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의 추억
- 강 문 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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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때의 두 선배와 단골 삼계탕 집을 찾았을 때였다. 옆 좌석에서 여자 손님이 큰소릴 질렀다. 그녀는 뜻밖에도 외국인이었다. 피부색깔이나 신장으로 보아 세 사람은 동양인이 확실해 보이는데 소릴 지른 여인은 백인처럼 흰 피부에 얼굴 윤곽도 서양인에 가까웠다. 문제는 그녀가 추가로 요구하는 반찬을 식당 주인은 알아듣질 못한다는 거였다. 삼계탕 반찬이라야 배추김치에다 깍두기 양파 풋고추 생마늘에 막장이 고작일 터이고 조미료라야 소금과 후춧가루인데 일본말을 유창하게 하는 여주인도 영어로 요구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 이것저것 들고 왔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답답해서 내가 옆에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영어로 물었다. 예순은 넘겼을 것 같은 그녀들 중 나머지 세 명은 흡사 일본 여성들처럼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삼계탕 먹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타이완”이라고 답하며 이제 뭔가 찾는 반찬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드는지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핫 소스'란 말을 했다. 알고 보니 고추장을 찾는 것이었다. 난 의기양양해져 고추장을 따라 발음하도록 훈련을 시켰고 그녀는 혀를 굴려 "고-추-장"이라며 두어 번 따라하다가 힘든지 얼굴을 붉혔다.
옆에서 조용히 먹고 있던 일행들도 튜브에 든 고추장을 빈 접시에다 짜내어 찍어 먹기 시작했다. 대만 사람들에게 삶은 닭고기를 고추장에다 찍어먹는 음식문화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중국인 관광객을 ‘유커’遊客라고 신문과 방송이 하도 떠들어서 이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내 여행객 ‘뤼커’旅客와는 구분된다. 서울 명동이나 경복궁 남산과 같은 관광명소엔 유커들이 넘쳐난 지 오래다. 일전에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청춘남녀 유커들이 골목길을 가득 메운 걸 보면서 그들의 조상이 1883년 인천항 개항 때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동쪽인 산동성에서 인천까지의 거리는 육로를 따라 빙 도는 것에 비하면 반의반밖에 되질 않아 해상을 이용했던 것이다. 군사혁명이 일어난 다음해에 ‘한화韓華일보’는 서울 시민회관 맞은편 건물에 들어 있었고 난 그 신문 배달원이었다. 신문 이름이 말해주듯 한국에 사는 화교들이 읽었고 순전히 한자로만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그 신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땐 중국과 적대적 관계였으므로 중국공산당의 약칭인 중공으로 불렀다. 그러니 그때 한국 화교는 대만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간자체가 만들어지기 전이었으므로 신문엔 획수가 복잡한 원래의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4면인 관계로 신문 2백부의 부피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배달하는 거리가 문제였다. 롯데백화점 자리에 있던 반도호텔 옆은 고급 중식당 ‘아서원’이었다. 그곳을 출발하여 조선호텔 쪽으로 꺾으면 바로 소공동이 시작된다. 소공동은 그때도 서울 상권의 중심지였던 명동에 이어 두 번째로 번화한 거리였고 화교들이 노른자위를 많이 차지했었다. 그들의 점포를 화상華商이라 불렀고 중국요리나 짜장면 등을 파는 중식당은 물론 한의원이나 약재 판매상 식품점 하다못해 이용원까지도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한국의 금싸라기 땅을 이처럼 크게 차지하여 영업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상들이 얼마나 큰 부자인가는 그해 여름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화폐개혁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당시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의 금융기관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현찰은 은행에 맡길 생각을 않고 집안의 은밀한 벽장이나 장롱 속이 아니면 땅속에 파묻어두고 지냈다. 정부는 국민들이 1인당 바꿀 수 있는 신화폐의 상한선을 정하여 발표하게 된다. 그러자 엉뚱하게도 겉으로 평범하게 보였던 몇몇 화교들의 천문학적인 돈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바꾸지 못하면 멀쩡한 돈이 휴지조각이 될 건 불문가지였다. 알뜰하게만 모은다고 해서 그렇게 큰돈이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인정도 피눈물도 없는 수전노 짓으로 악착같이 모은 돈을 바꿀 수 없게 되자 사리분별이 둔한 어느 왕 서방은 우물에 띄어들어 자살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이렇게 되자 화교들의 돈벌이에 일조를 했던 일반 시민들도 뙤놈들을 성토하는데 열을 올리게 되었다. 사실 중국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은 되놈이라야 맞는데 그렇게 불러선 성에 차지 않았던지 강세를 붙여 불렀다. 되놈에서 '되'는 본래 두만강 인근의 만주에 살았던 여진족을 이르는 말이었다.
