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살의 애견대비를 회통함
第二、會通菩薩愛見大悲者。
둘째, “보살의 애견대비”를 회통함이란 다음과 같다.
問曰:依大乘聖教,菩薩於諸衆生,若起愛見大悲,即應捨離。今勸衆生共生淨土,豈非愛染取相?若為免其塵累也?
묻기를: 대승의 성스러운 교법에 따르면, 보살이 모든 중생에게 애견대비(愛見大悲)를 일으킨다면, 즉시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 중생들에게 함께 정토에 왕생하기를 권하는 것은 어찌 탐애로 인해 집착하고 오염된 마음으로(愛染) 상(相)을 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그 세속의 번거로움(塵累)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答曰:菩薩行法,功用有二。何者?一證空慧般若,二具大悲。一以修空慧般若力故,雖入六道生死,不為塵染所繫。二以大悲念衆生故,不住涅槃。菩薩雖處二諦,常能妙捨有無,取捨得中,不違大道理也。是故《維摩經》(卷上)云:「譬如有人,欲於空地造立宮舍,隨意無礙。若於虛空,終不能成。菩薩亦如是,為欲成就衆生故,願取佛國;願取佛國者,非於空也。」
답하길: 보살의 수행법에는 두 가지 공용(功用)이 있다. 어떤 것인가? 첫째는 공혜반야(空慧般若)(지혜)를 증득하는 것이며, 둘째는 대비심(자비)를 갖추는 것이다. 첫째는 공혜반야를 닦는 까닭에 비록 육도의 생사에 들어가더라도 세속의 오염에 계박되지 않는다. 둘째는 대비심으로 중생을 생각하는 까닭에 열반에 머물지 않는다. 보살은 비록 진제와 속제(二諦)에 처하지만, 항상 유무(有無)를 버리고 (자비와 지혜를 함께 운용하여) 교묘하게 취하고 버림의 중도를 얻어 대도의 이치를 어기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유마경(維摩經)》(상권)에 이르길,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빈터에 궁전과 방사를 짓고자 한다면, 뜻한 바대로 아무 장애 없이 지을 수 있지만, 허공 위에 지으려 한다면 끝내 지을 수 없을 것이다. 보살 역시 이와 같다. 중생을 성취케 하려고 불국토를 건립하는 것이니, 불국토를 건립하길 발원하는 것은 허공에다 방사를 지으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1. 애견대비(愛見大悲): 애견(愛見)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비를 의미한다. 여기서 "애(愛)"는 사혹(思惑)을, "견(見)"은 견혹(見惑)을 뜻한다. 수행이 깊지 않은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지만, 아직 실상의 진리를 증득하지 못했으며, 견혹과 사혹의 번뇌를 끊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애착하는 주체와 애착받는 대상이라는 두 가지 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중생을 보면서 마음에 애착이 생기고 그로 인해 자비심이 일어난다. 이러한 대비는 허망하고 청정하지 못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피로와 싫증을 느끼게 하므로, 마땅히 이러한 대비를 버려야 한다.
2. 애염(愛染): 탐애(貪愛)하여 집착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염(染)"은 오염되고 청정하지 않으며, 세속의 사물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3. 진루(塵累): 번뇌와 악업을 의미한다. 장수법사(長水法師)의 《능엄경소(楞嚴經疏)》에서는 "번뇌와 업은 마음을 오염시키고 계박하므로, 이를 세속의 번거로움에 비유한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4. 공혜(空慧): 공(空)의 이치를 관조하는 지혜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