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2)
코헬렛은 질고에 휩싸인 인간의 구원이라는 성경 본래의 근본 주제를 태양 아래 인생의 절대 허무와
그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설파한 책이다. 본서에는 인생의 허무와 그 극복에 대한 문제가 크게는 세 부분
에서 거론되고 있다.
즉 본문 부분인 1장 12절에서 12장 7절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네 가지 주제로 다룬다. 그리고
이러한 본론 부분의 전후에 서론(1장 1절~11절)과 결론(12장 8~14절) 부분이 있다.
코헬렛 1장 1절은 표제로서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라고 시작한다.
원문은 이러한 표제가 '코헬렛(코헬레트)의 말' (The Words of Preacher)로 번역된 '띠브레 코헬레트'
(dibre qohelleth)로 시작된다.
구약 성경의 각권의 이름은 때때로 첫 부분에 나오는 단어로 정해지는데, 본서도 그렇다. 즉 히브리어
성경의 본서 제목이 '코헬렛'(코헬레트) 이다. 본서의 영역본 이름인 'Ecclesiates'는 70인역(LXX; 구약
성경의 희랍어 번역본)에서 사용한 본서의 제목인 '엑클레시아스테스'(ekklesiastes)에서 나온
것인데, 이 역시 본문에서 '설교자'(전도자)에 해당하는 '코헬렛'(코헬레트)의 번역이다.
'엑클레시아스테스'는 '모임'(히브2,12), '집회'(사도19,32)라는 뜻을 가진 '엑클레시아'(ekkleisia)에서
유래하였다.
'코헬렛'(코헬레트)을 '설교자'라는 의미로 수정되는 '엑클레시아스테스'로 번역한 것은 각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희랍어의 어원으로 볼 때 합당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허무로다. 허무!' (habel haballim ; 하벨 하발림)
'코헬렛이 말한다' 라는 문장 앞에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허무로다. 허무'를 서두에 배치하여 강조하는
것은 '허무로다' 에 해당하는 '하벨'(habel)의 원형인 '헤벨'(hebel)이 나타내는 개념을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함이다.
'헤벨'(hebel)은 본래 '증기'(vapor), '호흡'(breath)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유래하여 '실체가 없는', '덧없음', '허무함',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함' 등을 표현하는 단어로,
인간 존재의 헛됨과 인생의 무상함(욥기7,16),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우상의
무능함과 무익함(신명32,36; 1열왕16,13)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희랍어 70인역(LXX)에서는 '허무'(vanity)를 의미하는 '마타이오테스'(mataiotes)로 번역하고, 라틴어
Vulgata에서는 '바니타스'(vanitas)로 번역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를 'vanity'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부조리', '불합리함'을 표함하여 인간의 삶의 총체적 허무를 기술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본절(2절)에는 '헤벨'(hebel)을 원형으로 하는 단어가 단수로 세 번, 복수로 두 번, 도합 다섯 번
사용되었다. 본문의 '허무로다'에 해당하는 '하벨'은 '헤벨'의 연계형이고, '허무'에 해당하는
'하발림'은 '헤벨'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헛된 것들 중의 헛된 것'(vanity of vanities)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히브리어에 있어서 최상급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즉 창세기 9장 25절에서 '종들의 종'으로 번역된 '에베드 아바딤'(ebed abadim)이 '가장 천한 종'
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본문은 최상급의 표현으로 상대적인 허무나 헛됨이 아닌 절대적
의미에서의 허무와 헛됨을 표현하고 있다.
즉 태양 아래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어떤 방법으로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허무와 헛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의 본질적 허무함에 대한 진술과 고백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도 반복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역경 속에 있었던 욥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저는 싫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제가 살 날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 (욥기7,16)라고
절규했다.
바로 이 욥의 고백에서 '입김'에 해당하는 단어가 '헤벨'(hebel)이다.
또한 다윗은 범죄로 인한 하느님의 징계로 그 모든 영화로움을 잃게 되는 모든 인간의 궁극적 형편을
묘사하며, "당신께서는 죗값으로 인간을 벌하시어 좀벌레처럼 그의 보배를 사그라뜨리시니 사람은
모두 한낱 입김일 따름입니다" (시편39,12) 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입김일 따름입니다' 로 번역된 표현 역시 '헤벨'(hebel)이다.
이외에도 성경 여러 곳에서 인생 자체를 숨결보다 가벼운 것으로(시편62,10),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시편144,4), 잠깐 나타났나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안개)(야고4,14)로 묘사하며
그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욥이 고백한 인생에 대한 비관적 선언이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유래한 것이라면, 다윗의
고백은 범죄하는 인간의 실존을 직시하고 그 허무함과 무의미함 등을 절감한 이후 내뱉은 고백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고백된 '헤벨'(hebel) 즉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토로는 일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드러나는 설교자의 진술은 인생의 모든 것들을 다 누린 자에게서 나온다는 점에서
더욱 더 절망적인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즉 인생의 모든 쾌락과 즐거움, 그리고 모든 부귀 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인생을 정리하며 얻은 체험적
결론이기에, 본문의 진술은 더욱 더 충격적이며 어떤 인간도 이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단순한 염세주의나 비관론자의 푸념으로 매도될 수 없는 것이다.
솔로몬의 이러한 진술은 영원하지 못한 것들을 지향하는 인간의 온갖 자의적 수고와, 하느님을 떠나
궁극적인 삶의 목적과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인생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직시한 것에 따른 것이다.
결국 하느님 안에서의 신앙을 가진 자에게만 인생이 참된 의미를 가진다는 긍정적 결론을 위한 신앙적
실존에 근거한 방법론적(기술적) 염세주의라 할 수 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habel haballim hakkol habel; 하벨 하발림 학콜 하벨)
'허무로다. 허무'에 해당하는 '하벨 하발림'(habel haballim)은 본절 서두에 이미 기술되었으나
후반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즉 문장 서두에 언급된 표현이 다시 반복되어 인간의 삶의 헛됨을 보다 강렬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이 허무로다' 로 번역된 '학콜 하벨'(hakkol habel)을 덧붙여
태양 아래 모든 것이 헛됨을 더욱 강조하여 드러내고 있다.
'모든 것이'에 해당하는 '학콜'(hakkol)은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명사 '콜'(kol)과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학콜 하벨'은 '그 모든 것이 헛되도다'(the whole is vanity)로 번역될 수 있다.
본절에서 '학콜 하벨'에 선행하여 '헤벨'(habel)을 원형으로 하는 단어가 네 번 사용되었다. 이 네 개의
단어는 동일한 형태로 두 개의 어구를 형성하여 감탄의 의미를 전달한다.
그런데 태양 아래 인간의 삶의 헛됨을 탄식하는 이 표현에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본문의 '학콜 하벨'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주어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바로
'그 모든 것' 이다. 여기서 '그 모든 것' 이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세상과 인생을 의미한다.
결국 솔로몬은 단수,복수로 제시된 허무에 해당하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여 진한 탄식을 내뱉은 후,
마지막 부분에서 '모든 것'을 주어로 제시함으로써, 일말의 희망을 바라는 독자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도무지 아무런 희망과 참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인간의 비극적 실존을 강렬하게
부각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3절에 그 허무의 범위를 '태양 아래서'로 제시하듯, '그 모든 것'의 영역에는 하느님과,
하느님과 궁극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대상이 제외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출처: 피앗사랑, ri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