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힘들다는 당신에게 _ 글 쓰는 사람에게 의외로 필요한 역량 9가지
[출처] 글쓰기가 힘들다는 당신에게 _ 글 쓰는 사람에게 의외로 필요한 역량 9가지|작성자 신문과방송
강원국 _ 전북대 초빙교수·작가
글쓰기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흔히 어휘력, 문장력, 구성력을 떠올린다. 논리적 사고력, 창의적 상상력을 말하기도 한다. 맞다. 이런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기본이다. 글을 써보니 이런 것 외에 의외로 중요한 역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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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기억력이다
글을 쓰려면 기억하고 있는 게 많아야 한다. 찾아보고 쓰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글쓰기는 기억하고 있는 조각들을 조합해보는 과정이 아니던가. 그러니 기억하고 있는 게 빈약하면 글이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몇 해 전, 이대로 가면 알코올성 치매가 올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 뒤로 나는 네 가지를 한다. 먼저, 수시로 상기해본다. 잠들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보고, 학창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본다. 글을 읽는 도중에도 머리를 들고 방금 읽은 내용을 떠올려 본다. 둘째, 떠오른 내용을 써본다. 가방에 A4 용지를 갖고 다닌다. 카페 같은 데 가면 끼적끼적 써본다. 휴대전화 메모장에도 쓰고, 블로그 같은 데도 쓴다. 문자로 써서 눈으로 보면 훨씬 기억이 잘난다. 셋째, 분류한다. 기억해야 내용을 카테고리별로 범주화해서 가짓수로 기억한다. 끝으로, 말해본다. 말할 수 없으면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고 찾아본다. 이래야 쓸 수 있다. 쓰기 위한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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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발화력이다
다시 말해 말하는 능력이다. 기억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8년 전부터 글쓰기가 편해졌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때부터 강의하고 방송일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써야 할 글이 있으면 그 내용을 혼잣말해 보거나 아내에게말해 본다. 말해 보면 얻는 게 많다. 말하면서 쓸 내용이 생각난다. 또 생각이 정리된다. 내 글의 반응을 앞당겨 알 수 있다. 말하고 쓰면 글이 쉬워진다. 구어체에 가까운 글이 된다. 무엇보다 내가 쓸 말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나에게 말하기는 글쓰기 예행연습이요 준비운동이다.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쓰고 싶은 내용을 1년 정도 충분히 말해본다. 그러면 말이 숙성되고 진화한다. 말하는 과정에서 반응이 좋은 말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말은 도태된다. 결국 반응 좋은 말만 남는다. 그것을 책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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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력도 필요하다
편협하면 글을 쓰기 어렵다. 쓰더라도 오만하거나 옹졸한 글이 되기 십상이다. 독단과 흑백논리에 빠지기도 쉽다. 다른 의견과 반대 시각에 관대하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경쟁자를 존중하고 비판적 의견에 귀 기울인다. 소신은 지키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접근한다.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면 용서하고 화해한다. 자기 진영이라 하더라도 그 생각이 옳지 않다고 여겨지면 손해를 감수하며 설득한다. 패배를 인정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물론 실패 앞에 겸손하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다름에 대한 관용과 잘못에 대한 아량을 필요로한다. 경계에 서는 불편함을 참아내야 하고, 오해와 편견을 견뎌내야 한다. 한마디로 도량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글이 마음에 안 들고, 글을 쓰기 힘들다면, 나는 과연 너그러운 사람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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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력 또한 필수적이다
남의 것, 이미 있는 것을 본뜨거나 흉내 내는 능력이다. 그대로 베끼는 표절과는 구분된다. 모방력은 독서와 사색, 습작으로 키워진다. 나는 신문 칼럼으로 모방력을 연마했다. 모방 능력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변형하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원래 글의 틀은 그대로 두고 내용만 내 것으로 바꿔 A를 A´로 만든다. 직장에서 보고서를 이렇게 쓴다. 2단계는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하는 단계다. A와 B를 합해 A+B를 만든다. 자료를 열심히 찾으면 가능하다. 3단계는 서로 다른 것을 융합하는 차원이다. A와 B를 녹여 AB를 만든다. 언젠가 읽거나 보거나 들었던 내용이 많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4단계는 있는 것을 발전시켜 심화하는 레벨이다. 논문 쓰듯 A를 A+로 만든다. 5단계는 이미 있는 A와 내가 가진 B를 부딪쳐 C를 만든다. A는 자연이나 물건일 수도 사람이나 사건일 수도 있다. 이 밖에도 A를 반박하거나 재해석하는 내용으로 B라는 글을 쓸 수 있고, A와 B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C라는 글을, A글의 형식에 B글의 내용을 담아 C라는 글을 쓸 수도 있다. 이 모두가 모방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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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력도 꼭 갖춰야 할 역량이다
