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이 좋다. 행복한 기사의 택시가 더 편하고 안도감이 든다. 행복한 요리사가 해주는 음식이 더 맛있고 몸에 좋다. 행복한 가수의 노래가 더 달달하고 기분을 붕뜨게 만든다. 행복한 화가의 그림은 유난히 화려한 빛을 뿜고 모델의 눈동자에서 요기가 뿜어져 나온다. 행복한 사진사가 찍은 사진은 석청 같은 달달함이 뚝뚝 흘러내린다. 이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갔다. 좋은 건 좋아서 싫고 싫은 건 싫어서 싫다.
불행한 사람이 좋다. 적어도 내 불행의 항소이유서를 형평성의 문제로 신께 돌릴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좋다. 내 분노의 혈을 쿵후 마스터처럼 차단해 버리는 자들이 좋다. 하루 일과를 누가 나와 불행의 접점이 같은지를 찾는데 보낸다. 에드가 엘런 포, 허먼 멕빌, 유진오닐, 이미나목사, 허난설헌, 정약용, 이태석신부, 김대건신부, 정지용,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살아봤자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삶을 버린 코닥 필름 조지 이스트만, 따분해서 인생을 버리겠다는 유서를 남긴 조지 샌더스, 젊고 잘생긴 커트 코베인, 이런 사람들이 좋다.
특히 웃음이 아름다운 잘생긴 신부들을 보면 정적들이 없어서 더욱 좋다. 내 것도 네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만인의 비트겐 슈타인 같은 지적인 동성애자 남자를 보면 뿌듯하다. 그의 팔을 베고 잔디에 누워도 안심보험을 든 느낌이 들것이다. 나의 사랑 비트겐 슈타인!! 황진이를 무안하게 만든 화암 서경덕도 반드시 부셔야할 고난도 게임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불운의 정점을 찍은 청태종 홍타이지의 누나 망구지공주는 불행한 인생으로 기네스북에 올라도 반려당할 가능성이 높다. 설마 이게 실화일까 싶어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우리가 아는 행복한 공주들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았다. 그녀는 1635년 심양에서 중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형벌을 받는다. 누르하치의 사랑하는 셋째 딸로 능지처참으로 죽은 처음이자 마지막 공주이다.
형집행인은 칼을 벼리고 또 벼린다. 술을 마시고 하늘을 쳐다본다. 삼백육십도의 어명이 내린다. 수많은 군중 앞에서 벌거벗겨진 그녀의 살을 한점 한점 도려낸다. 자명고를 찢을 듯한 비명이 처참하게 울린다. 삼백번의 칼질에 망구지는 삶을 마감한다. 역사는 왜 그렇게 잔악했을까? 누나의 배신과 오만함을 남동생은 참지 못했다. 권력은 피도 눈물도 다 잊게하고 사람을 미치게한다. 망구지처럼 기구한 인생이 있을까? 어머니는 피살당했고 남편은 그녀를 배신하고 밀고했으며 친동생은 그녀를 도시 한가운데서 공개 처형했다.
난 날마다 세상이라는 처형장으로 끌려 나간다. 침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해변에 버려진 소주병에 발을 베인 느낌이 들었다. 피가 쏟아질 것 같아서 한참 동안 지혈을 했다. 통풍이었다. 이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아침마다 찾아오는 손님이 되었다. 침대에서 내려오기가 점점 두려워진다. 통증들이 하나씩 손을 잡고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안의 내가 툭 튀어나와 나 같지만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 가끔 나도 모르게 미치는 순간이 있다.
산더미처럼 책을 쌓고 드러눕고 싶다. 스스로 분서갱유 당하고 싶다. 살기 위해 읽고 쓰고 광란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숨이 안 쉬어지고 가슴 깊숙이 회칼이 들어오는 고통과 함께 살고 있다. 망구지가 삼백번의 칼질을 당하고 죽은 것처럼 날마다 고통이 살을 에인다. 행집행인의 칼소리가 방울뱀의 요령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밤새 꿈까지 따라오는 고통이 나를 미치게 한다. 아무리 웃고 떠들고 득도해도 난 안 바뀔 것이다.
내 인생은 날마다 형장이었지만 나 자신은 인내하고 잘 버텼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생엔 가슴깊이 사랑하는 견인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상이라도 받고 싶다. 배꼽이 작고 윤기 좔좔 흐르는 선명한 호피무늬 수박 고르듯 칼로 심장을 폭폭 찔러서 삼각형 수박바처럼 꺼내보는 신의 노련한 칼질이 느껴진다. 섬뜩한 눈빛도 가시광선처럼 느껴진다.
너 아직도 덜 익은 건지?
인류역사상 너 같은 사람이 너뿐이겠느냐? 큰 고통을 겪고 나면 더 큰 고통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 준걸 다시 뺏아가는 신이 제일 싫다. 그래서 난 배교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