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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다음날 효주 집
"그딴 자식의 말은 잊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하하, 그게 말이돼?
무슨 재킷이 2천만 원?
그거 완전 너 제대로 물 먹여 보려고 그러는거야.
너 흔들리면 안돼.
흔들리면 은유천 작전에 휘말리게 되는거나 다름없는 거니깐. 알겠니?"
아무 말 없이 그저 툴툴거리며 순전 다 거짓부렁이다…
순전 다 은유천이 지어낸 거다.
2천만 원 짜리 재킷이 이세상 어디에 존재하고 있겠냐…
식으로 말 보따리를 풀어놓는 구비연이를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근데 말야…
나 그런 거 봤어.
"비연아."
"왜?"
은유천 욕하기에 한껏 열을 올리고 있던 비연이가
날 쏘아보듯 노려본다.
순간 움찔하게.
"나 봤어. 그런 거…."
"뭘 봐? 그런 거 뭐? 쩝쩝."
자기 집 냉장고인냥
심심하면 냉장고 문을 열어 이것저것 뒤지는 비연이.
무언가 먹을걸 찾아내기라도 한 듯 주접스럽게
먹는 소리를 낸다.
그 찾아 낸 것은 빵이었다.
먹다 남은 빵을 쩝쩝 거리며 나를 돌아다 본다.
그리고선 묻지. 그런 게 뭐냐구.
"2천만 원 짜리 재킷 같은 거."
"…쩝쩝."
내 말이 끊기고 나서 비연이의 먹는 소리만이
나의 이 말에 대꾸를 해줄 뿐이었다.
"효민이 유학가있잖아.
저번에 효민이 보러 갔었던 적 있었잖아?"
"응. 그랬었지. 효민이 많이 컷드라?"
효민이는 다 컷어. 비연아…
효민이가 네 그 말 들었으면 아마 화가 많이 날거야.
"그 때 효민이랑 나랑 둘이 쇼핑을 했는데 말이지…."
"응. 그랬었지.
네 둘 끼리만 의리 없게 나 뭐 먹는 거에
혹해 있을 때 쇼핑하고 그랬었지.
그래, 예쁜 옷 많디? 맞아.
이 옷두 효민이가 나 선물해 준거였잖어. 히히."
헤죽헤죽 웃으며 그 때의 추억들을 생각하며 웃는 비연이.
나도 그 때의 추억들이 생각이 나면서
효민이 얼굴이 내 머리 속에 팽그르르 자리잡아 돈다.
효민이 보고 싶어… 내동생 효민이.
"응. 그 때 쇼핑했을 때 나 봤어.
2천만 원 짜리보다도 더 비싼옷."
"쩝쩝…."
"진짜 그 때 효민이랑 나 두 입 쩍 벌리고
침을 질질 흘렸다니까… 하하."
멋쩍게 웃으면
비연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먹는걸 중단한다.
그리고 내 머리에 한 손을 얹으며 말하길.
"너의 죄를 사하노라."
라고.
"그렇게 좋은 구경을!
네 둘 끼리만 했단 말이야?
왜 나한테 그 말 안했어?"
"해봤자 좋을 거 없잖아. 그래서 안했지."
"사지는 못하더라도 기념으로 사진 몇 장은
찍어서 남겨 두는 건데! 거기 어디야?
우리 요번 방학 때가자!
완전 이번에 가면 완전 꼭 사진을 찍어 두겠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네가 그랬잖아. 방금…
2천만 원 짜리 같은 옷이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할 수 있겠느냐구…
근데 난 보았어. 그리고 넌 내가 보았다는걸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구.
휴….
그 때 그 옷을 못 봤더라면 방금 전 비연이
말대로 세상에 2천만 원 짜리 같은 옷은 없을거라고 믿었을 텐데…
근데 그게 아니란걸 난 확실히 알아 버리고 말았어.
"효민이 잘 있다니?"
"응. 근데 요즘 많이 바쁜가봐."
"왜? 힘들데?"
"직접적으로 그런 말은 안 하는데,
형제간의 느껴지는 핏줄이랄까?"
"아. 그 핏줄이 땡긴다는거?"
"응."
웬지 목소리도 안 좋고
많이 힘든 것 같아.
"아무튼!
