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예전에는 나환우라 불렀지요.
참 슬픈 이름입니다.
한센인, 예전에는 문둥병자라 불렀지요.
참 아픈 이름입니다.
한센인, 이제 이들은 우리들의 형제들입니다.
참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온 몸으로 부딪히며 현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살 것이다.
주님은 부족한 나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해나가고 계시다.
중국이 아직은 종교적으로 자유스럽지 못하지만 그분만이 아시는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새날을 시작한다.
"주님! 진정 감사합니다.
몸은 고달프고 힘은 들었지만
오늘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가난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오시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저의 능력이 부족하지만
교만한 마음이 스며들 때
당신의 뜨거운 사랑과 채찍질로
부족한 저를 감싸주소서."
신부가 귀가 막혀 아닌 밤중에 홍두께 신세
쓰촨성의 씨창(西昌)으로 임지가 결정된 것은 중국에서 6년 반을 기다린 끝의 일이다.
답사차 씨창에 와서 이곳저곳 강복촌을 방문했다.
그때 씨창성당 옆에 있는 여인숙에 숙소를 정했다.
내가 사용하는 방은 다른 방에 비해 더 습했고 유난히 바퀴벌레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을 자는데 오른 쪽 귀에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손으로 내리쳤다.
아…, 불현듯 신학생 시절, 벌에 쏘인 사건이 떠올랐다.
세상을 살면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가끔 겪는다.
파푸아뉴기니에 선교 실습을 막 다녀온 때였다.
숙소에서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커다란 말벌 한 마리가 내 방에 들어왔다.
나는 얼른 책상 위에 놓인 책으로 말벌을 내리쳤다.
그런데 그것이 죽지 않고 내 베개 밑으로 떨어졌던가 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 새벽에 오른 쪽 귀가 따끔했다.
원장 신부님은 지도 신부님에게수원 성 빈센트병원 응급실로 데려가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벌이 아니라 바퀴벌레였다.
시계를 보니 2시 30분.
나는 귓속에서 자꾸 움직이는 바퀴벌레를 꺼낼 만한 도구를 찾기 시작했다.
때마침 가느다란 철선을 자르는 니퍼가 눈에 띄기에 한쪽 날을 이용해 그것을 파내려 했다.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처럼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껑충껑충 뛰어도 보고,
귓속에 살충제를 뿌려 보기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오밤중이긴 하지만 염치불구하고 옆방에서 자는 황 수녀를 깨웠다.
황 수녀는 자고 있던 후배 수녀를 깨웠다.
두 수녀가 나를 거실 벽 백열전구 밑으로 데리고 가서 의료용 핀셋으로 간신히
벌레를 꺼내는데 성공했다.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다. 아닌 밤에 홍두깨라더니….
그날 이후, 나는 환우들을 방문하던 중에 벼룩이 옮았다.
수녀들이나 환자들이 보거나 말거나,
밥상머리나 어디에서나 창피함을 무릎쓰고 긁어댔다.
이곳저곳 긁어대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를 것이다.
지금도 종아리에는 그때의 영광스러운 상처가 검은 점처럼 자리하고 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루카 1, 38)
내가 바라는 사제상
풋내기 사제의 희망
왕따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풋내기 사제의 희망
남들이 좋은 직장이라고 부러워하던 직장을
어느 날 그만두고 선택한 길.
스물 하고도 아홉 해,
세속의 달콤한 유혹을 뒤로 하고 신학교 문을 두드렸고
신자들의 정성어린 관심과 기도,
그리고 희생 덕분에 벅찬 마음으로 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하며 명동대성당에서 서품을 받았다.
한국외방선교회 사제로 서품을 받은지 어언 5년.
그만큼 세월이 흐른 어느 해,
운이 좋아 휴가기간 중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때마침 후배의 사제 서품식이 있어 참석하니
내가 사제 서품을 받고 사제로서의 첫 마음을 가진 것이
많이 무디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아마 중국이라는,
조금은 긴장된 사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1테살 5, 16-17)
이 말씀을 모토로 이제껏 사제로 살아왔다.
유리장이 아들 신부,
목수딸 수녀
내 아버지는 서울 후암동에서 자그마한 유리가게를 운영한다.
어머니는 구부러진 허리를 세워 불편한 다리를 끌고 매일 아버지의 점심을 해서
해방촌 고개를 넘어 가신다.
결혼 초기에 교통사고를 당해 불편한 몸으로 유리 장사를 하여 우리 3남 2녀를
건강하게 잘 키워주신 아버지.
