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청령포 가족 탐방-2019년 3월 1일
일시:2019년 3월 1일 금요일
장소:영월 청령포
* 영월 가는 기차
영월 가는 기차를 탔다. 큰아들 가족과 함께 간다. 방학해서 왔다. 요즈음은 자가용 시대라서 기차를 잘 안 타기 때문에 기차를 타는 것도 큰 체헙이다. 손주들이 매우 좋아한다. 오늘 우리는 영월 단종의 역사 유적지를 탐방할 것이다.
* 영월 기차역 도착
영월역에 10시경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먼저 관풍헌에 갔다. 아들만 내려서 잠시 둘러보고 사진만 찍었다. 우리 부부는 전에 다녀간 곳이어서 손주들과 차 안에 있었다.
* 영월 단종 무덤이 있는 장릉
관풍헌에서 다시 장릉으로 갔다. 아들과 나만 내려서 잠시 들러보았다. 역시 사진만 찍고 나왔다. 아들은 잠시 단종역사관에 들렀다. 우리 부부는 전에 와서 보았고, 아들에게는 다음 기회에 다시 와서 보자고 했다. 차 안에 손주들이 있어서 시간을 오래 끌수가 없어서다. 그리고 청령포로 향했다.
* 영월 청령포 가는 나룻배 선착장 언덕길
청령포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여 나룻배 선착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배를 타고 청령포로 건너 간다. 강과는 제법 먼 언덕길이다. 이곳 언덕에서 청령포가 아주 잘 보인다. 강이 빙 둘러 휘감은 것도 보이고, 숲에 싸였지만 단종이 머물던 그곳도 잘 보인다.
* 영월 청령포로 가는 나룻배
입장료 속에 배삯도 포함되어 있다. 성인이 3천원, 경로는 1천원이다. 나룻배를 승선했다. 손주들이 매우 신기한ㄴ 표정이다. 그런데 바로 앞이어서 금새 내렸다. 손주들은 배를 더 타고 싶단다. 다음에 또 타자고 말하면서 하선했다.
* 영월 청령포 나룻터 하선
나룻배를 타고 청령포로 건너왔다. 아쉽게도 짧은 시간이지만 배를 탔다는 것만으로도 손주들에게는 큰 체험이다. 돌이 많아 놀고 싶어하는 손주들에게 이따가 놀자고 하고 단종어소가 있는 숲길로 향했다
* 영월 청령포 관음송 솔밭
소나무가 가득 들어차서 울창한 숲속이다. 관음송 소나무가 장관으로 줄지어 서 있다. 관음송은 영월의 청령포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19m의 크기로 1.6m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 청령포는 세조 2년 1456년에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단종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둘로 갈라진 이 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볼 관(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음(音)’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으로 변하여 나라의 변고를 알려 주었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이 나무는 단종과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토록 깊은 뜻이 담긴 소나무인 줄 몰랐다. 관음송 그 뜻을 알고나니 더욱 슬퍼지는 정경이다.
* 영월 청령포 단종 어소
단종은 조부인 세종 30년 1448년 8살에 왕세손이 되었고 10살 때에는 부친인 문종이 즉위하여 그를 세자에 책봉했다.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은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그것을 본 숙부 수양대군은 곧바로 단종 1년 1453년에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황보인과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도모한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한명회와 권람이 꾸며낸 모략이다. 결국 수양대군은 왕이 되었다. 단종 나이 15살 때다. 세조 2년 1456년에는 사육신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와 생육신인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은 등이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했다. 이 사건으로 70여명이 처형되었다. 단종도 17세 때 세조 3년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봉되었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이곳 청령포가 단종이 처음 유배된 곳이다. 뒤는 험준한 암벽이 병풍처럼 솟아 고 능선은 칼날 같아서 맨손으로 오르기 힘들고, 삼면은 서강이 휘감아 흐른다. 물살이 빨라서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들어올 수 없다. 단종의 어소는 산세가 온화된 곳에 있다. 단종이 이곳에 머문 것은 겨우 두 달 남짓이다. 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겨서 단종은 강 건너 영월부 객사인 읍내의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그런데 그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숙부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 복위를 계획한 것이 드러났다. 단종은 전혀 모르는 일인데, 세조는 단종을 서인으로 강봉시키고 10월 24일 사약을 내려 죽였다. 단종은 역모로 몰려 죽었기 때문에 시신은 영월 동강 강물에 내버려졌다. 시신에 손을 대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니 아무도 수습하지 않았다. 이때 영월군의 호장인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사슴이 앉았다가 사라진 곳에 매장하였다. 그곳이 지금의 장릉이다. 엄흥도는 영월을 떠났고 장릉은 돌보는 사람 없어 잡초에 묻혔는데 중종 36년 1541년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다. 선조 13년 1580년에 상석, 표석, 장명등 등을 세웠다. 숙종 7년 1681)녀네는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숙종 24년 1698년에는 단종으로 복위되었다. 사후 241년만이다. 단종은 이토록 큰 아픔을 지닌 왕이다. 단종이 유배되어 살던 집 어소는 기와집과 초가집 두 채다. 기와집에는 단종의 유적이, 초가집에는 시녀들의 유적이 전시되어 있다. 밀랍인형으로 복원한 형상이 단종이 살아온 듯하여 소슬했다.
