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장 전차종점
옛날의 모습
지금은 주상복합건물로 바뀌었다
온천교를 건너고
현대요양병원(지금 뒤쪽에 있는 주택은 철거 예정 임) 지나 명륜로와 만나는
온천장 입구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동래방면으로 따라 명륜로와는 10m~20m 간격을 두고 전차선로가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선로주변은 논으로 미나리꽝이 많았으나
주택지로 변하고 지금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명륜로 오거리
명륜로
온천장 방향(도로 오른쪽은 명륜초교)
댓나들이터 표지석(문화로 입구)
서문구 정차장
정차장은 명륜동 교차로에서 지하철 명륜역 방향으로 명륜 쟈이 앞 마을버스 정거장에 있었다
아곳은 옛 동래읍성의 서문이 있었다고 하여 정류장 아름을 서문구라 하였다
동래로
왼쪽은 명륜초교
옛 동래여고 교정
우성베스토피아 이파트 전경 (이 아파트에는 지하 주차장이 없다.)
아파트가 놓여있는 동 별 위치가 옛 학교 건물 배치와 유사하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0-1.
일신여학교 고등과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1925년 6월 10일에 조성되어 1987년 1월 19일까지 62년간 사용하였는데, 1950년 6.25 전쟁때 징발되어 1950년 8월 15일 부터 1951년 9월까지 1년간 육군종합학교로 쓰이기도 했고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도 이곳에서 임관하였다.
지금은 해체된 306 보충대의 시초인 제2보충대 5중대 또한 1952년 2월에 여기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1987년에 동래여고가 구서동으로 이전되면서 당시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교사는 그냥 철거되고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 용지로 변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곳이 육군종합학교나 보충대로 쓰였다는 사실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지고 말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역사적 가치가 높았던 곳이기에 철거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매우 귀중한 근대 문화유산이 되었을 것이다.
오른쪽은 동래구청 신청사
명륜로
국민은행 옆 건물에 옥샘서점이 있었다
옥샘서점은 명륜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에
유심히 보고 다녔다
동래여자고등학교의 교지명이 ' 옥샘 ' 이다
첫댓글 김규태 / 金圭泰
생년월일1934년 3월 26일
출생지; 대구
"부산문화예술
전자아카이브" 2012년 7월의 인물스페셜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참 곤란해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광복이 되던 해에 아버지의 고향인 부산으로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부산사람입니다.”
시인으로 또 언론인으로 오랜 세월 부산을 지켜온 김규태 시인은 유소년시절과 대학시절을 빼고는 부산을 떠나본 적이 없는 부산사람이다.
김 시인은 1934년 대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칠성초등학교 5학년 때 광복을 맞았다.
그 해 9월, 시인의 가족은 아버지의 고향인 부산 금정구 부곡동으로 이주했다. 부곡동은 안동김씨의 오랜 세거지로, 시인의 가족은 마침내 진짜 고향으로 돌아 온 것이다.
내성국민학교를 졸업한 시인은 6년제인 동래중학교에 입학했다. 시인은 중학생 시절에 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책을 많이 읽었는데, 특히 시와 소설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책을 많이 사 주셨죠. 그 당시 동래시장에 서점이 세 군데 있었는데, 옥샘서점이 제 단골서점이었습니다. 그 때 출간된 시집과 단편집을 읽으며 밤을 새운 날도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