틀니를 하고 구부정한 모습이지만 총총걸음으로 아버지와 우리 5남매의 뒷바라지를 하셨고
지금은 사랑스런 손자를 키우느라 더욱 더 늙어 보이는 어머니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신학생 때 아는 수녀님의 휴양지에 놀러갔다가 때마침 수녀님이 일구어놓은
조그마한 밭을 갈았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뒤에서 쟁기를 붙잡고 내가 앞에서 새끼줄을 매어 배에 걸쳐 끌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어머니와 나는 같은 소띠다.
가만히 생각하니 엄마소와 자식소 이렇게 두 마리의 인우(人牛)가 밭을 간 셈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진다.
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네의 깨진 유리를 갈아 끼우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가게를 봐 주신다.
일이 없을 때에는 꾸벅구벅 졸면서도 묵주알을 굴린다.
부족한 아들 신부가 안쓰럽고 걱정이 되어 주님과 성모님께 간구하시는 것이리라.
덕창에 정착해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업실을 꾸미느라 잰 걸음으로 작업실과
숙소를 왔다 갔다 했다.
출입문이 열려 있다고 생각하여 들어가다가 발로 문을 걷어차 아랫부분이 깨져 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게 도덕질이라, 예전에 압지 가게를 보면서 틈틈히 익혀둔 솜씨를 발휘했다.
먼저 유리칼로 깨진 유리를 반듯하게 잘랐다.
나머지 부분은 시장에 나가 사와서 잇고 알루미늄 섀시 패킹을 둘러 끼워 놓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대로 볼만했다.
유리장이 아들 신부는 유리 가게를 하는 아버지를 고맙게 생각한다.
덕창 강복촌 원장 수녀의 아버지는 목수란다.
내가 작업실에서 서랍을 만들기 위해 각목을 자르려고 하니 원장 수녀가
자신이 자르겠다면서 톱을 가로챘다.
아버지가 목수라 어렸을 때부터 익힌 톱질로 능숙하게 나무를 잘랐다.
내 아버지는 유리를 끼우는 일을 하는데 수녀 아버지는 목수라,
제각기 아버지에게서 배운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흔히 유리장이나 목수는 보잘것없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에게는 유리장이와 목수장이 아버지가 더없이 소중하고 훌륭하다.
당신들이 지금껏 성실하게 살아왔고 여전히 변함없이 열심히 살아가시기에
우리는 늘 부족하지만 보충이 된다.
우리 또한 그분들의 삶을 본받아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보다 못한 이웃을 잊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 당신들 친히 삶으로써 보여주셨다.
유리장이 아버지와 목수장이 아버지! 지아요우(加油)! 파이팅!
두 분 부모님! 영육간 건강하세요.
'슬픈 이름은 부르지도 마라' 중에서 발췌
아래 사진은 대련 금주 사목실에서 사순 피정 및 미사를 집전 하시는 모습입니다
저희들에게 선교 일화 자료를 보여 주시며 설명 하시는 신부님
신부님께서 나환우들의 신발을 직접 제작하여 신겨 드리는 모습입니다.
2012년 2월 26일(사순 제1주일) 미사
꿈꾸는 사제, 못말리는 선교사
사천성(쓰촨성) 한센인 마을에서 나환우를 돌보시고 계시는 김광우 신부님께서
2012년 사순시기에 김동원(비오) 신부님의 초청으로 대련 한인성당 및 사목실을 방문,
17일 동안 함께 선교하시는 이 미카엘 신부님과 또 한 분의 신부님이 방문 하시어
미사를 공동 집전해 주셨습니다.
나환우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자료를 통해 보여 주시는 신부님은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삶 그 자체이셨습니다.
이날 금주 사목실 피정에 참석한 교우들에게 신부님의 선교 일화인
"슬픈 이름은 부르지도 마라" 책을 선물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 나환우들을 안고, 목욕을 시키다 보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숙소에 돌아와 사흘은 침대에서 앓고 계신다는...
신체적 한계를 말씀하실 때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이곳 중국 쓰촨성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두 분의 신부님과 함께 살아가시는
김광우(세례자 요한) 신부님! 신부님께서 선물로 주신 책을 읽으며
이곳에서 늘 좌.충.우.돌 하며 살아가는 제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내일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시는 세 분 신부님,
늘 영, 육간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당신들의 '희생'과 '자비' 그 덕택으로 저희들은 살아갑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가 일하는 곳에서
하느님의 삶을 사는 것이 전교이다.
하느님의 삶은 바로 ‘자비’와 ‘사랑’이다.
그것을 사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다.
이곳 중국과 세계 모든 곳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사제와 수도자들을 파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여 나를 바치옵니다 - 김영욱(요셉)신부님 김영찬님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