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의 산행기를 써오시던 조용구 동문께서 다리 사정으로 잠시 산행을 못 하시게 된 틈을 타 외람된 후배가 감히 임시 종산기자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물론 자천은 아니고 산우회 여러분의 명령에 따라). 하루속히 다리 건강을 회복하셔서 산우회 명칼럼니스트로 복귀하시기를 고대합니다.
"야, 산우회 많이 컸구나!" 목요일 골프모임 갔다가 금요일 산에 가기 피곤하니 골프모임 날짜를 바꿔달라는 누군가의 요청에 어느 골프회원이 했다는 말이란다. 이제 2년밖에 안된 산우회에서 1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골프모임의 날짜를 바꾸라는 무엄한 요구를 했으니 들어 싼 야유다. 그러나 지난 1박2일의 월출산 산행 및 남도 유람에서 우리가 누린 즐거움을 들여보면 왜 산우회가 골프회보다 더 인기가 있는지는 자명해질 것이다.
4월 18의 산행지는 월출산 국립공원. 월출산까지 갔다가 남도 유람을 안하고 올 수는 없다는 金會長의 제안으로 1박 2일의 여정이 됐다. 잘 알려져 있듯이 남도는 유홍준이 추천하는 대한민국 답사 1번지로, 볼거리도 유명하지만 특히 먹거리가 뛰어난 곳인데다 존경하는 우리 회장님의 고향 땅이다. 博學多識, 博聞强記한 회장님의 남도 안내는 내용의 충실도와 정성 면에서 단연 유홍준의 답사기를 뛰어넘는다. 18일은 월출산, 19일은 해남 땅끝마을까지 갔다가 달마산 미황사, 해남 대흥사와 윤선도 고택 녹우당을 보고 회장님의 고향인 현산의 항일 투쟁 유적지도 들른다고 한다.
산우회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인원인 19명이 참가했다. 비 올 확률 90%와 서남해안 폭풍주의보라는 일기예보에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징기스칸의 후예처럼 용맹무쌍하게 남도를 향해 돌진했다. 회장님이 이번 여행의 특식을 소개했다. 저녁은 영암 독천에서 갈낙탕, 토요일 아침은 영암 읍내에서 장뚱이탕, 점심은 해남 대흥사 입구에서 전주식 백반이라고 했다. 갈낙탕은 갈비와 산낙지로 끓인 탕인데 긴 말 할 것 없이 독천이 전국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곳이라는 것만 말해주겠다고 하신다. 그 말 듣고 가만있을 악동들이 아니다. 그럼 갈낙탕만 먹여놓고 그 다음은 어떻게 책임질 거냐, 오늘 저녁 방배정은 어떻게 하냐, 남학생 여학생 혼숙하면 안되냐, 남녀 짝이 안 맞으니 제비뽑기하자, 우리 마누라는 오고 니 마누라는 안 왔는데 무슨 제비뽑기냐, 시끌벅적 좌충우돌 그런 난리가 없다.
처음 달려보는 천안 논산간 민자고속도로는 과속 카메라가 없어 마구 달려도 되는 길이라는데 한적하기 그지없다. 눈부신 신록 사이로 산벗꽃, 배꽃, 복사꽃, 진달래, 조팝나무, 유채 꽃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무슨 일인지 올해는 모든 꽃이 전국에서 동시에 피어버렸다. 기상 이변으로 봄이 점점 짧아지기 때문에 꽃들도 서둘러 핀단다. 전국이 꽃으로 뒤덮여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어릴 때 부르던 동요 그대로다.
영암이 가까워오자 푸른 파도로 출렁이는 보리밭 한가운데 한 점의 빼어난 수석처럼 월출산이 우뚝 솟아 있다. 안개 자욱한 이슬비 속에 연보랏빛 자운영 꽃이 꿈같이 몽롱하다. 12시 천황사 입구에 도착했다. 출렁다리와 통천문을 거쳐 해발809m인 천황봉 정상까지 2시간 정도, 도갑사로 하산하는 길은 3시간 반정도 걸릴 거라고 한다. 안개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산죽과 시누대 사이로 동백 숲이 장관이다. 오솔길은 떨어진 핏빛 동백꽃으로 처연하기까지 하다. 누가 우리를 위해 붉은 카펫을 깔아 놓았단 말인가.
