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80세 늦깍이 어머님들의 졸업식>
마포에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머니들의 늦깎이 만학도를 위한 일성여자중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정규과정으로 매년 졸업식을 하는데 정말 감동적입니다.
올해 최고령 졸업생은 89세 김재술 어머님인데 계속 학업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졸업생들은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한다고 합니다. 정말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다음은 제 축사 내용입니다.
240227_일성여중·고등학교 졸업식 축사
정청래 의원: 안녕하세요, 국회의원 정청래입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여러분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큰절 한번 올리고 인사말 하도록 하겠습니다.(큰 절)
저는 인삼의 고장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10남매 중에 열 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1921년생이니, 살아계셨으면 104살이 됐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무학이었습니다. 말씀은 잘하셔서 ‘변호사’라는 별명은 갖고 계셨지만, 글은 모르셨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45살에 10번째 저를 낳으셨는데, 제가 6살 때 어머니가 호롱불 밑에서 한글을 독학으로 깨우치기 시작했습니다. 1년 깨우치시고 나서 제가 일곱 살 되는 해에 ‘막내야 이리 와라’ 하면서 저녁 먹고 호롱불 밥상 아래에서 저한테 가나다라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국민교육헌장을 읽고, 쓰고, 외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식 날 선생님이 ‘자기 이름 쓸 줄 아는 애 손들어봐’, 제가 손들었습니다. 칠판에 가서 ‘정 청 래’ 이렇게 썼더니, ‘오늘부터 정청래 반장’, 이래서 제가 반장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반장 시키려고 늦깎이로 한글을 깨우치셨기 때문에 그 금산군 오지마을에서 제가 우리 동네 처음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 저희 동네는 줄여서 ‘서울대’에 갔다고 그럽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갔고, 덕분에 이렇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어서 우리 동네에 가니 어머니 친구들이 제 볼에 볼을 비비면서 ‘아이고 청래야, 네 엄마가 이 좋은 꼴을 봤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가셨다’라고 그렇게 많이 어머니 친구분들이 우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존경하는 인물을 써라, 그러면 ‘박 순 분’, 저희 어머니를 씁니다. 일찍 가셔서 지금 안 계시지만 제가 제 서재에 어머니, 아버지 사진을 모셔놓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어머니, 오늘 일성여중 졸업식장 가서 축사해야 돼요’, 그랬더니 ‘큰절 한번 올리고 시작해라’ 그래서 제가 큰절 좀 올리고 인사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렇게 저의 어머니가 그리고 강제징용 끌려가고, 6·25 때 인민군한테 끌려가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오시고, 나는 못 배웠어도 자식들만큼은 허리띠 졸라매고 교육시켰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쓰는데 앞으로는 존경하는 인물을 두 명 더 써라, 그러면 그 옆에 ‘이선재 교장 선생님’ 이렇게 쓰겠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또 한 칸이 있는데, 거기 써라, 그러면 제가 이렇게 쓰겠습니다. ‘일성여중·고 졸업생들’.
오늘 그러니까, 저의 어머니가 졸업장을 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가서 ‘어머니한테 어머니, 오늘 축사 잘 했어요?’, 이렇게 한번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의 어머니가 ‘막내야 잘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졸업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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