은유천 같은 자식 말엔 귀 기울일 필요가 없어."
"……."
"그리고, 이사랑 넌 낼 모레 학교 가면 뒤졌어.
씨… 나 없는 빈틈을 타서 조금,
아주 쪼꼼 모자란 차효주를 물 먹여?"
조금…
아주, 쪼꼼…
모자란 애…라니. 구비연!
너 지금 말 다했어?
"넌 걱정하지마.
내가 내일 모레 학교가서 단판을 지어 줄 테니까. 후…"
뜨거운 한숨을 내쉬곤 이번엔 티비 리모콘을 잡는
마귀의 손길 같은 비연이의 저 현란한 손놀림.
잡자마자 볼륨을 양껏 올리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재낀다.
비연이는 모르는가 보네.
주로 전기세를 잘 나오게 하는 행위가
채널을 미친 듯이 돌리는 것인데.
"와. 짜식… 뽀대난다.
뽀대나. 나 쟤 너무 좋아. 죠앙!"
미친 듯이 돌려지던 채널이
케이블채널에 우뚝 멈춰서고…
비연이 취향이 참 독특한 게…
저런 폭탄을 좋아하는구나.
"나도 좀 꾸미구 해서 저기 나가 볼까?
확! 남자를 후려서 돈 좀 뜯어 내봐?"
비연아, 참으렴.
"저년들 저거저거… 지금 내숭 떨구 자빠졌다.
나 구비연이 나가면 저년들 다 이길 수 있는데. 훗. 땡겨땡겨."
지금 이렇게 비연이가 구미 땡겨 하는 것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1:1미팅.
혹은 1:2미팅으로
프로그램명은 <아찔한 미팅>인데
항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자기가 꾸미구 나가면 상대편으로 나온 남자를
완전히 유혹할 수 있다는 비연이.
알 수 없는 자신감에 마구 휩싸여선
여자 출연자들을 향해 비난의 삿댓질을 마구 해대는 비연이었다.
그게 쉬운가… 누군가를 사로잡는다는 게.
"쟤, 코 높혔네? 꼴에 코 높혔어."
이젠 하나로 싸잡아 비난 하기에 머무르지 않고
한 명 한 명 콕 집어 비난을 퍼붓기 시작하는 비연이었다.
참 못된 버릇이야…
다른 사람한테 상처되는 말만 골라서 하는 거…
그걸 알긴 아나 몰라.
지이잉-
이때 떠들썩한 티비 볼륨소리와 비연이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묻힌 내 핸드폰 진동소리가 자그맣게 들려 왔다.
난 비연이에게 볼륨 좀 낮추라고 말했지만…
이 내 말소리는 지금 비연이 귓구멍에 들리우지 않나보다.
"여보세요?"
발신 번호를 보니깐 누구 번호인지 모르겠다.
일단은 누구세요를 말하고.
"비연이 바꿔 주세요!"
앗, 깜짝이야!
"비연이요?"
"네!"
"잠깐만요."
왜 나한테 전화해선 비연이를 찾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비연이에게 바꿔 줘야겠다 싶어서
비연이에게 핸드폰을 쥐어 줬다.
그러면 비연이는 여전히 티비에 시선을 꽂은 채
전화는 하는둥 마는둥 껄떡대는데
그 때 쿠션으로 비연이 머리를 내리쳤다.
정신 좀 차리라구.
"어? 어. 응. 알았어. 그래."
누구의 전화인지 아까 내가 볼륨 좀 낮춰 달라고
사정할땐 듣는 척두 안하더니 이젠 저가 알아서 볼륨까지 낮추고
통화를 한다.
통화가 끝났는지 내게 던지듯 핸드폰을 주곤 내 팔목을 잡는다.
"……?"
"자, 갑시다!"
갑시다?
"가자구? 어딜?"
"류찬희네 집!"
"뭐? 내가 거길 왜 가는데?"
"류찬희 술병 났다는데?"
그러니까 류찬희가
술병 났다는데 내가 거길 왜 가냐구요. 구비연양?
"이 기집애 생각보다 속이 좁네. 응?"
내가 흔쾌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않자
내 머리를 콩 쥐어박으며 말하는 비연이.
"네가 어제 류찬희한테 그랬다며.
