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랜드 공국기
영국은 해군을 파견하였으나, 베이츠 일가가 총까지 동원하여 격렬하게 저항하여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영해의 기준이 해안선으로부터 3해리(약 5.556km)였기 때문에 해안선으로부터 10km 떨어진 곳에 있던 러프 요새는 영국의 영해 밖에 있었고, 따라서 약 1년 2개월 후인 1968년 11월 25일에 내려진 법원의 판결에 따라 영국은 이 지역에 대해 사법권을 행사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군은 러프 요새를 포기하였고, 시랜드 공국은 완전히 독립합니다
하지만 1982년에 영해의 기준이 12해리(약 22.224km)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현재 러프 요새는 영국의 영해에 속하게됩니다.
따라서 1982년 이후로 영국이 언제든지 원한다면 러프 요새에 군대를 투입하여 시랜드 공국을 무력으로 합병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1978년 8월, 시랜드 공국에 사업차 방문한 독일인 알렉산더 아헨바하가 로이 공이 부재중인 틈을 타 독일인, 네덜란드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마이클 공세자(2015년 현재 시랜드 공 마이클)를 인질로 잡고 시랜드 공국을 탈취하려 한 정변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으나, 로이 공은 헬기까지 동원한 강습을 감행하여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
로이 공은 반란을 진압한 후, 반란에 관계된 자들을 전쟁 포로 명분으로 구금하였고, 따라서 독일과 네덜란드 정부는 이들을 빼내기위해 대단히 고생했다고 합니다.
2006년 6월 23일, 러프 요새의 오래된 발전기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요새에 거주중이던 주민은 영국 공군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었으나, 시랜드 공국의 전 영토는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대화재의 여파로 공국은 심각한 재정 위기에 봉착하였고 국토재건공사(요새 보수공사) 는 2006년 11월에 완료되었으나, 이로 인해 공국은 수입을 아득히 초과하는 지출을 하였습니다.
결국 버틸 수가 없어진 베이츠 공가는 2007년 1월에 공국을 한화 약 1200억원의 가격에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스페인의 부동산 회사, 일본의 갑부, 그리고 스웨덴의 파일 공유 서비스 업체인 The Pirate Bay 등등과 매각을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불량한 접근성과 지나치게 높은 가격 등의 문제로 팔리지 않았고, 공국은 지금까지 베이츠 공가의 통치 아래에 있습니다.
공위를 물려받은 마이클 공은 섭정 시기부터 꾸준히 진행했던 시랜드 공국의 사업체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로이 공이 살아있던 시기에는 건드리지 않았던 시랜드 기사단(원래는 보안업체나 용병고용)을 개편하여 전세계에 공작, 백작 , 기사작위를 판매하여 수입을 올렸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시랜드공국 작위 산사람 있습니다.
제일비싼 공작작위가 70만원정도 제일싼 lord는 3만원. 시민권은 21만원이라고합니다.
헤이븐코(아동 포르노와 멀웨어를 제외한 모든 파일을 호스팅해주는 서버서비스) 를 재설립하여 중단되었던 인터넷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마이클 공은 시랜드 공국 건국의 산 증인이었던 자신의 기억을 십분 활용하여 자서전을 집필하는 등 수익사업에 힘쓰고 있어 공국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현재 국민 1인당 GDP 22000달러
로이 공 시기의 시랜드 공국은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으나, 마이클 공은 공국의 국제법상 지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국의 이미지를 이용한 수익사업에 힘을 쏟아 공국을 사실상 베이츠 가문 소유의 기업체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 예로 시랜드 달러를 들 수 있는데, 로이 공은 공국이 독립국임을 주장하기 위해 틈틈이 새로운 도안으로 동전을 발행하고 다양한 액면가로 구색을 갖추었으나 마이클 공은 부모님을 추모하는 기념 주화 한 종류만을 소량 발행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시랜드공의 아들이자 공세자인 제임스 공. 현재는 샬럿 공세자빈과 결혼한 사이라고합니다
외교
아직 정식국가중 시랜드공국을 승인한 나라는 없으며 영국의 묵인과 방임하에 존재하고있습니다.
한때 총질까지 한사이인데 화재때 구조도해준 것을 보면 영국과는 사이가 나쁘지않은듯 합니다.
사실 시랜드 공국 가문은 영국에 머무는날이 더많다고합니다.
1978년 독일인 알렉산더 아헨바하 등이 일으킨 반란의 사후 처리를 위해 독일(당시 서독)에서 시랜드 공국의 영국 주재 대사관에 외교관을 파견하여 협상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군사
시랜드 공국은 여러 정의 총기와 보트, 헬리콥터 1기를 보유하고 있다. 독립 당시에는 총기를 이용하여 영국군에 맞섰고, 1978년의 외자의 난에서는 헬기를 이용하여 군사 작전을 펼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