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덕의 거울
<124>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임종하려고 옮겨 가는 도중에 아씨시 도시를 축복하다.
거룩하신 사부께서 죽음이 임박했음을 안 것은 의사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서영에 의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가 주교관에 기숙하고 있었지만 건강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아 몸이 나른해지자 자기의 영적 생명과 빛을 받은 곳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고 하여 들것에 실려서라도 뽀르치운꿀라의 성모 성당으로 옮겨 주도록 요청하였다. 그를 옮기던 형제들이 아씨시와 뽀르치운꿀라의 성모 성당 중간쯤에 있는 휴게소에 이르렀을 때 드것을 땅에 내려 달라고 하였다. 왨동안 앓아온 심한 눈병 때문에 시력은 잃었지만 아씨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들것을 돌려 놓게 하였다. 몸을 조금 일으켜서 그 도시를 축복하면서 기도하였다. “주여, 전에는 이 도시가 악한 자들의 거처였사옵니다만 당신의 자비하심과 당신이 택하신 이 시간에 당신은 여기에다 특별히 풍부한 은총을 기꺼이 뿌려 주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빛내고, 또 훌륭한 모범과 거룩한 생활과 참된 교리와 복음적 시상 등에서 풍기는 방향을 널리 전파하는 사람들의 집이 되고 거처가 되도록 당신 몸소 이곳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여, 자비하신 아버지여, 당신에게 간청하오니 우리가 당신을 배신한 행위를 기억하지 마시고 진실로 당신을 진실로 당신을 알고 당신의 복되시고 영광스런 이름을 영원히 빛내는 사람들의 집이 되고 거처가 되도록 당신이 보여 주셨던 풍요로운 사랑을 마음 속에 채워 주소서. 아멘.”
그가 기도를 끝마치고 다시 뽀르치운꿀라의 성모 성당으로 실려 갔다. 1226년 10월 3일 향년 40세로 회개 생활 20년을 보내고 그동안 온 마음을 다하고 전 넋을 쏟아 가며 온 힘을 기울여 뜨겁디 뜨거운 소망을 품고 온전히 다 바쳐 흠모했던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떠났다. 온전히 주님을 따랐고 주님의 발자취를 서둘러 밟아 나섰으며 드디어는 영원히 성부와 성령이 함께 살고 계시는 주님께로 크나 큰 영광을 받아 나아갔다. 아멘.
여기 완덕의 거울은 끝났다.
그건 작은 형제회의 모습이었다.
성소 생활의 극치가 거기
남김없이 바쳐지리라.
아버지 하느님께 그리고 성자와
성령께 찬미와 영광이.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당신의 종, 성 프란치스코에게 영예와 찬미를,
알렐루야!
아멘.
<완덕의 거울>을 전하면서
이 책이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1898년<바오로 사비디에(Paul Savatier)에 의해서였다. 그 동안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인 <레오>가 1227년에 서술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으나 요즘의 사가들은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있다. 다만 이 내용은 14세기 초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처음에는 여러 다른 책에 수록되었던 것을 <바오로 사바디에>가 정리하여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일생동안 그리스도를 닮고자 뻐를 깍으며 살다가 주님께로 나아간 성 프란치스코의 신앙생활은 냉혹하리 만큼 철저한 것이었다.
호상의 아들로 태어나 부귀 영화를 마음껏 누릴 수도 있었던 프란치스코의 회개생활은 제2 그리스도의 생활 그것이었다 할 것이다. 철저한 가난과 철저한 겸손, 철저한 희생으로 일관되어 온 그의 신앙생활은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의미를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세상은 참으로 심각하게 변하고 있다. 삶의 가치 기준이 점차로 모호해져 가는가 하면 본래의 것은 미쳐 둔 채 본래의 것이 아닌 것을 추구하느라 다람쥐 채바퀴 돌듯 삶을 잇고 있는 것이 현실의 모습이라고들 하고 있다. 왜 사는지도 모르게 밀려 살아가고 있다. 기준도 없는 삶의 선상에서 오늘도 곡예사처럼 용케도 살아지고 있을 뿐이.