은유천 왜 때렸냐구.
그래서 류찬희 네 그 말에 화나 가지고
그냥 카오스 나가 버렸다며?
걔 그렇게 보내고 너 혼자 집에 쳐와선 잠 자구.
너 그러고 아침에 밥이 넘어가디? 응?"
"……."
"자, 갑시다!"
"…안가."
"자, 가자. 가자!"
얼른 일어나라고 날 보채도
난 안 일어나. 안 일어난다구요.
"너 왜 이렇게 고집 피우는데?"
"…안가. 나 잘 거야."
비연이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고
이불을 덥고 누워 버리는 나였다.
예전같았으면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내 등을 철썩 철썩 소리 나게 줘 팼어야 하는 게
비연이의 참다운 반응일진데
오늘따라 약간 썰렁한 반응이 감돈다.
비연이 집에 갔나, 하고
빼꼼히 이불을 내려보는데…
순간 식겁을 하고 말았다.
내가 식겁을 한 이유는 바로…
내 코 앞에 바짝 다가와 선 비연이 때문이었다.
"나 오늘 너 류찬희 집에 안 데리고 가면 진하한테 죽어.
그러니까 얼른 가자. 가자, 효주야!"
아까 전화한 사람이 진하였나보다.
근데 목소리가 많이 틀리던데.
"나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물어 봐도돼?"
"그럼 가는 거다. 내가 그거 말해주면?"
"…됐습니다. 잘 거야. 잘가."
"알겠어. 궁금한 게 뭔데?"
"……."
"궁금한 게 뭐냐구. 이년아."
내게 헤드락을 걸며 묻는 비연이.
이제 인내심에 한계에 다다랐구나.
항상 인내심이 바닥나면 내게 헤드락을 거는 비연이었기에
비연이가 지금 많이 초조해 하고 있구나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진하랑 무슨 사이야?"
"진하랑 무슨 사이냐니?"
"음… 아니 꽤 가까워 보여서."
"진하랑 나 초등학교 동창.
초등학교 때 이진하 인기 진짜 많았어."
그 말을 하면서 웃는 비연이의 모습…
마치 짝사랑의 빠진 사춘기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설마… 비연이… 혹시?
"너 혹시 진하 좋아해?"
"미, 미쳤어?"
내 이 질문에 화들짝 놀라는 비연이.
하긴 비연이가 좋아했으면 나한테 소개팅 시켜줬을라구.
"너 혹여라도 진하한테 내가 뭐…
이진하를 좋아한다, 이렇게 말하면 너 죽어."
"나 그런 말 안 할 건데."
"아무튼! 장난 삼아라도 그렇게 말했다간
우리 절교야, 절교!"
"풉."
내가 갑자기 웃자 토끼눈을 해서는
내 멱살을 잡구 흔드는 비연이.
잠깐… 잠깐만… 숨막히잖아.
지이잉-
문자가 왔다.
...........
......
.....................
난 확인하고 난 후 즉시 핸드폰을 닫아 버렸다.
정말… 못 볼 걸 본 것 마냥…
식은땀까지 주르륵 흘리는 나였다.
"왜 그래?"
"아니야. 아무 것도."
"근데 왜 땀을 흘려?"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 손닿지 않는 곳에
던져 버리고 손톱을 물어뜯는 나.
긴장되면 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비연아, 가자."
"어딜?"
날 설득 시키는걸 일찌감치 포기한 건지
다시금 티비 볼륨을 높히려 자세 잡은
비연이에게 옷을 던지며 말했다.
"류찬희네 집."
어떤 얼굴로 류찬희를 만나야 하는 건지
어떻게 그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
막상 갈피가 잡히진 않지만
일단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비연아.
뭐…
내가 이렇게 신발을 신는 이유는 저것 때문이겠지만.
핸드폰으로 온 문자 때문이겠지만.
# 15
★ 찬희 집
"……."
아이들의 환영을 한몸에 받으며
찬희 방에 구겨져 낑겨 들어온 난 멍하니
찬희의 게임하는 모습만 살아 있는 망부석이 된 채
쳐다보고 있다.
찬희 게임을 좋아하는구나.
왜 옛날 친구집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우리 집엔 없었음) 그 게임기!