쓰기는 요약의 역순이기 때문이다. 잘 쓰려면 우선 요약 능력부터 키워야 한다. 요약 능력은 크게 세 가지로 발휘된다. 첫째, 중요한 것을 발췌하거나 불필요한 것을 솎아낼 수 있다. 둘째, 전체 내용을 짧게 압축하거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셋째, 글쓴이의 주제 의식이나 핵심 메시지를 뽑아낼 수 있다. 나는 양이 질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양을 확보하면 질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양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세상이다. 문제는 요약력이다. 확보한 양을 질로 전화(轉化)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글이나 말만 요약의 대상은 아니다. 현상이나 사건, 사태 모두 그 대상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거나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것의 본질을 파악해 한두 마디로 설명하거나 규정하고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요약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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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력도 불가결하다
글쓰기는 물음에 답하는 행위다. 좋은 글은 질문이 좋다. 질문하려면 3심이 필요하다. 관심, 호기심, 의심이다. 관심이 있어야 궁금해지고, 궁금해지면 의문을 품게 돼 질문한다. 애정과 열정도 있어야 한다. 사랑하면 궁금하다. 연애할 때를 떠올려보라. 상대에 대해 알고 싶다. 끊임없이 질문한다. 잘하고 싶은 열정이 있어도 질문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용기도 필요하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관계가 어색해지는 걸 감수하며 반문하는 용기. 관심, 호기심, 애정, 열정, 용기의 산물이 질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질문이 살아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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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도 긴요하다
글을 이해하는 독해력과는 다르다. 글을 감상하는 능력이다. 문해력이 있는 사람은 네 가지가 가능하다. 첫째, 글을 평가할 수 있다. 이 글은 잘 쓴 글이다, 어떤 점이 좋다, 혹은 수준이 낮다 등등. 글을 보는 안목이 있다. 둘째, 무엇이 틀렸는지, 어떻게 쓰면 안 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오탈자, 문맥에 안 맞는 단어, 비문, 장황하고 모호한 표현 등. 나는 요즘도 길거리 간판이나 안내문, 지하철이나 버스의 광고 문안을 고친다. 출판사에서 1년 여 동안 편집자로 일해 본 경험 때문이다.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다”라고 한 이태준 선생의 말을 믿는다. 셋째, 글을 읽을 때 일방적으로 주입하지 않는다. 글을 쓴 필자와 교감하고 대화한다. 이걸 왜 이렇게 썼지? 내 생각은 이렇지 않은데? 맞아, 나도 이렇게 생각해 등등. 넷째, 읽은 내용을 내 글에 써먹는다.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읽은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고 자기화해서 자신이 쓰는 글에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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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력도 요구한다
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놀이를 즐긴다. 순발력이 있다. 엉뚱하다. 호시탐탐 남을 웃기려 든다. 관심 대상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적어도 남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꺼리는 듯싶다가도 막상 시키면 재밌게 한다.
무엇보다 유머감각이 있다. 가장 흔한 경우는 과시형이다. 이른바 ‘자뻑’이라고도 한다. 내가 그렇다.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허세를 부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웃는다. 비웃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웃는다. 반대로 ‘자폭’도 한다. 주로 ‘똥’ 얘기를 한다.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낭패 본 얘길 하며 자학한다. 사람들이 웃는다. 동정인지 공감인지 모르겠지만 공감이라고 믿고 싶다.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봐도 사람들은 공감할 때 웃는다. ‘맞아, 나도 저런 적 있었어!’ 이밖에도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비아냥대면 웃는다. 흉내 내는 건 자신이 없고, 비꼬거나 놀리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한데 위험하다. 아무튼 예능력은 필요하다. 글은 재밌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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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력도 절실한 능력이다
어쩌면 나는 이것 하나로 글을 써왔는지 모른다. 우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써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글이 써졌을 때의 기쁨을 미리 맛보면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또한 글을 쓰다보면 시시때때로 벽에 부딪친다. 그만 쓰고 싶어진다. 쓸거리가 소진됐을 때도 그렇고, 글이 더 이상 늘지 않을 것 같을 때도 그렇다. 특히 누군가에게 혹평을 받거나 글의 반응이 좋지 않을 때 글쓰기는 위기를 맞는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상당 기간 글쓰기를 멈추게 된다. 글과 영영 멀어질 수도 있다.
이런 슬럼프를 이겨내는 힘이 필요하다. 나는 소진됐다고 생각할 때 채워 넣는다. 정체기라는 느낌이 오면 몇 가지 방식으로 심기일전한다. 리셋해서 다시 시작하거나, 초심으로 돌아가 리부팅하기도 하고, 작심삼일을 반복하자고 마음먹기도 한다. 작고 짧게 계획을 세워 그것을 이루고, 그 성과에서 자신을 얻어, 또 작고 짧은 계획을 세운다. 그래야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 곰처럼 우직하게, 은근과 끈기로 참아내고 버티고 지속해야 잘 쓸 수 있다.
이밖에도 관찰력, 비판력, 유추력, 공감력, 감성력 등 글쓰기는 다양한 역량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이런 역량을 다 갖춘 사람도,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자신이 쓰는 분야에서 특별히 요구하는 능력을 기르고 갖추는 데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있다.
위 기사는 <신문과방송> 2022년 7월호
기획연재 _ '글 쓰는 사람에게 의외로 필요한 역량 9가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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