이러한 오늘의 생활에서 보면 그의 신앙생활을 불필요한 고통 속에서 의미없이 허위적 거리는 너무도 바보스런 생활로 보이리라. 각기 자기 나름으로, 자신에게 편리한 하느님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그가 틀림없이 천치로 비치리라. 그러나 그는 바보도 천치도 아니다. 매섭도록 아픈 고통속에서 기쁨과 환희를 얻었고 그 고통이 크면 그 만큼 더 하느님께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해 졌던 것이다.
한 성인의 발자취를 더듬는다는 외람된 작업이 참으로 두려워진다. 그의 철저하였던 신앙생할의 모습을 나와 함께 참 신앙의 불꽃을 피우고자 하는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서투른 솜씨로 부끄러운 작업을 감히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가난과 겸손과 자기 희생의 순수한 모습은 완덕으로 이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하나의 좋은 거울이 되는데 충분하리라 본다. 오늘의 신앙인들에게도 더없이 훌륭한 신앙 지침서라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번역의 원본으로 Mrion A Habig가 편집한 St. Francis of Assisi: Omnibus of Sources(Chicago, Illinois: Franciscan Herald Press, 1972)를 사용하였다.
끝으로 번역하는데 도와 주신 지 로꼬 신부님과 이 종룡 형님께 충심으로 감사드리고 또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권젤뚜루다(경희)양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인사를 보낸다.
1981년 19월 4일
성 프란치스코 탄생 800주년을 맞으며 역자
류기식
Mirror of Perfection..
124
How he blessed the city of Assisi while he was being carried to die at S. Mary’s
The most holy Father had now been informed by the Holy Spirit as well as by the doctors that his death was near. Hitherto he had been lodged in the bishop’s palace, but when he felt himself growing steadily worse and his bodily powers failing, he asked to be carried on a litter to S. Mary of the Porziuncula, so that his bodily life should draw to its close in the place where his spiritual life and light had come into being.
When the brethren who were carrying him arrived at the hospice standing by the road half-way between Assisi and A. Mary’s, he asked the bearers to set the litter on the ground. And although his long-standing and severe disease of the eyes had almost deprived him of sight, he had the litter turned to face the city of Assisi. Raising himself a little, he blessed the city, saying, ‘Lord, it is said that in former days this city was the haunt of wicked men. But now it is clear that of Thine infinite mercy and in Thine own time Thou hast been pleased to shower especial and abundant favours upon it. Of Thy goodness alone Thou hast chosen it for Thyself, that it may become the home and dwelling of those who know Thee in truth and glorify Thy holy Name, and spread abroad the fragrance of a good report, of holy life, of holy life, of true doctrine, and of evangelical perfection to all Christian people. I therefore beseech Thee, O Lord Jesus Christ, Father o mercies, that Thou wilt not remember our ingratitude, but ever be mindful of Thine abundant compassion which Thou hast showed towards it, that it may ever by the home and dwelling-place of those who know Thee in truth and glorify Thy blessed and most glorious Name for ever and ever. Amen.’
When he had ended his prayer, he was carried on to S. Mary’s There, on October the third, 1226, in the fortieth year of his life and after twenty years of perfect penitence, he departed to the Lord Jesus Christ, Whom he had loved with all his heart, with all his mind, with all his soul, and all his strength, with the most ardent desire and with utter devotion, following Him perfectly, hastening swiftly in His footsteps, and at last coming in the greatest glory to Him Who lives and reigns with the Father and the Holy Spirit for ever and ever. Amen.
Here ends the Mirror of Perfection,
Which tells of the state of the Friar Minor,
And in which the perfection of his vocation and profession
May be seen accurately reflected.
All praise and glory to God the Father, and to the Son, and to the Holy Spirit.
Alleluia! Alleluia! Alleluia!
Honour and exaltation to His most blessed servant Francis.
Alleluia!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