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권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오늘 아침, 선생님의 부음을 받았다. 아직 날도 밝지 않은 새벽에 먼 길을 떠나셨다는 전갈이었다. 잠시 눈앞이 아득해졌다. ‘아, 이제 그 홍조 띤 얼굴 다시 볼 수가 없구나. 그 가는 쇳소리의 낮은 음성 다시 들을 수가 없겠구나.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원고를 보내주셨는데. 그것이 마지막 글이 되었나? 후배를 격려하기 위해 힘든 몸으로 글을 챙겨주셨구나.’ 하는 만감에 울컥 서러움이 솟았다.
존함만 들어오던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2006년 봄이었다. 아마 그곳이 대학로 근처 ‘혜화동 놀부집’이었을 것이다. 《수필세계》에서 마련한 ‘수필사랑방’ 코너에 선생님을 모시고 이런저런 말씀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그 무렵 선생님은 종로에 나가 김시헌 선생님과 자주 탁구를 치신다고 했다. 대구 김규련 선생님의 안부도 물었다. 그때의 김시헌 선생님도 돌아가셨고, 이어 김규련 선생님도 가신 지 5년이 되었다.
그날 식사를 마친 선생님은 잠시 산책을 제안하셨다. 문예진흥원과 샘터사가 이웃하고 있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선생님은 솜사탕 두 개를 샀다. 함께 올라간 두 여성 수필가에게는 다정하게 하나씩 나눠주시고 나에게는 주지 않았다. 그 농에 두 여류는 어린 아이처럼 기분이 들떠 선생님의 팔짱을 꼈지만 나는 아이처럼 삐쳐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로니에 공원의 철쭉은 유난히 붉었고, 김상옥 동상 위로 비둘기들이 후드득 비켜 날아오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선생님은 올해 여든 여섯이시다. 1934년 음력 11월 14일, 충북 영동에서 태어났다.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로 진학했다. 첩첩산골 가난한 집 9남매의 맏이로서 집안의 대표주자가 되어 서울로 입성한 것이었다. 제물포고, 서울사대부고 교사로 근무하다가 1969년부터 문교부 국어교육담당 편수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이전인 1967년 《현대문학》 11월호에 「弄談調試驗說」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수필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하니 지금의 수필들이 타 장르에 밀리지 않고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바탕에는 수필가인 선생님이 10여 년 가까이 편수관이 되어 애써 지켜온 노력이 있었다 하겠다.
그 외에도 선생님께서 수필문단에 끼친 업적이 크다. 선생님의 수필 「짜장면」은 국민수필이 되었다. 「귀를 후비며」와 「따로 따로 떨어지기」는 명품 중에 명품수필로서 수필의 전범이 되고 있다. 선생님은 후반기에 고전문학에 심취하여, 고전시가와 고전산문의 역해작업으로 수필의 지평을 넓히는데 몰두하셨다.
지난 10년간 나는 선생님과 ‘수필문우회’에서 함께 동인활동을 하는 복을 누렸다. 하지만 대구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던 나로서는 아주 가끔 서울에 올라가 모임에 참석하는 무늬만 회원이었다. 선생님은 그때마다 자별하셨다. 모임을 마치면 저녁이 깊어 서둘러 내려오기가 바빴는데 “저녁 먹고 가.” 하면서 팔을 당기곤 했다. 뒤풀이는 주로 중국집이었다. 식당까지 가기 위해서는 10여 분간 큰길 신호등을 건너야 하고, 골목길을 걸어야 했다. 선생님은 나를 옆에 걷게 하고는 “이왕 수필을 하려거든 끈기와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고 매번 그 말을 반복했다. 치열하게 자기 문장을 다듬고 숙성시키는 끈기는 글 쓰는 사람의 기본 중의 기본 태도라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수필의 원로 선배님들은 어쩌면 그리도 육신의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후배들을 아끼셨던 것일까. 무얼 하나라도 먹이려고 하시고 하나라도 주려고 했다. 돌아가신 김규련 선생님이 그러했고, 김시헌 선생님이 그러했다. 허세욱 선생님도 그러했고, 고봉진 선생님이 그러했다. 오늘 떠나신 선생님도 그러했다.
이분 선생님들께서는 생전에도 서로서로 친분이 돈독하셨으니 지금쯤 저곳에서는 “이제 오셨는가?” 하고 반가이 맞이하고 계실 것이다. 술 좋아하시는 선생님께서 막걸리도 나누시고 함께 탁구도 치시고, 수필도 하시면서 이곳 못지않게 부디부디 영면하시길 엎드려 간절히 비는 아침이다.
2019년 7월 3일 아침
첫댓글 오늘 수필세계 여름호가 발송되었습니다. 권두수필에 적은 글입니다.
정진권 선생님이라는 말에 짜장면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역시 대표작이었군요.
이별하는 마음이야 더없이 애틋하겠지만 좋은 수필들을 남겨 주셨으니
그 글 속에 선생님과 가르침과 그리움이 오래도록 살아 숨쉬겠죠.
먼 길 가시는 여정이 내내 아름답고 평안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