* 청령포 단종 전망대
단종이 아픈 마음을 달래려고 오르내리던 전망대다. 노산대도 있다. 나는 손녀가 자서 어소 마루에 앉아있고 아들과 손자와 남편 셋이서 다녀왔다. 나는 전에 올라간 적이 있기도 하다. 단종의 뼈아픈 족적이다.
* 영월 청령포 앞 서강
단종 어소에서 나와 나룻배를 타기 위해 기다렸다. 낮 2시경이다. 상행 기차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어서 1시간 정도 서강 강변에서 놀았다. 돌이 많아서 물제비를 뜨기도 하고 돌을 던지기도 하며 손주들과 천진하게 놀았다. 단종의 눈물과 한숨이 섞인 서글픈 강이다. 나룻배는 자주 오락가락 하며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천연색 고운 색상으로 단종의 아픈 마디를 사르려는 의미로 다가온다. 나룻배와 서강 강물과 돌이 만나 절경은 이룬다.
* 영월 청령포에서 나룻배로 나와 바라본 청령포
나룻배로 건너와서 언덕진 길의 긴 계단을 따라 올라오니 청령포가 훤히 전개된다. 전경이 드러난다. 단종이 살아서 저 숲속 어소를 지키며 이별을 고하는 듯하다. 더 오래 저곳에서 살았으면, 아니 저곳에서 왕으로 다시 복원 되었으면 하는 터무니 없는 환상을 잠시 가져 보았다.
* 영월 청령포 광장 휴게소
청령포 광장 휴게소로 나왔다. 이곳도 매우 넓은 공간으로 잘 조성해 놓았다. 커다란 철탑 조형물도 있고, 동무들 그림도 있고, 단종이 발을 타고 유배오던 타일그림도 있다. 청령포 주변의 지도와 돌비도 있다.
* 영월읍을 흐르는 동강 강변에서 즐거운 시간
택시로 영월 기차역에 왔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거의 다 문을 닫고 한 곳 식당에서만 영업을한다. 다슬기 해장국과 순두부탕으로 식사를 했다. 맛있다. 그리고는 동강 강변으로 나갔다. 영월역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기차를 기다리며 보내기 알맞은 곳이다. 세 명의 석상이 있고, 망치와 물고기와 횃불을 하나씩 들고 서 있다. 손주들이 매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만져보곤 한다. 곁에는 체육시설이 있어 손자는 계속 운동을 한다. 석양이 드리우는 동강이다. 간 건너에는 금강정이 있다. 위로는 동강대교, 아래로는 영월대교가 더운 고운 풍경을 그려낸다.
* 영월읍을 흐르는 동강에서 본 금강정
동강 건너편에 금강정이 소슬하게 보인다. 지난반 왔을 때도 이렇게 조망했다. 강원문화재자료 제24호다. 1428년 세종 10년에 김복항이 세웠다고 하나 영월제영에 의하면 장정공 이무가 영월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사재를 들여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춘천으로 가던 중 금강정에 들러 지은 것으로 보이는 「금강정」이라는 시도 전하고 있다. 한편, 우암 송시열도 1684년 숙종 10년에 금강정에 주위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금강정기를 썼다. 건축형식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익공계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다. 정자의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출입하는 칸을 제외한 나머지 칸에는 머름이 둘러져 있다. 정자 안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금강정(錦江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택시 운전사 말로는 단종이 죽자 그 시녀들이 모두 치마를 뒤집어 쓰고 금강정 바위절벽에서 동강으로 투신하였다. 부여 낙화암과 같은 의미의 정자이며 바위다. 그렇게 바라보니 한없이 슬픈 빛이 감돈다. 어둠이 내리자 전등불빛 조명이 금강정에 일어서고, 더욱 소슬한 정자로 동강을 붙들고 있다.
* 영월 기차역 기차탑승 대기
영월에서 오후 5시 26분 상행 기차를 기다린다. 아까 보았던 김삿갓 동상도 다시 보고, 아까 제대로 보지 못했던 영월역 안내문구도 자세히 본다. 역 대합실에는 영월에 대한 지도와 유적지에 대한 제세한 지도와 설명도 있다. 영월 시티투어도 있다 하니 다음에는 그것도 한번 체험하리라 다짐했다. 기차를 타고 올라간다. 집으로 귀가할 때는 어둔 밤길이었다. 이제 조용히 하루가 닫히고, 행복했던 우리 큰아들네와의 영월 여행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