티비랑 연결해서 하는 건데 게임칩을 꽂으면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옛날에 유행했던 마리오나 비행기게임.
옛날 생각을 하니깐
찬희의 게임기를 뺐어서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 난 그럴 처지가 아니지. 음….
지금 찬희가 하는 게임은 내가 모르는 게임이다.
새로 나왔나 본데.
"……."
찬희 많이 화났나봐.
나방에 들어온 거 알면서도.
계속 게임에만 열중해.
"죽었어!"
게임이 끝났다고 고레고레 고함을 지르며
게임기를 부셔버릴 듯 맹렬한 기세로
게임기와 투닥거리는데
이내 게임기에 항복을 선언한(채 1분도 되지 않음)
찬희는 다시금 게임기를 두 손 가득 끌어 잡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퍽퍽 퍼먹는 찬희.
아이스크림은 녹아 있었다.
물이 되어 줄줄줄…
하지만 그 물 아이스크림도 맛있는지
꽤 맛있게도 먹는 찬희였다.
그 물 아이스크림 맛은 딸기맛.
나도 딸기맛 아이스크림 진짜 좋아하는데.
"아오, 또 죽었어!"
게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게임아웃이 되어 다시 또 길길이 날뛰는 찬희.
하지만 전처럼 또 재빨리 안정을 되찾아 간다.
이제 난 게임하는 찬희의 모습을 구경이라도 하는
구경꾼이 되어 찬희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반응을 보인다.
"난 뒤에도 눈이 달렸거든."
"……."
"앉으려면 여기 앉던가.
왜 비겁하게 뒤에 가서 앉고 그래?"
비겁하다는 표현이 지금 맞는거니?
아무튼 찬희는 지금 날 자기 옆으로 와 앉으라고
무서운 표정으로 바닥을 갓 돌지난 아이처럼…
마구 두들겨 대고 있다.
왜 아기들은 응가하구…
방바닥 철썩 철썩 문지르는데…
왜 꼭 지금 저 애의 모습이 그 모습과도 같아 보이는 거지… 휴.
"뿅뿅-"
게임이 시작되자 게임 시작 효과음을
입으로 소리내어 흉내내는 찬희.
완전 신났네.
괜히 걱정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
"…모르냐."
옆에 앉았다가 바로 일어나는 내 팔을 급작스레 붙들고
대뜸 '모르냐'를 읊조리듯 뱉어 낸 찬희는 티비 화면까지
꺼 버리고 나와 두 눈을 마주한다.
두 눈이 마주하니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자연스레 시선이 딴 곳으로 두어지고.
"사과 하는 방법 모르냐고."
"……."
"그냥 얼굴 도장 찍고 가는 거 사과 아닌데.
눈 마주친 걸로 사과된 거 아닌데."
"……."
"찬희야, 미안해."
"……."
"해 봐."
...........
......
.....................
"그리고 서로 볼에 그거 해주는 거야. 이 방구야."
찬희야, 미안해.
그리고… 서로 볼에 그거 해주는 거야.
그리고… 이 방구야?
"내가 왜 방구야!"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깜짝이야."
두 귀를 틀어막으며
인상을 양껏 찌푸렸다 편다.
있지 나 네 앞에서 방구 낀 적 없거든?
근데 내가 왜 방구냐구!
"효주야, 미안해."
나한테 미안해 하곤
내 코앞까지 가까이 다가와선
새빨간 그리고 촉촉한 입술을 삐쭉 내밀며
내게 차츰차츰 가까워지려고 하는 이 애.
지금 이 애 표정은 '음흉'에 가까웠다.
"씨… 아까워. 뽀뽀할 수 있었는데!"
"……."
내가 확 밀쳐 버리자 꼭 비련의 여주인공 마냥
어깨를 부여잡곤 울먹이며 말하는 류찬희.
그냥 확 걷어 차 버릴걸 그랬어.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자세를 취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라구요. 이 음흉한 놈아!
"이 방구야, 사과는 미안해랑
뽀뽀랑 같이 해주는거야."
"어디서 엉터리 사과방법을 습득해 가지고 와서 이래.
그리구 내가 왜 방군데! 이 음흉한 놈아!"
"뭐? 음흉?"
"그래, 음흉! 이 음흉한 놈아!