여러 사람을 긴장시켰던 120m 높이의 출렁다리는 안개 덕분에 아래 계곡이 보이지 않아 오히려 모두를 실망시켰다. 가파른 철계단과 바위를 기어올라 2시 30분 천황봉에 올랐다. 이정수 동문 부인께서 싸주신 샌드위치를 맛있게 나눠먹고 임종수 동문이 한다는 말. 오늘 이동문부인한테 이메일 보내야겠다, 이렇게 쪼끔만 싸주면 어떻게 하냐고.
올라오는 길에 잠시 인사를 한 이종범 회원은 내게 산행기에 자기 얘기도 써달라고 로비를 하셨다. 산송이술 공급책이라는 것말고는 별로 사전지식이 없는 나는 그분을 뵙고 깜짝 놀랐다. 달마대사가 환생한 줄 알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 김명국의 달마도를 보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것이다. 못 보신 분은 개인적으로 청하시면 사본을 카페에 올려드릴 의향도 있다. 잘생긴 얼굴 생김도 그렇지만 호방한 인품이 영락없는 달마대사이셨다. 달마대사는 소림사에서 9년 면벽수도한 후 선종을 개창한 유명한 도인이시다.
비바람이 거세 지자 먼저 정상에 오른 팀이 進路를 놓고 대책회의를 했다. 이 악천후에 도갑사 행은 무리니 하산 코스를 수정하자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후미와 함께 도착한 회장님이 타당한 의견이라며 바람폭포를 거쳐 다시 천황사로 내려가는 길로 진로를 수정했다. 바람폭포 하산 코스를 놓고 우리가 나중에 내린 결론은 "탁월한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비바람이 잦아든 바람폭포 계곡의 절경은 숨을 멎게 할 지경이었다. 기암괴석과 촉촉이 젖은 숲, 바람에 떨어져 날리는 꽃잎의 조화가 이루어낸 자연의 경외에 모두 숙연할 따름이었다. 이구동성 다음 맑은 날에 이 코스를 꼭 다시 와야한다고 했다. 4시 20분 하산 완료, 호텔로 향했다. 6명의 여학생이 한 방, 남학생은 두 방에 나눠 자기로 했다. 호텔에 딸린 온천탕은 노천탕까지 갖춘 이 지방의 명물로 일본 관광객들까지 보인다. 찬비가 얼굴을 간지르는 뜨거운 노천탕에 누워 산행의 피로를 풀고 있으려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드디어 독천 갈낙탕을 먹으러 갔다. 해남에서 수산업을 하고 있는 김자환 동문이 친구들을 만나러 독천까지 달려왔다. 우선 세발낙지로 월출산 등정 축하주를 들고 이어 대망의 갈낙탕을 시식했다. 맑은 국물은 시원하기 비할 데 없고 쫄깃쫄깃한 낙지 맛도 일품이다. 일전에 회장님이 남도에 갈 때는 꼭 반찬 통을 준비해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워낙 밑반찬이 맛있고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남은 젓갈만 싸와도 한 달 반찬 걱정 안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평소 요리에 관한 한 할 말이 없는 나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얼른 비닐 주머니와 반찬 통에 갖가지 젓갈과 밑반찬을 주워 담았다. 토하젓, 밴댕이젓, 어리굴젓, 전어젓, 게장, 운저리, 싱기... 이름도 다 못 외우겠다. 17 산우회를 따라다니면 생기는 것도 많다.
