 뒤의 공립된 천황의 재위기간에 포함되어 버립니디. 따라서 웅략의 즉위는 461년 11월이고 황후를 세우는 공립은 462년 3월인데 시변압반황자가 공립이 안 되고 죽자 그의 5년 재위기간은 웅략에게 포함된 것입니다. 따라서 즉위는 456년 11월로, 황후 세우는 공립은 457년 봄 3월로 이동됩니다. 462년에 오국에서 사신이 오는데 웅략의 즉위 축하 사신입니다.
또 즉위는 했지만 공립이 안 된 천황은 대외적으로 왕이 아니라 왕세자를 칭해야 합니다. 그러다 공립이 되면 세자 자가 떨어지고 세자기간도 자신의 재위기간에 포함되게 됩니다. 따라서 5세기 천황들은 황후 세우는 일에 목숨을 겁니다. 제가 나중에 별도의 글에서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설령 표문을 보내온 왜왕 무가 일본열도의 군주 유라쿠가 맞다면 고구려가 일본열도를 침략하여 왜에 중대한 타격을 줬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요.
=> 왜왕 곤지와 백제 개로왕 사이의 혼인동맹에 의하여 한 쪽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한 쪽이 군대를 보내 도와주어야 합니다. 장수왕이 한성을 침공할 때 곤지가 개로왕을 돕기 위하여 큐수지역 군대를 급파합니다. 그 구원군 사령관이 목협만치고 부사령관이 조미걸취입니다. 그래서 장수왕이 더 이상 남하를 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고, 훗날 동성왕은 그 군사력을 기반으로 왕이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별도로 상세히 글을 올리겠습니다.
곤지는 백제 개로왕의 동생인데 무슨 개로왕과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마냥 혼인 동맹을 맺습니까? 사료와 어긋난 주장을 하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