앞으로 다섯발자국 여유를 두고 접근해. 짜증나!"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고 방문을 확 열어 제끼니깐.
"야, 볶음밥 해줄게. 너 계란 까."
"알겠어!"
"후암! 쇼파에서 자다가 굴러 떨어져서 여기까지 왔네?"
"어머, 나두…."
문 앞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듯
갑자기 내가 문을 열어 제끼니깐
우루루루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와
널부러져 있는 이 아이들.
진하는 볶음밥 해준다고 비연이 꼬드겨서 일찌감치 도망을 갔고,
쇼파에서 자다가 굴러 떨어졌다는 두경이는
새빨개진 팔꿈치를 문지르고 있었고,
두경이와 같이 쇼파에서 자다가 굴러 떨어진 한솔이는
나와 두 눈이 마주치자 화장실로 토껴 버렸다.
정말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남 얘기하는거나 엿듣고 있구…
정말 실망이야.
★
"아까 벌러덩 넘어지는 거 잘 봤다."
"진짜 웃겼어."
"표정 최고."
엄지를 척 내보이며 말하는… 두경이.
그리고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배를 부여잡고 웃으며 나뒹구는 한솔이.
뭐…
이와 같은 널부러진 반응은 진하와 비연이가
정성껏 만들어 온 볶음밥으로 인해 중단되었지만.
푸짐한 볶음밥!
이 볶음밥에 들어간 재료가 무엇인지
갈피는 잡지 못하겠지만
정성껏 요리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볶음밥이 나오고 두경이 한솔이는
미친 듯이 숟가락을 들고 퍼먹기 시작한다.
케찹을 뿌리는것도 잊을 만큼 배가 고팠던듯…
그렇게 눈 코 뜰 새 없이 미친 듯이 밥을 입에다
퍼 넣는 이 두 아이.
"우웁!"
"욱!"
볶음밥이 급하게 입안으로 굴러가다가
목에 걸리기라도 했는지 신나게 볶음밥을 퍼먹던
이 두 아이는 너도나도 화장실로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한다.
먼저 화장실을 차지한 두경이의
이 식사시간의 흐름을 깨는
오바이트 소리를 내더니
얼굴이 초췌해져서는 한솔이를 화장실로 급히 들여보낸다.
그리곤 그 초췌한 얼굴로
식탁으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두경이.
와… 호러무비다.
"자수해. 누가 여따가 된장 넣었어? 어?"
...........
......
.....................
되… 된장?
...........
......
.....................
"내 이 코가 개코에…
이 이 혀가 장금이랑 맞먹는 미각을
자랑하는 혓바닥이라고…
발뺌할 생각 말어.
범인을 잡아서
똑.같.이.
복수해 줄거니깐."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복수에 가득 차 있는 두경이었다.
난 이 볶음밥 맛이 도대체 어떻기에
저러한 반응을 보이는 건지 궁금해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볶음밥을 입에 넣으려 할때쯤….
"…토나와."
힘겹게 그 말을 내뱉은 후 한솔이가
들어간 화장실 문을 아까 방에서 게임기 부술 듯한 기새로
화장실 문을 두들기는 찬희였다.
저 모습을 보니까 저절로 숟가락이 놓아졌다.
이거… 된장이 아니라 독을 탄 게 아닐까?
아니면
10년씩이나 묵은 된장이 아닐까?
"훗. 복수 성공!"
"반응이 이렇게 열띨준 몰랐는데.
다음에 또 하고 싶다. 킥."
둘의 크로스 오버에
모두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도….
진하랑 비연이… 끼리끼리 잘 노는구나.
진하가 여자 같은 건지 아니면 비연이가 남자 같은건지.
정말 둘이 죽이 잘 맞아서 잘 노는구나.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한 이유가 뭐지?"
순간 분위기가 싸해지고…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잖아."
...........
......
.....................
"네들이 나 놀렸잖아."
...........
......
.....................
"내 가슴 절벽이라고 놀렸잖아!"
비연이의 그 말에 모두들 벙쪄선
그냥 멍하니 선 채 비연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난 또 뭐 그럴싸한 이유로 복수극을 펼친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을 한 나를 바보로 만들기에
딱 좋은 비연이의 지금 이 행동.
정말 못말린다. 구비연.
...........
......