갈낙탕 효과를 놓고 진한 농담이 오가고 있는 사이 느닷없이 장변호사님이 폭탄 선언을 했다. "나는 오늘 밤 여학생 방에서 잘 겁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학생방은 술로 인해 시끄러울 것이라는 걱정때문이었단다. 졸지에 한방 먹은 회원들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고 멍해 있는데 임종수 동문 왈, "그렇다면 숭자 동문은 남학생 방에 보내셔야죠." 회장 사모님 차여사의 일갈이 뒤따랐다. "여학생방 사감은 난데 그냥은 못빼간다. 최소한 한 사람 당 10만원은 내야 빼갈 수 있다." 모두들 박장대소, 차여사는 결국 '차포주'가 됐다.
빈 술병이 줄을 서고 폭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모두들 행복했다. 김자환 동문이 반가운 친구들 대접한다고 저녁 값을 내셨으니 동문도 잘 두고 볼일이다. 호텔로 돌아와 한패거리는 또 배정운 동문이 들고 온 17세주(발렌타인 17년)로 2차를 했단다.
19일 아침, 비가 그쳤다. 이제 장뚱이탕을 먹으러 갈 차례다. 앞으로 이 지방에 여행갈 분들은 잘 기억하시기 바란다. 갈낙탕은 독천식당이고 짱뚱이탕은 영암군청 앞 중원회관이다. 김자환 동문이 추천한 곳이니 틀림없다. 짱뚱이탕 역시 소문난 보음보양식이라는 설명이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명회총무가 어젯밤 갈낙탕효과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고 엄살이다. 새벽에 모처럼 '텐트'를 쳤는데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안해서 이불로 가리느라 혼이 났다나...이래 저래 또 한잔 안 할 수 없다. 휴가 3낙을 빼지 않고 모두 즐긴다. 아침에 늦잠자기, 아침에 온천하기, 아침에 술마시기. 모두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표정이다.
회장님 고향인 현산을 지나 땅끝마을로 향했다. 양조장을 하던 회장님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지금도 양조장이란다. 회장님이 가면 막걸리를 공짜로 준다는데 시간이 빠듯해 못 들르고 지나갔다. 술앞에 항상 약한 김명용 회원이 자기만 좀 내려주고 가면 안되냐고 한다. 회장님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항일투쟁사의 실상은 이렇다. 일본에 대한 끓어오르는 적개심을 누를 수 없어 옆집 일본 여자아이를 매일 때려줬으며 식량난으로 고전하는 일본군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매일 마구마구 밥을 먹어치웠단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어릴 때 수영하던 연못도 지나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육지로는 최남단. 바닷가에서 증명사진 찍고 일부는 토말비를 보러 해안 산책에 나서고 여학생 반을 포함한 일부는 해물 쇼핑을 했다. 서울서는 보기 힘든 까시리, 미역귀, 호박, 고구마 등 한 보따리씩 샀다.
다음 행선지는 달마산 미황사. 바위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달마산 자락에 그윽하게 자리잡은 미황사는 신라 고찰로, 단청하지 않은 대웅전의 고졸한 아름다움이 뛰어난 절이다. 달마산 최고봉인 불썬봉은 완도에서 이어받은 봉화가 육지에서 처음으로 올라가는 봉화대가 있었던 곳으로 이름이 재미있다. 회원들은 다음에 달마산 등반도 해야된다고 의욕이 대단하다.
