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공원에 제법 많은 분들이 와서 생명소리 연주를 들었습니다.
저희에게 새 병의 음료수도 주고,
수년 동안 그 자리에서 있었지만 언제나 덤덤한 얼굴의 한 아저씨는 처음으로 입을 떼어 일찍 마친다고 아쉬워해서 저희가 어리둥절했습니다.
공원 바로 앞의 건물이 거의 다 지어진 (우리) 교회임을 말하는 그들의 대화도 듣습니다.
한 자리에서 10년을 연주한 보람이 이제 나타나는가 생각합니다.
그들 마음에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저희는 성령을 의지하여 그 대답할 것이 준비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이 일을 위해 한결같이 봉사하는 생명소리팀에게 더욱 충성하는 복을 내려 주옵소서.
주님,
오늘은 여신도 연합회 주관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독교 어버이 교육’ 행사를 가집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강사 목사님을 통해, 다음 세대에 마음을 둔 각 교회의 많은 영혼들이 도전과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은혜로 이끌어 가실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진리로 인한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본문 주해)
17~19절 :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는 말씀으로 할례와 무할례의 경우를 두고 말씀한다.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복음을 듣고서 할례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긴다고 해서 그 할례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또한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할례를 받지 말라고 한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이 말이 너무도 충격적이었으므로 이로 인해 더욱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바울은 왜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라고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다시 율법을 지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다시 할례를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20~24절 :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는 말씀으로 종과 자유자의 경우를 두고 말씀한다.
종(노예)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평생 그대로 지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라는 말씀은 다른 번역에서는 ‘혹 자유할 수 있어도 그대로 지내라’고 한다.
이것은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그 어떤 환경도 주님의 부르심을 막아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주님의 능력은 평생 종으로 살면서도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종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자요, 자유자라도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부르신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거할 때에 그리스도의 종이지만 세상에서는 참된 자유자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이목에서 자유한 자 즉 사람의 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의 묵상)
바울 사도는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고 명령한다.
할례를 받은 자라면 할례를 지우려고 하지 말고,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무할례자라면 새삼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자유자 때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대로 자유를 누리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종으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면 종 된 그대로 지내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상황이 ‘Game Over’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일들이 다 소용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귀한 영생을 얻었기에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할례와 무할례가 의미없고, 자유자냐 종이냐가 의미 없다.
그런 점에서 ‘Game Over’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를 사는 나에게는 할례니 무할례니, 자유자니 종이니 하는 것이 큰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내가 유대인이 아닌데다가 그들의 우월감이 내게 별로 열등감을 조장하지 못한다. 또 종의 신분도 아니니 자유자란 사실에 새삼 우쭐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나는 부자가 된다거나,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거나 하는 등 내 자랑거리나 내 의를 드러내고 싶은 것이 더 큰 관심사이다.
복음을 알게 되고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니 나의 주된 관심거리에 대한 생각이 ‘Game Over’가 된다.
제대로 주님을 만나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한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이 땅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주님 앞에서는 다 허접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복음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의 삶에서 그것들이 유용하게 사용될 때도 있지만, 적어도 그것들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설치지는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 이미 영생을 누리는 자가 되었으니, 땅의 것에 마음에 묶이지 않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없는 그대로, 건강하지 않으면 않는 그대로, 인기가 없으면 없는 그대로, 참 지지리도 못났다는 열등감이 있었어도 그대로......
왜 그대로 지낼 수 있는가?
바로 영생을 얻은 자이기 때문이다.
곧 지나가니까 이 땅의 괴로움을 꾹 참고 천국을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누리는 영생의 기쁨이, 온통 부실한 이 땅의 삶의 고통을 다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때의 처지에 그대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24절, 새번역)
주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그 처지나 상황이 어떠하든지 이미 ‘Game Over’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의 승리의 결과가 부르심을 받은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매일 만나주시는 주님과 열심히 교제할 뿐이다.
좀처럼 성숙되지 않고 늘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같은 나 자신에게 탄식할 일이 많지만-그로 인해 사탄의 정죄를 매일 받고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며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한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분이, 결국 나를 하늘에 앉히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날마다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주님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립니다.
묵시적으로 이미 하늘에 앉혀진 저를 알기에
현재의 상황이나 상태가 제 발목을 붙잡지 못한다는 것도 압니다.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보혈만을 힘있게 의지하며
복음을 전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