.....................
"잠깐 나와."
내게 잠깐 나오라고 말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찬희.
난 이 혼란을 타 찬희를 따라 집밖으로 나갔다.
이런 혼란에 아무 생각 없이 있다 가
어떤 꼴을 당할지 몰라.
"왜 나오라고 했어?"
계단에 앉는 찬희에게 말했다. 그러자 또
계단 바닥을 손으로 탁탁 두드리는 찬희.
아… 앉으라는 뜻이겠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바닥에 놓아두는 찬희.
설마… 그 모자 위에 앉으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앉아."
"아니. 이건 쫌…."
감히 네 모자 위에 어떻게 앉을까 싶기도 하고
내 엉덩이가 이렇게 작지는 않은 것 같구. 좀 그래. 찬희야.
난 바닥에 굴러다니는 전단지를 하나 골라 바닥에 깔곤 앉았다.
바닥이 차긴 차구나.
"왜? 무슨 할 말 있어서 부른 거 아냐?"
"……."
심각한 표정에 찬희.
난 분위기가 불안해 져서 얼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이런 분위기는 별로 안 좋아해서.
"할 말 없으면 들어갈게."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문고리를 잡는데
그 때 들려 온 찬희의 목소리.
많이 쳐져 있었다.
"미안."
"어?"
"미안…."
"뭐가?"
"그냥 다."
"……?"
"저번에 미친개한테 혼나게 했던 거… 그리고 이번에 은유천 때린 거."
"아… 아니야. 어젠 내가 더 미안했어."
설마 뽀뽀하라고 하진 않겠지?
아까 그렇게 된통 당하고 나서도 뽀뽀하려고
댐비면 정말로 진득하게 차버릴거야. 류찬희.
"…그리고."
"……?"
"옥상에서 내가 너한테 그랬던 거… 그것도 미안해."
"……!"
"나는… 그냥… 하.
모르겠다. 나도… 내가 그 때 왜 그랬는지…."
"……."
"난 그런 놈이니까… 나쁜 놈…."
# 16
씁쓸한 표정을 한 채 내게 그렇게 말하는 찬희였다.
이런 진지한 모습은 평소에 볼 수 없어서였는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
그렇게 긴장감이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지
2분이 다 되어 갔을 때 찬희가 내게 물었다.
"근데… 학교에… 그 소문 말이야. 그거 정말로…."
그 말을 듣고 내 표정은 확 굳어 버렸지만.
"아, 실수… 실수!"
실수를 했다며 자기의 입을 손으로 툭툭 치며
두 손을 번쩍 드는 찬희.
내 굳은 표정이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무서운가 싶은 게.
"그 소문."
"……."
"나도 왜 퍼졌는지 몰라."
결국은 이렇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모르긴 뭘 몰라.
그거 이사랑이 퍼트린 거잖아.
하지만… 이렇게 사실대로 말하긴 싫었다.
친구였던 아이가
그런 소문을 퍼트렸다는걸 알면
정말… 날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이사랑과 어쩌다가 마주치는것도 싫은데
이 말을 해서 혹여 마주치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난 두 입을 꼭 다물었다.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 할… 나의 비밀.
그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웃어."
계속 굳어 있는 내 표정을 찬찬히 살피더니만
정말로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는 찬희.
날 보며 씨익 웃는다. 아니, 웃어 준다.
"넌 아는 게 뭐냐?"
"……?"
"사과하는 방법도 모르고, 웃는 법도 모르고… 네가 아는 게 대체 뭐냐?"
정말… 류찬희. 너!
"우리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
"그 새끼 옆에 서있던 그 때처럼…."
"……."
"좀 웃으라고… 방구야."
"너 또 방구 방구한다?"
이젠 더이상은 못 참아. 못 참겠어.
너의 그 말버릇을
너의 그 몹쓸 말버릇을 뜯어고쳐 놓겠어.
"내가 왜 방군데? 그 이유나 좀 설명해봐!
왜 날 자꾸 방구라고 부르는 건데?"
"그럼 빙구라고 그러냐?"
"뭐… 뭐? 빙구?"
"빙구보단 방구가 낫잖냐."
그러고선 저 혼자 신났다고 웃는 찬희놈.
아… 정말… 정 떨어져!
