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힘] 1부 힘든 시절 ⑲ 드디어 첫 출근 날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는 약물효과
셔터스톡
드디어 첫 출근날, 아침 7시 정각에 회사 운전기사가 내 아파트 주차장에 와 대기했다. 지체할 것 없이 일찍 출근했다. 오전 7시 반, 회사 로비는 조용했다.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복도 경비원이 정중히 맞았고 사무실에서는 비서가 공손히 맞았다.
큼직한 집무실은 창 너머 남산과 시청 앞 광장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차분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오전에 임원들과 상견례를 했다. 전 직원들이 강당에 모인 가운데 치러진 취임식도 순조롭게 끝났다. 몇몇 간부는 평소 내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나는 새로 이사 온 이웃처럼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우울증은 겉으로 봐선 잘 모른다. 이렇게 첫날은 지나갔다.
이튿날에도 나는 오전 7시 반에 출근했다. 러시아워 때 사람들과 부대끼기도 싫었지만 일찍 회사에 나와 있는 편이 마음이 덜 불안했다. 회사 자료를 검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필요했다. 내 업무 처리 속도는 매우 느렸다.
서류 한 장을 보는데도 10분이 걸렸다. 집중이 되지 않았고,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회의 때 발언은 거의 삼갔다. 회사 분위기나 업무도 익숙지 않을뿐더러 두뇌 회전이 엉망이었다.
하루이틀 지날수록 세로토닌의 효과는 줄어들었다. 잠은 그럭저럭 잤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우울한 기분이 다시 지배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심할수록 아침은 지옥 같다. 눈을 뜨는 순간, 오늘도 다시 끔찍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의식으로 시작한다. 자살률이 특히 아침에 높은 것도 이런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미 말했다시피 우울증 치료의 첫 단계 조치는 약물 요법이다. 아무리 신체 건강한 운동선수라도 몸살이나 질병으로 꼼짝할 수 없게 되면 약을 통해 체력을 회복하듯, 정신적으로 허약해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의사의 처방에 따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약물에만 치료를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마음의 병은 역시 마음으로도 치료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본인의 자세가 중요하다.
환자 스스로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 말이다. 아무리 좋은 의사의 치료가 있다고 해도 환자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나를 편하게 할까.<계속>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