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 차를 마시면
박미정
고향 뒷동산이 그리워진다. 솔잎 차를 우릴 때마다, 나는 늘 고향의 뒷동산으로 돌아간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솔잎에서 먼저 풀려 나오는 것은 향기다. 쌉싸름하면서도 맑은, 겨울 공기처럼 투명한 냄새. 그 향이 찻잔 위에 가만히 내려앉는 순간, 기억은 시간을 건너뛴다.
어릴 적, 우리 집 뒤에는 낮은 동산이 하나 있었다. 산이라 부르기에는 작고, 언덕이라 하기에는 숲이 깊었던 곳. 소나무들이 가장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계절마다 다른 얼굴의 풀과 꽃들이 살았다. 봄이면 연둣빛이 가장 먼저 번졌고, 여름에는 송진 냄새가 햇볕에 데워져 공기 속에 흩어졌다. 가을엔 솔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낮은 소리를 냈고, 겨울엔 눈이 쌓여도 소나무는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솔잎 차의 색은 연한 녹색이다. 투명한 찻잔에 담으면, 그 빛이 유년의 시간처럼 여리고 고요하다. 한 모금 마시면 혀끝에 남는 쌉쌀함은, 어린 날의 추위와 닮아 있다. 장갑도 없이 동산을 오르내리던 날들, 손끝이 얼어도 나뭇가지를 붙잡고 올라가던 기억. 그때의 추위는 아프기보다는 생생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을 또렷하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고향 뒷동산은 늘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다만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기다리는 법, 버티는 법, 그리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는 법을. 소나무들은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지만, 하루도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비 오는 날엔 더 짙은 초록으로, 눈 오는 날엔 하얀 침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도시에 살면서 나는 계절을 달력으로 알게 되었다. 나무보다 시계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삶. 그런 날들 속에서 솔잎 차는 작은 탈출구가 된다. 찻주전자를 기울이면, 차가 잔에 흐르는 소리가 조용히 울린다. 그 소리는 마치 눈 덮인 동산에서 내 발자국이 남기던 소리 같다. 사각, 사각.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소리이지만, 가장 깊이 남는 소리다.
솔잎 차를 마시며 나는 종종 어머니를 떠올린다. 겨울이 깊어지면 어머니는 솔잎을 한 움큼씩 따 오셨다. 눈을 털어내고, 물에 씻어 말린 뒤, 조심스럽게 보관하셨다. ‘몸이 따뜻해진다’는 말보다 먼저, ‘향이 좋다’고 하셨다. 어머니에게 차는 약이기 전에 계절이었다. 자연을 몸 안으로 들이는 가장 조용한 방법이었다.
이제 고향은 많이 변했다. 뒷동산으로 가던 길엔 포장이 되었고, 소나무 사이로 보이던 하늘은 전보다 좁아졌다. 하지만 솔잎 차를 마시는 동안만큼은, 그 모든 변화가 잠시 멈춘다. 기억 속의 동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소나무들은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바람을 견딘다.
차를 다 마시고 난 찻잔 바닥에는 연한 녹색의 흔적이 남는다. 마치 한 계절이 지나간 뒤의 여운처럼. 그 여운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고향이란, 돌아갈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한 잔의 차로 불러낼 수 있는 마음의 방향일지도 모른다고. 솔잎 차는 나를 과거로 데려가지만, 그곳에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 대신 지금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잘 살고 있니? ’ 하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늘도 찻잔에서 김이 오른다. 그 김 속에 고향 뒷동산이 흐릿하게 서 있다. 눈 덮인 소나무 아래에서, 어린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 아이에게 한 잔의 차를 건네며, 이렇게 말해 본다.
‘괜찮아. 우리는 아직, 그 향기를 잊지 않았으니까.’
첫댓글 박미정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대중 앞에 자기 글을 올린다는 것은 여간 용기를 요하는 일이 아님을 잘 알기에 감사부터 드립니다. 차 한잔에 하루를 살아 갈 힘을 얻는다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자주 좋은 작품을 올려 주시길 기대합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없더라도 그냥 차 한잔 마시는 기분으로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남의 작품에 댓글을 쓴다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하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