"또 물어 볼 거 생각났는데."
이번엔 또 뭘 물어 보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내가 다 불안해져 온다니까.
"…왜 헤어졌는지 물어 봐도 돼?"
"……."
"그러니까.. 그 새끼랑 왜 헤어졌는지… 그거 궁금하다고."
은유천이랑 내가 헤어진 이유…
그건….
"우리 권태기가 다른 커플 보다 일찍 찾아와 버렸거든."
좋게 말하면 권태기이고,
나쁘게 말하면… 맞바람이랄까?
너도 이별에 큰 원인 중 한가지였는걸…
물론…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지만…
자꾸 그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부글부글 화가나.
그래서.
퍽!
찬희의 배를 주먹을 꽉 쥐고 쳐 버렸다.
"윽!"
내 주먹 기습에 비틀 거리며
내가 때린 배 부분을 감싼다.
그리곤 날 원망하듯 노려보는데.
"내가 왜 널 때렸는지 궁금해?"
고개를 끄덕이는 찬희.
"은유천이랑 나랑 깨진 이유에…
네가 큰 원인을 제공했거든."
"원인 제공?"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튼 그것만 알아둬."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날 다시 붙드는 찬희였다.
"원인 제공이라니? 그거 무슨 말이냐니까?"
"말 그대로 원인 제공.
너 원인 제공이라는 뜻 몰라?"
"알아."
"알면 된거잖아."
그렇게 차갑게 말하곤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또 마주친… 이 네 아이들.
"너희들 정말!"
내가 고함을 꽥 지르자.
"아… 입맛만 뵈렸고… 라면 사 먹을까?
야, 너 돈 챙겨서 나 따라와."
"왜 자꾸 가만히 있는 나를 끌여들여?"
"야, 네 복수 할 수 있게 해준 게 누군데!"
"이미 나의 복수는 끝났어. 이진하."
"얼씨구… 그래서 이젠 나같은건 필요없다 이거냐!"
"당연한 말씀을 지껄이고 있네. 흥."
진하랑 옥신각신 싸우다가
티비 앞으로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 버리는 비연이.
그런 비연이의 뒤를
어디 한 번 오늘 판가름을 내보자는 식으로 뒤쫓는 진하.
그리고….
"야, 500원짜리 못 찾음 500원
어치의 네 검은머리를 뽑아 버리겠어."
"검은머리 말고 흰머리 뽑아라…
나 흰머리 진짜 많은데!"
"야, 흰머리 많은 게 자랑이냐?"
"자랑이라고하면 자랑이지.
지는 흰머리도 없으면서."
"하… 하나라도 나보다 더 가지고 있다고
유세떠냐 지금?"
"그렇다면?"
두 눈을 부글부글 태우며 멱살을 잡고
방으로 들어간 두경이와 한솔이.
한솔이… 흰머리가 있는 게 자랑스러운가 보구나.
"야, 늬들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마!
방 꼬라지가 이게 뭐냐고."
방에 널부러져 있는 다먹은 캔콜라를
뻥 걷어차며 아이들에게 말하는 찬희였다.
그러곤 저 혼자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방을 청소하기 시작하는 찬희.
청소를 즐겨 하나?
"……?"
내게 현란한 색을 뽐내고 있는
총채를 하나 쥐어 주는 찬희.
"쓸어."
내게 바닥을 쓸으라며 총채를 쥐어 주고
자긴 먼지털이개를 들고
구석구석을 먼지를 털기 시작하는 찬희.
있지… 너 지금 다 들통났어.
"넌 창문 닫고 청소하니."
너 지금 무안해 하는것도 다 들통났어.
이 거짓부렁이 아이.
류찬희는 청소도 모르는 바보래요!
★ 다음날 하교 후
이상한 하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늘이었다.
날 자기 노예로 삼고
아무런 태클도 걸어오지 않는 은유천이나
잠시 내 임시주인님이된 이사랑 또한 학교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찾아가 따지고 싶을만큼
그렇게 어디엔가 꼭 숨어 있는 둘이었다.
그 덕에 오늘 스트레스를 덜 받긴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왜 하려고 하지?"
"동생이 유학 중에 있는데요.
급하게 쓸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보통 부모님이 대 주시지 않아?"