시간이 없어 녹우당은 생략하고 바로 대흥사 입구 전주식당으로 갔다. 김자환 동문이 또 달려왔다. 전통 전주식 산채백반에는 자연산 두릅, 죽순, 더덕, 표고에 반찬이 수십 가지다. 이종범 동문이 가져온 산송이 술과 김회장 생가에서 생산한 현산 막걸리, 전주식당의 동동주, 청탁불문 사방에서 술잔이 정신 없이 오간다. 후식으로 나온 음양곽은 삼지구엽초를 달인 차로 이 또한 "책임 못지는" 보양음료란다. 아이고, 세끼 내리 보양식을 먹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주지육림을 헤맨 대원들은 이제 대흥사 구경은 안중에도 없다. 대충 봤다 치고 버스 타고 가면서 술이나 더 마시자는 주장이 압도했다. 마침 미스 김이 배가 아파서 광주에서 비행기로 올라가야겠다고 하는 바람에 광주비행장을 향한 미스 김 수송작전에 정신이 집중됐다. 시간 맞추기가 아슬아슬해지자 김윤기동문이 아시아나항공의 모 동문에게 전화를 걸어 위급한 임산부가 있으니 도착할 때까지 비행기 잡아놓고 특별수속 해달라는 청탁까지 했다. 동문 잘 둔 덕을 또 본다. 비행기 출발 3분전 미스 김은 드디어 탑승에 성공했고 줄줄이 환송대열에 합류했던 대원들은 미스김 뱃속의 아기가 장래 서울 상대 후배가 될지도 모른다며 즐거워했다.
주말은 고속도로 전용차선제. 쌩쌩 달리는 우리 버스 옆을 거북이 걸음하는 승용차들을 보며 "더 막혀라, 더 막혀라." 신이 나서 심술을 부리는 우리 악동들. 마지막 남은 산송이술과 김회장의 비상 위스키까지 절딴을 내고나니 저녁 8시, 드디어 1박2일의 행복하기 그지없었던 우리의 여정이 아쉽게도 끝났다. 다음 산행은 5월 2일 소백산.(이걸 내가 미리 발설하면 안되는데---) 올 상반기 목표인 지리산 등정을 위해 약간 고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회장님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작별이 아쉬웠던 임종수동문의 부인 김경자 여사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기밀 하나를 발설했다. 사실은 어젯밤 여학생 방에서는 우리가 이렇게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는 게 따지고 보면 다 남편 잘 둔 덕이니 우리가 다 시집을 잘 온 게 아니겠느냐는 공감대가 형성됐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끼리 얘기지 절대 남편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는 중론이었다. 그런데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여성 회원들이 박수와 함께 일제히 17 악동들에게 보낸 찬사. "17 남편 만세!!!"
PS: 이제까지 참여하지 않으셨던 동문부인들께서도 앞으로 적극 참여바랍니다. 사실 회비 3만원(동반자 할인)으로 이렇게 호사하는 1박2일 여행 어디가도 없습니다. (노순옥 기)
盧여사님! 手苦 많았습니다.일기가 불순한 점 유감스럽습니다만, 일류 찰영감독이 직접찰영하여 올린 동영상을 감상한것 같습니다.앞으로 많은 명작을 기대하며, 많은 勞苦를 부탁드립니다. 유일한 홍일점 김숭자동문, 장 변호사님 장가 잘 가셨수다? 박 정수학형! 위염차도는 여하 . 좋은 작품 만드시게 많은外助부탁해요
첫댓글 비로 시작해서 비로 끝내더니 예상대로 거한 술판 한판이었었구먼.....그러면서도 뭐? 조신하게 산행만 했다구? 하여간 존경하는 명용선생,명회,한석 선생들 오랜만에 원 풀었겠수다. 아이구 군침 돌아라.
김은정양의 수송작전주역은 임한석 대장이였으며 저는 조언만 했을 뿐입니다. 임대장 평소에 인심을 얻어 두실것 그랬우.
그러지 않아도 즐거운 산행의 재미가 한가지 더 늘었습니다. 산에 다녀 온 뒤 유려한 필치의 산행기를 기다려 읽는 재미라니. 산행기가 갈수록 재미있습니다. 노여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조용구 동문 산행기자로 복직하기 어렵겠수.
盧여사님! 手苦 많았습니다.일기가 불순한 점 유감스럽습니다만, 일류 찰영감독이 직접찰영하여 올린 동영상을 감상한것 같습니다.앞으로 많은 명작을 기대하며, 많은 勞苦를 부탁드립니다. 유일한 홍일점 김숭자동문, 장 변호사님 장가 잘 가셨수다? 박 정수학형! 위염차도는 여하 . 좋은 작품 만드시게 많은外助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