소공동에서 시작하여 중화민국 대사관과 각급 화교학교가 몰려있는 명동까지 신문을 배달하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정동 뒷골목을 지나 관훈동 관철동 세종로성당이 있는 효자동 입구에서 서촌마을을 돌아 나와 신문로를 거쳐 서대문까지 밟고 나면 등짝엔 땀이 흥건하고 몸은 피곤에 젖게 된다. 여기서부터 신문 독자는 대로를 따라 진행하는 방향의 가로에 붙은 ‘화상 중화요리’ 간판이 매달린 중식당들이다. 변두리에 속한 이곳은 2백 미터에 하나 3백 미터에 하나 어떤 곳은 5백 미터 넘게 중국집이 떨어져 있어서 아현동고개를 올라 신촌까지 도착하고 나면 몸은 천근만근이 된다.
그나마 배달은 화교들의 점포나 집에다 신문만 넣고 나면 끝나지만 구독료 수금은 예상보다 어렵다. 사람을 의심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들은 말일 개념이 강해서 돈이 있어도 무조건 월말을 지나야 한다. 월말이 지나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날짜를 미루는 이들도 있었다. 집안에만 두어 이자도 안 붙을 돈을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이민족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자 그들이 미워지기 시작했고 서구식으로 침대나 의자에서 생활하는 주거방식도 좋아보이질 않았다.
당시 조리대 벽면에 켜켜이 달라붙은 먼지와 쥐들이 들락거리는 불결한 주방을 보면서 중국 음식을 불신하게 되었다. 파리가 새까맣게 달라붙은 음식을 손님 때문에 쉬었다가 다시 먹는 것도 구역질났다. 여자가 귀해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의 성장을 정지시킨 때문에 초로의 여인들이 뒤뚱거리는 걸음을 걷는 것도 꼴불견이었다. 그러면서 신문대금 수금이 힘들 때마다 화교들에게 죄를 지어서 앙갚음을 당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고향의 초등학교는 화교학교와 낮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경계로 붙어있었다.
삼사학년 꼬맹이들이 무엇을 제대로 알았을까마는 우리는 화교 학생들과 담을 넘지 않고 집단으로 맞서 자주 싸움판을 벌였다. 그렇다고 막대기를 휘두른다든가 돌멩이를 던진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서로 상대나라 말을 익혀 저쪽에서 들으면 기겁할 정도의 무지막지한 욕설을 퍼붓는 싸움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싸운 걸 보면 앞서부터 해내려오던 나쁜 풍습을 그대로 답습한 것 같았다. 일본은 ‘바보’라든가 ‘망할 놈’ 정도가 욕설인데 비해 같은 동양권인데 우리와 중국은 욕설이 같다는 걸 뒤에야 알았다. 하기야 미국인들도 우리에게 배웠는지 그 욕설을 사용하긴 한다.
누구나 다 가진 여자의 신체에서 은밀한 부위를 들추는 것이 무슨 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상대를 낳아 기른 그의 어머니를 겨냥해서까지…. 모르긴 해도 호기심 많았던 꼬마들이 상대 나랏말로 욕설을 퍼붓고 그쪽의 즉각적인 반응에 재미를 붙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지옥으로 떨어지라!’든지 ‘개새끼!’와 같은 저주를 퍼붓는 서양인들의 욕설이 제대로 된 욕설이란 생각이 든다. 화교 어린이들과 이렇게 다툰 것은 어쩌면 육이오 동란에서 기습남침한 쪽을 인해전술로 도운 중공군을 떠올린 것일 수도 있으리라.
다된 한반도 통일을 망치게 한 중국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해서 그런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것도 무척이나 궁색한 변명이란 걸 알 수 있다. 화교들도 중국 본토의 정든 고향을 두고 대만으로 쫓겨났거나 지금의 탈북자들처럼 자유를 찾아 고국을 등지고 한국 땅까지 찾아온 것인데 이국에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중과부적으로 당하고만 있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비록 어릴 때긴 하지만 그러한 대열에 아무런 생각 없이 합세했던 죗값을 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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