그 말을 하고 내 이력서와 등본을 훑는
지점장님의 표정에 살짝 당황이 묻어나왔다.
"아… 아, 그래. 생활하는데 많이 힘들겠구나."
"……."
"용모 단정하고,
손님들에게 거부감 주는 인상은 아니니까
어디 한 번 일해봐."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용과라서 그런가 몸매가 예술이구만."
"……."
"그럼 쟤한테 작업인수인계 받고 열심히 일해봐."
그 말을 끝으로 편의점을 나서는 지점장님.
끝에 그 말이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일자리를 구했다는 게 참으로 기뻤다. 헤헤…
정말 열심히 일해야지!
노예라는 것에서도 벗어나고,
우리 효민이 용돈도 두둑하게 붙혀 줘야 겠다!
★ 편의점 첫날 실습
후아후아…
떨린다. 두근두근…
다른 아르바이트는 많이 해 봤는데
편의점은 처음인 나는 첫손님 맞이할 생각에
설레여 하고 있다.
나의 첫손님은 누구일까?
으음…
과자가 먹고 싶은 5살짜리 꼬맹이?,
차디찬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사람?,
금연의 연속실패로 담배를 사러 오는 사람?,
급작스런 비를 피하려 우산을 사러 오는 사람?
와… 정말 누가될까?
그 때!
나는 첫 손님을 맞이할 순간의 놓이게 되었다.
일단 손님을 반갑게 맞이해야지!
"어서오세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인사를 한
후 고개를 서서히 들어올려.
"……."
그리고…
내 시야에 들어온
우글거리는 저 광경.
슬로우모션으로다가 내 눈앞을 샤샤샤샥…
설치고 지나간다.
"……."
10명 되는 고등학생들이 우루루 들어와
아이스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낸다.
합계 급액은 총 5000원.
다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그렇게 아이스냉장고를 스치고,
이젠 과자코너…
또 똑같은 과자를 고른다.
합계 금액은 총 7000원.
그렇게 과자코너를 지나
음료코너. 또… 똑같은 음료를 고른다.
합계 금액은 총 12000원.
이런 괴기한 현상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모두 같이 계산해 주세요."
그 말 또한 10명이서 동시에.
"네. 24000원 입니다!"
와… 24000원.
"24000원 받았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내가 마무리 인사를 하자 편의점에 들어왔을때처럼
우루루 한꺼번에 나가는 학생들.
입에는 아이스크림을 문채 말도 없이 묵묵히 편의점을 나간다.
참… 세상엔 희한한 사람들도 많아. 헤헤.
그나저나 나의 첫 손님은… 무뚝뚝 패밀리였어.
후…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아 뿌듯해. 헤헤.
그리고.
또 다른 손님!
"어서오세요!"
그리고.
내 시야에 들어온. 익순한 저 광경.
"내 입김이 이 정도다. 쿡."
두경이.
"백두경 그 입 꼬매버린다."
진하.
"아오. 무셔."
한솔.
"박한솔 이 겁쟁아."
찬희.
그리고.
"보아가 선전한 옥수수 음료가 어디 있지?"
그 유명한 V라인을 만들어 준다는
음료수를 찾아 두 눈을 번뜩이는 비연이.
학교에서 야자를 하고 있어야 하는 비연이가
편의점엔 웬 일이까요.
그리고…
애들이 내가 여기서 아르바이트 시작한건
또 어떻게 안 거야.
편의점에서 알바한다는거 알면
찾아와서 골치 아프게 할 거 알고
비연이한테도 안 말했는데.
다 들통났어!
첫댓글 작가님 재밋어요~ 건필하세요
맨날기다리구 있는거 아시져~~~~><
재밌어요~~
굿 굿 베리구 ~~~~ 잘보고 ~~ 갑니다아 ~~~~~~~ ㅋㅋㅋ
재밋어여~~~ 근뎅 왜이리 늦게 오시는거예염~~ㅠㅠ
숭녀야~ 잘봤어~ 자주 볼수없었는데 언제쯤 우리 자주 볼수있겠니? ㅠㅠ 보고잡구나 얼릉 완전 컴백해주기를 바래~ 오늘도 잘보고가^^
잘봤어요 ㅎㅎ
재밌어요 ㅎㅎ
재밌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